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남서쪽, 나무가 우거진 언덕 위로 안개가 낮게 깔리면 그 사이로 거대한 벽돌 건물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다섯 층 높이에 아치 창이 줄지어 늘어선 이 웅장한 건물은, 얼핏 보면 오래된 대학이나 호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언덕에 살던 사람들은 이곳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 건물을, 한 번 들어가면 좀처럼 살아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기억했다. 여기는 웨이벌리 힐스 요양원(Waverly Hills Sanatorium)이다. 1926년 문을 연 이래 반세기 가까이, 당시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던 병에 걸린 사람들이 이 언덕으로 실려 왔고, 그 대부분은 다시는 제 발로 걸어 내려가지 못했다.

안개가 낮게 깔린 언덕 위, 아치 창이 줄지어 늘어선 거대한 5층 벽돌 폐병원 건물이 어둠 속에 서 있는 원경, 음산하고 웅장한 분위기,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안개가 낮게 깔린 언덕 위, 아치 창이 줄지어 늘어선 거대한 5층 벽돌 폐병원 건물이 어둠 속에 서 있는 원경, 음산하고 웅장한 분위기,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하얀 흑사병이 실어 나른 사람들

이야기의 시작에는 하나의 병이 있다. 결핵. 오늘날에는 약으로 치료되는 병이지만, 20세기 초의 미국에서 결핵은 사람을 서서히 갉아먹다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불치병이었다. 사람들은 이 병을 '하얀 흑사병(White Plague)'이라 불렀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가고, 기침 끝에 피를 토하며, 몸이 바싹 말라 들어가는 병. 무엇보다 이 병은 공기를 통해 옮았다. 한 사람이 앓으면 곁에 있던 가족과 이웃이 차례로 쓰러졌다.

당시 결핵에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처방은 격리와 요양이었다. 환자를 사람들에게서 떼어놓고, 맑은 공기와 햇빛, 안정 속에서 몸이 스스로 병을 이겨내기를 기다리는 것. 루이빌은 습한 저지대에 늪이 많아 결핵이 유독 창궐하던 지역이었고, 시는 도시에서 떨어진 높은 언덕 위에 대규모 요양 시설을 지었다. 공기가 맑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언덕 꼭대기, 세상과 격리된 그 자리에 웨이벌리 힐스가 들어선 것이다. 처음엔 작은 목조 건물이었으나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하지 못해, 1926년 지금의 거대한 5층 벽돌 건물이 새로 문을 열었다. 수백 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당대 최신식 결핵 요양원이었다.

낡은 병원의 긴 복도, 양쪽으로 열린 병실 문과 아치형 창으로 스며드는 희뿌연 빛, 페인트가 벗겨진 벽과 먼지 낀 바닥, 인적 없이 텅 빈 음산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낡은 병원의 긴 복도, 양쪽으로 열린 병실 문과 아치형 창으로 스며드는 희뿌연 빛, 페인트가 벗겨진 벽과 먼지 낀 바닥, 인적 없이 텅 빈 음산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언덕 위의 하얀 방들

요양원의 치료법은 지금 눈으로 보면 기이할 만큼 단순했다. 신선한 공기가 병을 낫게 한다는 믿음 아래, 환자들은 한겨울에도 활짝 열린 창가나 지붕이 없는 옥상 발코니에 놓인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환자들은 두꺼운 담요를 뒤집어쓴 채 바깥 공기를 쐬었다. 견디기 힘든 추위였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치료의 전부였다. 그 밖에도 폐의 일부를 일부러 눌러 쉬게 하거나, 갈비뼈를 들어내는 큰 수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마취와 항생제가 변변찮던 시절, 이런 수술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이도 적지 않았다.

환자들은 이곳에서 몇 달, 길게는 몇 해를 머물렀다. 어떤 이는 서서히 기력을 되찾아 언덕을 걸어 내려갔지만, 훨씬 더 많은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밤이면 복도 어디선가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아침이면 간밤에 비어버린 침대가 생겨나 있었다. 죽음은 이 언덕에서 드문 일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이었다.

