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그림 한 점이 있다. 어두운 배경 앞에,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소년의 초상화. 어딘가 애처롭고, 오래 보고 있으면 어딘가 서늘해지는 얼굴이다. 1950년대부터 유럽 전역에서 대량으로 찍어 낸 이 판화는 한때 영국의 수많은 가정집 거실 벽에 걸려 있던, 그저 흔한 장식용 그림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영국에서, 이 흔한 그림을 둘러싸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불이 나 집이 통째로 타 버렸는데, 이 '우는 소년' 그림만은 잿더미 속에서 멀쩡히 살아남더라는 것이다. 한 집도 아니고, 여러 집에서. 소방관들은 조용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그림이 걸린 집은 불탄다고. 지금부터 벽에서 우는 그 얼굴을 둘러싼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잿더미 속에 남은 그림
이야기는 1985년, 영국의 대중지 '더 선(The Sun)'의 한 기사에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해 9월, 신문은 잉글랜드 남동부 에식스 지역의 한 소방관이 겪었다는 기이한 이야기를 실었다. 이 소방관에 따르면, 화재로 집이 전소된 현장에 출동해 보면 유독 한 종류의 그림만은 불에 타지 않은 채 발견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우는 소년(The Crying Boy)'이라 불리는, 눈물 맺힌 소년을 그린 값싼 판화였다. 벽지가 새까맣게 타 벗겨지고, 가구가 형체도 없이 녹아내린 방 한복판에서, 그 그림만은 액자째 온전히 걸려 있더라는 이야기였다.
기사가 나가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우리 집도 그랬다"는 제보가 신문사로 쏟아져 들어왔다.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는데 우는 소년 그림만은 멀쩡했다는 사연, 그 그림을 걸어 둔 뒤로 집안에 불운이 겹쳤다는 사연, 그림을 없애려 해도 어쩐지 태워지지 않더라는 사연까지. 제보는 하나같이 비슷한 결을 그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이 소년의 얼굴이, 어쩐지 불을 부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
여기서 잠시, 이 '우는 소년'이 대체 어떤 그림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초상화를 그린 사람은 이탈리아의 화가 브루노 아마디오(Bruno Amadio)로, '조반니 브라골린(Giovanni Bragolin)'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1911년에 태어나 1981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눈물 맺힌 아이들을 그린 일련의 초상화로 알려졌다. 우는 소년, 우는 소녀 등 눈물 흘리는 아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 여러 판본으로 존재하며, 이 그림들은 1950년대 이후 값싼 판화 형태로 대량 생산되어 유럽 전역에 팔려 나갔다.
즉, '우는 소년'은 세상에 단 한 점뿐인 원화가 아니다. 똑같은 그림이 수만 장, 수십만 장 찍혀 나가 여러 나라의 수많은 가정집에 걸린, 흔하디흔한 장식용 판화였다. 바로 이 '흔함'이 훗날 저주설의 핵심 반증이 되지만, 그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뤄 두자. 어쨌든 당시 영국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어딘가 감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그림이 꽤 인기를 끌었고, 그만큼 많은 집에 걸려 있었다.

