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신정동. 지하철과 버스가 촘촘히 지나고, 반지하 방과 다세대 주택이 어깨를 맞댄 채 늘어선 평범한 서울의 주택가다. 이곳에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세 건의 사건이 일어났다. 두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고, 한 명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 사건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범인이 오직 사람들이 쉬는 날 — 현충일, 일요일, 선거일에만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살아남은 여성이 남긴 증언 속의 기묘한 물건, 신발장 위 작은 화분에 붙어 있던 귀여운 흰 토끼 스티커였다. 그래서 이 사건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엽기토끼 사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2025년, 오래된 증거에서 나온 DNA 한 조각이 진범의 이름을 밝혀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미궁의 끝이 아니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시작이었다.

밤의 서울 신정동 주택가 골목, 반지하 창문과 좁은 계단이 늘어선 어두운 거리 (AI 생성 이미지)
밤의 서울 신정동 주택가 골목, 반지하 창문과 좁은 계단이 늘어선 어두운 거리 (AI 생성 이미지)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일대의 주택가 거리 풍경 (위키미디어 커먼즈)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일대의 주택가 거리 풍경 (위키미디어 커먼즈)

쉬는 날에만 나타나는 살인마

사건의 가장 섬뜩한 특징은 시간표였다. 신정동에서 벌어진 일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일을 쉬고 집에 머무는 날에 일어났다. 첫 번째는 2005년 6월 6일 현충일, 두 번째는 그해 11월 20일 일요일, 세 번째는 이듬해 2006년 5월 31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었다. 세 번 모두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공휴일이거나 사람들이 투표를 위해 거리를 비운 날이었다.

이 규칙성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려웠다. 평일이라면 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학생들, 오가는 이웃들의 눈이 골목을 채운다. 그러나 쉬는 날의 주택가는 사정이 다르다. 낮에도 거리가 한산하고, 상가는 문을 닫고, 목격자가 될 사람들이 집 안으로 사라진다. 범인은 바로 그 텅 빈 시간을 노렸다. 마치 도시의 리듬을 읽고 사람들이 가장 방심하는 순간, 가장 눈이 적은 날을 골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쉬는 날이라는 평온함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사냥의 조건이 되었던 셈이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신정동 사건은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무언가라는 인상을 남겼다.

달력의 빨간 공휴일 날짜 위에 드리운 그림자, 텅 빈 도시의 이미지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달력의 빨간 공휴일 날짜 위에 드리운 그림자, 텅 빈 도시의 이미지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공휴일 낮, 인적이 끊긴 서울 주택가의 텅 빈 골목 (AI 생성 이미지)
공휴일 낮, 인적이 끊긴 서울 주택가의 텅 빈 골목 (AI 생성 이미지)

첫 번째와 두 번째 — 사라진 흔적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는 2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2005년 6월 6일 현충일에 종적이 끊긴 그는 이튿날, 인근 주택가 한쪽의 쓰레기 무단투기장에서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사인은 목이 눌려 숨진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이어 약 5개월 뒤인 11월 20일 일요일, 이번에는 40대 여성이 유사한 방식으로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첫 번째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두 사건은 발생 지역과 수법이 닮아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두 사건을 하나로 묶을 결정적 물증이 부족했다.

수사는 초반부터 난항을 겪었다. 사건 현장에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뚜렷한 흔적이 좀처럼 남아 있지 않았다. 목격자의 진술도 엇갈렸고, 주택가라는 특성상 오가는 사람이 많아 용의자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2000년대 중반의 과학수사 기술로는, 현장에서 확보한 미세한 증거에서 개인을 특정할 만큼 정밀한 유전자 분석을 하기가 어려웠다. 결정적 증거가 눈앞에 있어도 그것을 온전히 읽어낼 기술이 아직 시대를 따라오지 못한 것이다. 사건은 그렇게 서서히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비 내리는 밤, 인적 없는 서울 주택가의 좁은 골목과 젖은 아스팔트 (AI 생성 이미지)
비 내리는 밤, 인적 없는 서울 주택가의 좁은 골목과 젖은 아스팔트 (AI 생성 이미지)
2000년대 서울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과 반지하 창문
2000년대 서울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과 반지하 창문
어둠에 잠긴 좁은 골목 끝, 흐릿하게 켜진 가로등 하나 (AI 생성 이미지)
어둠에 잠긴 좁은 골목 끝, 흐릿하게 켜진 가로등 하나 (AI 생성 이미지)

