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6일 새벽, 전북 전주의 한 원룸 자취방. 창밖은 아직 어둡고, 방 안에는 낡은 데스크톱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새벽 2시 58분, 그 컴퓨터의 전원이 켜졌다. 화면 앞에 앉은 사람은 3분 남짓, 인터넷 검색창에 두 단어를 차례로 입력했다. '112.' 그리고 '성추행.' 검색은 3시 1분경 멈췄다. 그러나 컴퓨터가 실제로 꺼진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이십 분이 지난 새벽 4시 21분이었다. 그 84분 동안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지막으로 전원 버튼을 누른 손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방의 주인은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4학년, 스물아홉 살의 이윤희였다. 그날 새벽 이후,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18년이 넘도록.

새벽녘 불 켜진 원룸 창문 하나만 남은 한국의 낡은 골목, 어둡고 적막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새벽녘 불 켜진 원룸 창문 하나만 남은 한국의 낡은 골목, 어둡고 적막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종강 모임,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격된 밤

이윤희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뒤늦게 수의학의 길로 들어서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4학년이 되었지만, 동기와 후배들 사이에서 밝고 친절한 사람으로 통했다. 2006년 6월 5일 저녁, 그녀는 수의학과의 종강 모임에 참석했다. 지도교수와 동기, 후배까지 마흔 명 남짓이 모인 학기 마지막 자리였다. 술이 오가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회식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윤희의 행동에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거렸고, 그때마다 표정이 편치 않았다고 여러 참석자가 기억했다. 어느 순간에는 한 남자 동기를 향해 "왜 화장실까지 따라오느냐"는 취지의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서둘러 떴다. 한 남자 동기가 그녀를 뒤따라 나섰고, 자취방으로부터 백여 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함께 걸었다. 자취방 건물의 센서등이 켜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발길을 돌렸다고 진술했다. 그것이 살아 있는 이윤희를 본 마지막 목격이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입고 나온 옷차림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방 안에서 새벽 2시 58분, 컴퓨터의 전원이 켜졌다.

한국 대학 캠퍼스의 밤, 불 꺼진 강의동과 텅 빈 마당, 가로등 불빛 (AI 생성 이미지)
한국 대학 캠퍼스의 밤, 불 꺼진 강의동과 텅 빈 마당, 가로등 불빛 (AI 생성 이미지)

'112'와 '성추행' — 판독 불가능한 다잉 클루

이 사건을 다른 수많은 실종 사건과 결정적으로 구별짓는 것은, 바로 그 컴퓨터에 남은 검색 기록이다. 새벽 2시 58분부터 3시 1분경까지, 약 3분 동안 이 컴퓨터에서는 인터넷 검색이 이루어졌다. 검색어는 단 둘. 대한민국 경찰 신고 번호인 '112', 그리고 '성추행'이었다.

이 두 단어의 조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절박한 문장처럼 읽힌다. 누군가가 성추행을 당했거나 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고,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종강 모임에서 화장실을 여러 번 오가고, 한 동기에게 "왜 따라오느냐"고 물었다는 그날 밤의 정황과 겹쳐 놓으면, 이 검색은 더욱 서늘한 무게로 다가온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것이 미궁에 빠진다. 그녀가 왜 곧바로 112에 전화를 걸지 않고 검색부터 했는지, 검색 이후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애초에 그 검색을 한 사람이 정말 그녀 자신이 맞는지 — 이 짧은 두 단어는 아무것도 확정해 주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는 불길한 예감만을 남긴 채, 기록은 거기서 끊긴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기이한 사실이 겹친다. 실종 이틀 전부터 실종 신고가 이루어진 당일 오후까지의 컴퓨터 로그 기록이 삭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누군가가 흔적을 지우려 한 것처럼. 검색은 3시 1분에 끝났는데 컴퓨터가 꺼진 것은 4시 21분. 그 한 시간 이십 분의 공백이, 이 사건에서 가장 어두운 구멍으로 남아 있다.

어두운 방 안, 구형 데스크톱 컴퓨터가 놓인 빈 책상, 모니터 불빛만 희미하게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방 안, 구형 데스크톱 컴퓨터가 놓인 빈 책상, 모니터 불빛만 희미하게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방 안에서 잡음처럼 빛나는 낡은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장면, 분위기 재현 (AI 생성 영상)

어두운 방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낡은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카메라가 천천히 밀고 들어간다 — 실제 사건 영상이 아니라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다 (AI 생성 영상).

