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한가운데에는 한라산이 솟아 있고, 그 산자락으로는 이름조차 다 부르기 힘든 수백 개의 작은 봉우리가 물결처럼 흩어져 있다. 제주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오름'이라 부른다. 섬 하나에 삼백예순이 넘는다는 이 오름들과, 그 위에 우뚝한 한라산, 그리고 검은 화산 바위로 둘러싸인 이 섬 전체를, 제주 사람들은 오래도록 한 거인 여신이 손수 빚어 놓은 것이라 믿어 왔다. 그 여신의 이름은 설문대할망이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드러누우면 두 발이 바다 건너 먼 섬에 닿았다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어머니 신.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섬 하나를 통째로 빚어낸 이 여신과, 그토록 거대한 그녀가 어느 작은 연못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오래된 수수께끼다.

안개에 잠긴 한라산과 그 아래 겹겹이 늘어선 오름들의 신비로운 새벽 원경, 거대한 여신의 실루엣이 산맥과 융합된 듯한 형상 (AI 생성 이미지)
안개에 잠긴 한라산과 그 아래 겹겹이 늘어선 오름들의 신비로운 새벽 원경, 거대한 여신의 실루엣이 산맥과 융합된 듯한 형상 (AI 생성 이미지)

치마폭으로 섬을 빚은 여신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언제나 그녀의 '크기'에서 시작한다. 이 여신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존재였다. 그녀가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두 다리가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의 관탈섬에 걸쳐졌다고 한다. 빨래를 할 때는 한 발을 한라산에, 다른 발을 관탈섬에 딛고 서서, 그 사이에 흐르는 바닷물에 옷을 담가 발로 문질렀다고 전해진다. 사람의 잣대로는 도무지 잴 수 없는 규모다. 그리고 바로 그 거대함이, 이 여신을 창조의 신으로 만들었다.

전설은 이렇게 말한다. 아주 먼 옛날, 아직 제주섬이 세상에 없던 시절, 설문대할망은 넓은 치마폭에 흙을 가득 퍼 담아 망망대해 한가운데로 날랐다. 치마에 담긴 흙을 바다 위에 쏟고 또 쏟기를 거듭하자, 물 위로 땅이 솟아올라 마침내 제주섬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흙을 한자리에 차곡차곡 높이 쌓아 올린 것이 섬 한가운데의 한라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산까지 세운 손. 제주의 형태 그 자체가 이 여신의 노동의 결과라는 이야기다.

제주의 검은 화산 현무암 해안에 파도가 부서지는 웅장한 장면, 안개 속 거대한 형상이 어렴풋이 어우러진 모습, 얼굴은 보이지 않음 (AI 생성 이미지)
제주의 검은 화산 현무암 해안에 파도가 부서지는 웅장한 장면, 안개 속 거대한 형상이 어렴풋이 어우러진 모습, 얼굴은 보이지 않음 (AI 생성 이미지)

360개의 오름은 어떻게 태어났나

제주를 제주답게 만드는 것은 한라산만이 아니다. 섬 곳곳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솟아오른 수백 개의 오름이야말로 제주의 살결과도 같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봉우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여기서 설문대할망 전설은 가장 아름다운 대목 하나를 들려준다.

가장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흙을 나르던 치마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고 한다. 커다란 치마폭에 흙을 담아 옮기는 동안, 그 터진 틈으로 흙이 조금씩 새어 흘러내렸다. 여신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마 사이로 떨어진 흙이 여기 한 무더기, 저기 한 무더기 쌓였고, 그렇게 섬 곳곳에 흩뿌려진 흙무더기가 바로 오늘날의 오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주에 오름이 삼백예순 개가 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거대한 여신이 무심코 흘린 흙 부스러기 하나하나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산이었던 셈이다.

또 다른 이야기들은 이 여신의 몸이 그 자체로 제주의 지형을 빚었다고 전한다. 한라산과 관탈섬에 두 발을 딛고 볼일을 보자 그 물길이 바다를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제주 동쪽의 작은 섬 우도가 생겨났다는 식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낯설고 때로는 익살스럽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일관된 세계관이 담겨 있다. 제주의 산과 섬과 바다가, 어느 하나 우연이 아니라 한 어머니 신의 몸과 노동에서 비롯되었다는 믿음이다. 자연의 모든 굴곡에 신의 손길을 읽어내려 한 옛사람들의 마음이, 이 거인 여신의 형상으로 응결된 것이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겹겹이 이어진 제주 오름들의 녹색 능선, 새벽 운해가 골짜기마다 흐르는 신비로운 풍경 (AI 생성 이미지)
부드러운 곡선으로 겹겹이 이어진 제주 오름들의 녹색 능선, 새벽 운해가 골짜기마다 흐르는 신비로운 풍경 (AI 생성 이미지)

놓다 만 다리, 그리고 명주 백 통

설문대할망과 제주 사람들 사이에는 애틋한 약속 하나가 전해진다. 어느 날 여신은 섬사람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속옷 한 벌을 지어 준다면, 제주에서 육지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다리를 놓아 주겠다는 것이었다. 바다에 갇힌 섬사람들에게 뭍으로 이어진 다리란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었을까.

그러나 문제는 여신의 몸집이었다. 그토록 거대한 여신의 속옷 한 벌을 지으려면 명주가 무려 백 통이나 필요했다. 제주 사람들은 온 섬의 명주를 있는 대로 그러모았지만, 아무리 모아도 아흔아홉 통에서 더는 채워지지 않았다. 딱 한 통이 모자랐다. 결국 속옷은 완성되지 못했고, 여신도 약속한 다리를 끝내 놓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는 지금도 다리 없이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섬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거인 여신의 웅장한 창조 이야기 끝에 놓인 이 조금은 쓸쓸한 결말은, 섬으로 산다는 것의 고립과 그리움을 나직이 품고 있다.