이곳에 실려 온 사람들은 대개 젊었다. 한창 일하고 가정을 꾸릴 나이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부모를 따라 이 언덕에 올라온 아이들까지 있었다. 결핵은 나이를 가리지 않았고, 요양원의 침대에는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나란히 누워 같은 하늘과 같은 눈발을 바라보았다. 바깥세상과 격리된 이 언덕 위에서, 그들은 편지로만 가족과 소식을 주고받으며 회복을 기다렸다. 누군가에게 이곳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잠깐의 정거장이었지만,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는 세상과 작별하는 마지막 자리였다. 그리고 바로 그 일상적인 죽음이, 이 요양원에 가장 서늘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죽음을 감춘 터널

결핵 요양원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병 자체만이 아니었다. 낫기를 바라며 언덕에 올라온 환자들에게, 곁에서 사람이 끊임없이 죽어 나가는 광경만큼 사기를 꺾는 것은 없었다. 오늘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이 내일 시신이 되어 실려 나가는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보는 일. 그것은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의 마음마저 병들게 했다. 절망은 회복을 늦추고, 회복을 포기한 몸은 더 빨리 스러졌다. 병원은 이 심리적인 무게를 어떻게든 덜어내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 터널이다. 병원 본관에서 언덕 아래까지, 지하로 길게 뚫린 약 525피트, 우리 단위로 160미터 남짓의 통로. 원래는 겨울철 직원과 물자가 눈과 추위를 피해 언덕을 오르내리도록 만든 실용적인 통로였다. 안쪽에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계단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무거운 물건을 케이블로 끌어 올리고 내리는 경사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터널은 전혀 다른 용도로 더 자주 쓰이게 되었다. 밤사이 세상을 떠난 환자들의 시신을, 살아 있는 환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이 지하 통로를 통해 언덕 아래로 몰래 실어 내리는 것이었다.

어둠에 잠긴 지하 콘크리트 터널, 완만하게 아래로 경사진 긴 통로 저편으로 희미한 빛 한 점이 새어 들어오고, 축축한 벽과 낡은 레일 흔적, 인적 없이 서늘하고 음산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어둠에 잠긴 지하 콘크리트 터널, 완만하게 아래로 경사진 긴 통로 저편으로 희미한 빛 한 점이 새어 들어오고, 축축한 벽과 낡은 레일 흔적, 인적 없이 서늘하고 음산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시신은 경사로에 놓인 채, 케이블에 매달려 어두운 터널을 따라 미끄러지듯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쪽 출구에는 시신을 실어 갈 마차나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층 병실에 남은 환자들은 누군가 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죽음은 그렇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언덕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이 어두운 지하 통로를 '보디 슈트(body chute)', 곧 시신을 굴려 내리는 활송로라 불렀고, 훗날 이곳을 찾는 이들은 여기에 더 서늘한 이름을 붙였다. '죽음의 터널(Death Tunn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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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잠긴 언덕 위 폐병원과 어둠에 잠긴 지하 터널 — 분위기를 재현한 영상이며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다.

8천 구라는 숫자

이 터널로 얼마나 많은 시신이 언덕을 빠져나갔을까. 흔히 전해지는 숫자는 약 8천 구다. 요양원이 문을 연 1920년대부터 결핵 치료약이 보급되며 문을 닫기까지 반세기 남짓한 세월 동안, 이 언덕에서 숨진 사람이 그만큼에 이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숫자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실제 사망자가 그보다 훨씬 적은, 수천 명 규모였을 것이라 본다. 정확한 기록이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탓에, 8천이라는 숫자는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이곳의 무게를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추정에 가깝다.

그러나 그 숫자가 8천이든 수천이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언덕 위의 건물 한 채에서, 반세기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병으로 스러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죽음의 상당수가, 살아 있는 이들의 눈을 피해 지하의 어두운 터널을 따라 조용히 실려 내려갔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통로, 매일같이 시신이 굴러 내려간 지하의 길. 이곳이 훗날 미국에서 가장 음산한 폐허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된 데에는, 이런 어두운 내력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숫자를 두고 논란이 이는 것 자체가, 이 언덕이 품은 그림자를 잘 보여준다. 만약 이곳이 밝고 평범한 병원이었다면, 사망자 수 따위를 두고 사람들이 부풀리거나 다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감추기 위해 지하에 터널까지 뚫었던 이 건물에는, 정확한 숫자를 넘어서는 어떤 무게가 깔려 있다. 세월이 흐르며 실제의 기록은 흐려지고, 그 자리를 소문과 전설이 메워 갔다. 8천이라는 숫자는 어쩌면 그 소문이 자라난 흔적이자, 동시에 이 언덕에서 실제로 스러진 수많은 이들을 향한 살아남은 자들의 두려움이 뭉쳐진 숫자인지도 모른다.

