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의 최남단, 에메랄드빛 바다로 둘러싸인 휴양 도시 키웨스트. 그 한쪽에 자리 잡은 오래된 요새, 이스트 마르텔로 박물관에는 특별한 전시물 하나가 있다. 두꺼운 유리 진열장 안에, 낡은 세일러복을 입은 봉제 인형 하나가 앉아 있다. 키는 어린아이만 하고, 세월에 바랜 얼굴에는 표정이랄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그 인형 앞에 서면, 많은 사람이 까닭 모를 서늘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 인형의 이름은 로버트(Robert). 백 년이 넘도록 '미국에서 가장 저주받은 인형'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온, 실존하는 인형이다. 밤이 되면 스스로 움직이고, 창가에서 자세를 바꾸고, 집안의 모든 불운을 뒤집어썼다는 이 인형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따라가 본다.

소년에게 온 봉제 인형
이야기는 20세기 초, 키웨스트의 한 저택에서 시작된다. 이턴 스트리트 534번지, 지금은 '아티스트 하우스(Artist House)'라 불리는 이 오래된 집에는 오토(Otto) 가문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로버트 유진 오토(Robert Eugene Otto)라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훗날 화가가 되는 이 소년은, 어느 날 인형 하나를 선물로 받는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독일을 여행하고 돌아온 할아버지가 손자를 위해 사 온 것이라고 한다. 그 인형은 독일의 유명한 봉제 완구 회사 슈타이프(Steiff)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고,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년은 이 인형에게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인형은 '로버트'가 되었고, 소년은 스스로를 '진(Gene)'이라는 가운데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인형에게 자기 자리를 내어 준 것처럼.
인형이 입고 있던 낡은 세일러복은, 소년 오토가 어릴 적 직접 입던 옷이었다고 전해진다. 어린아이의 옷을 입은, 어린아이만 한 크기의 인형. 소년은 이 인형을 어디든 데리고 다녔고, 마치 살아 있는 친구처럼 말을 걸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저 인형을 아끼는 아이의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오토 가의 하인들과 이웃들 사이에서, 이 인형을 둘러싼 이상한 이야기가 하나둘 돌기 시작했다.

"로버트가 그랬어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토 가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물건이 뒤집히고, 장난감이 어질러지고, 밤중에 아이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어린 진 오토는 무언가 잘못될 때마다 한결같이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안 그랬어요. 로버트가 그랬어요(Robert did it)." 처음에 어른들은 그저 아이의 변명이라 여겼다. 그러나 밤마다 아이의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부모가 방문 앞에 다가가면, 아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와 다른 낮은 목소리가 대꾸하는 것처럼 들렸다는 증언도 있었다.
가장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집안의 하인들과 방문객들이, 텅 빈 방에서 아이 같은 웃음소리를 들었다는 것. 계단이나 복도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는 것. 그리고 방에 아무도 없을 때, 창가에 앉혀 둔 로버트가 어느 순간 자세를 바꾸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창문을 올려다보면, 로버트가 커튼 뒤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인형은 표정을 바꾸고, 밤이면 집 안을 돌아다닌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목격담과 소문일 뿐, 객관적으로 기록되거나 검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 형상을 한 무언가가 밤에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만큼, 사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인형에게 떠넘겨진 불운
로버트 유진 오토는 자라서 화가가 되었고, 1930년 파리에서 아네트 파커(Annette Parker)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부부는 다시 키웨스트의 그 저택으로 돌아와 살았다. 그리고 로버트 인형도 함께 돌아왔다. 오토는 다락방 한 칸을 인형의 방으로 내어 주고, 그곳에 로버트를 앉혀 두었다고 한다. 이야기에 따르면, 아네트는 이 인형을 몹시 꺼렸다고 한다. 다락방에 홀로 앉은 인형이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그 모습을, 그녀는 견디지 못했다.
오토가 1974년 세상을 떠난 뒤, 저택은 다른 주인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새 주인 가족에게도,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다락방의 인형이 밤이면 자세를 바꾸고, 웃음소리가 들리고, 집안에 크고 작은 불운이 잇따랐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동차 사고, 부러진 뼈, 실직, 이혼 — 온갖 불행을 이 인형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다락방에 홀로 앉은 로버트를 떠올렸다. 결국 1994년, 인형은 저택을 떠나 이스트 마르텔로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리 진열장 안에서, 로버트의 진짜 명성이 시작되었다.