소방관들 사이의 소문
더 선의 보도가 나간 뒤, 소문은 소방서 안에서 특히 빠르게 번졌다. 화재 현장을 누구보다 많이 목격하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들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소방관이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현장을 본 적이 있다"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몇몇 소방서에서는 아예 이 그림을 집에 걸어 두지 말라는 이야기가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오갔다고 한다. 잿더미 속에서 멀쩡히 살아남은 우는 소년의 얼굴은, 불과 싸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조차 어딘가 께름칙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소문은 점점 더 극적인 형태로 몸집을 불렸다. 이 그림을 태우려 하면 어쩐지 불이 붙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림을 없앤 뒤에야 비로소 집안의 불운이 멎었다는 이야기, 심지어 이 그림 속 소년이 실은 화재로 부모를 잃은 고아였고 그 원한이 그림에 깃들었다는 식의, 출처를 알 수 없는 뒷이야기까지 덧붙었다. 하나의 소문이 다른 소문을 낳고, 그 소문이 또 다른 사연을 불러들이며, '우는 소년'은 어느새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저주받은 그림이 되어 가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소문이 퍼지는 방식 그 자체다. 화재 현장에서 멀쩡한 그림을 발견한 소방관 한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소방관의 비슷한 기억을 불러냈다. 그 기억은 신문 기사가 되고, 기사는 다시 수백 명 독자의 '나도 그랬다'는 제보를 끌어냈다. 그리고 그 제보 하나하나가 또 다른 사람의 옛 기억을 자극했다. 애초에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우연한 사건들이, '우는 소년의 저주'라는 하나의 틀을 만나는 순간 갑자기 의미심장한 증거로 재배열된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그렇게 이야기의 틀에 맞춰 스스로를 다시 쓰는 법이다. 저주가 그림에 깃들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저주라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깃든 것만은 분명했다.
신문이 불태운 그림들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더 선은 아예 대대적인 이벤트를 벌였다. 그해 11월, 신문은 독자들에게 집에 있는 우는 소년 그림을 신문사로 보내라고 독려했고, 그렇게 모인 수백 장의 그림을 한데 모아 불태우는 소각 행사를 열었다. 저주받았다는 그림들을 공개적으로 태워 없앰으로써 독자들의 불안을 달래겠다는 취지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던져지는 수백 명의 '우는 소년'들. 이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진풍경이 되어, 저주설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이야기를 더 널리, 더 오래 살아남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기묘한 광경이다. '불에 타지 않는 저주받은 그림'이라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사람들이 그 그림을 굳이 불에 태워 없앤 것이다. 태워도 태워도 다른 집 벽에서 또 다른 우는 소년이 나타났고, 신문은 그때마다 새로운 제보를 실었다. 공포는 소각의 불길을 먹고 오히려 더 크게 번져 갔다.

<video controls playsinline preload="metadata" poster="/media/cryingboy-1.jpg" style="width:100%;height:auto;border-radius:8px;"> <source src="/media/cryingboy-clip.mp4" type="video/mp4"> </video>
그을린 벽에 걸린 채 촛불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우는 소년의 초상 — 분위기를 재현한 영상이며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다.
벽에서 나를 보는 얼굴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오래 붙든 데에는, 그림 그 자체가 주는 서늘한 인상이 한몫했다. 우는 소년은 그저 불에 타지 않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얼굴'이었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보는 사람을 물끄러미 마주 보는 아이의 얼굴. 방 한쪽 벽에 이 그림을 걸어 두면, 밤마다 어둠 속에서 그 젖은 눈이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특히 화재 현장에서 살아남은 그림에 얽힌 증언들은 하나같이 같은 지점을 건드렸다. 모든 것이 타 버린 폐허 한복판에서, 유독 그 소년의 얼굴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벽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더라는 것. 집을 잃은 사람에게 그 광경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소름이었다. 마치 그림 속 아이가 불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모든 걸 태연히 견뎌 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벽에서 우는 얼굴이 나를 본다는 그 감각 — 저주설의 진짜 힘은 어쩌면 화재 자체보다 이 서늘한 응시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주였을까
이제 이야기의 다른 쪽 면을 볼 차례다. 정말로 그림에 저주가 깃들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현상에는 지극히 합리적인 설명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설명들은 저주설만큼이나, 아니 저주설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이 미스터리를 메운다.
