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중반, 영국 동부 서퍽의 작은 농촌 마을 울핏(Woolpit)에서 벌어졌다고 전해지는 일이다. 마을 이름은 오래전 늑대를 잡기 위해 파 두었던 구덩이(wolf pits)에서 비롯됐다. 어느 수확철의 날,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 구덩이 곁에서 두 아이를 발견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어린 남매였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피부였다. 온몸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고, 마을 사람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했다. 마을로 데려온 뒤에도 아이들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다가, 마침내 콩을 발견하고서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여자아이는 영어를 배웠고, 자신들이 '성 마르틴의 땅'에서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단 두 편의 중세 연대기에만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역사적 기록으로 전해지되,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지어낸 전설인지는 800년이 넘도록 아무도 확정하지 못했다. '울핏의 초록 아이들' 이야기다.

안개 낀 12세기 영국 서퍽 농촌의 새벽 들판, 초록빛으로 물든 두 아이의 실루엣 (AI 생성 이미지)
안개 낀 12세기 영국 서퍽 농촌의 새벽 들판, 초록빛으로 물든 두 아이의 실루엣 (AI 생성 이미지)

수확철의 울핏 마을

이야기의 무대인 울핏은 잉글랜드 동부 서퍽 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이다. 12세기의 잉글랜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지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고, 나라는 스티븐 왕(재위 1135~1154)의 치세 아래 왕위 계승 다툼으로 오래 혼란을 겪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흙집과 초가지붕 아래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마을 바깥의 숲은 늑대가 실제로 돌아다니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울핏이라는 이름 자체가 '늑대 구덩이'에서 왔다는 사실은 그 시대의 풍경을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은 가축을 노리는 늑대를 잡기 위해 깊은 함정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미끼를 두었다.

그런 마을에서 어느 수확철의 날, 밭에서 곡식을 거두던 사람들이 늑대 구덩이 근처에서 두 아이와 마주쳤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을 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얼굴과 손발, 온몸의 피부가 하나같이 초록빛이었다는 점이다. 병들어 창백하거나 그을린 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뚜렷한 초록색이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낯선 남매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마을로 데려왔다.

중세 영국 마을의 늑대 함정 구덩이와 수확하는 농부들, 채색 필사본 삽화풍 (AI 생성 이미지)
중세 영국 마을의 늑대 함정 구덩이와 수확하는 농부들, 채색 필사본 삽화풍 (AI 생성 이미지)

초록 아이들의 정체 — 언어, 콩, 그리고 초록 피부

마을로 온 뒤에도 아이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아이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만 대답했다. 그 언어는 라틴어도, 당시 이 지역에서 쓰이던 어떤 말도 아니었다고 한다. 더 이상한 것은 먹는 문제였다. 사람들이 빵이며 고기 같은 온갖 음식을 내주었지만, 아이들은 며칠 동안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배가 고팠을 텐데도 눈앞의 음식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마침 밭에서 막 거둔 콩이 눈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비로소 반응을 보였다. 다만 처음에는 콩깍지를 열 줄 몰라 줄기 속을 헤집었고, 알맹이가 든 깍지를 찾아내고서야 그것을 먹었다고 전한다. 한동안 이 남매는 오직 콩만 먹으며 지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마을의 음식에 익숙해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피부의 초록빛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달에 걸쳐 초록색은 차츰 빠져나갔고, 아이들의 피부는 점점 이 지역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보통의 빛깔로 돌아갔다. 이 대목은 훗날 이 사건을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서로 여겨졌다. 초록빛이 음식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은, 그 색이 아이들의 몸 상태나 먹은 것과 관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그때도 지금도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갓 수확한 콩깍지와 콩, 중세풍 나무 그릇에 담긴 소박한 음식 (AI 생성 이미지)
갓 수확한 콩깍지와 콩, 중세풍 나무 그릇에 담긴 소박한 음식 (AI 생성 이미지)

