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어린아이가 피해자인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잔인한 장면은 묘사하지 않고, 아직 잡히지 않은 범인과 남은 단서에 대해서만 정리하겠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의 기억을 깨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2000년 8월 5일 저녁
인천 계양구 작전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
여름 저녁, 아이들 몇 명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시각은 저녁 8시 15분경.
해가 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남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남자 하나가 아이들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얘들아, 현대백화점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니?"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수사관들은 이 짧은 한마디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그 동네에서 '현대백화점'이라 불리던 곳은 정식 백화점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끼리만 그렇게 부르던 동네 상가였습니다.
그 이름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렸다는 것은, 그가 이 동네를 아는 사람일 수 있다는 작은 단서였습니다.
자료를 모으는 동안 내가 가장 여러 번 되돌아간 대목이 이 '현대백화점'이라는 세 글자입니다.
길을 모르는 사람은 그 동네에서만 통하는 별명을 쓸 수가 없습니다.
길을 묻는 문장 안에 이미 길을 안다는 증거가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아이들은 아무 의심 없이 길을 알려주려 했습니다.
일곱 살 여자아이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남자는 돌변했습니다.
아이는 놀던 곳에서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금품을 노린 흔적도, 다른 목적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동기를 알 수 없는, 순식간의 범행이었습니다.
남자는 곧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본 얼굴
이 사건에는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함께 놀던 아이 셋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어린아이였고, 눈앞에서 벌어진 충격 때문에 진술이 조금씩 엇갈렸습니다.
한 아이가 기억하는 얼굴과 다른 아이가 기억하는 얼굴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기억은 그렇게 흔들리기 쉬웠습니다.
그들의 진술만으로 범인을 특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남자의 인상을 또렷이 기억해냈습니다.
경찰은 아이들의 진술을 모아 몽타주를 만들었습니다.
무려 5,000장이 전국에 뿌려졌습니다.
그해 9월, TV 공개수배 프로그램에도 이 사건이 소개됐습니다.
전국에서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경찰은 마약사범, 정신질환 이력자, 부랑자에 이르기까지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 1,200여 명을 한 사람씩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그 남자를 가리키지 못했습니다.
사건 현장에는 CCTV가 없었습니다.
전국에 CCTV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그날 저녁 놀이터를 지나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3개월 전, 같은 동네
경찰이 이 사건을 더 무겁게 본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불과 석 달 전인 그해 5월 31일, 같은 작전동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같은 동네 아파트 화단에서, 어머니와 함께 화단에 물을 주던 중, 어머니가 5층 집에 잠깐 다녀온 십여 분 사이에
어린 여자아이가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희생됐습니다.
그날은 마침 비가 내렸습니다.
빗물에 현장의 흔적이 씻겨 내려가면서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금품을 노린 흔적도, 다른 목적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벌어진, 목적을 알 수 없는 범행.
두 사건의 방식이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낯선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아무 이유 없이, 순식간에.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한 동네에서, 3개월 사이에, 같은 사람이 두 번.
시효를 넘긴 사건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습니다.
2015년 8월 5일.
사건이 벌어진 지 정확히 15년이 되는 날,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습니다.
시효가 지나면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게 됩니다.
수사 기록은 캐비닛으로 들어가고, 사건은 영원히 닫히게 됩니다.
아이의 죽음을 기억해온 사람들에게 그것은 두 번째 상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법이 바뀌었습니다.
'태완이법'.
황산 테러로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어린 피해자의 이름을 딴 이 법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했습니다.
2015년 7월 말 국회를 통과했고, 곧바로 시행됐습니다.
그리고 아직 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사건에 소급 적용됐습니다.
작전동 사건은, 만료를 불과 며칠 앞두고 극적으로 이 법의 적용을 받았습니다.
며칠만 늦었어도, 사건은 영영 닫혔을 겁니다.
시효가 사라진 겁니다.
즉,
그 남자는 지금 잡혀도 처벌받습니다.
이 기록을 덮기 전에
인천 작전동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천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이 지금도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날의 놀이터와 아파트는 그 뒤 재개발로 헐렸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던 그 자리는 이제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사건 기록은 남아 있고, 그 얼굴을 찾는 일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5년 전 그날 저녁, 놀이터에서 길을 물었던 남자는 지금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때 그를 목격했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몽타주 속 얼굴은 여전히,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 이 얼굴에서 아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것이 25년 전 일이라 해도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시효는 사라졌고, 사건은 열려 있습니다.
작은 기억 하나가, 한 아이의 이름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을 정리하며 끝내 지워지지 않은 숫자가 하나 있습니다.
몽타주 5,000장.
그 얼굴이 25년 동안 전국 어딘가의 벽과 서랍에 붙어 있었는데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못 알아본 얼굴과 너무 평범해서 못 알아본 얼굴은 다른 말입니다.
나는 아직 그 둘 중 어느 쪽인지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의 이미지와 영상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제작한 AI 생성물이며,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