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를 떠올리면 대개 잔잔한 운하와 곤돌라, 물 위에 뜬 아름다운 도시를 그린다. 그러나 그 도시를 감싼 석호(潟湖) 위에는, 관광객의 배가 결코 향하지 않는 작은 섬 하나가 안개 속에 잠겨 있다. 뭍에서 바라보면 나무가 우거지고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섬이다. 그러나 이 섬의 이름을 아는 베네치아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 시선을 피한다. 뱃사공은 손님을 태우고도 그 섬만은 에둘러 돌아간다. 이곳은 포베글리아(Poveglia), 수백 년 동안 역병에 걸린 이들이 마지막으로 실려 들어간 격리의 섬이자, 오늘날 이탈리아 정부가 일반인의 발길을 막아 세운, 돌아오지 못하는 섬이다.

사십 일의 섬, 격리의 시작
포베글리아를 이해하려면 먼저 '검역(quarantine)'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이 말은 베네치아 방언으로 '사십 일'을 뜻하는 콰란타 조르니(quaranta giorni)에서 비롯되었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던 시절, 베네치아 공화국은 외지에서 들어오는 배와 사람을 도시 안으로 곧장 들이지 않았다. 병을 실어 왔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석호 위의 외딴 섬에 사십 일간 붙잡아 두고 지켜본 뒤에야 뭍을 밟게 했다. 그렇게 병을 걸러내던 격리소를 '라자레토(lazaretto)'라 불렀고, 베네치아 석호에는 이런 격리의 섬이 여럿 있었다. 포베글리아는 그중에서도 가장 음산한 이름을 남긴 섬이다.
기록에 따르면 포베글리아가 역병 격리의 무대가 된 것은 이미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1793년부터 1814년 사이, 이 섬은 본격적인 역병 격리소로 쓰였다. 병에 걸린 이들, 혹은 병에 걸렸을지 모른다고 의심받은 이들이 배에 실려 이 섬으로 건너왔다. 한번 이 섬에 발을 들이면, 성한 몸으로 다시 뭍을 밟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섬은 병을 도시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벽이었고, 그 벽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살아 돌아온다는 희망보다 이곳에서 끝난다는 예감이 더 짙게 드리웠다.

흙의 절반이 사람이라는 이야기
포베글리아를 다른 어떤 폐허보다 음산하게 만드는 것은, 이 섬의 땅 자체에 얽힌 이야기다. 이 작은 섬을 거쳐 간 사람의 수가 무려 십육만 명에 이른다는 전언이 있다. 역병에 걸려 이 섬으로 실려 온 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이들, 마지막 숨을 이 안개 속에서 몰아쉬며 눈을 감은 이들의 숫자다. 그 많은 유해를 좁은 섬 어딘가에 묻어야 했으니, 섬 곳곳에는 역병 사망자를 한꺼번에 묻은 거대한 구덩이가 자리 잡았다.
여기에서 이 섬의 가장 서늘한 소문이 태어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작은 섬에 그토록 많은 유해가 쌓이고 스러지면서, 오늘날 포베글리아의 흙 상당 부분이 사실은 사람의 잔해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발을 딛는 그 흙이 곧 수많은 죽음이 켜켜이 쌓여 굳은 것이라는 상상은, 어떤 유령 이야기보다도 사람의 등을 서늘하게 만든다. 물론 흙의 정확히 얼마만큼이 유해인지 과학적으로 측정된 바는 없다. 그러나 십육만이라는 숫자가 이 손바닥만 한 섬을 스쳐 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섬의 땅은 이미 하나의 거대한 무덤과 다르지 않다.
옛사람들의 두려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포베글리아는 오래도록 '죽음의 섬'이었다. 뱃사공들은 그 섬 근처를 지날 때면 말을 삼갔고, 어부들은 그 물가에서 그물을 던지기를 꺼렸다. 섬을 뒤덮은 안개조차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그 뿌연 안개가 걷힐 때, 무엇이 그 아래에서 조용히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1922년, 정신병원이 들어서다
역병의 시대가 저물고, 격리소로서의 포베글리아도 그 쓰임을 다한 듯 보였다. 라자레토는 1814년 무렵 문을 닫았고, 한동안 섬은 죽음의 기억만을 안은 채 조용히 버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섬의 어두운 이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22년, 사람들은 이 죽음의 섬 위에 새로운 건물을 세웠다.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는 병원, 곧 정신병원이었다.
하필이면 수만 구의 유해가 묻힌 이 섬 위에 정신병원이 들어섰다는 사실은, 이후 온갖 음산한 소문의 온상이 되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이 병원에는 환자들을 상대로 기이하고 잔혹한 실험을 자행한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치료'라는 명목 아래 행해지던 원시적인 시술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고문에 가까운 처치들에 관한 소문이었다. 병원의 창밖으로는 안개 낀 석호와 역병 구덩이의 흙이 내다보였고, 그 안에 갇힌 이들이 어떤 밤을 보냈을지는 오직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히 짚어둘 것이 있다. 이 정신병원과 의사에 얽힌 잔혹한 이야기들은, 확실한 역사적 기록으로 뒷받침되지는 않는다. 세월이 흐르며 부풀려지고 각색된 전설에 가깝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견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죽음의 섬 위에 세워진 정신병원이라는 그 무대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음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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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잠긴 포베글리아, 무너진 종탑과 폐허 위로 낮게 흐르는 물안개 — 분위기를 재현한 영상이며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다.
종탑에서 떨어진 의사
포베글리아의 전설 가운데 가장 널리 퍼진 것은, 이 정신병원의 종탑에 얽힌 이야기다. 병원 건물 곁에는 옛 성당의 것으로 보이는 종탑이 하나 서 있는데, 오늘날에도 이 종탑은 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조물로 폐허 위에 홀로 남아 있다. 전설은 이 종탑을 무대로 삼는다.
이야기에 따르면, 환자들을 상대로 실험을 일삼던 그 의사는 어느 순간부터 이 섬에서 스러져 간 이들의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안개 속에서, 텅 빈 복도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에 그를 찾아온 것은 오래전 이 섬의 흙 속으로 사라진 무수한 죽음의 그림자였다. 견디다 못한 의사는 결국 정신을 놓았고, 어느 날 병원의 종탑 위로 올라가 몸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이야기의 어떤 판본은 여기에 한 겹을 더 얹는다. 추락에서 목숨이 붙어 있던 그를, 땅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감싸 결국 숨을 거두게 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확실한 기록이 아니라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전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개 낀 섬, 폐허가 된 병원, 그리고 그 위에 홀로 남은 종탑이라는 배경은, 이 이야기를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 놓았다. 오늘날에도 종탑에서 종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것은, 바로 이 전설의 힘 때문이다. 실제로는 종탑에 종이 남아 있지 않다는데도 말이다.

