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도시의 교차로 한복판, 자동차가 하루에도 수천 번씩 지나가는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문득 발밑을 내려다본다고 상상해 보자. 검은 타르 사이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낡고 알록달록한 타일 하나가 도로에 단단히 박혀 있다. 표면은 지나간 바퀴들에 닳고 갈라졌지만, 거기 새겨진 글자는 아직 읽을 수 있다. "토인비의 사상, 영화 2001, 목성에서 죽은 자를 되살린다." 누가 이 타일을 여기 심었는지, 언제 심었는지, 어떻게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도 한가운데에 이런 것을 박아 넣었는지 —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타일은 하나가 아니다. 미국의 여러 대도시와 저 멀리 남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지난 40여 년 동안 수백 개가 발견됐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새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도시의 유령이 아스팔트에 눌러 담은 메시지, '토인비 타일' 이야기다.

아스팔트 속의 메시지
토인비 타일은 대개 손바닥에서 자동차 번호판 정도 되는 크기의 판이다. 리놀륨이나 타르지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도시의 번화한 교차로 차도 한복판에 박혀 있다. 인도가 아니라, 자동차 바퀴가 직접 밟고 지나가는 아스팔트 위라는 점이 중요하다. 세월과 마모에 색이 바래고 가장자리가 뭉개졌어도, 타일에 새겨진 문장은 놀라울 만큼 일관된다. 표준적인 문구는 이렇다. "TOYNBEE IDEA / IN MOVIE '2001 / RESURRECT DEAD / ON PLANET JUPITER" — 우리말로 옮기면 "토인비의 사상, 영화 '2001'에 나오는, 목성에서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뜻이다.
문장을 하나씩 뜯어보면 출처를 짐작할 실마리가 보인다. '토인비'는 20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를, '영화 2001'은 스탠리 큐브릭의 SF 고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해석된다. 이 둘을 엮어, 목성에서 인류의 죽은 자들을 물질적으로 되살릴 수 있다는 — 기이하고 종말론적인 — 하나의 신념을 담은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조차 확정된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 누군가가 수십 년에 걸쳐 같은 메시지를 도시의 도로에 집요하게 새겨 넣어 왔다는 사실뿐이다.

필라델피아, 진원지
토인비 타일이 가장 밀집해 발견되는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다. 이 도시의 여러 교차로에서 타일이 집중적으로 나타났고, 그 때문에 필라델피아는 오래도록 이 현상의 '진원지'로 여겨져 왔다. 여기서부터 타일은 뉴욕, 피츠버그, 볼티모어, 워싱턴 D.C., 신시내티를 비롯한 미국 동부와 중서부의 여러 도시로 퍼져 나갔다. 관측된 타일의 수는 시간이 흐르며 꾸준히 늘어,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수백 개에 이른다.
그런데 이 현상은 미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놀랍게도 남아메리카의 여러 도시 — 브라질의 상파울루와 히우지자네이루,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칠레의 산티아고 등 — 에서도 같은 유형의 타일이 발견됐다. 미국의 타일을 심은 인물이 직접 남미까지 건너가 심었는지, 아니면 그를 모방한 다른 누군가의 소행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대양을 사이에 둔 두 대륙의 도로에 똑같은 메시지가 박혀 있다는 사실은, 이 수수께끼를 한층 더 넓고 기이하게 만들었다.

