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가 살인범이 되었다.
열다섯 살 소년은 하지도 않은 살인으로 10년을 감옥에서 보냈고, 그동안 진짜 범인은 밖에 있었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가장 참담한 오판 중 하나 — 그리고 그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무려 16년이 걸렸다.
2000년 여름, 전라북도 익산의 한 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 경찰은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소년을 범인으로 붙잡았다. 옷에도 신발에도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지만, 소년은 자백했고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글은 한 사람이 잃어버린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국가가 한 인간에게 어떻게 사과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2000년 8월, 그 새벽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경. 전라북도 익산시 영등동, 다섯 갈래 길이 만나는 약촌오거리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 자리에 세워진 택시 한 대 안에서, 운전기사가 흉기에 여러 차례 찔린 채 발견되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기사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늦은 밤, 손님 하나 없는 지방 도시의 교차로. 목격자도, 폐쇄회로 카메라도 없었다. 2000년의 지방 도로에는 오늘날처럼 촘촘한 감시 카메라가 깔려 있지 않았다. 경찰이 손에 쥔 것은 시신과 택시, 그리고 어둠뿐이었다.
수사는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강도의 소행인지, 원한인지, 우발적 범행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경찰에는 빠른 해결을 요구하는 압박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압박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 현장 인근에는 오토바이를 탄 소년 하나가 있었다. 당시 만 열다섯 살, 다방에서 커피 배달을 하던 아이였다. 그날 새벽 그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를 지났다는 것, 그리고 사건을 목격했을 수도 있다는 것 — 소년이 수사 선상에 오른 이유는 사실상 그것이 전부였다.
목격자였을지도 모를 소년은, 어느 순간 용의자가 되어 있었다.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 소년은 훗날 이렇게 증언했다. 경찰의 강압적인 조사 속에서 하지도 않은 범행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고. 열다섯 살 아이가 밤샘 조사를 견디며, 성인 수사관들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소년의 옷과 신발에서는 혈흔이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범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식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명백한 모순은 수사의 방향을 되돌리지 못했다.


'자백'이라는 이름의 증거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사법 역사에서, 오판을 부르는 가장 위험한 증거는 뜻밖에도 '자백'이다.
자백은 강력하다. 본인이 스스로 "내가 했다"고 말하는 것만큼 확실해 보이는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강력함 때문에, 자백은 위험하다. 물증이 부족한 사건에서 수사가 자백에만 매달리면, 자백을 받아내는 것 자체가 수사의 목표가 되어 버린다. 진실을 찾는 대신, 이미 정해 놓은 결론에 사람을 끼워 맞추게 되는 것이다.
'강압수사'란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밤샘 조사, 위압적인 분위기, 회유와 협박이 뒤섞인 신문 과정에서, 사람은 눈앞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기도 한다. 특히 상대가 미성년자라면 그 위험은 훨씬 커진다.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소년이 남긴 자백이 바로 그런 종류였다는 것이, 훗날 법정에서 인정된 사실이다.
물증이 자백과 어긋날 때, 수사기관은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자백을 의심하거나, 물증을 외면하거나. 이 사건에서 택한 길은 후자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밝혀진 오판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무고한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자백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오랜 시간 고립된 공간에 갇혀 반복되는 추궁을 받다 보면, 사람은 판단력을 잃고 "이 순간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특히 아직 세상 경험이 얕은 미성년자에게, 제복을 입은 어른들이 던지는 단정적인 말은 저항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온다. 자신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나온 자백은, 그 뒤에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좀처럼 되돌려지지 않는다.

징역 10년, 그리고 만기 복역
재판이 시작되자 소년은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했다. 자백은 강요된 것이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흐름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소년은 결국 범행을 시인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항소심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상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형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왜 소년이 항소심에서 태도를 바꾸었는지, 그 이면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훗날 재심 과정에서야 다시 조명되었다.
그렇게 열다섯 살 소년은 살인범이 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10년을 온전히 채웠다. 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시간,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세상을 배워야 할 그 시간을, 그는 하지도 않은 살인에 대한 형벌로 철창 안에서 보냈다. 만기 출소했을 때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살인 전과와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진짜 범인은 밖에 있었다
이 사건이 단순한 오판을 넘어 '참담한' 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진짜 범인이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이 감옥에서 형을 살던 2003년경, 다른 인물이 진범으로 지목되었다는 제보가 나왔다. 사건 당시 성인이었던 이 인물을 둘러싼 정황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무고한 소년이 이미 갇혀 있는 동안, 진짜 범인일 수 있는 사람이 밖에서 지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적 국면에서 수사는 다시 한 번 어긋났다. 진범 의혹 인물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 그는 처벌받지 않은 채 풀려났다. 이미 한 소년을 범인으로 확정해 감옥에 보낸 상황에서, 다른 진범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곧 수사기관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 무게가 진실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특정 인물을 두고 여기서 유죄를 단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훗날 사법 절차를 거쳐 확정된 사실만을 이야기하자면 — 이 국면에서 진범을 향한 수사의 문이 한 번 닫혔고, 그 대가는 무고한 소년이 감옥에서 계속 치러야 했다는 것이다.