1968년, 문을 닫다
정신병원으로, 그리고 이후 노인 요양시설로 쓰이던 포베글리아의 건물들은 1968년에 이르러 마침내 문을 닫았다. 그 뒤로 섬은 사람의 손길을 잃은 채 다시 버려졌다. 지붕은 내려앉고, 창은 깨지고, 벽토는 벗겨져 떨어졌다. 역병 격리소로, 정신병원으로, 요양시설로 이어진 이 섬의 모든 이력이 폐허의 정적 속에 잠겼다.
오늘날 포베글리아는 이탈리아의 국유지로, 일반인의 출입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관광객을 실은 정기 여객선은 이 섬에 닿지 않으며, 함부로 섬에 발을 들이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무너져가는 건물들이 위험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 섬을 감싼 음산한 평판 또한 그 접근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왔다. 정부가 접근을 막아 세운 섬, 지도 위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는 섬. 그렇게 포베글리아는 베네치아의 화려한 풍경 한가운데에서 홀로 시간이 멈춘 채 안개 속에 남았다.
이 섬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섬의 활용을 두고 여러 논의가 오갔지만, 죽음의 섬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포베글리아는 오늘도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채, 무너진 병원과 홀로 선 종탑, 그리고 십육만의 이야기가 스민 흙을 안은 채 석호 위에 떠 있다.

안개 아래 잠든 것
포베글리아의 이야기는 유령의 존재를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서늘하다. 십육만이라는 숫자가 이 작은 섬을 스쳐 갔고, 그 많은 죽음이 섬의 흙 속에 스며들었다는 사실. 죽음의 섬 위에 다시 정신병원이 세워졌고, 그곳에서 어떤 밤들이 흘러갔는지 이제는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종탑에서 몸을 던진 의사의 전설과, 안개가 사람을 삼켰다는 이야기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오래도록 사람을 붙든다는 사실.
무엇이 실제 역사이고 무엇이 부풀려진 전설인지, 안개 낀 이 섬은 좀처럼 답을 내주지 않는다. 종탑에서 정말로 의사가 몸을 던졌는지, 병원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흙의 얼마만큼이 정말 사람의 잔해인지 — 아무도 단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 섬을 오래도록 붙드는 힘은, 초자연적인 저주가 아니라 '수많은 죽음이 실제로 이 흙에 묻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저주를 지어내지 않아도, 십육만이라는 숫자만으로 이 섬은 이미 충분히 음산하다.
오늘도 베네치아의 석호에는 안개가 흐른다. 곤돌라는 화려한 운하를 미끄러지고, 관광객은 물의 도시가 뽐내는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 화려함에서 조금만 배를 돌리면, 아무도 향하지 않는 안개 낀 섬 하나가 여전히 그 자리에 떠 있다. 무너진 종탑이 회색 하늘을 향해 홀로 솟아 있고, 그 발밑의 흙은 백 년이 훌쩍 넘도록 자신이 품은 이야기를 조용히 감춘 채, 오늘도 안개 아래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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