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홍길동을 안다. 조선 팔도의 아이라면 한 번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사내, 부패한 관리와 부잣집의 곳간을 털어 그 재물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 주던 활빈당의 우두머리, 도술로 몸을 여덟으로 나누고 구름을 부르던 신출귀몰한 의적, 그리고 끝내는 바다 건너 율도국이라는 이상향을 세워 스스로 왕이 된 인물. 우리는 그를 허균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그러니까 종이 위에서 태어난 상상의 존재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펼치면, 그 상상을 조용히 뒤흔드는 한 줄과 마주치게 된다.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 백 년도 더 전, 연산군이 다스리던 어느 가을날의 기록에 이렇게 적혀 있다. "강도 홍길동(洪吉同)을 잡았다." 소설 속 이름과 거의 똑같은 이름의 도적 두목이, 실제로 이 나라의 한복판을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실록에 남은 한 줄
이야기의 출발점은 소설이 아니라 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하루하루 나라를 다스린 일을 빠짐없이 적어 둔 국가의 공식 기록이다. 그런데 그 엄정한 기록 속에, 연산군 6년(1500년)의 어느 날, 도적 하나의 이름이 또렷이 등장한다. 그해 가을, 영의정을 비롯한 조정의 최고위 대신들이 임금 앞에 나아가 아뢴다. 오래도록 나라를 어지럽히던 큰 도적, 강도 홍길동을 마침내 붙잡았다는 보고였다. 실록에 적힌 그의 이름은 우리가 아는 '홍길동(洪吉童)'과 한자 한 글자가 다른 '홍길동(洪吉同)'이지만, 소리는 똑같다.
이 짧은 기록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그저 이름 없는 좀도둑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홍길동은 옥으로 만든 관자를 붙인 갓을 쓰고 붉은 띠를 두른 채, 스스로 '첨지(僉知)'라는 벼슬아치 행세를 하고 다녔다. 대낮에 무리를 이끌고 무기를 든 채 버젓이 관청을 드나들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힘없는 백성을 터는 초라한 밤도둑이 아니라, 관의 권위를 흉내 내며 그 권위를 조롱하던 대담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나라의 공식 문서가 한 도적의 옷차림과 행세까지 구태여 적어 남길 만큼, 그는 조정에 강한 인상을 남긴 존재였다.

조정을 뒤흔든 도적, 그리고 뒤를 봐준 사람들
홍길동이 위험했던 진짜 이유는 그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실록의 기록을 따라가 보면, 그의 뒤에는 놀랄 만큼 넓은 그물이 드리워져 있었다. 도적질을 단속하고 백성을 지켜야 할 벼슬아치 가운데 일부가, 도리어 그와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엄귀손이라는 당상관 벼슬의 인물은, 홍길동에게서 대접을 받고, 그를 위해 집을 사 주고, 심지어 재산을 불려 주는 일까지 했음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홍길동은 취조를 받으면서 이 엄귀손을 자신의 '와주', 곧 뒤를 봐주는 우두머리라고 진술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아는 소설과 실제 기록이 묘하게 겹친다. 소설 속 홍길동이 부패한 지배층을 조롱하고 그들의 곳간을 털었다면, 실존 인물 홍길동은 그 지배층의 일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관과 도적의 경계를 아예 허물어 버린 셈이다. 그래서 그의 체포는 도적 하나를 잡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와 얽힌 벼슬아치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았고, 조정은 이 사건을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 상징으로 받아들여 오래도록 논의를 이어 갔다. 실록에는 홍길동이 잡힌 지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그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한 도적의 그림자가, 그가 붙잡힌 뒤에도 조정을 계속 따라다녔던 것이다.

종이 위의 의적, 실록 속의 도적
그렇다면 이 실존 인물과, 우리가 사랑하는 소설 속 영웅은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 여기서부터가 이 이야기의 미묘한 지점이다. 소설 『홍길동전』은 오랫동안 광해군 때의 문인 허균이 지은 것으로 전해져 왔다. 다만 학계에는 정말 허균이 지었는지를 두고 오래된 논쟁이 있고, 이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것은, 소설이 세상에 나온 시기가 실존 홍길동이 붙잡힌 1500년으로부터 백 년 넘게 흐른 뒤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소설은 그 배경을 실제 홍길동이 살던 연산군 때가 아니라, 그보다 앞선 세종 때로 옮겨 놓았다.
즉 소설가는 실제로 있었던 도적의 이름을 가져다가, 시대를 바꾸고 이야기를 새로 지어 붙인 것으로 보인다. 실존 홍길동이 관과 결탁해 나라를 어지럽힌 '강도'였다면, 소설 속 홍길동은 부패한 세상에 맞서 약자를 돕는 '의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왜 하필 그 이름이었을까. 백 년이 지나도록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정을 떨게 한 대담한 도적, 벼슬아치조차 손을 잡았던 신출귀몰한 인물 — 그 실제 이야기가 민간에서 부풀려지고 다듬어지며, 마침내 종이 위에서 신분의 벽을 부수는 영웅으로 완성된 것이다. 실존과 허구의 경계에서, 하나의 이름이 두 개의 삶을 살게 된 셈이다.