'하데스의 집'
표준 문구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일부 타일에는 본문을 둘러싸듯, 가장자리에 훨씬 길고 어지러운 '옆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곁텍스트는 두서없이 격앙된 어조로, 언론과 정부와 특정 인물들을 향한 비난을 쏟아냈다. 자신의 사상이 조직적으로 방해받고 묵살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적인 호소, 그리고 이 모든 음모를 꾸민 세력을 지목하는 듯한 단편적인 문장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런 곁텍스트 가운데 특히 자주 등장한 표현이 "하데스의 집(House of Hades)"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는 죽은 자들의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니, '하데스의 집'은 곧 죽은 자들의 영역을 가리키는 셈이다. 목성에서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본문의 주제와 맞물려, 이 표현은 타일 제작자의 세계관 속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어떤 관념이 중심에 놓여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격정적이면서도 끝내 해독되지 않는 이 곁글들은, 타일 하나하나를 한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창처럼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심었을까 — 아스팔트에 박아 넣는 기술
이 수수께끼에서 가장 실질적인 의문은 이것이다. 자동차가 끊임없이 오가는 차도 한복판에, 대체 어떻게 타일을 감쪽같이 박아 넣었을까. 오랜 관찰과 추론 끝에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리놀륨으로 글자판을 만들고, 그 위에 아스팔트 접착제(타르 종이 등)를 얹은 뒤, 다시 종이나 알루미늄 포일로 덮어 하나의 꾸러미로 만든다. 이 꾸러미를 밤이나 인적 드문 시간에 도로 위에 살짝 내려놓고 그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들이 무게로 눌러 밟게 한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름의 뙤약볕과 지나가는 차량의 열, 그리고 압력이 함께 작용하면 아스팔트가 부드러워지면서 타일이 도로 표면에 서서히 가라앉아 밀착된다. 마침내 위를 덮고 있던 종이 층이 마모되어 떨어져 나가면, 그 아래 감춰져 있던 타일이 도로 표면과 하나가 된 채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타일을 심은 사람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 필요조차 없었다. 도시의 자동차들과 태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메시지를 아스팔트에 완성시켜 준 것이다.

다큐멘터리 '레저렉트 데드'와 세베리노 베르나 가설
수십 년간 익명으로 남아 있던 타일 제작자를 추적한 이들이 있었다. 그 결실이 2011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레저렉트 데드: 토인비 타일의 미스터리(Resurrect Dead: The Mystery of the Toynbee Tiles)」다. 필라델피아의 몇몇 애호가들이 오랜 시간 단서를 모으고 추적한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이윽고 한 인물을 유력한 후보로 지목하기에 이른다.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던 세베리노 베르나(Severino Verna)라는 은둔형 남성이었다.
제작진의 추론에 따르면, 베르나는 자신의 자동차 바닥에 구멍을 뚫어, 차를 세우지 않고 운전석에 앉은 채로 타일 꾸러미를 도로 위에 떨어뜨리는 방식을 썼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차에서 내리지 않고도,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타일을 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황과 여러 단서는 그를 가리키는 듯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대목이 있다. 베르나 본인은 끝내 이 사실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는 언론이나 조사자와의 접촉을 거부한 채 은둔했고, 그가 타일 제작자라는 것은 지금까지도 '가설'로만 남아 있다. 다큐멘터리가 짚어낸 가장 유력한 이름조차, 확증의 문턱은 끝내 넘지 못한 셈이다.

여전히 나타나는 타일, 그리고 남는 미스터리
여기, 이 이야기를 한층 서늘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유력한 후보가 지목되고 다큐멘터리까지 나온 뒤에도, 토인비 타일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의 타일들이 세월과 도로 보수 공사로 하나둘 사라지는 한편, 새로운 타일 — 혹은 원본을 흉내 낸 '모방 타일' — 이 계속해서 도시의 도로에 나타났다. 최초의 제작자가 여전히 활동하는 것인지, 그의 신념에 감화된 누군가가 이어받은 것인지, 아니면 이 도시 전설 자체가 스스로 번식하며 퍼져 나가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텅 빈 새벽 교차로 아스팔트 위, 발밑에 조용히 박혀 있는 낡은 타일 하나 (AI 생성 영상).
오늘날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40여 년 전 어느 날부터, 누군가가 미국과 남미의 도시 도로에 리놀륨 타일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타일에는 목성에서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종말론적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고, 어떤 것에는 하데스의 집을 이야기하는 격앙된 곁글이 딸려 있었다. 그를 심는 기술도, 유력한 후보의 이름도 어느 정도 좁혀졌지만, 정작 그 사람이 정말 누구였는지, 무엇을 진심으로 믿었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도시의 교차로 아스팔트 위에서 새로운 타일 하나가 태양과 자동차의 무게에 눌려 조용히 완성되고 있을지 모른다. 도시의 유령이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 발밑에 새겨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