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4일 오후,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지나는 드들강의 물가에서 한 소녀가 발견됐다. 열일곱 살, 이제 막 고등학교 문턱을 넘던 나이였다. 소녀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고, 물에 잠긴 채 겨울 강가에 남겨져 있었다. 전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실종 신고가 접수돼 있던 아이였다. 가족이 애타게 찾던 하룻밤 사이, 소녀는 강가에서 목숨을 잃었다. 누가, 왜, 어떻게 그 겨울밤 소녀를 그곳으로 데려갔는지 — 그날의 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글은 강물이 삼킨 줄 알았던 진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흔적 하나에 실려 15년 만에 되돌아온 이야기다.

겨울 강가에서 발견된 소녀
드들강은 나주 남평 들녘을 가로질러 흐르는, 그리 크지 않은 강이다. 여름이면 물놀이를 오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2월의 강가는 갈대만 마른 채 바람에 흔들리는 적막한 곳이었다. 2001년 2월 4일, 그 물가에서 한 소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시신은 물에 잠긴 상태였고, 겨울 강의 차가운 물은 이미 많은 것을 앗아간 뒤였다.
소녀는 전날 저녁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은 그날 밤 실종 신고를 했고, 하루가 채 지나기 전 최악의 소식이 돌아왔다. 부검 결과 소녀는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 이 사건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는 이 한 줄로 충분하며, 우리는 피해자의 존엄을 위해 그 이상을 적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소녀가 아무 잘못 없이 겨울 강가에서 삶을 빼앗겼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삶을 앗아간 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흔적을 지운 강, 그러나 남은 하나
살인 현장으로 강가만큼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곳도 드물다. 흐르는 물은 발자국을 지우고, 남겨졌을지 모를 증거를 씻어 내리며, 시간의 순서마저 흐려 놓는다. 드들강 사건도 다르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목격자도, 뚜렷한 물증도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소녀와 범인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아는 사이의 원한도, 눈에 띄는 다툼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낯선 누군가가 소녀의 삶에 불쑥 끼어들었다가, 흔적 없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러나 강물이 미처 씻어내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소녀의 몸에는,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생물학적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수사관들은 그 미세한 흔적에서 DNA를 확보했다. 2001년 당시, 이것은 범인을 곧바로 붙잡아 줄 열쇠는 아니었다. 그 DNA와 대조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했지만,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범인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수사팀이 손에 쥔 것은 오직 '언젠가 주인을 찾아야 할' 유전자 정보 한 조각뿐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장기미제로 분류돼 캐비닛 속으로 들어갔다.

미제로 묻힌 시간
미제 사건이 무서운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는 데 있다. 목격자의 기억은 흐릿해지고, 현장은 변하고, 관련자들은 흩어진다. 드들강의 소녀도 그렇게 조금씩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소녀의 가족에게는 하루도 잊힌 적 없는 사건이었고, 사건 기록을 넘겨받은 수사관들에게도 마음속 빚처럼 남은 사건이었다.
그 사이 한국의 범죄 수사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DNA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관리하는 제도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특정 범죄로 형이 확정된 사람의 DNA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두면, 과거의 미제 현장에서 나온 유전자와 대조해 볼 수 있게 됐다. 예전 같으면 용의자를 먼저 좁힌 뒤에야 그 사람의 DNA를 대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순서가 뒤집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현장의 유전자를 데이터베이스에 던져 넣고, 기계가 대신 그 주인을 찾아 나서게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래전 강가에서 확보해 둔 그 미세한 흔적이 마침내 '주인'을 만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런 제도가 특히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성범죄가 얽힌 사건이다. 이런 사건에서는 가해자의 생물학적 흔적이 피해자의 몸에 남는 경우가 많고, 한 번 확보해 둔 그 흔적은 시간이 흘러도 유전자 정보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 범인은 세월이 지나면 사건이 잊힐 것이라 믿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잊히지도, 늙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드들강 소녀의 몸에 남아 있던 DNA는, 캐비닛 속에서 조용히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자기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누군가가 데이터베이스에 이름을 올리는, 바로 그날을.

