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의 한 공예품 회사, 오대양.
그날 공장에 온 직원이 식당 천장으로 통하는 다락을 열었다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좁은 천장 공간 안에, 서른두 명이 죽어 있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서른둘.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기이한 집단 죽음의 시작이었습니다.

서른두 명
죽은 사람들은 오대양의 대표였던 한 여성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대표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독자적인 신앙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고, 직원들 중 상당수가 그를 따르는 신도이기도 했습니다.
즉 이곳은 공장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였습니다.
서른두 명 중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대부분의 사인은 목이 졸린 질식사였습니다.
몸에서는 신경안정제와 멀미약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저항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89억 원
이 죽음의 배경에는 거대한 빚이 있었습니다.
오대양은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금액인 약 89억 원의 사채를 지고 있었습니다.
빚 독촉은 극심했고, 채권자들이 몰려와 폭력을 휘두른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무너지는 회사, 쌓이는 빚, 그리고 그를 신처럼 따르던 사람들.
경찰은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집단자살.
대표가 파국에 몰리자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고,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는 듯했습니다.

4년 뒤의 자수
사건이 잊혀가던 1991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대양과 관련된 사람 여섯 명이 스스로 경찰에 나타나 자수한 겁니다.
이들의 진술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1987년의 그 집단 변사가 있기 전에, 공동체 내부에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세 명이 살해돼 암매장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진술로 사건은 다시 수사됐습니다.
그러나 재수사의 결론도 1987년과 같았습니다.
천장 위의 서른두 명은, 집단자살.
암매장된 세 명은 별개의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처벌받았습니다.

풀리지 않은 것들
공식 결론은 집단자살이었지만,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째, 좁은 천장 위에서 서른두 명이 저항 없이 차례로 목숨을 잃는 것이 정말 자발적으로 가능한가.
부검을 담당한 일부 전문가는 일부는 자살이 아니라 타살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둘째, 왜 하필 천장이었나.
숨기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들만의 의식이었을까.
이 사건에는 당시 유명한 종교 단체와의 연루설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검찰은 여러 차례 수사에서 그 종교 단체가 이 사건의 배후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무관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훗날 그 단체의 지도자가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이 사건이 아니라 별개의 사기 혐의 때문이었습니다.
연루설은 어디까지나 '설'이며, 공식적으로는 무관하다는 것.
이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서랍을 닫기 전에
오대양 사건은 범인을 쫓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제라는 말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공식 결론은 나와 있습니다. 집단자살.
그런데도 이 사건이 40년 가까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건,
'왜'라는 질문에 누구도 완전한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서른두 명을 그 좁은 천장 위로 이끌었는가.
무엇이 그들에게서 저항할 마음마저 앗아갔는가.
한 사람의 믿음이 서른한 명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어떤 괴담보다도 더 서늘한 진실일지 모릅니다.
용인의 그 공장 자리 위로 4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천장 위에서 있었던 일의 전부는,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묻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