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여느 도시의 주택가와 다르지 않은, 낮은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골목이 얕게 굽어 도는 평범한 동네였다. 그 골목에서 여섯 살 남자아이 하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황산 테러를 당했다. 아이의 이름은 김태완. 사람들은 그를 '태완이'라 불렀다. 그 봄의 사건 이후 아이는 병상에서 49일을 버티다 세상을 떠났고, 범인은 끝내 붙잡히지 않았다.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 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태완이의 죽음은 그저 한 아이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죽음은 대한민국의 법을 바꾸었다.


1999년 봄, 어느 골목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99년 5월 20일 낮이었다. 태완이는 집 근처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여섯 살 아이가 집 앞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익숙하고 안전해야 할 공간이었다. 그날 그 골목에서, 아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황산에 노출되는 참변을 당했다.
황산은 강한 산성 물질로, 사람의 몸에 닿으면 심각한 손상을 남긴다. 태완이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병상에서 아이는 오랜 시간 고통과 싸웠다. 부모와 의료진이 곁을 지켰지만, 어린 몸이 견디기에는 상처가 너무 컸다. 그리고 사건이 있은 지 49일째 되던 날, 태완이는 결국 눈을 감았다. 여섯 해를 채 살지 못한 짧은 생이었다.
이 글은 그날 아이가 겪은 고통을 자세히 옮기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며, 굳이 되풀이해 전시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고통 자체가 아니라, 한 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과,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무엇과 싸워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누가, 왜
가장 견디기 힘든 물음은 언제나 '누가, 왜'였다. 여섯 살 아이가 원한을 살 일은 없었다. 아이가 무언가를 훔쳤을 리도, 누군가와 다투었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골목에서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해를 입혔다. 동기를 짐작할 수 없다는 사실은 사건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초기 수사에서는 몇 가지 정황과 증언이 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직후 아이가 남긴 말이나 주변의 목격 정황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정적인 물증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990년대 말의 과학수사 기술로는 골목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확실한 단서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폐쇄회로 카메라가 촘촘히 깔리기 전이었고, 미세한 흔적에서 개인을 특정할 만큼 정밀한 분석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이 글에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어떤 특정 인물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확정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특정인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 적은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혹이었고 법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 사건이다. 함부로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드는 일일 뿐이다.


멈춰 선 수사, 다가오는 시한
시간이 흐르며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전담 수사 인력은 줄었고,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사건을 전담하던 조직도 해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적 단서 없이 세월만 흐르는 동안, 유가족을 짓누른 또 하나의 무게가 있었다. 바로 '공소시효'였다.
공소시효란, 범죄가 일어난 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범죄로 재판에 넘길 수 없게 하는 제도다. 시간이 지나면 증거가 사라지고 기억이 흐려진다는 현실적 이유, 그리고 법적 안정성을 위한 장치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제도에는 서늘한 이면이 있었다. 범인이 시효가 끝날 때까지 숨어 버티기만 하면, 아무리 무거운 범죄라도 국가가 더는 그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다.
태완이 사건에 처음 적용된 혐의는 사망까지 이어진 상해에 관한 것이었고, 그 공소시효는 그리 길지 않았다. 훗날 재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살인으로 다시 보아 시효가 연장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끝은 정해져 있었다. 범인을 잡지 못한 채 그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가족에게 공소시효란, 진실을 밝히지도 못한 채 사건을 영원히 덮어야 하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문을 두드리다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태완이의 부모, 특히 아버지는 오랜 세월 사건을 놓지 않았다. 2013년, 경찰은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재수사에 들어갔다. 오래 잠들어 있던 자료를 다시 꺼내고, 과거의 정황을 새로운 눈으로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성격을 단순한 상해가 아니라 살인으로 볼 여지가 검토되면서 시효 판단도 달라졌다.
그러나 재수사 역시 범인을 특정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2014년, 유가족 측은 수사기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이란, 검찰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을 때 그 결정이 옳은지 법원에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사건을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남겨진 이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법정 다툼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2015년 7월, 대법원은 재항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적으로 이 사건의 문은 그렇게 닫혔다.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범인은 이름 없는 그림자로 남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것은 그저 또 하나의 안타까운 미제 사건일 뿐이었다.


한 아이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법
그런데 태완이의 사건은 법정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여섯 살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목숨을 잃고, 그 범인을 잡을 시간마저 국가가 스스로 정해 둔 기한 때문에 사라져 간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왜 명백한 살인에 시효가 있어야 하는가.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살인범이 처벌을 면해도 되는가. 이 물음은 유가족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물음이 되었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였고, 국회가 움직였다. 2015년 7월, 국회는 형사소송법을 고쳐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람을 죽여 법정 최고형이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살인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시효 없이 언제든 수사하고 재판에 넘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개정안은 그해 7월 말에 시행되었다.
법안 표결에서 반대표는 단 한 표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법을 그냥 개정 형사소송법이라 부르지 않았다. 여섯 살에 세상을 떠난 아이의 이름을 따, '태완이법'이라 불렀다. 한 아이의 죽음이 나라의 법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


법이 지키지 못한 단 하나의 사건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마음을 무겁게 하는 반전이 있다. '태완이법'은 정작 태완이의 사건을 구하지 못했다.
법에는 적용 범위가 있었다. 새 법은 시행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아직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건들에만 적용되었다. 이미 시효가 완성되어 법적으로 닫혀 버린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태완이의 사건은,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이미 그 기한이 지나 버린 뒤였다. 대법원의 결정으로 사건의 문이 닫힌 것이 2015년 7월, 그리고 살인죄의 시효를 없앤 법이 시행된 것도 같은 달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의 차이로, 정작 그 법에 이름을 준 아이의 사건은 법의 보호 밖에 남았다.
수많은 미래의 사건을 구하게 될 법이, 정작 그 법이 태어난 계기가 된 단 하나의 사건만은 구하지 못했다. 이 잔인한 어긋남은 태완이법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그것은 제도가 사람을 따라가는 속도가 언제나 늦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늦음의 대가를 결국 누군가가 치른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남겨진 것과 바뀐 것
태완이법이 시행된 뒤, 오래도록 답을 찾지 못하던 여러 미제 살인 사건이 다시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 시효라는 벽에 막혀 손대지 못했던 사건들의 문이 다시 열렸고, 그중 일부는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범인이 밝혀지기도 했다. 오래전 누군가가 시효만 넘기면 된다고 믿었을지 모를 그 계산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한 아이의 이름이 남긴 실질적인 변화다.
물론 그 변화가 태완이를 되돌려 주지는 않는다. 사건의 진실도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누가, 왜 그 골목에서 여섯 살 아이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 물음은 아마 오래도록 답을 얻지 못한 채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분명하다. 남겨진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릴 때, 한 사람의 억울함이 사회의 목소리가 되고, 그 목소리가 끝내 나라의 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태완이의 이름은 이제 한 편의 미제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법조문 안에 조용히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이름 덕분에, 앞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을 누군가는 적어도 시간이라는 벽 앞에서 다시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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