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29일 저녁,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아홉 살 소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날 밤부터 소년의 집으로는 낯선 남자의 협박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있다며 거액의 돈을 요구했고, 이후 44일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전화를 이어 갔다. 부모는 아이를 되찾기 위해 범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지만, 남자는 매번 경찰의 추적을 교묘하게 따돌리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실종 44일째 되던 날, 소년은 한강변의 한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영구 미제로 남았다. 남은 것이라곤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온 범인의 육성 녹음뿐이었다. 훗날 영화 '그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된, 이형호 군 유괴 살해 사건의 이야기다.

밤의 서울 도시 야경, 불 켜진 아파트 단지와 어둠이 내린 거리 (AI 생성 이미지)
밤의 서울 도시 야경, 불 켜진 아파트 단지와 어둠이 내린 거리 (AI 생성 이미지)
1990년대 초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와 거리 풍경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1990년대 초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와 거리 풍경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1991년 압구정, 사라진 아이

1991년의 서울은 빠르게 변해 가는 도시였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르며 세계에 이름을 알린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 중심에 강남이 있었다. 특히 압구정동은 새로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당시로서는 가장 현대적인 주거지 가운데 하나였다. 넓은 도로와 반듯한 단지, 오가는 자동차들. 겉으로 보기에 이곳은 평온하고 안전한 동네였다. 사건은 바로 그런 일상 속에서 벌어졌다.

1991년 1월 29일 저녁 무렵,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홉 살 이형호 군이 압구정동의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사라졌다. 아이는 여느 날처럼 집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도 형호 군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은 처음엔 아이가 어딘가에서 놀다 늦는 것이려니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은 커져 갔다. 그리고 그날 밤,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이 실종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화기 너머의 낯선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괴였다.

어둠이 내린 1990년대 서울의 주택가 골목, 인적 없는 밤거리 (AI 생성 이미지)
어둠이 내린 1990년대 서울의 주택가 골목, 인적 없는 밤거리 (AI 생성 이미지)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밤의 도시 아파트 단지 실루엣 (AI 생성 이미지)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밤의 도시 아파트 단지 실루엣 (AI 생성 이미지)
1990년대 서울 강남 일대의 오래된 거리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 퍼블릭 도메인)
1990년대 서울 강남 일대의 오래된 거리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 퍼블릭 도메인)

44일간의 협박 전화

사건 당일 밤 11시경, 형호 군의 집으로 첫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과 경기 지역 말씨를 쓰는 3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목소리였다.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있다며, 며칠 안에 다시 전화할 테니 거액의 현금과 자동차를 준비해 두라고 요구했다. 요구한 금액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였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목숨이 걸린 절박한 협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날 이후로 범인의 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무려 44일에 걸쳐 협박 전화가 이어졌다. 그 횟수를 두고 기록마다 다소 차이가 있어, 60여 차례로 보는 자료가 있는가 하면 수백 통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다. 분명한 것은 범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부모를 몰아붙였다는 사실이다. 남자는 돈을 건넬 장소와 방법을 여러 차례 바꿔 가며 지시했고, 부모는 아이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그 지시를 따랐다. 하지만 약속한 장소에 나가 보면 범인은 나타나지 않거나,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이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심리적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경찰 역시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걸려오는 전화를 추적하고, 지정된 장소마다 잠복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통신 추적 기술과 수사 여건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유선 전화의 발신 위치를 실시간으로 잡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고, 범인은 그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매번 다른 장소에서, 통화 시간을 짧게 끊어 가며 걸어오는 전화 앞에서 수사는 번번이 한 발 늦었다.

밤거리에 홀로 서 있는 낡은 공중전화 부스, 흐릿한 가로등 불빛 (AI 생성 이미지)
밤거리에 홀로 서 있는 낡은 공중전화 부스, 흐릿한 가로등 불빛 (AI 생성 이미지)
1990년대에 쓰이던 오래된 유선 전화기의 클로즈업 (위키미디어 커먼즈 / 퍼블릭 도메인)
1990년대에 쓰이던 오래된 유선 전화기의 클로즈업 (위키미디어 커먼즈 / 퍼블릭 도메인)
비 오는 밤 도시의 젖은 아스팔트와 번지는 불빛, 인적 없는 거리 (AI 생성 이미지)
비 오는 밤 도시의 젖은 아스팔트와 번지는 불빛, 인적 없는 거리 (AI 생성 이미지)

범인의 목소리, 그 치밀함

이 사건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범인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남았다는 점이다. 협박 전화가 반복되는 동안 경찰과 가족은 통화 내용을 녹음했고, 그 결과 범인의 육성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낮고 차분한 그 목소리는 이후 수사와 공개 수배 과정에서 여러 차례 세상에 공개됐다. 이례적으로 범인의 목소리를 온 국민이 들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남았다는 사실이 곧 검거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 목소리는 범인의 치밀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통화 속 남자는 좀처럼 흥분하거나 실수하지 않았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냉정하게 지시를 반복했다. 위치가 발각될 만한 단서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 통화는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수사 당국은 이 육성을 바탕으로 목소리의 특징과 말투, 억양 등을 분석했지만, 그것만으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단 한 명을 특정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범인. 이 사건이 '얼굴 없는 범죄'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이유다.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와 녹음기, 어두운 배경 속 정물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와 녹음기, 어두운 배경 속 정물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음성 파형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그래픽, 어두운 화면 위의 소리 그래프 (판독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음성 파형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그래픽, 어두운 화면 위의 소리 그래프 (판독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비극적인 결말

