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앞바다에는 아치섬, 조도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영도구 동삼동.
다리로 육지와 연결된 이 섬은 거의 전체가 한국해양대학교 캠퍼스입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대학. 외부인이 드나들 길이 사실상 다리 하나뿐인 곳.
학생과 교직원이 아니면 드나들 일이 거의 없는, 조용하고 폐쇄적인 공간입니다.
2006년 여름, 이 섬 안 주차장의 맨홀에서 악취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은 내 아카이브에서 분류가 가장 오래 미뤄진 항목입니다.
미제사건 폴더에 넣자니 피해자 이름 칸이 비어 있고,
신원미상자 폴더에 넣자니 사인이 명백한 타살입니다.
K. Woo라는 이름으로 자료를 모으면서 이름 없는 사람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 8월 22일
"맨홀에서 자꾸 썩은 내가 난다."
민원이 반복되자 학교는 맨홀 청소를 지시했습니다.
8월 22일, 청소하던 인부들이 맨홀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뚜껑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훗날 방송에서 재현해 보니, 그 맨홀 뚜껑은 무척 무거워 경험이 없는 남성은 쇠지렛대로도 쉽게 열지 못했고, 익숙한 사람도 지렛대 두 개를 써야 겨우 들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무거운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무언가를 넣은 뒤 다시 닫아두었던 겁니다.
뚜껑을 열자, 안에는 파란색 옥매트 가방이 들어 있었습니다.
찜질용 매트를 넣는, 어디서나 파는 흔한 가방.
그리고 그 안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얼굴을 가린 것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심하게 부패해 있었습니다.
30~40대로 추정되는 남성. 키는 165센티미터 정도의 단신. 입고 있던 속옷의 치수로 미루어 땅딸막하고 통통한 체형으로 보였습니다.
발견 당시 그는 사각팬티만 입은 채 가방 안에 웅크린 자세였습니다.
그리고 얼굴에는, 부산 지역 마트의 이름이 적힌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습니다.
수사관들은 이 두 가지 디테일에 주목했습니다.
하나, 시신을 유기할 때 얼굴을 굳이 가렸다는 것.
그건 대개 하나를 의미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지면 안 된다는 것.
둘, 그 비닐봉지가 부산 그 지역에서 흔히 쓰는 마트 봉지였다는 것.
무거운 맨홀을 열 줄 알고, 그 동네 마트를 이용하고, 폐쇄된 섬 캠퍼스의 지리에 밝은 사람.
여러 정황이 한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범인은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 어쩌면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일 수 있다는 것.
이름 없는 사람
수사는 곧 벽에 부딪혔습니다.
피해자의 신원을 알 수가 없었던 겁니다.
지문은 부패로 확인 불가.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일 가능성도 살폈지만, 그 무렵 해양대에서 실종 신고된 학생은 없었습니다.
다만 당시 캠퍼스에서는 대규모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수사팀은 공사장을 오가던 외부 인력 가능성까지 열어두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도 이름 하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을 사람이,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혹은, 찾을 수 없게 만들어졌습니다.
얼굴을 되살리다
사건은 미제로 묻히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2013년, 수사팀은 시신의 앞니에서 DNA를 채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부패한 시신에서 어렵게 건진 단서였습니다.
하지만 실종자 DB와 대조해도, 대조할 유족이 없으니 DNA도 끝내 이름을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증거는 손에 쥐었는데 맞춰볼 상대가 없는, 답답한 아이러니였습니다.
2016년, 경찰은 마지막 방법을 씁니다.
압수영장을 받아 안치돼 있던 유골을 발굴하고, 서울성모병원에 3D 복원을 의뢰한 겁니다.
그해 8월, 얼굴 골격부터 시작해 전체 얼굴이 차례로 복원됐고,
부산경찰청은 그 복원된 얼굴을 공개수사로 전환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그것이 알고싶다'가 사건을 다루면서 전국에서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혹시 우리 가족이 아닐까. 혹시 그때 그 사람이 아닐까.
그러나 어떤 제보도 그를 집으로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이 기록을 덮기 전에
이 사건에는 지금도 답이 없는 질문이 세 개 있습니다.
그는 누구인가.
누가, 왜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그 섬 캠퍼스에 어떻게 시신이 든 가방을 들고 들어와 맨홀 속에 넣고 나갔는가.
다리 하나로 연결된 폐쇄된 섬. 누군가는 반드시 그 다리를 건넜을 겁니다.
가방을 들고 들어올 때 한 번, 빈손으로 나갈 때 한 번.
무거운 옥매트 가방을 옮기고, 쉽게 열리지 않는 맨홀 뚜껑을 들어 올리고, 그 안에 시신을 넣고 다시 닫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그 일을, 캠퍼스 한복판에서 누군가 해낸 겁니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컴퓨터는 그의 얼굴을 되살렸지만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줄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산경찰청 미제사건 수사팀은 지금도 이 사건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신원 미상'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냉동고에 잠들어 있습니다.
누군가 이 얼굴을 기억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도
부디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자료를 정리하다 나는 얼굴에 씌워진 마트 비닐봉지 대목에서 매번 손이 멈춥니다.
시신을 감춰야 했다면 가방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봉지는 시신을 감추는 물건이 아니라 얼굴을 안 보려는 물건에 가깝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끝까지 그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를 알고 있었다는 뜻일 겁니다.

---
이 글에는 실제 기록 사진·현장 사진과,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영상이 함께 사용되었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