짙은 안개가 흐르는 제주 바다와 화산 해안 절벽, 놓다 만 다리처럼 끊긴 지형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몽환적 풍경 (AI 생성 이미지)
짙은 안개가 흐르는 제주 바다와 화산 해안 절벽, 놓다 만 다리처럼 끊긴 지형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몽환적 풍경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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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에 잠긴 한라산과 오름 능선 위로 안개가 천천히 흐르는 짧은 영상 —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라 신화의 분위기를 재현한 연출이다.

여신은 어디로 사라졌나 — 물장오리의 수수께끼

섬 하나를 통째로 빚어낸 여신에게도 끝은 있었다. 그런데 그 끝을 두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지역마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질 때마다 조금씩 달라서, 설문대할망의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물장오리에 얽혀 있다. 물장오리는 한라산 중턱에 있는 오름으로, 그 분화구 안에 둥글게 물이 고인 산정호수를 품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은 자신의 키가 얼마나 큰지를 늘 자랑스러워했고, 세상 어느 물도 자기 몸을 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못 저 못의 깊이를 발로 재어 보며 다녔는데, 마침내 물장오리에 들어섰을 때였다. 겉으로는 여느 산정 연못과 다를 바 없어 보였던 이 못은, 사실 바닥이 뚫려 끝을 알 수 없이 깊었다고 한다. 세상 무엇도 자신을 삼킬 수 없다 여겼던 거대한 여신은, 그 바닥 없는 물속으로 그대로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못했다. 섬을 빚은 손도, 한라산을 베고 눕던 몸도, 그 작은 못 하나가 소리 없이 삼켜 버린 것이다.

한라산 중턱 오름의 둥근 분화구에 고인 고요한 산정호수, 짙은 안개가 수면 위로 낮게 깔린 신비롭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AI 생성 이미지)
한라산 중턱 오름의 둥근 분화구에 고인 고요한 산정호수, 짙은 안개가 수면 위로 낮게 깔린 신비롭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AI 생성 이미지)

오백장군, 또 하나의 끝

물장오리 이야기만이 여신의 마지막인 것은 아니다. 제주에는 그녀의 죽음을 전혀 다르게 전하는 이야기도 함께 살아남았고, 그 무대는 한라산 서남쪽의 영실이라는 골짜기다.

영실에는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은 수백 개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제주 사람들은 이 바위들을 오백장군, 혹은 오백나한이라 불러 왔다. 이와 얽힌 전설은 이렇게 전한다. 설문대할망에게는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흉년이 들어 온 식구가 굶주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들을 먹이려 커다란 솥에 죽을 끓였다. 그런데 그 깊은 솥을 젓다가 어머니가 그만 발을 헛디뎌 펄펄 끓는 죽 속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를 모른 채 돌아온 아들들은 맛있게 죽을 나누어 먹었고, 마지막에 온 막내가 솥 바닥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발견하고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삼킨 죽을 먹었다는 사실에 아들들은 통곡했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실의 그 수백 개 바위가 바로 어머니를 잃고 울다 굳어버린 오백 형제라는 이야기다.

같은 여신을 두고 어떤 이는 물장오리에 빠져 사라졌다 하고, 어떤 이는 자식들의 죽솥에 빠졌다 한다. 이 결말의 엇갈림은 무엇을 말해 줄까. 이는 이야기의 오류가 아니라, 신화가 살아 있는 방식 그 자체다. 설문대할망은 어느 한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제주라는 섬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오래도록 자라 온 이야기다. 마을마다, 오름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붙이고 저마다의 결말을 지어내면서, 하나의 여신은 여러 갈래의 최후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갈라진 결말들이 오늘 우리에게는 도리어 하나의 매혹적인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한라산 영실의 하늘을 향해 솟은 수백 개의 기암괴석 봉우리들, 운해와 저녁빛에 잠긴 웅장하고 장엄한 풍경 (AI 생성 이미지)
한라산 영실의 하늘을 향해 솟은 수백 개의 기암괴석 봉우리들, 운해와 저녁빛에 잠긴 웅장하고 장엄한 풍경 (AI 생성 이미지)

섬이 기억하는 어머니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제주에서 전해졌는지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이 여신의 흔적은 조선 후기의 지리서인 《탐라지》를 비롯한 옛 기록에도 그 이름을 달리하여 남아 있고, 무엇보다 제주섬의 땅 곳곳에, 물장오리와 영실이라는 실제 지명 속에 지금도 살아 있다. 문헌에 적히기 훨씬 전부터, 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섬의 풍경 자체에 새겨져 온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세상에 섬을 치마폭으로 나른 거인은 없었고, 오름은 화산 활동이 오랜 세월에 걸쳐 빚어낸 자연의 지형이다. 설문대할망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다. 그러나 신화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 곧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제주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깊은 마음의 기록이다. 발밑의 산과 봉우리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손길을 읽어내고, 그 거대한 어머니가 끝내 작은 못 속으로 스러졌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연을 두려움이 아니라 애틋함으로 끌어안았다.

오늘도 한라산은 구름을 두르고 서 있고, 그 산자락에는 삼백예순 개의 오름이 물결친다. 안개가 오름 능선을 타고 낮게 흐르는 새벽이면, 어쩌면 그 풍경 어딘가에 아직도 치마폭 가득 흙을 나르던 거대한 여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빚었다는 이 섬 전체가, 곧 그녀의 몸이자 그녀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장오리의 물은 오늘도 고요하고, 영실의 바위들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섬은, 조용히, 자신을 빚은 어머니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