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12일 아침,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

7층에서 흰 연기가 새어 나온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소방대가 출동해 불을 껐습니다.

작은 화재였습니다.

그런데 불을 끄고 들어간 욕실에서, 소방대원들은 걸음을 멈췄습니다.

욕조 안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젊은 여성과, 아주 어린 아이.

집주인인 치과의사와 그 딸이었습니다.

1990년대 서울의 주택가, 해 질 무렵의 골목 풍경.
1990년대 서울의 주택가, 해 질 무렵의 골목 풍경.

평범한 아침이어야 했다

피해자는 30대 초반의 여성 치과의사였습니다.

딸은 이제 겨우 두 살이었습니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그날 아침 자신의 병원을 처음 여는 날이었습니다.

강서구 방화동에 개인 병원을 새로 차린, 전북대 의대 출신의 외과의사였습니다.

부부는 의사였고, 아이는 두 살이었고, 그날은 새 출발의 아침이었습니다.

그래야 했습니다.

조용한 주택가에 서 있는 2층 단독주택의 외관.
조용한 주택가에 서 있는 2층 단독주택의 외관.

잠긴 문

경찰이 도착해 현장을 살폈습니다.

이상한 점이 곧 드러났습니다.

현관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창문도, 다른 출입구도 억지로 열린 자국이 없었습니다.

집 안에서 시작된 불은, 모녀의 죽음을 화재로 위장하려는 시도로 보였습니다.

누군가 두 사람을 해치고, 그 위에 불을 놓은 것.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안에서 잠긴 집. 침입 흔적 없음.

누가 그 안에 있었나.

욕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 한 줄기.
욕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 한 줄기.

가장 가까운 사람

수사는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했습니다.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의 진술은 이랬습니다.

"오전 7시에 집을 나설 때까지 아내와 아이는 살아 있었다. 둘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으로 출근했다."

그가 강서구 방화동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경으로 확인됐습니다.

여기서 사건 전체가 단 하나의 질문에 걸리게 됩니다.

모녀는 정확히 몇 시에 죽었는가.

만약 오전 7시 이전에 죽었다면, 집 안에 있던 남편이 가장 유력한 인물이 됩니다.

만약 오전 7시 이후에 죽었다면, 남편은 이미 집을 나선 뒤이므로 알리바이가 성립합니다.

사망 시각.

그 한 점이,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이 됐습니다.

낡은 법의학 검안 서류 한 뭉치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낡은 법의학 검안 서류 한 뭉치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재지 않은 것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망 시각을 정확히 추정하려면 현장에서 반드시 재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체의 체온(직장 온도), 그리고 사체가 잠겨 있던 욕조 물의 온도입니다.

체온이 식는 속도는 사망 시각 추정의 핵심 단서입니다.

그런데 현장을 감식한 담당자는 이 온도들을 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숫자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겁니다.

초동 수사의 이 공백은 이후 8년 내내 이 사건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과학수사가 무너지기 시작한 지점은, 법정이 아니라 바로 이 현장이었습니다.

위 속 음식물의 소화 정도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개념도 (글자 없는 도해).
위 속 음식물의 소화 정도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개념도 (글자 없는 도해).

위장(胃腸) 속의 시계

온도를 재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은 다른 단서에 기댔습니다.

위 속에 남아 있던 음식물의 소화 정도였습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위 속 내용물은 일정한 속도로 소화돼 내려갑니다.

전날 저녁 마지막 식사와 위에 남은 음식의 상태를 비교하면, 대략적인 사망 시각을 역산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검찰은 국내 최고 수준의 법의학자 세 명에게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피해자는 오전 7시 이전에 사망했다"는 취지의 소견을 냈습니다.

즉, 남편이 아직 집에 있던 시간대입니다.

이 소견을 근거로 남편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수온계를 꽂은 욕조 — 물 온도와 사망 시각의 관계를 실험하는 장면 개념도.
수온계를 꽂은 욕조 — 물 온도와 사망 시각의 관계를 실험하는 장면 개념도.

1심, 사형

1996년 2월.

1심 법원은 남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안에서 잠긴 집, 침입 흔적의 부재, 사망 시각 추정, 화재로 위장하려 한 정황.

이 모든 것이 한 방향을 가리키는 듯 보였습니다.

직접적인 목격자도, 결정적인 물증도 없었지만, 정황은 촘촘해 보였습니다.

한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이 사건은 그저 비극적인 가정 참극으로 기록됐을 겁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습니다.

1990년대 법정 내부 — 텅 빈 방청석과 낡은 목재 벽.
1990년대 법정 내부 — 텅 빈 방청석과 낡은 목재 벽.

반전, 또 반전

몇 달 뒤인 1996년 6월, 항소심의 판단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무죄.

항소심 재판부는 사망 시각 추정의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위 내용물의 소화 정도라는 것은 개인차가 크고, 전날 식사 시각과 양이 정확히 특정되지 않으면 정밀한 계산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1998년, 대법원은 다시 뒤집었습니다.

유죄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에 돌려보냈습니다.

파기환송.

그리고 2001년, 다시 열린 재판에서 또다시 무죄가 선고됩니다.

사형 → 무죄 → 파기환송 → 무죄.