낡은 병실 안, 페인트가 벗겨진 벽 옆에 녹슨 철제 병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깨진 창문으로 흐린 빛이 들어와 먼지가 떠다니는, 버려지고 쓸쓸한 음산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낡은 병실 안, 페인트가 벗겨진 벽 옆에 녹슨 철제 병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깨진 창문으로 흐린 빛이 들어와 먼지가 떠다니는, 버려지고 쓸쓸한 음산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502호의 간호사

결핵 치료약이 널리 보급되면서, 한때 사람들로 가득 찼던 이 요양원은 존재 이유를 잃어 갔다. 병을 앓는 이들이 줄자 언덕 위의 거대한 건물은 텅 비어 갔고, 결국 1961년 결핵 요양원으로서의 문을 닫았다. 이후 한동안 노인 요양시설로 쓰이기도 했으나 그마저 오래가지 못했고, 건물은 오랜 세월 방치된 채 언덕 위에 홀로 남겨졌다. 깨진 유리창으로 바람이 드나들고, 텅 빈 복도에 먼지가 쌓여 갔다. 그리고 그 텅 빈 건물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하나둘 이야기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5층 502호의 이야기다. 전설에 따르면 이 방에서 일하던 한 젊은 간호사가, 아이를 가진 몸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녀가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고 하고,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방 안에서 목을 맸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진위와 무관하게, 502호는 이 폐병원을 찾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이 되었다. 이 방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거나, 창가에서 무언가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안개가 자욱하게 감싼 폐병원 건물의 위층, 여러 개의 깨진 창문이 어둠 속에서 텅 빈 눈처럼 늘어서 있는 음산한 근경,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안개가 자욱하게 감싼 폐병원 건물의 위층, 여러 개의 깨진 창문이 어둠 속에서 텅 빈 눈처럼 늘어서 있는 음산한 근경,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502호뿐이 아니었다. 텅 빈 복도를 걷다 보면 저편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거나,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거나, 그 어두운 죽음의 터널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척을 느꼈다는 이야기들이 이 건물을 뒤덮었다. 이곳은 어느새 미국에서 가장 유령이 많이 나온다는 장소, 이른바 '미국 3대 흉가'로 손꼽히는 폐허가 되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 대부분은 오랜 세월 방치된 거대한 폐허가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며 부풀린 소문에 가깝다. 그러나 그 소문이 이토록 끈질기게 이어지는 데에는, 이 건물이 실제로 품어 온 죽음의 무게가 있었다.

언덕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오늘날 웨이벌리 힐스는 완전히 버려지지도, 완전히 되살아나지도 않은 채 언덕 위에 남아 있다. 한 부부가 이 건물을 사들여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손보고 있고, 정해진 날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투어가 열린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 어두운 폐병원을 찾는다. 어떤 이는 유령을 만나기를 바라며, 어떤 이는 오래된 건물의 역사를 보기 위해, 또 어떤 이는 그저 이 언덕이 품은 슬픔을 마주하기 위해.

해질녘, 헐벗은 나무들 위로 우뚝 솟은 언덕 위 폐병원의 거대한 검은 실루엣, 산자락에 낮게 깔린 안개와 차갑게 식어가는 잿빛 하늘, 웅장하고 쓸쓸한 여운,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해질녘, 헐벗은 나무들 위로 우뚝 솟은 언덕 위 폐병원의 거대한 검은 실루엣, 산자락에 낮게 깔린 안개와 차갑게 식어가는 잿빛 하늘, 웅장하고 쓸쓸한 여운,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이 건물이 정말로 유령이 떠도는 곳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다. 502호에서 정말 간호사가 스러졌는지, 죽음의 터널에 무언가가 남아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이 언덕 위의 건물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는 사실이다. 낫기를 바라며 실려 온 사람들, 창가에 누워 눈발을 맞던 사람들, 그리고 밤사이 조용히 지하 터널을 따라 언덕을 빠져나간 사람들. 유령 이야기를 걷어내고 나면, 그 자리에는 병과 죽음, 그리고 그 죽음마저 남몰래 감춰야 했던 한 시대의 서늘한 진실이 남는다.

안개가 걷히면 웨이벌리 힐스는 다시 낡은 벽돌 건물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치 창은 텅 빈 채 언덕 아래를 굽어보고, 지하의 어두운 터널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8천이라는 숫자가 정확하든 아니든, 이 언덕을 빠져나간 수많은 죽음은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웨이벌리 힐스는 오늘도 안개 속에서, 그 조용한 언덕 위에 그렇게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