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가지의 너른 벌판 한가운데, 우아하게 허리가 잘록한 석조탑 하나가 서 있다. 아래는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정상에서 다시 네모반듯한 돌이 얹힌, 마치 술병을 엎어 놓은 듯한 곡선의 몸체. 밤이 내리고 조명이 켜지면, 이 탑의 실루엣은 별이 돋은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신비로워진다. 첨성대(瞻星臺). 이름 그대로 옮기면 '별을 우러러보는 대(臺)'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 탑을 동아시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 불러 왔고, 교과서는 신라 사람들이 이 위에 올라 별을 관측했다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의 어느 때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끈질긴 물음 하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첨성대는 정말 천문대였을까. 이 탑은 대체 무엇을 위해 세워졌을까.

1,400년을 견딘 돌
첨성대가 세워진 것은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대의 일이다. 여러 옛 문헌을 종합하면, 대략 여왕의 재위 초기인 633년에서 634년 무렵에 완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13세기에 편찬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선덕여왕 대에 "첨성대를 쌓았다(築瞻星臺)"고 짤막하게 적어 두었고, 이후의 사서들 역시 그 시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탑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400년 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의 전성기로 나아가던 무렵에 세워진 것이다.
높이는 약 9미터 남짓.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결코 크다 할 수 없는 규모지만, 놀라운 것은 이 탑이 그 오랜 세월을 거의 원형 그대로 견뎌 냈다는 사실이다. 지진과 전란과 왕조의 교체를 모두 겪고도, 첨성대는 무너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다만 세월의 무게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서, 지금은 몸체가 아주 미세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 기울어짐을 두고 어떤 이들은 '경주의 피사의 사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 년을 넘게 서 있는 돌 하나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경이인 셈이다.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숫자
첨성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탑이 그저 아름답게만 쌓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곳곳에 어떤 '숫자'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몸체를 이루는 돌의 수는 대략 362개에서 365개 안팎으로 헤아려지는데, 이는 곧 한 해의 날수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오래도록 따라다녔다. 몸통을 이루는 돌의 층, 곧 단(段)의 수는 27단으로, 이는 첨성대를 세운 선덕여왕이 신라의 제27대 임금이라는 사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탑의 중간쯤,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는 네모난 창구(窓口)가 하나 뚫려 있다. 이 창을 기준으로 위아래의 단을 세면 각각 12단씩, 도합 24단이 되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1년 열두 달과 스물넷의 절기(節氣)를 읽어 낸다. 정상부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춘 네모난 돌이 얹혀 있고, 맨 아래 기단은 네모나며, 몸체는 둥글다. 둥근 것은 하늘을, 네모난 것은 땅을 뜻한다는 동아시아의 오랜 우주관—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이 이 작은 탑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첨성대는 그저 돌을 쌓아 올린 구조물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시간에 관한 신라 사람들의 생각을 통째로 옮겨 놓은 하나의 상징 체계였다.

천문대설 — 별을 우러러보던 자리
가장 오래되고 널리 받아들여진 해석은, 이름 그대로 첨성대가 천문을 관측하던 대(臺)였다는 것이다. 이 통설을 뒷받침하는 가장 흥미로운 근거는 문헌 속에 남은 하늘의 기록이다. 신라라는 나라가 이어진 약 천 년 동안 남긴 천문 관측 기록을 세어 보면 대략 140여 회에 이르는데, 놀랍게도 그 가운데 압도적인 다수가 첨성대가 세워진 이후의 것이라고 한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첨성대 축조 이후 약 3세기 동안에 전체의 3분의 2에 가까운 관측 기록이 몰려 있다. 탑이 세워진 뒤로 신라 사람들이 하늘을 훨씬 더 자주, 더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 정황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 어느 맑은 밤, 신라의 천문 담당 관리가 첨성대에 올라 별과 달의 자리를 살피고, 혜성이나 유성 같은 하늘의 이변을 기록으로 남긴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하늘을 읽는 일은 곧 나라의 운명을 읽는 일이었다. 왕은 하늘의 뜻을 대신 받드는 존재였고, 별의 움직임과 하늘의 조짐은 정치의 길흉을 판단하는 근거였다. 그러니 왕권을 하늘과 잇대려 한 선덕여왕이 하늘을 관측하는 대를 세웠다는 것은, 이야기로서도 더없이 자연스럽다. '첨성(瞻星)'—별을 우러러본다—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 탑의 쓰임을 증언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셈이다.

