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12월 26일, 스코틀랜드 서쪽 바다의 외딴 바위섬 에일런 모르(Eilean Mòr)에 보급선 헤스페루스(Hesperus)호가 다가섰다. 원래 크리스마스 무렵 도착했어야 할 배는 사나운 날씨에 열흘 가까이 발이 묶여 있었다. 배가 섬에 닿았을 때, 부두에는 마중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깃발도 걸려 있지 않았고, 보급품을 받으려고 미리 내려놓았어야 할 상자도 보이지 않았다. 뱃고동을 울리고 신호탄을 쏘아 올려도 등대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보조 등대지기 조지프 무어(Joseph Moore)가 홀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 등대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세 명의 등대지기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등대는 텅 비어 있었다. 제임스 듀캇, 토머스 마셜, 도널드 맥아더 — 세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스코틀랜드가 낳은 가장 유명한 미제 중 하나, 플래넌 제도 등대 실종 사건이다.

거친 북대서양 파도에 둘러싸인 스코틀랜드 외딴 바위섬 위의 고립된 등대, 잿빛 겨울 하늘 (AI 생성 이미지)
거친 북대서양 파도에 둘러싸인 스코틀랜드 외딴 바위섬 위의 고립된 등대, 잿빛 겨울 하늘 (AI 생성 이미지)

세상의 끝에 서 있던 등대

플래넌 제도는 스코틀랜드 본토에서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헤브리디스 제도 바깥의 작은 섬 무리다. 그중 가장 큰 섬이 에일런 모르인데, 게일어로 '큰 섬'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손바닥만 한 바위덩어리에 가깝다. 배를 댈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 날씨가 조금만 험해도 사람이 오르내리기 어려웠다. 오래전부터 이 섬에는 켈트 수도사들의 유적과 함께 음산한 전설이 따라다녔다. 양을 방목하러 온 목동들조차 밤을 새우기를 꺼렸고, 섬에 발을 들일 때는 특정한 의식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이런 외딴섬에 등대가 세워진 것은 1899년이었다. 그 앞바다를 지나는 배들을 암초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등대는 완공되자마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외지고 근무하기 힘든 등대 중 하나로 꼽혔다. 등대지기들은 보통 세 명이 한 조를 이뤄 몇 주씩 섬에 머물렀고, 육지에서 온 보급선만이 그들과 바깥세상을 잇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 겨울, 이 등대를 지키던 사람은 주임 등대지기 제임스 듀캇(James Ducat)과 두 번째 보조 토머스 마셜(Thomas Marshall), 그리고 병가를 낸 정규 대원을 대신해 임시로 투입된 도널드 맥아더(Donald McArthur)였다. 듀캇에게는 아내와 네 아이가, 맥아더에게는 아내와 두 아이가 육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외딴 스코틀랜드 섬, 이끼 덮인 바위와 오래된 켈트 석조 유적, 안개 낀 풍경 (AI 생성 이미지)
절벽으로 둘러싸인 외딴 스코틀랜드 섬, 이끼 덮인 바위와 오래된 켈트 석조 유적, 안개 낀 풍경 (AI 생성 이미지)

불이 꺼진 밤

이상 징후가 처음 감지된 것은 12월 15일 밤이었다. 이 앞바다를 지나던 증기선 아크토르(Archtor)호의 선원이, 원래라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어야 할 플래넌 등대의 불빛이 꺼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사나운 날씨 속에서 어렵게 지나온 그 배는 이 사실을 뭍에 전하려 했지만, 배 자체가 항구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신고가 곧바로 이뤄지지는 못했다. 등대의 불이 꺼졌다는 소식이 등대 관리 당국인 북부 등대위원회(Northern Lighthouse Board)에 정식으로 닿은 것은 12월 18일이었다.

문제는, 소식이 닿았다고 해서 곧바로 확인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무렵 바다는 몹시 거칠었고, 보급선 헤스페루스호는 며칠 동안 출항하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었다. 결국 배가 에일런 모르에 도착한 것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이었다. 그사이 등대의 불은 여러 밤을 꺼진 채 지나갔다. 세상의 끝에 선 등대가 침묵하는 동안,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둠과 폭풍우 속에서 불이 꺼진 채 서 있는 등대, 검은 파도와 희미한 달빛 (AI 생성 이미지)
어둠과 폭풍우 속에서 불이 꺼진 채 서 있는 등대, 검은 파도와 희미한 달빛 (AI 생성 이미지)

구조대가 본 것

헤스페루스호의 선장 제임스 하비(James Harvie)는 부두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지프 무어를 섬으로 올려보냈다. 무어가 계단을 올라 등대에 들어섰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뒤엉킨 참극의 현장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칠 만큼 평범하고 정돈된 실내였다. 그 정연함이야말로 이 사건을 오래도록 기이하게 만든 첫 번째 요소였다.

