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무너지는 데에는 보통 시간이 걸린다. 안으로 곪고, 변방이 떨어져 나가고, 왕실이 갈라지고, 그렇게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기울어 간 끝에야 마지막 순간이 온다. 그런데 발해는 그렇지 않았다. 228년을 버틴 이 거대한 나라는, 마치 무대의 조명이 한순간에 꺼지듯 며칠 만에 사라졌다. 국경의 요새 하나가 사흘 만에 떨어졌고, 수도는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성문을 열었다. 당대의 기록조차 이 붕괴의 속도 앞에서 말을 아꼈다. 그리고 그 무렵, 만주와 한반도 북부 사이에 솟은 백두산은 인류 역사시대를 통틀어 손꼽히는 규모의 대분화를 일으켰다. 하늘을 재로 덮고, 눈 덮인 봉우리를 통째로 날려 지금의 거대한 칼데라 호수, 천지(天池)를 남긴 그 폭발이다. 두 사건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도록 물어 왔다. 산이 나라를 삼킨 것일까. 하지만 그 물음에는, 아직 아무도 완전히 메우지 못한 20년이라는 틈이 있다.

해동성국, 동아시아의 대국
발해는 698년, 고구려 유민 출신의 대조영(大祚榮)이 만주 동부의 벌판에서 세운 나라였다. 고구려가 무너진 지 한 세대 만에, 그 옛 땅과 유민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당(唐)의 견제 속에서 조심스럽게 시작했지만, 대(代)를 거듭하며 발해는 빠르게 커졌다. 남으로는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북으로는 말갈 여러 부족을 아우르며, 동으로는 바다 건너 일본과 사신을 주고받았다. 전성기의 발해는 다섯 개의 수도와 수많은 부(府)와 주(州)를 거느린, 사방 수천 리에 이르는 대국이었다.
당나라 사람들조차 이 나라를 '해동성국', 곧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 불렀다. 발해의 사신은 당의 수도 장안에서 신라 사신과 자리를 다투었고, 발해의 학생들은 당의 과거에 응시해 이름을 올렸다. 이 나라는 변방의 작은 세력이 아니라, 당·신라·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동북아시아의 한 축이었다. 그런 나라가 228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어 왔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듯, 이만한 규모와 역사를 가진 나라가 며칠 만에 사라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발해에게는, 바로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사흘 만에 떨어진 성, 보름 만에 열린 수도
925년 겨울, 서쪽에서 거란(契丹)이 몰려왔다. 거란은 그 무렵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라는 강력한 군주 아래 초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 창끝이 발해를 향했다. 12월, 거란의 대군이 국경을 넘어 발해로 쏟아져 들어왔다.
붕괴는 믿기 힘든 속도로 진행됐다. 거란군은 서쪽 국경의 요충지인 부여성(扶餘城)으로 곧장 진격했다. 부여성은 발해가 거란을 막기 위해 특별히 대비하던 서방 방어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성이 포위된 지 겨우 사흘 만에 함락됐다. 926년 정월 초의 일이었다. 방어선의 심장이 이렇게 순식간에 뚫리자, 그 뒤는 걷잡을 수 없었다. 거란군은 부여성을 접수하자마자 발해의 수도 상경(上京), 곧 홀한성(忽汗城)으로 곧장 밀고 들어갔다. 수도가 포위됐고, 채 며칠도 버티지 못한 채 발해의 마지막 임금 대인선(大諲譔)은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국경의 성이 떨어진 날로부터 수도가 항복한 날까지, 채 보름이 걸리지 않았다.
228년을 이어 온 대국이 한 달도 안 되어 무너졌다. 이것은 단순한 패전이 아니었다. 방어선이 무너진 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마치 속이 텅 빈 껍데기처럼 한 번의 타격에 주저앉은 것이다. 바로 이 기묘한 속도가,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첫 번째 수수께끼다. 이 대국은, 무너지기 전에 이미 안에서부터 죽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백두산이 하늘을 열었다
발해의 옛 강역 한복판에는 백두산이 있다. 만주와 한반도의 경계에 우뚝 솟은 이 거대한 산은, 겉으로는 눈 덮인 고요한 영봉이지만 그 속에는 거대한 마그마 방을 품은 활화산이다. 그리고 10세기, 이 산은 잠에서 깨어났다.
지질학자들이 '밀레니엄 대분화(Millennium Eruption)'라 부르는 이 폭발은, 인류의 역사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력했던 화산 분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화산폭발지수(VEI)로는 6에서 7에 이르는 규모로, 폭발이 뿜어낸 화산재와 부석(테프라)의 양은 약 100세제곱킬로미터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79년 폼페이를 삼킨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를 몇 곱절 웃도는 양이며, 지난 이천 년 사이 지구가 겪은 최대급의 분화에 속한다. 백두산이 뿜어낸 화산재는 바람을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가 바다 건너 일본 열도에까지 두껍게 쌓였고, 그 흔적은 저 멀리 그린란드의 빙하 속에서도 확인된다. 오늘날 백두산 정상에 자리한 저 깊고 푸른 칼데라 호수 천지는, 바로 이 대분화가 산봉우리를 통째로 날려 버린 자리에 물이 고여 생긴 상처다.
만약 이 폭발이 발해의 강역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면, 그 아래 살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세상의 끝처럼 보였을 것이다. 대낮에 하늘이 검게 닫히고, 뜨거운 재가 눈처럼 쏟아지고, 들판과 강이 잿빛으로 덮이고, 이어진 화산 겨울에 곡식이 얼어 죽는 — 그런 종말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재앙이라면, 한 나라를 뿌리째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바로 여기서, 산과 나라를 하나로 잇는 이야기가 태어났다.

