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은 실제로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사건의 기록입니다.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고, 확인된 사실과 남은 의문만 정리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건이 15년째 잊히지 않는 이유는,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이 사건의 자료를 처음 열었을 때 저를 붙든 것은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세 개 언어로 적힌 그 명패였습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정확한 순서로 적으려면 찾아보고 옮겨 적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들인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저는 아직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2011년 5월 1일, 둔덕산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해발 980미터쯤 되는 둔덕산 능선에 버려진 채석장이 있습니다.
돌을 캐다 만 잿빛 절벽과 자갈뿐인, 등산로에서도 벗어난 곳입니다.
그날 아침, 인근에서 양봉을 하는 50대 남성이 아들과 함께 벌통을 살피러 그 근처를 지나다가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바위 앞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
그리고 거기에, 사람이 못 박혀 있었습니다.
현장
경찰이 도착해 확인한 현장은 신고 내용보다 더 기이했습니다.
가로 187센티미터, 세로 180센티미터의 직접 만든 나무 십자가.
숨진 남성은 흰 속옷 차림으로 양손과 발에 대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나무로 엮은 관.
오른쪽 하복부에는 10센티미터가 넘는 자상.
목에는 노끈.
그리고 십자가 위쪽에는 나무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를 뜻하는 문구가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 세 개의 언어로 적혀 있었습니다.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의 처형 장면이 경상북도의 폐채석장에 그대로 재현돼 있었던 겁니다.
남자
숨진 사람은 경남 창원에서 온 58세의 개인택시 기사 김 씨였습니다.
주변에는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수사가 시작되자 김 씨의 마지막 몇 달이 하루 단위로 복원됐습니다.
그해 3월과 4월, 김 씨는 오래 몰던 개인택시를 팔았습니다.
창원의 세 들어 살던 집도 정리했습니다.
SUV 차량을 샀고, 십자가를 만들 목재를 샀습니다.
4월 초, 텐트를 한 채 샀습니다.
이어 문경으로 내려가 며칠 밤을 여관에서 묵었고,
전화를 해지하고 은행 계좌를 정리했습니다.
계좌에 있던 900만 원은 형에게 송금했고,
마지막으로 지갑에 남은 몇만 원의 잔돈까지 불우이웃 모금함에 넣었습니다.
세상과의 정산을 하나씩 지워나가듯 마친 겁니다.
그리고 폐채석장에 텐트를 치고,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집과 차에서는 그가 직접 그린 십자가 설계도면이 나왔습니다.
치수까지 정확히 적힌 도면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세우는 방법을 적은 실행 순서 메모도 있었습니다.
다만 하나, 어디에도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유서였습니다.
현장의 물건들
현장과 그 주변에서 수습된 물건들은 이 사건을 더 이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 곁에는 수동 드릴이, 조금 떨어진 텐트에는 전동 드릴이 있었습니다.
자기 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 거울.
노끈을 꼬아 청테이프로 감아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채찍.
예수가 받은 채찍질을 스스로 재현하려 한 흔적이었습니다.
현장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그의 SUV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망치와 톱, 칼, 철사, 일주일 치 식량과 물, 그리고 초코파이 스무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며칠을 버티며 무언가를 준비한 사람의 짐이었습니다.
또 하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큰 십자가 하나뿐이 아니라, 그 양옆에 작은 십자가가 둘 더 있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를 그대로 옮겨놓은 배치였습니다.
경찰은 이 물건들의 배치와 사용 흔적을 근거로 하나의 시나리오를 세웠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김 씨 혼자서 했다는 시나리오였습니다.
국과수의 결론
부검 결과, 사인은 복부 자상에 의한 출혈과 목을 맨 질식이 겹친 것이었습니다.
체내에서 독극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심장 관련 약과 신경안정제 성분이 검출되긴 했지만, 몸을 마비시키는 약물은 아니었습니다.
즉 그는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이 일을 했다는 의미였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현장 재현 실험까지 했습니다.
먼저 십자가에 못을 박아두고, 드릴로 자기 손에 구멍을 낸 뒤, 그 구멍을 못에 끼워 넣는 방식.
한 손을 먼저 고정한 상태에서 나머지 손을 처리할 수 있는가.
실험의 결론은 "가능하다"였습니다.
현장의 모든 증거물에서는 오직 김 씨 본인의 DNA만 나왔고,
필적 감정에서도 제3자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1년 5월 17일, 경찰은 공식 발표했습니다.
단독 자살.
발견 16일 만의 종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남는 질문
사건은 종결됐지만 의문은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해외 언론까지 탔습니다. '부활절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에 보도됐고, 영문 위키백과에 독립 문서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금도 묻는 질문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양손에 못을 박으려면 한 손은 반드시 나중이 됩니다. 이미 못 박힌 손으로, 드릴과 못을 다룰 수 있는가.
국과수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다'와 '그랬다'는 다른 말입니다.
유서는 왜 없는가. 설계도면과 실행 메모까지 남긴 사람이.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스무 개의 초코파이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조력자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설, 같은 신앙을 가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설이 계속 나온 이유입니다.
한때는 최초 신고자에게도 의심의 눈길이 향했습니다.
그는 이단 교단의 부목사 출신으로, 몇 해 전 김 씨와 안면이 있었고, 현장을 차분히 사진으로 남긴 뒤 그 내용을 온라인에 상세히 적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오래전 이후로 김 씨와 접촉한 적이 없었고, 현장의 모든 증거에서 그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밖에도 경찰 수사에서 조력자의 흔적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곳이었을까
김 씨의 삶에는 종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오래전 목회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 이후 주류 교단이 아닌 독자적인 신앙에 깊이 빠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가족사에 아픔이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발견된 날짜입니다.
2011년 5월 1일.
그해 부활절 직후의 일요일이었습니다.
십자가, 가시관, 옆구리의 상처, 세 개 언어의 명패.
김 씨가 재현한 것은 처형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만의 부활 의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무엇을 믿었고 그 산 위에서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이제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기록을 덮기 전에
문경 십자가 사건은 한국 미스터리 사건 중에서도 독특한 자리에 있습니다.
범인이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실종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물증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공식 결론도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건이 15년째 사람들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건,
한 인간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마음의 안쪽만은 어떤 수사로도 재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면서 제가 계속 되돌아간 항목은 초코파이 스무 개입니다.
설계도면도, 실행 순서 메모도 목적이 분명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 스무 개만은 어느 칸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일주일 치 식량 옆에 놓인 그 숫자 앞에서, 저는 매번 멈춥니다.
해발 980미터의 폐채석장.
그곳까지 무거운 목재를 지고 올라가 설계도대로 십자가를 세우던 몇 달의 시간 동안,
그를 멈춰 세울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이 이 사건이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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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실제 기록 사진·현장 사진과,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영상이 함께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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