2006년, 살아남은 여성과 신발장 위의 토끼

세 번째 사건은 앞선 두 사건과 결정적으로 달랐다. 피해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2006년 5월 31일 지방선거일, 한 여성이 신정동의 어느 반지하 집에 감금되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탈출을 시도했다. 반지하에서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 낯선 집 현관의 신발장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인근 초등학교까지 빠져나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살아남은 목격자가 나온 순간이었다.

경찰에게 이 생존자의 존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서였다. 얼굴 없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처음으로 진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범인의 몽타주가 작성되었고,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했다. 그런데 그가 탈출 과정에서 몸을 숨겼던 그 집, 신발장 위에서 목격한 한 가지 물건이 이 사건 전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반지하에서 위층으로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콘크리트 계단, 어두운 실내 (AI 생성 이미지)
반지하에서 위층으로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콘크리트 계단, 어두운 실내 (AI 생성 이미지)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작고 조잡한 화분, 흐릿한 조명 (AI 생성 이미지)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작고 조잡한 화분, 흐릿한 조명 (AI 생성 이미지)

'엽기토끼'라는 기이한 별명의 탄생

생존자가 몸을 숨겼던 집의 신발장 위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학교 미술 시간에 만든 것 같은 조잡한 화분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화분에는 작고 귀여운 흰 토끼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그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그 소소한 물건은, 훗날 사건의 이름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엽기토끼 사건'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엽기토끼'는 2000년대 초 한국에서 크게 유행한 캐릭터를 가리킨다. 무표정하거나 짓궂은 표정을 지은 흰 토끼 모양의 이 캐릭터는 당시 메신저 이모티콘, 문구류, 스티커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 성장한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만큼 친숙한, 그야말로 국민적 캐릭터였다. 바로 그 귀엽고 익숙한 캐릭터의 스티커가, 잔혹한 사건의 현장 한구석에 아무렇지 않게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묘한 서늘함을 안겼다. 가장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것과 가장 어두운 사건이 한 장면에 겹쳐 있는 이 기괴한 대비가, 이 사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였다. 무섭도록 잔인한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이름이 붙은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이자 필연이었다.

어두운 실내 신발장 위, 작은 화분에 붙은 귀여운 흰 토끼 모양 스티커 클로즈업 (마시마로 아닌 일반 토끼 일러스트,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실내 신발장 위, 작은 화분에 붙은 귀여운 흰 토끼 모양 스티커 클로즈업 (마시마로 아닌 일반 토끼 일러스트, AI 생성 이미지)
2000년대 한국의 문구류와 스티커가 놓인 책상, 복고풍 소품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2000년대 한국의 문구류와 스티커가 놓인 책상, 복고풍 소품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20년 장기미제 — 잊히지 않은 증거

생존자의 증언과 몽타주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신정동 사건은 서울의 대표적인 장기미제 중 하나로 남았다.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들은 하나둘 자리를 옮기거나 은퇴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건은 조금씩 옅어졌다. 다만 이 사건은 텔레비전 시사·범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다시 조명되며, 완전히 잊히지는 않았다. '쉬는 날의 살인마', '엽기토끼 사건'이라는 이름은 미제 사건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잊히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사건 당시 현장에서 수습해 오랜 세월 보관해 온 증거물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분석할 수 없었던 미세한 증거들이 경찰의 증거보관실 한편에 잠들어 있었다. 그동안 세상의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극미량의 시료에서도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DNA 감식 기술이 정교해졌고, 경찰은 오래된 미제 사건들을 최신 기술로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2016년과 2020년에 걸쳐 현장 증거물의 재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20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증거가 마침내 입을 열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 세월 보관된 낡은 증거 봉투와 서류함이 놓인 먼지 앉은 선반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오랜 세월 보관된 낡은 증거 봉투와 서류함이 놓인 먼지 앉은 선반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현대적인 DNA 분석 실험실의 정밀 장비와 시료 튜브
현대적인 DNA 분석 실험실의 정밀 장비와 시료 튜브