바깥 대문과 등대 안쪽 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난롯불은 며칠째 꺼진 채였고, 침대는 비어 있었다. 부엌은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으며, 그릇과 냄비도 씻겨 있었다. 등명기의 램프는 손질을 마치고 기름을 채운 상태로, 언제든 불을 붙일 수 있도록 준비돼 있었다. 창문의 블라인드도 제자리에 정돈돼 있었다. 다시 말해, 등대지기들은 오전 근무를 정상적으로 마친 것처럼 보였다. 다만 벽에 걸린 시계는 멈춰 서 있었다 — 태엽을 감아 주는 사람이 며칠째 없었던 탓이다. 세 남자는 마치 잠깐 밖에 나갔다가 곧 돌아올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둔 채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다. 이 사건을 다룬 수많은 이야기에는 '식탁 위에 손도 대지 않은 식사가 차려져 있었고, 의자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는 장면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극적인 장면은 당시 공식 조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는 1912년 시인 윌프리드 윌슨 깁슨(Wilfrid Wilson Gibson)이 쓴 발라드 시 '플래넌 섬(Flannan Isle)'에서 비롯된 문학적 각색으로, 이후 사실처럼 퍼져 나간 것이다. 실제로 조지프 무어가 남긴 기록에서 강조된 것은 '차려진 식사'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이 지나칠 만큼 '제대로 정리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텅 빈 등대 내부, 정돈된 부엌과 멈춘 벽시계, 차가운 잿빛 빛이 드는 실내 (AI 생성 이미지)
텅 빈 등대 내부, 정돈된 부엌과 멈춘 벽시계, 차가운 잿빛 빛이 드는 실내 (AI 생성 이미지)

사라진 방수복의 수수께끼

정돈된 실내에서 유일하게 어긋난 단서는 등대지기들의 우비, 곧 방수복이었다. 무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마셜과 듀캇의 방수복과 방수 장화는 등대에 남아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그것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는 뜻이다. 거친 바다 날씨에 바깥일을 하러 나갈 때 방수복을 챙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세 번째 남자, 도널드 맥아더였다. 그의 방수복과 겉옷은 등대 안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즉 맥아더는 방수복도 걸치지 않은 채, 셔츠 차림으로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이 작은 사실 하나가 사건 전체의 성격을 바꿔 놓는다. 세 사람 모두가 미리 계획하고 함께 나간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급한 일이 벌어져 맥아더가 옷을 챙길 겨를도 없이 두 동료를 뒤따라 뛰어나갔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12월의 북대서양에서, 방수복도 없이 셔츠 바람으로 등대를 뛰쳐나가게 만든 그 다급한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 그것이 이 사건의 핵심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등대 안 벽에 걸린 채 남겨진 방수복 한 벌, 열린 문 밖으로 몰아치는 폭풍 (AI 생성 이미지)
등대 안 벽에 걸린 채 남겨진 방수복 한 벌, 열린 문 밖으로 몰아치는 폭풍 (AI 생성 이미지)

거대한 파도라는 결론, 그리고 남는 의문

사건을 조사한 북부 등대위원회의 감독관 로버트 뮤어헤드(Robert Muirhead)는 섬 곳곳에서 극심한 폭풍의 흔적을 발견했다. 특히 배를 대는 서쪽 선착장의 피해가 컸다. 해수면에서 약 33미터(110피트) 높이에 있던, 계류용 밧줄을 넣어 두는 나무 상자가 통째로 부서져 내용물이 흩어져 있었다. 쇠 난간은 휘어지고 비틀려 있었으며, 무게가 1톤이 넘는 바위가 밀려 옮겨져 있었다. 그 높이까지 물이 들이쳤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파도가 이 섬을 덮쳤다는 증거였다.

뮤어헤드는 이를 근거로 결론을 내렸다. 세 등대지기는 12월 15일 오후, 폭풍에 대비해 서쪽 선착장의 밧줄 상자를 단단히 고정하러 내려갔을 것이다. 그때 예상치 못한 거대한 파도(rogue wave)가 절벽을 타고 솟구쳐 그들을 덮쳤고, 세 사람 모두를 바다로 쓸어 가 버렸다는 것이다. 바람의 방향으로 볼 때 몸이 날아간 것이 아니라 물에 쓸려 갔다고 보는 편이 더 개연성이 높다는 판단이었다. 마셜은 과거에도 폭풍으로 장비를 잃어 벌금을 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장비를 지키려 무리하게 나섰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훗날 한 연구자는, 한 사람이 먼저 파도에 휩쓸리자 나머지가 그를 구하려다 함께 변을 당했으리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맥아더가 방수복도 없이 셔츠 바람으로 뛰쳐나간 정황과도 맞아떨어지는 추정이다.