2012년, DNA가 가리킨 이름
기다림이 끝난 것은 2012년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하던 중, 드들강 현장의 DNA와 일치하는 인물이 마침내 걸려들었다. 상대는 전혀 다른 강도살인 사건으로 이미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한 남성이었다. 11년 전 겨울 강가에 흔적을 남긴 자와, 훗날 또 다른 흉악범죄로 갇힌 자의 유전자가 같았다. 수사기관에게 이보다 강력한 단서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사건은 한 번 크게 꺾인다.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유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려면, 그 사람이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그렇게 범행했다'는 그림이 증거로 촘촘히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넘은 뒤라, 현장 증거의 상당수는 이미 사라졌고 목격자의 기억도 희미해진 상태였다. DNA는 '이 사람의 흔적이 피해자 몸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말해 주지만, 그가 왜, 어떻게 그곳에 이르렀는지까지 저절로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 빈틈을 메워 줄 다른 증거들이 부족했다.
결국 초기 재수사 단계에서 검찰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지목된 남성은 이 사건에 관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DNA라는 결정적 실마리가 손에 들어왔음에도, 범인은 다시 한 번 처벌의 그물을 빠져나간 셈이었다. 이미 다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던 그였기에, 이 처분이 당장 그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드들강 소녀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그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남게 됐다. 진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데도 붙잡지 못한, 뼈아픈 순간이었다.

다시 열린 수사, 그리고 확정된 판결
묻힐 뻔한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이 불기소 처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였다. 2015년, 유력한 DNA 증거가 있었음에도 사건이 흐지부지 종결됐다는 사실이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드러났다. 이어 여러 시사 프로그램이 잇따라 사건을 파고들자, 잊혔던 드들강의 소녀는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는데 왜 범인을 놓쳤느냐"는 물음은 곧 거센 여론이 되었고,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한 번 잊혔던 미제 사건이, 이번에는 사회 전체의 관심 속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이 압력 속에서 경찰과 검찰은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DNA 하나에만 기대지 않았다. 수사팀은 지목된 남성의 과거 행적, 사건 전후의 정황, 그가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를 다시 촘촘히 짜맞춰 나갔다. 흩어져 있던 정황증거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으며, 15년 전 겨울밤의 그림이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강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은 2016년, 지목된 남성을 강간 등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리고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범행 후 자신의 행적을 치밀하게 꾸며 온 정황까지 인정했다. 항소심 역시 같은 결론을 유지했다. 마침내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은 그의 상고를 기각하며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6년, 그리고 DNA가 처음 그를 가리킨 지 5년 만에, 김모씨로 특정된 그 남성은 법의 최종 판단 앞에 섰다. 무기징역과 함께, 형 집행 이후를 대비한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내려졌다.

강물이 지우지 못한 것
드들강 사건은 두 가지 얼굴을 지닌 이야기다. 하나는 과학수사의 진보가 어떻게 시간을 거슬러 진실을 되불러오는지 보여 주는 얼굴이다. 2001년의 수사관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그 미세한 흔적이 15년 뒤에 한 사람을 법정에 세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조차 씻어내지 못한 한 조각의 증거가, 데이터베이스라는 그물과 만나 마침내 이름 하나를 건져 올렸다. 오래 묻혀 있던 미제가 DNA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의 얼굴은 조금 더 무겁다. 결정적 단서가 손에 들어왔던 2012년, 만약 그때 사건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한 번 놓쳐 버린 그 3년의 공백을 생각하면, 이 사건은 과학의 승리인 동시에 뼈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결국 진실이 제자리를 찾은 것은, 사건을 잊지 않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소녀를 기억한 가족, 다시 파고든 수사관, 그리고 "왜 놓쳤느냐"고 물은 사회의 목소리가 모여 멈췄던 시계를 다시 돌렸다.
이제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2001년 겨울, 열일곱 살 소녀가 드들강가에서 삶을 빼앗겼다. 범인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물도 지우지 못한 것이 있었고, 그것은 15년의 침묵을 건너 마침내 그를 가리켰다. 드들강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지만, 결국 소녀 대신 진실을 증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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