'성 마르틴의 땅' 이야기

두 아이 중 여자아이가 마침내 영어를 배우게 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을 수 있게 됐다. 여자아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기이했다. 그녀는 자신들이 '성 마르틴의 땅(St Martin's Land)'이라 불리는 곳에서 왔다고 했다. 그곳은 해가 뜨지 않는, 늘 어스름한 빛에 잠겨 있는 땅이라고 했다. 낮이라 해도 우리 세계의 새벽이나 해 질 녘 정도의 흐릿한 빛뿐이며, 그곳의 모든 것이 초록빛을 띠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그녀는 그 땅의 사람들 역시 기독교를 믿으며 교회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이 어떻게 이 세계로 넘어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두 연대기에서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한 기록에 따르면, 남매는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던 중 커다란 종소리 같은 굉음을 듣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낯선 이 들판에 와 있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서는, 아이들이 가축을 따라 어떤 동굴로 들어갔다가 오랜 길을 지나 종소리에 이끌려 밝은 이 세계로 나오게 됐다고 전한다. 어느 쪽이든,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어떻게 그 어스름한 초록의 땅에서 이 밝은 세계로 건너왔는지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이 '성 마르틴의 땅' 이야기야말로 이 사건을 단순한 미아 이야기 이상의 수수께끼로 만든 핵심이다.

해가 뜨지 않는 어스름한 초록빛 땅을 그린 몽환적 중세 채색화풍 풍경 (AI 생성 이미지)
해가 뜨지 않는 어스름한 초록빛 땅을 그린 몽환적 중세 채색화풍 풍경 (AI 생성 이미지)

남매의 그 후 — 소년의 죽음과 소녀의 삶

마을에 온 두 아이의 운명은 서로 갈렸다. 남자아이는 둘 중 더 어려 보였는데, 이 세계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늘 병약하고 우울해했으며, 세례를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낯선 땅에 던져진 어린아이가 끝내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한 셈이다.

반면 여자아이는 살아남았다. 그녀는 초록빛을 완전히 잃고, 영어를 익히고, 점차 이 세계의 삶에 녹아들었다. 한 기록은 그녀가 뒷날 세례를 받고 마을에서 하인으로 일했으며, 훗날 결혼까지 했다고 전한다. 후대의 한 연구자는 이 여자아이가 '아그네스(Agnes)'라는 이름을 얻었고, 리처드 바르(Richard Barre)라는 왕실 관리와 결혼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신원 추정은 어디까지나 후대의 해석일 뿐, 당대 기록으로 확증된 것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초록빛으로 나타났던 한 아이가 이 세계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고, 그로써 이 기이한 이야기가 마을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됐다는 사실이다.

중세 영국 마을 교회 앞, 홀로 서 있는 소녀의 뒷모습 원경 (AI 생성 이미지)
중세 영국 마을 교회 앞, 홀로 서 있는 소녀의 뒷모습 원경 (AI 생성 이미지)

단 두 편의 연대기에만 남은 기록

이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오직 두 명의 중세 성직자가 각자의 연대기에 이를 기록으로 남긴 덕분이다. 첫 번째는 윌리엄 오브 뉴버그(William of Newburgh, 약 1136~1198)다. 그는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의 뉴버그 수도원에 속한 성직자로, 1189년 무렵 쓴 자신의 역사서 《잉글랜드 역사(Historia rerum Anglicarum)》에 이 사건을 적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여러 믿을 만한 사람들의 증언'에 근거해 기록한다고 밝히면서도, 스스로도 선뜻 믿기 어려워 곤혹스러워하는 태도를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윌리엄이 울핏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에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 남부 마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은, 당시에도 이 사건이 상당히 널리 회자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두 번째 기록자는 랠프 오브 코게샬(Ralph of Coggeshall, 약 1226년 사망)이다. 그는 울핏에서 남쪽으로 약 42킬로미터 떨어진 코게샬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그는 1220년대에 쓴 《잉글랜드 연대기(Chronicum Anglicanum)》에 이 이야기를 담았는데, 아이들을 거두어 보살폈다고 전해지는 리처드 드 칼른(Richard de Calne) 경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삼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두 기록이 세부에서 서로 어긋난다는 점이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 아이들이 나타난 정황, 그들의 고향에 대한 묘사, 여자아이의 훗날 삶 — 이 모든 것이 두 연대기에서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같은 사건을 두고 두 기록이 엇갈린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의 진위를 따지는 일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중세 수도원의 필경실에서 양피지에 연대기를 적는 성직자 (AI 생성 이미지)
중세 수도원의 필경실에서 양피지에 연대기를 적는 성직자 (AI 생성 이미지)

