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 22일 일요일 밤, 시카고 사람들은 평범한 저녁 방송을 보고 있었다. 밤 9시 14분, 독립 방송국 WGN-TV의 뉴스가 스포츠 코너를 전하던 도중 화면이 갑자기 꺼멓게 변했다. 몇 초 뒤 나타난 것은 스포츠 앵커도, 광고도 아니었다. 선글라스를 쓴 맥스 헤드룸 가면의 인물이 물결치는 금속판을 배경으로 몸을 좌우로 기괴하게 흔들고 있었다. 소리라고는 귀를 긁는 듯한 잡음뿐이었다. WGN 기술진이 송신을 되찾기까지 약 30초가 걸렸다. 그리고 그날 밤 약 두 시간 뒤, 이번에는 공영방송 WTTW의 화면이 다시 같은 가면에게 점령당했다. 방송 송신탑을 통째로 가로채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이 동원된 사건이었다. FBI와 FCC가 수사에 나섰지만, 39년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은 단 한 명도 특정되지 않았다. 미국 방송 역사상 가장 기괴한 미제 사건으로 남은 '맥스 헤드룸 방송 신호 침입 사건' 이야기다.

갑자기 화면을 덮은 가면
그날 밤 WGN-TV는 '나인 오클록 뉴스(The Nine O'Clock News)'를 내보내고 있었다. 스포츠 앵커 댄 로언(Dan Roan)이 하이라이트를 소개하던 순간, 시청자들의 화면이 아무 예고 없이 검게 꺼졌다. 잠깐의 정적 뒤 화면에 잡힌 것은 방송국이 내보내려던 영상이 전혀 아니었다. 맥스 헤드룸의 얼굴을 본뜬 플라스틱 가면과 큼직한 선글라스를 착용한 누군가가, 물결 모양으로 골이 진 금속판 앞에서 상체를 이상하게 흔들고 있었다. 진짜 맥스 헤드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기하학적 배경을 조악하게 흉내 낸 연출이었다. 이 첫 번째 침입에는 대사가 없었다. 오직 크고 거슬리는 잡음만이 흘렀고, 그 상태가 30초 가까이 이어졌다.
WGN의 기술진은 급히 송신 경로를 바꿔 침입 신호를 몰아냈다. 화면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방송을 이어가야 했던 댄 로언은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저도 궁금합니다." 스튜디오에 있던 사람들조차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시청자들은 잠깐의 기술적 사고쯤으로 여기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밤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침입 — WTTW를 삼킨 90초
약 두 시간 뒤인 밤 11시 20분 무렵, 이번에는 시카고의 공영방송(PBS 계열) WTTW가 표적이 됐다. 당시 WTTW는 영국 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의 한 에피소드 '팽 록의 공포(Horror of Fang Rock)'를 방영하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이 다시 그 가면으로 뒤덮였다. 첫 번째 침입과 달리 이번에는 소리가 있었다. 왜곡되고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분명히 목소리였다.
WGN의 송신탑에는 사람이 있어 재빨리 대응할 수 있었지만, WTTW의 송신탑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 탓에 이번 침입은 훨씬 길게 이어졌다. 약 90초 동안 가면의 인물은 두서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WGN 소속 스포츠 캐스터의 이름을 들먹이며 조롱했고, 콜라 캔을 손에 든 채 코카콜라의 광고 문구를 비틀어 흉내 냈으며, 옛 애니메이션 '클러치 카고(Clutch Cargo)'의 주제가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방송은 몹시 저속하고 기이한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방송 내용 중 일부는 노골적이고 불쾌한 성격을 띠었으나, 여기서는 사실관계만 담담히 적어 둔다. 90초가 지나자 화면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닥터 후'로 돌아갔다. 침입자는 그렇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맥스 헤드룸은 누구였나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맥스 헤드룸'이 1980년대에 어떤 존재였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맥스 헤드룸은 1985년 영국 채널 4에서 방영된 사이버펑크 TV 영화 '맥스 헤드룸: 미래로부터 20분(Max Headroom: 20 Minutes into the Future)'에서 처음 등장한 가상의 인물이다. 조지 스톤, 애너벨 얀켈, 로키 모튼 세 명의 영국 영상 감독이 만들어 낸 이 캐릭터는, 젊은 층에 아부하려 애쓰는 1980년대 미국 TV 진행자들을 풍자한 존재였다. 극 중에서 그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가 만들어 낸 TV 진행자'로 소개됐다.
흥미롭게도 맥스 헤드룸은 실제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었다. 캐나다계 미국 배우 맷 프루어(Matt Frewer)가 특수 분장과 콘택트렌즈, 플라스틱으로 성형한 정장을 입고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한 것을, 컴퓨터가 만든 것처럼 보이게 후처리한 결과였다. 말을 더듬듯 뚝뚝 끊기고 음정이 이상하게 튀는 그의 말투는 캐릭터의 상징이 됐다. 맥스 헤드룸은 곧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5년에는 뮤직비디오를 소개하는 쇼의 진행자가 됐고, 1986~87년에는 코카콜라가 새로 내놓은 '뉴 코크(New Coke)'의 광고 모델로 발탁돼 "캐치 더 웨이브(Catch the wave)!"라는 문구를 유행시켰다. 1987년에는 미국 ABC에서 드라마 시리즈로도 제작됐다. 다시 말해, 침입자가 굳이 이 얼굴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맥스 헤드룸은 그 시절 미국 TV와 소비문화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고, 그 아이콘을 방패 삼아 방송을 조롱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기술적으로 어떻게 가능했나
이 사건이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의 신호를 가정용 TV까지 실어 나르는 것은 스튜디오와 송신탑을 잇는 강력한 마이크로파 전송 링크다. 침입자들은 방송국이 자기 송신탑으로 쏘아 보내는 신호보다 더 강력한 마이크로파 신호를 같은 송신탑을 향해 쏘았다. 그러자 수신 장비는 더 센 신호를 '진짜'로 인식해 그쪽으로 붙잡혀 버렸다. 이것을 전파 공학에서는 '포획 효과(capture effect)'라고 부른다. 라디오나 TV 수신기가 두 신호 중 더 강한 쪽에 달라붙는 현상이다. 침입자들은 이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방송국보다 강한 신호로 송신탑을 순간적으로 '납치'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을 벌이려면 상당한 기술적 전문성과 장비가 필요했으리라고 분석했다. 아무 곳에서나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강력한 마이크로파 신호를 송신탑에 정확히 꽂아 넣으려면, 시카고 도심의 송신탑들과 시야가 트인(가시선이 확보되는) 위치에서 송출해야 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방송 장비의 작동 방식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장비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 점이 수사의 방향을 좁혀 주는 듯했지만, 동시에 사건을 더 불길하게 만들었다. 이만한 기술과 장비를 갖춘 누군가가, 굳이 이런 기괴한 장난에 그 능력을 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FBI와 FCC의 수사, 그리고 미제
사건이 벌어진 직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방송 신호를 무단으로 탈취하는 행위는 명백한 연방법 위반이었다. 당시 한 관계자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대 10만 달러의 벌금과 최대 1년의 징역형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방송국들과 수사 당국은 침입 신호의 특성을 분석하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술 인력의 범위를 좁혀 가며 범인을 쫓았다.
하지만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침입은 두 번 다 극히 짧았고, 침입자는 실물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목소리는 왜곡돼 있었고, 가면은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신호가 어디에서 송출됐는지조차 끝내 특정하지 못했다. 결국 FCC의 공식 수사는 책임자를 찾아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이 범죄에 적용될 수 있었던 공소시효는 5년이었고, 그 시효는 1992년에 만료됐다. 다시 말해, 설령 지금 누군가가 "내가 했다"고 나선다 해도,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 사건은 그렇게 영구적인 미제로 굳어졌다.