<video controls playsinline preload="metadata" poster="/media/robert-1.jpg" style="width:100%;height:auto;border-radius:8px;"> <source src="/media/robert-clip.mp4" type="video/mp4"> </video>
어둑한 방 안, 유리 진열장 너머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낡은 세일러복 인형 — 분위기를 재현한 영상이며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다.
허락 없이 찍은 사진
박물관으로 옮겨진 뒤, 로버트를 둘러싸고 가장 유명한 전설이 자라났다. 로버트에게 사진을 찍으려면, 반드시 먼저 정중하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하고 물은 뒤, 인형이 어떤 식으로든 허락의 기미를 보여야만 셔터를 누를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만약 허락을 구하지 않고, 혹은 인형을 비웃거나 무시하며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부터 로버트의 저주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이야기의 가장 오싹한 대목이 등장한다. 전설에 따르면, 로버트에게 무례를 범한 방문객들은 집으로 돌아간 뒤 온갖 불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차가 고장 나고, 다리가 부러지고, 직장을 잃고, 연인과 헤어지고 — 그 모든 것이 로버트의 노여움 때문이라 믿게 된 사람들은, 결국 박물관으로 편지를 써 보내기 시작했다. 로버트에게 용서를 비는 사과의 편지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부디 저주를 거두어 주세요." 박물관에는 지금도 이런 사과 편지들이 벽 한쪽에 전시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저주를 두려워한 사람들이 인형에게 보낸, 진심 어린 사죄의 글들이. 한 장난감 인형에게 어른들이 용서를 비는 편지를 쓴다는 이 기묘한 풍경이야말로, 어쩌면 로버트 이야기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일지도 모른다.

인형은 왜 무서운가
그렇다면 로버트는 정말 저주받은 인형일까. 밤이면 스스로 움직이고,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불운을 내리는, 살아 있는 무언가일까. 이 지점에서 잠시 멈추어, 왜 우리가 인형이라는 물건을 유독 무서워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과 로봇공학에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을 닮은 대상이 어느 정도까지는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사람과 거의 비슷해지면서도 미묘하게 어딘가 다를 때, 우리는 오히려 강한 불쾌감과 공포를 느낀다는 이론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숨을 쉬지 않고, 표정이 멈추어 있는 존재. 오래된 인형이 특히 오싹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버트는 어린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의 옷을 입고, 어린아이만 한 크기로, 백 년 넘게 같은 자세로 앉아 정면을 응시한다. 인간의 뇌는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것을 보면 거기서 표정과 감정을 읽어 내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표정이 없는 인형의 얼굴에서도 자꾸만 미소를, 노여움을, 시선을 읽어 낸다. 어둑한 방 안에서 낡은 인형과 단둘이 마주 앉으면, 그 인형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고, 방금 눈을 움직인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밤중에 인형이 자세를 바꾸었다는 증언, 웃음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의 상당 부분은, 어쩌면 이런 인간의 지각 작용과 두려움이 함께 빚어낸 것일 수 있다. 사진을 찍은 뒤 불운을 겪었다는 이야기 역시, 이미 일어난 나쁜 일을 '로버트의 저주'라는 하나의 이야기에 꿰어 맞추는, 인간의 오래된 습관에 가깝다.

진열장 너머의 로버트
물론 이렇게 심리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로버트를 둘러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스트 마르텔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지금도 로버트 앞에서 정중하게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은 뒤 예의를 갖추어 인사한다. 저주를 진심으로 믿어서라기보다는, 백 년 넘은 인형이 뿜어내는 그 알 수 없는 분위기 앞에서,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로버트를 향한 사과 편지는 지금도 이따금 박물관에 도착한다고 한다. 저주가 실재하든 아니든, 그 편지를 쓰는 사람의 두려움만큼은 분명히 실재한다.
디북 박스가 그러했듯, 로버트 인형의 진짜 무서움 역시 인형 그 자체가 아니라 인형에 얽힌 이야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인형은 밤이면 움직이고, 무례한 자에게 저주를 내린다'는 단 하나의 이야기가,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 진짜 오싹함을 안기고, 정중하게 허락을 구하게 하고, 집에 돌아가서 벌어진 불운을 인형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 낡은 세일러복을 입은 봉제 인형 하나가, 백 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여 온 것이다. 오늘도 로버트는 이스트 마르텔로의 유리 진열장 안에 조용히 앉아, 진열장 너머의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가 정말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싶은 것인지 — 그 답은, 어쩌면 인형이 아니라 그 앞에 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