재심 — 닫힌 문을 다시 두드리다
출소한 그는 멈추지 않았다. 잃어버린 10년을 그저 삼키고 살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다시 증명하기 위해 '재심'이라는 마지막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재심이란, 이미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판단될 때 그 사건을 다시 재판하는 제도다. 한 번 확정된 판결을 뒤집는 일이기에, 재심의 문턱은 대단히 높다. 새로운 증거가 있어야 하고, 기존 판결의 오류가 명백해야 한다. 무죄를 받는 것보다 재심 자체를 여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13년, 그는 재심을 청구했다. "경찰의 강압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는 것이 청구의 핵심이었다. 이 지난한 싸움에는 재심 사건을 전담해 온 박모 변호사가 함께했다. 물증과 자백의 모순, 강압수사의 정황을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리는 긴 과정이었다.
법정 다툼은 쉽지 않았다. 검찰은 재심에 소극적이었고, 절차는 더디게 흘렀다. 재심을 열 것인지 여부를 두고서만도 오랜 심리가 이어졌다. 이미 확정된 판결의 권위를 뒤집는 일이기에, 법원 역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백의 신빙성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물증,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 그리고 강압적 조사 정황이 하나씩 다시 조명되면서 판단의 무게추는 조금씩 기울어 갔다. 한 번 열린 진실의 틈은, 다시 닫히지 않았다.


16년 만의 무죄
2016년 11월, 광주고등법원은 재심에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판결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2000년으로부터 16년. 그가 감옥에서 보낸 10년, 출소 후 다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싸운 세월까지 모두 합친 시간이었다. 법원은 그의 자백이 신빙성이 없으며, 그를 유죄로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열다섯 살에 살인범이 된 소년은, 서른을 넘긴 나이가 되어서야 '무죄'라는 두 글자를 손에 쥐었다.
무죄가 확정되던 그 시점에 또 하나의 일이 맞물려 일어났다. 그토록 오래 처벌을 피해 왔던 진범 의혹 인물이 마침내 사법의 그물에 걸린 것이다.


진범의 처벌, 그리고 아슬아슬했던 시효
무죄가 선고되던 날, 검찰은 진범으로 지목된 김모씨를 긴급체포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김씨는 강도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여기에는 아슬아슬한 사정이 하나 얽혀 있다. 바로 '공소시효'다. 범죄가 일어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는 그 범죄로 재판에 넘길 수 없게 하는 제도인데, 원래대로였다면 오래전 발생한 이 사건의 시효는 이미 끝났을 수 있었다.
그런데 2015년 7월, 대한민국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을 시행했다. 이른바 '태완이법'이다. 이 법은 시행 시점을 기준으로 아직 시효가 끝나지 않은 살인 사건에 적용되었는데, 그 기준선이 2000년 8월 초 이후 발생한 사건이었다. 약촌오거리 사건은 2000년 8월 10일에 일어났다. 단 며칠 차이로, 진범을 처벌할 길이 가까스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재판을 거쳐 유죄를 선고받았고, 2018년 3월 대법원은 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8년 만이었다. 진짜 범인이 처벌받기까지, 무고한 소년이 감옥에서 10년을 보내고 다시 8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였다.

국가의 사과,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의 값
무죄가 확정된 뒤,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위법한 수사와 잘못된 유죄 판결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2021년 1월, 법원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에게 13억여 원을, 그의 어머니에게 2억 5천만 원을, 동생에게 5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가 입은 피해가 본래 20억 원에 이른다고 보았으나, 앞서 지급된 형사보상금을 고려해 배상액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이 사건을 두고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검찰과 경찰이 16년 만에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배상금도, 그 어떤 사과도, 열다섯 살에 감옥에 갇혀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려 주지는 못한다. 소년기와 청년기의 가장 빛나야 할 시간이, 하지도 않은 살인의 대가로 사라졌다.
돈으로 매긴 배상액은 국가가 잘못을 인정했다는 증표일 뿐이다. 잃어버린 시간에는 애초에 값을 매길 수 없다.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약촌오거리 사건은 2017년 개봉한 한 영화의 모티브가 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긴 것은 한 편의 이야기 이상이다.
한 사람이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범이 되었다. 물증은 그의 결백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수사는 자백을 앞세워 그를 감옥에 보냈다. 진짜 범인이 밖에서 지목되었을 때에도, 인정하기 어려운 오류의 무게가 진실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 모든 대가는 아무 힘 없는 한 소년이 치렀다.
이 사건은 사법 제도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물증보다 자백을 앞세운 수사, 미성년자를 향한 강압, 한 번 내린 결론을 되돌리기 어려워하는 관성 — 이 모든 것이 겹칠 때 무고한 사람이 살인범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잘못을 바로잡는 데에는 무려 16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의 끝에 남는 것은 한 가지다. 잃어버린 10년을 안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심의 문을 두드린 한 사람이 있었기에, 국가는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진실은 늦게 왔지만,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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