첫 번째 열쇠는 그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있다. 2010년, 영국 BBC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스티브 펀트(Steve Punt)가 이 미스터리를 직접 파고들었다. 그는 문제의 판화를 영국의 한 건축 연구 기관에 맡겨 실제로 불에 태우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드러난 사실은 이랬다. 대량 생산된 이 판화들은 표면에 일종의 방염 처리, 즉 불이 잘 붙지 않도록 하는 코팅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값싼 인쇄물의 표면을 매끄럽고 반질거리게 만드는 그 코팅이, 공교롭게도 불길을 어느 정도 튕겨 내는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두 번째 열쇠는 더욱 결정적이다. 실험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림을 벽에 매달아 두는 끈이나 고리가 화재 때 가장 먼저 타 끊어진다는 점이다. 끈이 타 끊어지면 그림은 벽에서 떨어지는데, 이때 그림은 대개 앞면이 바닥을 향한 채로 엎어져 떨어진다. 그러면 불길과 열기가 직접 닿는 것은 그림의 뒷면과 액자뿐이고, 정작 소년의 얼굴이 그려진 앞면은 바닥에 딱 붙어 보호를 받게 된다. 화재가 진압된 뒤 잔해를 치우다 이 그림을 뒤집어 보면, 앞면만은 놀랍도록 멀쩡한 것이다. '저주받아 타지 않은 그림'의 정체는, 상당 부분 이 단순한 물리 현상이었던 셈이다.

타블로이드가 키운 공포
세 번째 열쇠는 그림 바깥에 있다. 바로 이 이야기를 세상에 퍼뜨린 매체의 성격이다. '우는 소년'의 저주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더 선은 영국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 즉 자극적인 이야기로 판매 부수를 올리는 대중지였다. 잿더미 속에 멀쩡히 남은 저주받은 그림이라는 소재는, 이런 신문에게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제보가 들어올수록 기사는 커졌고, 기사가 커질수록 더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신문과 독자가 서로의 공포를 부추기며 이야기를 함께 키워 나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통계적 사실을 더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우는 소년 판화는 수십만 장이 팔려 나가 영국의 아주 많은 집에 걸려 있었다. 그렇다면 그중 일부의 집에서 화재가 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토록 흔한 그림이니, 불이 난 집에서 그 그림이 발견될 확률도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불난 집에 우는 소년이 있었다'는 사례만 기억하고 신문에 제보했을 뿐, '우는 소년이 걸려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수십만 채의 평범한 집은 아무도 세지 않았다. 훗날 한 언론인은 그림 속 소년이 화재로 죽은 고아라는 식의 극적인 뒷이야기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그런 사연들은 대부분 2000년대에 들어서야 뒤늦게 지어 붙여진 것이었다.
그래도 남는 서늘함
그렇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깨끗이 끝나는 것일까. 방염 코팅과 엎어져 떨어지는 그림, 타블로이드의 과장과 통계의 착시 — 이 네 가지만으로 우는 소년의 미스터리는 사실 대부분 설명이 된다. 초자연적인 저주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고, 우연과 물리 현상과 인간의 상상이 겹쳐 만들어 낸 도시전설이었다는 것. 냉정하게 따지면, 그것이 가장 그럴듯한 결론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설명된 뒤에도, 어쩐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서늘함이 남는다. 그건 아마도 이 이야기의 중심에 '얼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자도, 인형도 아닌, 눈물 흘리는 아이의 얼굴. 모든 것이 타 버린 폐허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 벽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그 젖은 눈은, 아무리 합리적인 설명을 들어도 마음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는 소년의 진짜 무서움은 그림이 불에 타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폐허가 된 집 벽에서 그 얼굴이 여전히 우리를 마주 본다는 상상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우는 소년의 판화는 세상 어딘가의 낡은 벽에 조용히 걸려 있다. 그것은 그저 값싼 옛날 그림일 뿐이다. 방염 처리된 종이 위에 인쇄된, 세상에 수십만 장이 존재하는 흔한 초상화. 그러나 불에 그을린 벽 위에 홀로 남은 그 얼굴을 상상해 보라.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재와 연기 속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을. 저주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얼굴이 불러일으키는 서늘함만은, 여전히 진짜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