경주 국립경주박물관 뜰에는 신라가 남긴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이 걸려 있다. 높이 3.66미터, 무게는 18.9톤에 이르는 거대한 청동 종. 표면에는 하늘을 나는 비천상이 옷자락을 흩날리며 새겨져 있고, 종신을 두른 천 자에 가까운 명문이 신라의 마음을 오늘까지 전한다. 정식 이름은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래도록 이 종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 왔다. 에밀레종. 종을 치면 그 여운 속에서 '에밀레, 에밀레' 하고 어린아이가 어미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 소리의 정체를 두고 전해지는 전설은, 종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바쳤다는 참혹한 것이었다. 오늘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 전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 전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안개 낀 새벽, 어두운 사찰 종각에 걸린 거대한 신라 청동 범종의 실루엣 (AI 생성 이미지)
안개 낀 새벽, 어두운 사찰 종각에 걸린 거대한 신라 청동 범종의 실루엣 (AI 생성 이미지)

전설이 말하는 것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신라의 한 왕이 세상을 떠난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나라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종을 만들기로 했다. 온 나라의 구리를 모으고, 이름난 장인들이 매달렸지만 종은 좀처럼 완성되지 못했다. 쇳물을 부으면 종은 자꾸만 깨지거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만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흐르고 구리는 바닥나 갔으며, 장인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깊어졌다.

전설은 여기서 한 승려의 시주 이야기를 끌어온다. 시주를 받으러 다니던 스님이 어느 가난한 집에 들렀을 때, 그 집에는 시주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아이를 안은 어미가 "우리 집엔 이 아이밖에 없다"고 지나가듯 답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는 것이다. 종이 자꾸 실패하자 사람들은 그 말을 떠올렸고, 결국 그 아이를 데려다 끓는 쇳물에 넣어 종을 완성했다는 것이 전설의 줄거리다. 그렇게 만들어진 종은 마침내 웅장한 소리를 냈는데, 그 여운이 마치 아이가 어미를 부르는 '에밀레'처럼 들렸다고 한다. '에밀레'는 옛말로 '엄마 때문에'라는 뜻으로 풀이되곤 했다. 자신을 그곳에 보낸 어미를 원망하듯 부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이야기의 세부를 더 파고들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한 아이의 죽음을 흥밋거리로 삼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히 해 둘 것이 하나 있다. 이 전설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종 그 자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어두운 사찰 안, 청동 범종 표면에 새겨진 비천상 문양의 클로즈업, 은은한 빛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사찰 안, 청동 범종 표면에 새겨진 비천상 문양의 클로즈업, 은은한 빛 (AI 생성 이미지)

종은 언제, 왜 만들어졌나

전설을 걷어내고 기록으로 돌아가 보자.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큰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아들 혜공왕 대인 771년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종을 봉안했던 절의 이름을 따 '봉덕사 종'으로도 불렸다. 종신에는 이 종을 만든 내력과 뜻이 천 자에 가까운 명문으로 새겨져 있어, 오늘날 신라 사회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명문에는 종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과 관직, 종을 완성하기까지의 정성이 담담하게 적혀 있다. 그 어디에도 아이를 넣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아니, 있을 리가 없다. 이 종은 죽은 왕의 명복과 나라의 평안을 비는 불교적 발원(發願)의 산물이었다. 살생을 가장 큰 죄로 여기는 불교의 세계 안에서, 하물며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종을 만들며 살아 있는 아이를 제물로 삼는다는 것은 그 발원의 뜻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종은 자비를 담는 그릇이지, 그 반대의 것을 담는 그릇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종은 왜 그렇게 만들기 어려웠을까. 사실 18.9톤에 이르는 거대한 청동 종을 한 번의 주조로 완성하는 일은 당대의 기술로 지극히 어려운 도전이었다. 쇳물이 고르게 퍼지지 않으면 기포가 생기고, 기포가 생긴 자리는 소리를 죽이거나 종을 갈라지게 한다. 전설이 말하는 '자꾸 실패하는 종'은, 실은 인신공양의 결과가 아니라 거대한 종을 완벽하게 뽑아내기 위한 장인들의 지난한 시행착오 그 자체였던 것이다.

거대한 신라 청동 범종의 하단 당좌와 무늬를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 어두운 배경 (AI 생성 이미지)
거대한 신라 청동 범종의 하단 당좌와 무늬를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 어두운 배경 (AI 생성 이미지)