반론 — 별을 보기엔 이상한 탑
그런데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 오래된 통설에 정면으로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의문의 핵심은 단순하고도 날카로웠다.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기에 지나치게 불편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우선 정상부에 오르는 일부터가 문제였다. 몸체 중간에 뚫린 네모난 창구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들 만한 크기인데, 여기까지 사다리를 걸쳐 올라간다 해도 그 위로 다시 좁은 통 속을 기어 올라 정상에 이르러야 한다. 별을 관측하려는 사람이 밤마다 이 좁고 불편한 통로를 오르내렸으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게다가 탑의 높이는 겨우 9미터 남짓. 주변에 시야를 가릴 만한 것이 없는 평지라면, 굳이 이 탑에 오르지 않고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것이라는 반문도 뒤따랐다. 정상에 관측 기구를 놓을 만한 공간이 충분했는지, 그 위에서 실제로 관측이 가능했는지를 두고도 논쟁이 이어졌다. 이런 물음들 앞에서, '별을 보던 탑'이라는 오랜 상식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로, 전혀 다른 해석들이 밀려들어 왔다.

또 다른 얼굴들 — 제단, 규표, 그리고 상징물
천문대설이 흔들리자, 그 자리를 채우며 여러 갈래의 새로운 학설이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제단설이다. 첨성대가 별을 관측하던 곳이 아니라, 하늘과 별에 제사를 올리던 종교적 제단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해석은 흥미롭게도 강화도 마니산 꼭대기에 있는 참성단(塹星壇)을 나란히 놓고 본다. 참성단은 상고 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제단으로, 둥근 아래 단 위에 네모난 단을 얹은 구조가 첨성대의 '둥근 몸체와 네모난 정상'과 묘하게 닮았다. 첨성대 역시 하늘에 제를 올리던 신성한 단이었으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불교의 우주 중심인 수미산(須彌山)을 본떠 만든 제단이라는 해석, 토속 신앙의 제사 터였다는 해석 등이 곁가지처럼 뻗어 나왔다.
또 다른 갈래는 규표설(圭表說)이다. 1964년 무렵부터 제기된 이 해석은, 첨성대를 거대한 해시계의 기둥, 곧 규표로 본다. 탑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을 지상에서 재어 절기와 시각, 방위를 측정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들은 첨성대를 실용적 기구가 아니라 수학적·천문학적 지식을 돌로 구현한 하나의 상징물로 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대담한 해석은, 첨성대에 애초부터 실용적 기능이란 별로 없었다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첨성대는 여왕의 즉위를 기념하고 그 권위를 하늘에 잇대어 만천하에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상징물이자 기념물이다. 여성으로서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에게, 하늘을 우러르는 이 탑은 자신의 통치를 하늘의 뜻과 연결짓는 더없이 강력한 선언이었으리라는 것이다.

이 여러 학설들 가운데 무엇이 정답인지, 오늘날의 우리는 확언할 수 없다. 다만 주류 학계는 여전히, 문헌에 남은 관측 기록의 정황과 '첨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들어 천문대설을 가장 유력한 통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제단설도, 규표설도, 상징물설도 저마다의 근거를 갖고 여전히 살아 있다. 어쩌면 이 학설들은 서로를 완전히 밀어내는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늘을 관측하는 실용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하늘에 제를 올리는 신성한 단이었고, 또한 여왕의 권위를 세우는 상징물이기도 했던—하나의 탑이 여러 얼굴을 동시에 지녔을 가능성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이것뿐이다. 1,400년 전, 신라 사람들은 별의 이름을 붙인 이 곡선의 탑을 정성 들여 쌓아 올렸다. 돌 하나하나에 한 해의 날수와 열두 달과 스물넷의 절기를, 그리고 하늘과 땅에 관한 자신들의 우주관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정작 이 탑을 왜 세웠는지, 그 위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런 기록도 자세히 남기지 않았다. 경주 벌판의 첨성대는 오늘 밤에도 별빛 아래 홀로 서서, 자신을 우러러보는 우리에게 그 오래된 침묵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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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돋은 밤하늘 아래 첨성대를 천천히 올려다보는 영상 —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라 분위기를 재현한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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