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의 한 공예품 회사, 오대양.

그날 공장에 온 직원이 식당 천장으로 통하는 다락을 열었다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좁은 천장 공간 안에, 서른두 명이 죽어 있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서른둘.

남녀노소가 뒤섞여 있었고, 그중에는 아직 어린아이도 있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기이한 집단 죽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낡은 공장 식당 — 천장의 어두운 공간이 그날의 현장이었다.
낡은 공장 식당 — 천장의 어두운 공간이 그날의 현장이었다.

한국 미제 사건 자료를 정리하면서 나는 이 사건의 숫자를 여러 번 다시 세어 봤습니다.

서른둘 중 스물여덟이 여성이었다는 그 구성 때문이었습니다.

집단자살이라는 결론을 놓고 보아도 그 비율이 왜 그렇게 기울어야 했는지, 어느 기록도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서른두 명

죽은 사람들은 오대양의 대표였던 한 여성과 그의 두 아들을 포함한 가족,

그리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대표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독자적인 신앙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고, 직원들 중 상당수가 그를 따르는 신도이기도 했습니다.

즉 이곳은 공장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였습니다.

서른두 명 가운데 남성은 넷뿐이었고, 나머지 스물여덟은 여성이었습니다.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은 죽음의 구성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대부분의 사인은 목이 졸린 질식사였습니다.

몸에서는 신경안정제와 멀미약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죽음에 이르기 전, 누군가 미리 약을 먹였거나 스스로 먹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인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저항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서른둘이 그 좁은 공간에서 차례로 숨을 거두는 동안, 몸부림친 자국조차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89억 원

이 죽음의 배경에는 거대한 빚이 있었습니다.

오대양은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금액인 약 89억 원의 사채를 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공예품을 만드는 회사였지만, 실상은 사채로 돌아가는 빚더미 위의 공동체였습니다.

빚 독촉은 극심했습니다.

한번은 큰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직접 공장을 찾아왔다가 신도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빚을 포기한다는 각서까지 강요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경찰이 사기 혐의 수사에 들어갔고, 공동체를 향한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무너지는 회사, 쌓이는 빚, 좁혀오는 수사, 그리고 그를 신처럼 따르던 사람들.

경찰은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집단자살.

대표가 파국에 몰리자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고,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는 듯했습니다.

4년 뒤의 자수

사건이 잊혀가던 1991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오대양 관련자 여섯 명이 스스로 검찰에 나타나 자수한 겁니다.

이들의 진술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1987년의 그 집단 변사가 있기 전에, 공동체 내부에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세 명이 이미 살해돼 암매장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는 정기적으로 서로를 몰아세우고 집단으로 폭행하는 '반성'의 시간이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바깥에서 본 신앙 공동체의 얼굴 뒤에, 이런 어둠이 있었던 겁니다.

이 진술로 사건은 세 번째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재수사의 결론도 1987년과 같았습니다.

천장 위의 서른두 명은, 집단자살.

암매장된 세 명은 별개의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처벌받았습니다.

풀리지 않은 것들

공식 결론은 집단자살이었지만,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째, 좁은 천장 위에서 서른두 명이 저항 없이 차례로 목숨을 잃는 것이 정말 자발적으로 가능한가.

부검을 담당한 일부 전문가는 일부는 자살이 아니라 타살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둘째, 왜 하필 천장이었나.

숨기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들만의 의식이었을까.

이 사건에는 당시 유명한 종교 단체와의 연루설도 오랫동안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검찰은 세 차례에 걸친 수사에서 그 종교 단체가 이 사건의 배후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무관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먼 훗날인 2014년, 검찰이 이 부분을 다시 살폈을 때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 단체의 지도자가 형사처벌을 받은 것 역시 이 사건이 아니라 별개의 사기 혐의 때문이었습니다.

연루설은 어디까지나 '설'이며, 공식적으로는 무관하다는 것.

억측이 사실처럼 굳어지지 않도록, 이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기록을 덮기 전에

오대양 사건은 범인을 쫓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제라는 말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공식 결론은 나와 있습니다. 집단자살.

그런데도 이 사건이 40년 가까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건,

'왜'라는 질문에 누구도 완전한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서른두 명을 그 좁은 천장 위로 이끌었는가.

무엇이 그들에게서 저항할 마음마저 앗아갔는가.

한 사람의 믿음이 서른한 명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어떤 괴담보다도 더 서늘한 진실일지 모릅니다.

용인의 그 공장 자리 위로 4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천장 위에서 있었던 일의 전부는,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묻혔습니다.

이 항목의 파일을 닫으면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저항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

신경안정제와 멀미약이 그 침묵을 다 설명해 주는지,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합니다.

세 번의 수사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답이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세 번 멈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어둠에 잠긴 낡은 공장 외벽 — 그 밤의 답을 아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어둠에 잠긴 낡은 공장 외벽 — 그 밤의 답을 아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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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이미지와 영상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제작한 AI 생성물이며,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