해석들 — 기근 이민, 비소, 외계, 평행세계

이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는 시도는 수백 년에 걸쳐 이어졌지만, 그중 어느 것도 정설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여기 소개하는 것들은 모두 '설'이자 '해석'일 뿐, 확증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이 아이들이 플랑드르(오늘날 벨기에 북부) 이민자의 후손이었다는 설이다. 12세기 잉글랜드에는 플랑드르에서 건너온 직물 노동자들이 정착해 살았는데, 이들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박해를 받거나 학살당하기도 했다. 이 설에 따르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낯선 숲을 헤매다 우연히 울핏에 이르렀고, 그들이 쓰던 플랑드르어가 마을 사람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들렸다는 것이다. 초록빛 피부에 대해서는 '위황병(chlorosis)', 이른바 '초록병(green sickness)'이라 불리던 심각한 철분 결핍성 빈혈로 설명하곤 한다. 영양이 크게 부족하면 피부가 병적으로 창백하고 옅은 초록빛을 띨 수 있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먹기 시작하면서 그 색이 사라졌다는 대목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 비소(arsenic) 같은 물질에 중독되어 피부가 변색됐을 수 있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다만 이 설들에 대해서는, 만약 영양 결핍이 원인이라면 그 시대에 초록빛을 띤 사람이 더 많았어야 하는데 이 아이들의 색만 유독 이례적이라고 기록됐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반대편에는 훨씬 초자연적인 해석들이 자리한다. 어스름한 초록의 땅에서 종소리에 이끌려 넘어왔다는 이야기를, 일부는 아이들이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 요정의 나라나 지하 세계 같은 이계(異界), 혹은 우리 우주와 나란히 존재하는 평행세계 — 에서 건너온 존재였다는 뜻으로 읽는다. 심지어 근대에 들어서는 이 아이들을 외계에서 온 존재로 보려는 해석까지 등장했다. 17세기의 한 학자는 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적었고, 20세기의 어떤 연구자는 이들을 다른 행성에서 온 생명체로 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초자연적 해석들은 어떤 물증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 순전한 상상과 추론의 영역에 속한다. 학계의 다른 한쪽에서는, 이 이야기 자체가 실제 사건이 아니라 중세 사람들이 '낯선 타자(他者)'와 만남을 상상해 지어낸 민담이거나, 화합과 이질성에 대한 일종의 우화였을 가능성도 진지하게 다룬다.

안개에 잠긴 중세 영국의 어두운 숲과 그 사이로 난 좁은 길 (AI 생성 이미지)
안개에 잠긴 중세 영국의 어두운 숲과 그 사이로 난 좁은 길 (AI 생성 이미지)

왜 아직도 회자되는가

현대 울핏 마을에 남은 초록 아이들을 기린 표지판이 서 있는 조용한 시골 풍경 (AI 생성 이미지)
현대 울핏 마을에 남은 초록 아이들을 기린 표지판이 서 있는 조용한 시골 풍경 (AI 생성 이미지)

오늘날 우리가 이 이야기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두 명의 중세 성직자가 각자의 연대기에, 12세기 서퍽의 울핏에 피부가 초록빛인 남매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 그 아이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했고, 한동안 콩만 먹었으며, '성 마르틴의 땅'에서 왔다고 했다는 것. 남자아이는 곧 죽고 여자아이는 살아남아 초록빛을 잃고 영어를 배웠다는 것.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이 기록이 실제 있었던 일을 옮긴 것인지, 아니면 시대의 상상이 빚어낸 이야기인지 — 그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는 여전히 답이 없다.

이 이야기가 8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아마 바로 그 미결(未決)에 있을 것이다. 플랑드르 이민자설도, 초록병설도, 외계나 평행세계설도, 저마다 이야기의 일부는 설명하지만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초록빛 피부는 병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했는지, 왜 '성 마르틴의 땅'이라는 어스름한 초록의 세계를 그토록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는지까지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진짜 힘은 정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존재가 어느 날 우리 세계의 문턱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하는, 인간이 오래도록 품어 온 상상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울핏의 초록 아이들은, 그 물음을 800년째 우리에게 되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