"화산이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가설
산과 나라를 잇는 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학문의 영역으로 처음 끌어올린 사람은, 일본의 화산학자 마치다 히로시(町田洋)였다. 1990년대 초, 그는 백두산 밀레니엄 대분화의 규모와 시기를 연구하면서, 이 거대한 폭발이 발해라는 나라의 멸망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그의 논리는 직관적이면서도 강렬했다. 역사시대 최대급의 화산 분화가 하필 발해의 심장부에서 일어났고, 그 무렵 발해라는 대국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무너졌다면, 이 둘이 아무 관계도 없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가설은 발해 급속 붕괴의 첫 번째 수수께끼에 그럴듯한 답을 주는 듯했다. 대분화가 뿜어낸 막대한 화산재가 농경지를 덮어 농사를 망치고, 뒤이은 화산 겨울이 여러 해 동안 흉년을 불러왔다면, 발해 사회는 안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굶주려 흩어지고, 국고는 비고, 군대는 무너지고, 중앙의 통제력은 껍데기만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속이 텅 빈 나라였기에, 거란의 한 번의 타격에 성 하나가 사흘 만에 떨어지고 수도가 보름 만에 열렸다는 설명이다. 화산이 나라의 숨통을 미리 끊어 놓았고, 거란은 그저 이미 죽어 가던 몸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을 뿐이라는 이 그림은, 발해의 기이한 붕괴 속도를 설득력 있게 메워 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메워지지 않는 20년
여기까지라면 완결된 이야기다. 화산이 대국을 무너뜨렸다 — 웅장하고 비극적이며, 무엇보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결정적인 균열이 하나 있다. 바로 시간이다.
발해가 멸망한 해는 926년이다. 이것은 여러 문헌 기록으로 뒷받침되는, 비교적 분명한 연대다. 그런데 문제는 백두산 대분화의 시점이다. 오늘날 지질학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그리고 나이테와 빙하 기록을 종합한 최신 연구들은, 백두산 밀레니엄 대분화가 일어난 해를 대체로 946년 무렵으로 지목한다. 즉, 발해가 멸망하고 나서 무려 20년이나 지난 뒤에야 산이 폭발했다는 뜻이다. 만약 이 연대가 옳다면, 화산이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는 성립할 수 없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폭발이 어떻게 이미 사라진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인가. 원인이 결과보다 뒤에 오는 셈이니, 인과의 순서 자체가 뒤집혀 버린다.
물론 분화 시점을 둘러싼 논의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분화 시기를 이보다 앞선 시점, 이를테면 929년 무렵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고, 백두산이 한 번에 폭발한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에 걸쳐 활동했을 가능성을 짚는 연구도 있다. 만약 본 분화 이전에 규모가 작은 선행 분화나 화산 활동이 있었다면, 그것이 발해 말기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그늘을 드리웠을 여지는 남는다. 그러나 그 정도의 활동이 228년을 버틴 대국을 며칠 만에 무너뜨릴 만큼 결정적이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946년이라는 최대급 대분화 자체는, 아무리 시점을 당겨 잡아도 926년의 멸망을 설명하기에는 2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돈다. 이 20년의 틈이야말로, '화산 멸망설'이 매혹적인 가설의 자리에서 끝내 확정된 정설로 올라서지 못하게 붙잡는 결정적인 벽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국을 무너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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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연무 사이로 서서히 드러나는 눈 덮인 칼데라 봉우리 —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라 분위기를 재현한 연출 클립이다.
화산이 결정적 원인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이 이 대국을 며칠 만에 주저앉혔을까. 화산 멸망설의 매력에 가려져 있지만, 발해의 급속한 붕괴를 설명하는 다른 실마리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발해가 이미 안으로부터 병들어 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왕조 말기의 권력 다툼과 지배층의 분열, 여러 부족을 아우른 나라 특유의 느슨한 결속, 그리고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초원을 통일하고 무섭게 팽창하던 거란이라는 강적의 존재다. 실제로 발해 멸망 직전, 지배층 일부가 나라를 버리고 이웃으로 망명했다는 정황도 전해진다. 겉으로는 거대했지만 속은 이미 갈라져 있던 나라가, 마침 정점에 오른 거란의 일격을 받고 무너졌다는 설명은, 굳이 화산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그 붕괴 속도를 상당 부분 납득하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화산이 발해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것은 아직 입증된 사실이 아니며, 반대로 화산이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근거 또한 없다. 946년의 대분화 자체는 926년의 멸망 이후이지만, 그 이전 백두산 일대의 지질 활동과 기후 변동이 발해 말기 사회에 어떤 압력을 가했는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물음이다. 어쩌면 진실은 어느 한쪽의 극단이 아니라, 안으로 곪은 정치, 밖에서 밀려온 강적, 그리고 대지를 뒤흔든 자연의 변동이 겹겹이 포개진 자리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228년을 버틴 해동성국 발해는 926년 초, 성 하나가 사흘 만에 떨어지고 수도가 보름도 안 되어 항복하며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렵, 백두산은 역사시대 최대급의 대분화를 일으켜 산봉우리를 통째로 날리고 천지라는 거대한 상처를 남겼다. 두 사건은 시간과 공간에서 소름 끼치도록 가까이 붙어 있지만, 그 사이에는 아직 아무도 완전히 메우지 못한 20년이라는 틈이 놓여 있다. 저 깊고 푸른 천지의 수면 아래에, 대국을 삼킨 진짜 이유가 잠겨 있는지 — 그 답을 백두산은 천 년이 넘도록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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