<video controls playsinline preload="metadata" poster="/media/honggildong-1.jpg" style="width:100%;height:auto;border-radius:8px;"> <source src="/media/honggildong-clip.mp4" type="video/mp4"> </video>
안개 낀 달밤, 깊은 산속 산채로 이어지는 옛 산길을 천천히 따라가는 장면 — 분위기를 재현한 영상이며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다.
사라진 최후 — 실록이 끝내 적지 않은 것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서늘한 대목에 이른다. 홍길동은 조정 최고위 대신들이 임금에게 직접 아뢸 만큼 큰 도적이었다. 그를 잡은 일은 나라의 큰 사건이었고, 그와 얽힌 벼슬아치들의 처벌은 실록에 꼼꼼히 기록되었다. 그런데 정작 사건의 주인공인 홍길동 본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벌했는지, 어떤 형벌로 다스렸는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 그 최후를 알려 주는 기록이 실록에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세밀하게 사건을 적어 내려간 국가의 공식 기록이, 유독 이 큰 도적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입을 다문 것이다.
이 공백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해 왔다. 그저 기록이 소실되었거나, 굳이 적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다. 옥에서 병들어 조용히 죽었을 수도 있고, 흔한 도적처럼 처형되었으나 그 사실이 기록에서 누락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침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죽음의 기록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죽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잡혔다는 기록은 있으나 죽었다는 기록은 없는 도적 — 바로 이 틈에서, 실록을 넘어서는 하나의 대담한 학설이 자라났다.

바다 건너로 사라졌다는 학설
1990년대 후반, 한 국문학자가 이 사라진 최후에 대담한 가설을 내놓았다. 붙잡힌 홍길동이 그대로 처형된 것이 아니라, 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바다 건너 유구국 — 지금의 오키나와 열도로 도망쳐, 그곳에서 새로운 세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가설은 소설의 결말과 겹친다. 소설 속 홍길동이 무리를 이끌고 바다 건너 율도국을 세워 왕이 되었듯, 실존 홍길동도 실은 바다 너머 어느 섬에서 자기 세상을 열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학자는 오키나와 쪽의 옛 기록에 등장하는, 한자로 '홍가왕'이라 적히고 현지에서 '홍가와라'라 불렸다는 인물을 그 실마리로 지목했다.
다만 분명히 짚어 둘 것이 있다. 이 유구국 도피설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학설이며,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정설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반박하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홍길동이 조선에서 붙잡힌 시점과, 오키나와에서 그와 연결 지어지는 인물이 활동하거나 죽은 시점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두 사람을 같은 인물로 보기에는 연대의 아귀가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학설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 실록이 남긴 그 침묵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기록이 비어 있는 한, '그가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상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50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
이야기를 여기까지 따라오면, 홍길동이라는 이름 위에 몇 겹의 삶이 포개져 있음을 알게 된다. 연산군 시대에 실제로 조정을 떨게 한 대담한 도적 두목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백 년이 넘도록 백성의 입에 살아남았고, 마침내 신분의 벽에 맞서는 의적으로 소설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소설의 결말과 겹치듯, 실존 인물이 바다 건너로 사라져 자기 나라를 세웠다는 학설까지 뒤따랐다. 실록의 한 줄, 소설 한 편, 그리고 사라진 최후를 둘러싼 가설 — 이 세 갈래가 하나의 이름 아래 얽혀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이 이야기를 붙드는 힘은 초자연적인 저주나 유령에 있지 않다. 오히려 두 개의 또렷한 사실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데 있다. 홍길동이라는 도적을 붙잡았다는 명백한 기록이 있고, 그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명백한 기록의 부재가 있다. 잡았다는 문장과 죽었다는 문장 사이의 그 빈칸 하나가, 5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상상을 붙들어 온 셈이다. 그가 옥에서 스러졌든, 형장에서 최후를 맞았든, 아니면 정말로 바다 건너 어딘가에서 새 삶을 열었든 — 실록은 그 답을 끝내 내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이 이름이 500년을 견뎌 온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최후가 지워졌기에, 홍길동은 어느 시대에도 완전히 죽지 않는다. 종이 위에서는 신분의 벽을 부수는 영웅으로 영원히 살아가고, 실록의 여백 속에서는 어디론가 사라진 채 아직 붙잡히지 않은 도적으로 남아 있다. 잡았다는 기록은 있으나 죽었다는 기록은 없는 사내 — 그 하나의 빈칸이, 소설 속 의적을 지금도 어딘가에 살아 있게 만든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