한 사건을 두고 법원의 판단이 이토록 여러 번 엇갈린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판사봉과 판결문 —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판사봉과 판결문 —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스위스에서 온 증인

이 지루한 공방의 한복판에, 한 외국인 법의학자가 등장합니다.

변호인 측은 스위스의 법의학자 토마스 크롬페허(Thomas Krompecher)를 증언대에 세웠습니다.

그는 사후경직과 시체 현상, 사망 시각 추정을 오래 연구한 국제적인 전문가였습니다.

그의 증언은 단호했습니다.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는 사망 시각을 한 시점으로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전 7시 이후에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측 법의학자들이 "7시 이전"이라고 못 박았던 바로 그 지점을, 그는 정면으로 흔들었습니다.

7시 이후 사망 가능성이 남는 순간, 남편의 알리바이는 다시 살아납니다.

과학과 과학이 법정에서 맞붙었고, 그 사이에서 '합리적 의심'이 자라났습니다.

대학 병원의 긴 복도 — 인적 없이 조명만 켜져 있다.
대학 병원의 긴 복도 — 인적 없이 조명만 켜져 있다.

증거가 없다는 것

형사재판에는 오래된 원칙이 있습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유죄를 선고하려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합니다.

이 사건에는 남편이 범인임을 직접 증명하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목격자도 없었고, 결정적인 물증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정황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황의 핵심이었던 사망 시각마저 "특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혐의가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심만으로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다.

간접 정황들을 모두 모아도 합리적 의심을 지울 만큼 증명되지 않았다.

텅 빈 서류철 하나 — 증거의 공백을 상징한다.
텅 빈 서류철 하나 — 증거의 공백을 상징한다.

8년, 그리고 대법원

2003년 2월 27일.

대법원은 마침내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1995년 사건 발생부터 약 8년.

다섯 번의 재판을 거치는 동안 한 사람은 사형수였다가, 무죄였다가, 다시 피고인이었다가, 끝내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법적으로 분명해진 사실은 단 하나입니다.

남편은 무죄다.

그는 이 사건의 범인으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서늘한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두 모녀를 죽였는가.

오래된 신문 스크랩 더미 — 글자는 판독되지 않는다.
오래된 신문 스크랩 더미 — 글자는 판독되지 않는다.

남겨진 미제

남편이 무죄라면, 진범은 따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진범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안에서 잠긴 집, 침입 흔적 없음, 결정적 물증 없음, 그리고 초동 수사에서 놓쳐버린 온도 기록.

가장 중요한 단서들이 사건 초기에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수사는 다시 채워 넣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장은 사라졌고, 기억은 흐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제사건'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법은 한 사람을 범인이 아니라고 결론지었지만, 진짜 범인의 자리는 비어 있는 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월이 쌓인 미제사건 캐비닛 — 서랍마다 색이 바랬다.
세월이 쌓인 미제사건 캐비닛 — 서랍마다 색이 바랬다.

무엇이 무너졌나

이 사건이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단순히 잔인해서가 아닙니다.

과학수사가 법정에서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사망 시각 추정은 과학처럼 보였습니다.

세 명의 최고 전문가가 같은 결론을 냈으니까요.

그러나 그 과학은 현장에서 재지 않은 온도, 특정되지 않은 식사 시각, 개인차라는 변수 앞에서 '절대적 확실성'을 잃었습니다.

한 명의 반대 증인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그 추정은 사람을 처벌할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해졌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초동 수사의 표준화, 법과학 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놓고 오랫동안 논의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세월이 흐른 벽걸이 달력 — 날짜는 흐릿하다.
세월이 흐른 벽걸이 달력 — 날짜는 흐릿하다.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죽음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젊은 치과의사와 두 살배기 딸.

이건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편은 무죄가 확정됐고, 다른 누구도 범인으로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가 존재하는데, 법적으로는 가해자가 없는 상태.

이 기묘한 공백이 이 사건을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합니다.

비 내리는 창밖의 도시 야경 — 유리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비 내리는 창밖의 도시 야경 — 유리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이 서랍을 닫기 전에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남편에게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법이 내린 최종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범인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도, 정당한 것도 아닙니다.

동시에,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그 집 안에서 두 사람을 해쳤는데, 그 '누군가'의 이름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비어 있습니다.

이 사건이 남긴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과학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증거 없는 의심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죽음은, 누가 기억해야 하는가.

흐릿한 사람의 실루엣 —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흐릿한 사람의 실루엣 —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잊히지 않은 채, 그러나 갚아지지도 않은 채 남았습니다.

누군가는 그들을 죽였고, 법은 아무도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의 빈자리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 하나가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조용히 놓인 촛불 하나 — 추모의 불빛.
조용히 놓인 촛불 하나 — 추모의 불빛.

30년이 지났습니다.

사건 현장의 집은 사라졌고, 관련된 사람들은 나이를 먹었으며, 많은 것이 잊혔습니다.

그러나 이 서랍만은 아직 닫히지 않았습니다.

진범이 밝혀지는 날, 비로소 두 사람의 이름 옆에 놓인 그 빈자리도 채워질 것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이 이야기는 계속 열려 있습니다.

동틀 무렵의 도시 — 여명이 건물들 사이로 번진다.
동틀 무렵의 도시 — 여명이 건물들 사이로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