그러나 이 결론이 모든 의문을 지운 것은 아니다. 세 사람 모두가 동시에 위험한 선착장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등대 근무 수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원칙대로라면 최소한 한 명은 등대에 남아 있어야 했다. 게다가 실종 추정일인 12월 12일부터 14일 사이에는 그 지역에 이렇다 할 폭풍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큰 파도설은 가장 합리적이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이지만, 시신이 끝내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여전히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부분을 남겨 둔다.

서쪽 절벽을 타고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흰 파도, 부서진 나무 상자와 휘어진 쇠 난간 (AI 생성 이미지)
서쪽 절벽을 타고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흰 파도, 부서진 나무 상자와 휘어진 쇠 난간 (AI 생성 이미지)

'저주받은 로그북' 전설의 진실

플래넌 등대 사건이 단순한 해난 사고를 넘어 '괴담'의 반열에 오른 데에는, 이른바 '저주받은 로그북' 이야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널리 퍼진 이야기에 따르면, 등대의 기록장(로그북)에는 다음과 같은 섬뜩한 문장들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12월 12일, 마셜이 '20년 등대 생활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폭풍'을 적었고, 평소 강인하던 듀캇이 '아주 조용해졌으며', 임시 대원 맥아더가 '울고 있었다'고 썼다는 것이다. 이어 12월 13일에는 '세 사람 모두 기도하고 있다'는 기록이, 그리고 마지막 12월 15일에는 '폭풍이 멎었다. 바다는 잔잔하다. 하느님이 모든 것 위에 계신다(God is over all)'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로그북 이야기는 몹시 극적이고 오싹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등대지기가 두려움에 떨고, 강인한 사내가 소리 죽여 울고,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마지막 나흘 — 마치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가 섬을 덮쳐 온 것 같은 그림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로그북 기록은 사실이 아니다. 이는 사건이 벌어지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누군가 지어내 덧붙인 창작으로, 당시의 어떤 공식 기록에서도 이런 문장은 발견되지 않았다. 초자연 현상을 연구한 저술가 마이크 대시(Mike Dash) 등이 원자료를 추적한 결과, 이 극적인 로그북 기록은 후대에 만들어진 허구임이 확인됐다.

실제 기록은 훨씬 담담하다. 등대의 마지막 정식 일지는 12월 13일 자로 작성돼 있었고, 14일과 15일의 관측 내용은 나중에 옮겨 적기 위해 임시로 석판(slate)에 기록돼 있었다. 그 석판의 내용을 보면 15일 오전 근무까지는 정상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로그북 전설이 말하는 12월 12~14일의 '전례 없는 폭풍'은 그 시기 그 지역의 실제 기상 기록과 맞지 않는다. 즉 등대지기들이 며칠에 걸쳐 공포에 떨며 기도했다는 이야기는, 사건을 더 무섭게 만들고 싶었던 후대 사람들이 빚어낸 이야기일 뿐, 세 남자가 실제로 남긴 마지막 기록은 그저 평범한 근무 일지였다.

오래된 등대 일지장과 젖은 석판, 흐릿한 손글씨, 촛불 아래 놓인 낡은 책상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등대 일지장과 젖은 석판, 흐릿한 손글씨, 촛불 아래 놓인 낡은 책상 (AI 생성 이미지)

남는 미스터리

텅 빈 절벽 끝에 서 있는 등대와, 그 아래로 끝없이 밀려드는 회색 북대서양 바다 (AI 생성 이미지)
텅 빈 절벽 끝에 서 있는 등대와, 그 아래로 끝없이 밀려드는 회색 북대서양 바다 (AI 생성 이미지)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추려 보면 이렇다. 1900년 12월, 스코틀랜드 외딴 바위섬 에일런 모르의 등대에서 세 명의 등대지기가 사라졌다. 그들은 오전 근무를 정상적으로 마친 흔적을 남겼고, 문은 닫혀 있었으며 시계는 멈춰 있었다. 마셜과 듀캇은 방수복을 입고 나갔고, 맥아더는 셔츠 차림으로 급히 뒤따라 나간 것으로 보인다. 서쪽 선착장에는 거대한 폭풍의 흔적이 뚜렷했다. 공식 조사는 예상치 못한 거대한 파도가 세 사람을 바다로 쓸어 갔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시신은 끝내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가 여전히 모르는 것은 그보다 많다. 왜 세 사람이 한꺼번에 위험한 선착장으로 내려갔을까. 왜 맥아더는 방수복도 챙기지 못할 만큼 다급하게 뛰쳐나가야 했을까. 그날 오후, 정돈된 등대 안에서 세 남자를 동시에 밖으로 불러낸 그 한순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널리 퍼진 '저주받은 로그북'의 공포는 대부분 후대의 창작이지만, 그 창작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잠긴 문 안에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둔 채, 세 남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그 진짜 사실 자체가, 어떤 지어낸 괴담보다도 서늘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끝에 선 등대는, 그날 오후의 진실을 아직 바다에 묻어 둔 채 침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