어질러진 방과 남겨진 것들

이윤희와 연락이 닿지 않자, 걱정한 동기들이 그녀의 자취방을 찾았다. 그들이 마주한 방의 모습은 평소의 윤희답지 않았다. 정갈하던 방이 몹시 어질러져 있었고, 평소 얌전히 두던 반려견은 거실에 풀려 있었다. 무언가 급박한 일이 방 안에서 벌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발견된 물건들은, 수의학도의 방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사롭지 않았다. 주사기 여러 개, 그리고 동물 수술에 쓰이는 마취제인 럼푼이 나왔다. 여기에 케타민도 있었다. 케타민은 수면 마취 효과가 있는 약물로, 공교롭게도 2006년 2월부터 대한민국에서 마약류로 지정된 물질이었다. 수의대생의 방에 동물용 약품이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는 마취제와 주사기가, 어질러진 방과 사라진 사람과 나란히 놓였을 때, 그 조합이 자아내는 서늘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동기들이 실종 신고를 하러 경찰서로 향한 사이, 몇몇이 그녀의 방을 청소했다. 그런데 그렇게 수거한 쓰레기를, 집 앞의 쓰레기장이 아니라 백 미터쯤 떨어진 다른 수거장에 가져다 버렸다고 한다. 실종된 사람의 방에서 나온 물건들을, 왜 굳이 멀리 옮겨 버렸을까. 훗날 그녀의 찻상과 수첩 일부가 일주일이 지나 쓰레기 더미와 학교 수술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사라진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남긴 흔적들 역시, 하나씩 제자리를 벗어나 흩어지고 있었다.

좁은 원룸 자취방 내부, 어질러진 살림과 빈 침대, 창으로 새어드는 새벽빛 (AI 생성 이미지)
좁은 원룸 자취방 내부, 어질러진 살림과 빈 침대, 창으로 새어드는 새벽빛 (AI 생성 이미지)

수사 선상에 오른 이름, 그러나 입증되지 않은 것

수사가 진행되면서, 경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날 밤 윤희를 자취방 근처까지 배웅했던 남자 동기에게 향했다. 그를 둘러싼 정황들은 분명 의문을 자아냈다. 그는 평소 수첩에 윤희의 일과와 동선을 꼼꼼히 기록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고, 그녀의 소지품이나 머리카락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방에서 발견된 케타민을 그녀에게 건넨 사람도 그였다고 전해진다. 그날 밤 마지막으로 그녀 곁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그를 향한 의혹은 오랫동안 이 사건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든 정황에도 불구하고, 그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있는 증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수사 대상에 올랐고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지만,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는 진실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황이 아무리 미심쩍어도, 그것이 곧 유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글을 포함해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어떤 서술도,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단정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수사 대상이었으나 무엇도 입증되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 정황과 증거 사이의 그 아득한 거리가, 이 사건이 18년 넘도록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9년에는 또 다른 국면이 있었다.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한 남성이 검거되어 이 사건과의 관련성이 추궁되던 중,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 갈래마저 다시 어둠 속으로 되돌아갔다. 하나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하다가 끊어지기를, 이 사건은 몇 번이고 반복했다.

오래된 사건 서류철과 빛바랜 메모, 흐릿한 책상 위 스탠드 불빛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사건 서류철과 빛바랜 메모, 흐릿한 책상 위 스탠드 불빛 (AI 생성 이미지)

풀리지 않는 조각들,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아버지

이 사건에는 논리로 매끈하게 꿰어지지 않는 조각들이 여럿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학교 수의과대학의 동물 사체 소각량에 관한 이야기다. 평소 40킬로그램 안팎이던 소각량이 사건 직후 크게 늘었다는 정황이 제기됐는데, 당시는 학기가 끝난 시점이라 대형 동물을 해부할 일이 없던 때였다고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제기된 정황일 뿐, 그 자체로 무언가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실종 사건에서, 이런 조각들은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며 오래도록 회자됐다.

사건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이례적으로 여러 차례 재수사가 이루어졌고,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2019년 12월 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방송도, 거듭된 재수사도, 결정적인 답에는 이르지 못했다. 컴퓨터에 남은 두 단어, 어질러진 방, 마취제와 주사기, 삭제된 로그, 옮겨진 쓰레기 — 무수한 조각들이 있는데도, 그것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 줄 마지막 조각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딸을 놓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윤희의 아버지다. 이제 여든이 훌쩍 넘은 노인이 된 그는, 지금도 딸의 이름과 얼굴을 세상에 알리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윤희를 아시나요"라는 그의 물음은, 2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 여전히 답을 기다린다. 그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딸에게 그날 새벽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 아버지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그 한 가지다.

새벽 2시 58분에 켜져 4시 21분에 꺼진 컴퓨터. 그 84분 안에 갇힌 진실은, 아직 누구에게도 그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이윤희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112'와 '성추행'이라는 두 단어는, 대답 없는 물음표가 되어 지금도 그 자리에 떠 있다.

텅 빈 새벽 강의동 복도, 긴 그림자와 끝이 보이지 않는 형광등 불빛 (AI 생성 이미지)
텅 빈 새벽 강의동 복도, 긴 그림자와 끝이 보이지 않는 형광등 불빛 (AI 생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