과학이 열어 본 종의 속

전설을 결정적으로 반증한 것은 1998년의 성분 분석이었다. 당시 한 산업과학기술 연구기관이 성덕대왕신종의 금속 성분을 정밀하게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오랜 전설에 조용하지만 단호한 마침표를 찍었다. 종의 성분에서 인(燐)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왜 결정적인가. 인은 사람의 뼈를 이루는 핵심 성분이다. 만약 전설의 말처럼 어린아이를 끓는 쇳물에 넣어 종을 만들었다면, 청동 속에는 뼈에서 비롯된 인이 미량이나마 흔적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밀 분석 결과, 그 흔적은 단 한 톨도 나오지 않았다. 종은 구리와 주석을 중심으로 한 순수한 청동 합금이었을 뿐, 그 안에 사람의 것이라 할 만한 어떤 성분도 섞여 있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금속공학의 상식 하나가 전설을 더욱 무너뜨린다. 성덕대왕신종처럼 거대하고 맑은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려면, 쇳물 안에 기포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끓는 청동에 사람의 몸처럼 수분과 유기물이 많은 것을 넣으면, 순식간에 수증기와 가스가 폭발하듯 발생해 오히려 기포투성이의 '실패한 종'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 아이를 넣어 종을 완성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참혹할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든 종은 결코 그 맑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성덕대왕신종이 천이백 년이 넘도록 깊고 긴 여운을 간직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전설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어두운 주조 작업장의 추상적 이미지, 붉은 청동 쇳물의 빛이 어둠 속에 번지는 모습,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주조 작업장의 추상적 이미지, 붉은 청동 쇳물의 빛이 어둠 속에 번지는 모습,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그렇다면 이 전설은 언제 태어났나

과학이 전설을 부정한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토록 슬프고 강렬한 이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언제 온 것일까. 놀랍게도 역사학계에서 이 에밀레종 설화를 신라 당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로 보는 학자는 없다. 종이 만들어진 771년의 어떤 기록에도, 신라와 고려의 문헌 어디에도 아이를 넣었다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문헌에 처음으로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놀랍게도 20세기, 1925년의 한 창작 동화에서였다. 천 년이 넘도록 종은 그저 종이었고, 전설은 훨씬 뒤에야 종에 덧입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을까. 여기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이 있다. 종이 완성된 혜공왕 시대의 신라는 정치적으로 몹시 어지러운 때였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혜공왕을 대신해 그 어머니가 정사에 깊이 관여했고, 끝내는 왕을 배반한 신하가 왕위를 빼앗는 정변으로 치달았다. 이 어지러운 시대의 기억이, 세월이 흐르며 하나의 이야기로 응결되었다는 것이다. '어미가 자기 아이를 희생시켜 무언가를 이룬다'는 이 전설의 구도는, 어린 왕을 앞세우고 권력을 휘두른 왕의 어머니와, 그 왕을 저버린 신하들의 시대를 에둘러 풍자하고 원망하는 민중의 목소리였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아이의 죽음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을 담아낸 하나의 은유였던 셈이다.

이런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은 데에는 종소리 자체의 힘도 컸을 것이다.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는 유난히 길고 깊게,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처럼 떨리며 이어진다. 그 여운을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마음 한구석이 아려 온다. 사람들은 그 알 수 없이 서글픈 울림에 하나의 이야기를 붙이고 싶어 했고, '에밀레'라는 애처로운 이름을 지어 붙였다. 슬픈 소리에는 슬픈 사연이 어울린다고 여겼던 것이다. 전설은 그렇게, 종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 만들어 낸 그림자였다.

안개 속 어두운 사찰 경내, 종각과 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처마의 실루엣 (AI 생성 이미지)
안개 속 어두운 사찰 경내, 종각과 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처마의 실루엣 (AI 생성 이미지)

우리가 종에게서 들어야 할 것

여기까지 오면 에밀레종의 이야기는 처음의 오싹함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 이것은 아이를 제물로 바친 잔혹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었다. 이것은 천이백 년 전 신라 사람들이 죽은 왕의 명복을 빌며 온 정성을 모아 만든, 자비를 담은 그릇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위에 훨씬 뒷사람들이 시대의 아픔과 종소리의 슬픔을 얹어 지어낸, 하나의 오래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video controls muted loop playsinline poster="/media/emille-1.jpg" style="width:100%;border-radius:8px;"> <source src="/media/emille-clip.mp4" type="video/mp4" /> </video>

안개 낀 종각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짧은 영상 —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라 분위기를 재현한 연출이다.

전설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청동 종에게 하지 않은 죄를 씌우는 일이고, 무엇보다 있지도 않았던 한 아이의 죽음을 자꾸만 되풀이해 이야기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마무리하려 한다. 종은 아이를 삼키지 않았다. 과학은 그것을 증명했고, 불교의 마음은 애초에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역사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도 성덕대왕신종은 소리를 낸다. 길고 깊은 그 여운은 원망이 아니라 발원이며, 슬픔이 아니라 기원이다. 안개 낀 종각에 걸린 저 거대한 청동을 바라보며 우리가 정말로 들어야 할 것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천이백 년 전, 누군가의 명복을 빌며 이 종을 만든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오늘까지 지켜 낸 시간의 무게다.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종은, 조용히, 그저 종으로 남는다.

해질녘 사찰 종각에 걸린 거대한 청동 범종의 고요한 원경, 안개와 긴 여운의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해질녘 사찰 종각에 걸린 거대한 청동 범종의 고요한 원경, 안개와 긴 여운의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