부모의 절박한 노력과 경찰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끝내 최악의 결말로 향했다. 1991년 3월 13일, 실종 44일째 되던 날 형호 군은 한강변의 한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장소는 잠실대교에서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알려졌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진 협박과 기다림은 그렇게 가장 슬픈 방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부검 결과 형호 군은 유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숨졌던 것으로 추정됐다. 다시 말해, 범인은 아이가 이 세상에 없는 상태에서도 44일 동안 부모를 상대로 협박 전화를 계속하며 돈을 요구했던 셈이다. 부모가 아이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매달렸던 그 오랜 시간이, 실은 처음부터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는 사실은 이 사건의 비극성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고, 어린아이를 노린 잔혹한 범죄 앞에서 사람들은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밤의 한강과 다리의 불빛, 검은 강물 위로 번지는 도시의 조명 (AI 생성 이미지)
밤의 한강과 다리의 불빛, 검은 강물 위로 번지는 도시의 조명 (AI 생성 이미지)
겨울 강변의 차가운 물가 풍경, 인적 없는 회색빛 하늘 (AI 생성 이미지)
겨울 강변의 차가운 물가 풍경, 인적 없는 회색빛 하늘 (AI 생성 이미지)

사건이 영화가 되다 — '그놈 목소리'

세월이 흐르면서 이형호 군 사건은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옅어지는 듯했다. 그러던 2007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하면서 사건은 다시 한번 온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됐다. 박진표 감독이 연출하고 설경구, 강동원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와 그들을 농락하는 범인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실제 사건이 그러했듯, 영화 속 범인 역시 오직 목소리로만 존재하며 끝까지 붙잡히지 않는다.

이 영화가 특히 화제가 된 것은 극의 마지막에 실제 사건의 협박 전화 육성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범인의 검거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미제로 남은 실제 사건을 다룬 만큼,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아직 잡히지 않은 범인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서늘한 현실을 관객에게 각인시켰다. 다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각색된 창작물이며, 세부적인 설정은 실제 사건의 사실관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잊혀 가던 미제 사건을 다시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텅 빈 극장의 좌석과 스크린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 (AI 생성 이미지)
텅 빈 극장의 좌석과 스크린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영사기 릴이 돌아가는 어두운 영사실 풍경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영사기 릴이 돌아가는 어두운 영사실 풍경 (AI 생성 이미지)

공소시효, 그리고 미제로 남다

범인의 목소리가 남아 있고, 협박의 정황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음에도 수사는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력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고, 사건은 미궁 속에 갇혔다. 그리고 2006년 1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당시 한국의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이었고, 그 기한이 지나면서 설령 범인이 밝혀지더라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형호 군 사건은 그렇게 영구 미제로 굳어졌다.

이 사건은 화성 연쇄살인, 개구리소년 사건과 더불어 오랫동안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으로 불려 왔다. 특히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계획적 범죄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와 숙제를 함께 남겼다. 아동을 노린 범죄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공소시효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그것이다. 한국은 이후 미제 사건들이 제기한 문제의식 속에서 2015년 이른바 '태완이법'을 통해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그러나 이 법은 이미 시효가 지나 버린 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기에, 이형호 군 사건에는 힘을 미치지 못했다. 진실에 다가갈 기회가 제도적으로 닫혀 버린 것이다.

오래된 사건 서류와 빛바랜 파일이 쌓인 어두운 책상 (판독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사건 서류와 빛바랜 파일이 쌓인 어두운 책상 (판독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벽에 걸린 낡은 달력과 멈춘 듯한 시계,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정물 (판독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벽에 걸린 낡은 달력과 멈춘 듯한 시계,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정물 (판독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남는 목소리

해 질 녘 고요한 한강과 도시의 실루엣, 어스름이 내린 강변 풍경 (AI 생성 이미지)
해 질 녘 고요한 한강과 도시의 실루엣, 어스름이 내린 강변 풍경 (AI 생성 이미지)

이형호 군 사건은 여러 겹의 물음을 우리에게 남긴다. 1991년 겨울, 아홉 살 아이가 사라졌고 44일 동안 범인은 부모를 상대로 협박 전화를 이어 갔다. 남겨진 것은 냉정하고 치밀한 범인의 육성뿐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끝내 하나의 얼굴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영원한 미제로 남았고, 훗날 영화의 모티브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시 소환됐다.

오늘날 우리가 이 사건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아이와 그 가족이 겪은 고통이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를 처벌할 길은 제도적으로 닫혔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긴 교훈 — 아동을 노린 범죄의 잔혹함, 그리고 진실을 밝힐 시간이 유한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 은 한국 사회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던 그 목소리는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다. 오래도록 풀리지 않은 물음처럼, 그리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다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