DNA의 반전 — 범인이 둘이었다

재감정 결과, 첫 번째 사건 피해자에게서 확보한 증거물과 두 번째 사건 현장의 증거물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이 검출되었다. 20년 가까이 별개로 볼 수도 있었던 두 사건이, 마침내 하나의 손에 의한 범행으로 과학적으로 확정된 것이다. 문제는 그 DNA의 주인이 누구인가였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검출된 유전자형을 추적한 끝에, 사건 당시 그 일대의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던 한 남성을 지목했다. 범행 당시 60대 초반이던 이 남성은, 그러나 이미 2015년에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미 사망한 인물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었을까. 그는 세상을 떠난 뒤 화장되어 직접 검체를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지역 의료기관 수십 곳을 일일이 탐문한 끝에, 생전에 병원에 보관돼 있던 그의 검체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검체의 DNA가 현장 증거물의 유전자형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20년의 세월과 죽음이라는 벽을 넘어, 과학은 끝내 얼굴 없던 범인의 이름을 밝혀냈다. 그러나 여기서 사건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꺾인다. 정작 이 사건을 세상에 각인시킨 '엽기토끼', 즉 2006년의 납치 사건 현장에서 나온 DNA는 이 남성의 것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를 보여주는 DNA 시퀀싱 그래프와 데이터 화면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유전자 분석 결과를 보여주는 DNA 시퀀싱 그래프와 데이터 화면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실험실에서 오래된 증거 시료를 다루는 과학수사 요원의 장갑 낀 손 클로즈업 (AI 생성 이미지)
실험실에서 오래된 증거 시료를 다루는 과학수사 요원의 장갑 낀 손 클로즈업 (AI 생성 이미지)

아직 잡히지 않은 또 다른 남자

DNA는 두 개의 이야기를 갈라놓았다. 2005년의 두 살인은 그 건물 관리인의 소행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에 '엽기토끼'라는 이름을 안긴 2006년의 납치 사건은, 그와 무관한 별개의 사건이었다. 결정적인 근거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2005년 두 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그 관리인은, 2006년 세 번째 사건이 벌어질 무렵 다른 범죄 혐의로 이미 수감 중이었다. 물리적으로 그가 2006년의 납치를 저지를 수 없었던 것이다. 한때 하나의 연쇄사건으로 여겨졌던 신정동 사건은, 실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동네, 비슷한 시기에 남긴 두 갈래의 어둠이었던 셈이다.

과학은 20년 만에 두 건의 살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답은 동시에, 여전히 답이 없는 자리 하나를 또렷하게 드러냈다. 2006년, 반지하에서 한 여성을 감금했다가 놓친 그 남자는 누구였는가. 그의 정체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2005년 두 건의 진범이 이미 사망한 탓에 경찰은 그를 처벌할 수 없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진실은 절반만 모습을 드러냈고,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신정동의 어느 골목 어귀에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쉬는 날에만 나타나던 살인마의 정체는 밝혀졌지만, 신발장 위 귀여운 토끼 스티커가 가리키던 또 다른 그림자는 아직 이름을 갖지 못했다. 우리가 이 사건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증거는 사라지지 않으며, 과학은 언젠가 어둠 속의 진실을 비춘다는 것. 다만 그 빛이 닿지 못한 자리는, 아직도 우리 곁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다.

밤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한 사람의 흐릿한 실루엣, 서울 주택가 골목 (몽타주 아님, 신원 식별 불가, AI 생성 이미지)
밤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한 사람의 흐릿한 실루엣, 서울 주택가 골목 (몽타주 아님, 신원 식별 불가, AI 생성 이미지)
새벽녘 서울 신정동 주택가 골목에 스미는 희미한 빛, 조용한 거리 (AI 생성 이미지)
새벽녘 서울 신정동 주택가 골목에 스미는 희미한 빛, 조용한 거리 (AI 생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