범인은 누구였을까 — 남은 추측들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추측이 제기됐다. 가장 널리 거론된 가설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방송 시스템을 잘 아는 내부자, 즉 WGN 등 방송국에 불만을 품은 현직 또는 전직 직원의 소행이라는 설이다. 방송 장비의 작동 원리와 송신 구조를 훤히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논리다. 다른 하나는 당시 시카고에 존재하던 지하 해커·아마추어 무선 커뮤니티의 소행이라는 설이다. 전파와 방송 기술에 정통한 이들이 일종의 도전이나 장난으로 벌였다는 것이다.
2010년경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에서 이 사건이 다시 화제가 됐다. 한 이용자가 자신이 알던 지인 형제가 범인일 수 있다는 정황을 상세히 적어 올려 큰 관심을 끌었다. 그가 묘사한 인물상은 전파 기술에 밝고 기행을 즐기던 사람이었으며, 사건 속 여러 디테일과 맞아떨어진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나 정황에 근거한 주장일 뿐, 경찰이나 어떤 공식 기관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어떤 가설도 결정적 증거로 이어지지 못했고, 침입자의 진짜 정체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남는 미스터리

오늘날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렇다. 1987년 11월 22일 밤, 시카고의 두 방송국이 두 차례에 걸쳐 신호를 탈취당했다. 화면을 덮은 것은 맥스 헤드룸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인물이었다. 그 일에는 포획 효과를 이용해 송신탑을 가로채는 고도의 전파 기술이 동원됐다. FCC와 수사 당국이 범인을 쫓았지만 아무도 특정하지 못했고, 공소시효는 1992년에 만료됐다. 사건은 완전한 미제로 남았다.
우리가 여전히 모르는 것은 훨씬 많다. 가면 뒤의 인물은 누구였나. 함께한 공범은 몇 명이었나. 왜 하필 맥스 헤드룸이었나. 이만한 기술을 가진 자가 왜 굳이 이런 기괴하고 저속한 장난에 그 능력을 소진했나. 단순한 과시욕이었나, 방송사에 대한 원한이었나, 아니면 그 시절 소비문화와 미디어를 향한 조롱이었나. 아무도 붙잡히지 않았고, 아무도 자백하지 않았으며, 이제는 처벌할 법조차 사라졌다. 그날 밤 90초 동안 수천 가정의 거실을 점령했던 그 가면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화면 속으로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카고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던 그 신호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