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막걸리 병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16년 동안, 그 병을 채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다시는 확실히 말하지 못했다.

2009년 여름의 어느 아침, 전라남도 순천의 한 마을. 밭일을 나가려던 이웃들이 마루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병을 나눠 따랐다. 시골에서 아침에 한 사발 걸치고 논밭에 나서는 일은 흉이 아니었다. 그날도 그렇게, 여느 여름 아침처럼 시작된 하루였다. 그러나 그 병 안에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들어 있었다.

여름 아침, 안개가 낮게 깔린 전남 농촌 마을을 멀리서 바라본 원경, 논과 낮은 지붕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AI 생성 이미지)
여름 아침, 안개가 낮게 깔린 전남 농촌 마을을 멀리서 바라본 원경, 논과 낮은 지붕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AI 생성 이미지)
시골 마을회관 앞 골목의 이른 아침, 낮은 담과 오래된 집들, 인적 없는 조용한 풍경 (AI 생성 이미지)
시골 마을회관 앞 골목의 이른 아침, 낮은 담과 오래된 집들, 인적 없는 조용한 풍경 (AI 생성 이미지)

2009년 7월, 순천의 여름 아침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의 한 마을에서, 이웃 주민들이 함께 마신 막걸리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되었다.

청산가리는 극소량으로도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맹독이다. 그것이 어떻게 그 병 안에 들어갔는지 — 그 질문이 이 사건의 처음이자,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끝이다. 막걸리를 나눠 마신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두 사람이 중태에 빠졌다. 세상을 떠난 이들 중에는, 이 이야기에서 곧 용의자로 지목될 한 남자의 아내가 있었다.

작은 마을이었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다 아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곳에서 이웃 둘이 독을 마시고 숨졌다. 마을 전체가 흔들렸고, 경찰에는 하루빨리 범인을 밝히라는 압박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압박은, 사망자와 가장 가까운 한집으로 향했다.

라벨 없는 흰 플라스틱 막걸리 병 하나와 사발, 어두운 배경 위에 놓인 정물, 상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라벨 없는 흰 플라스틱 막걸리 병 하나와 사발, 어두운 배경 위에 놓인 정물, 상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밭두렁과 이랑, 흙 위에 놓인 낡은 호미, 아침 이슬이 맺힌 시골 풍경, 사람은 없다 (AI 생성 이미지)
밭두렁과 이랑, 흙 위에 놓인 낡은 호미, 아침 이슬이 맺힌 시골 풍경, 사람은 없다 (AI 생성 이미지)

수사가 한집을 향하다

수사는 곧 그 집의 아버지와 딸, 두 사람을 향했다.

아내를 잃은 남자와, 그의 딸이었다. 수사기관이 이들을 용의자로 지목한 데에는 이른바 '동기'라 불릴 만한 가정사의 정황이 거론되었다. 여기서 그 사적인 사정을 파고들지는 않겠다. 훗날 법원이 명확히 밝힌 것은, 그 '동기'라는 것이 객관적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추측과 정황, 그리고 "이 사람들이 했을 것"이라는 예단 — 수사는 그 예단에서 출발해, 예단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구도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물증이 부족한 사건에서, 수사가 가장 손쉬운 대상을 먼저 정해 놓고 그에게 사건을 끼워 맞추기 시작할 때 — 진실을 찾는 일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리고 그 '가장 손쉬운 대상'은, 대개 자신을 방어할 힘이 가장 약한 사람이다.

이 사건에서 그 자리에 놓인 것은, 경계성 지능을 가진 딸이었다.

시골집의 낡은 마루와 그 위로 드리운 그늘, 텅 빈 툇마루, 조용하고 적막한 오후 (AI 생성 이미지)
시골집의 낡은 마루와 그 위로 드리운 그늘, 텅 빈 툇마루, 조용하고 적막한 오후 (AI 생성 이미지)

자백이라는 이름의 증거

딸은 지능지수 74의 경계성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딸의 진술이, 부녀를 감옥으로 보낸 핵심 증거가 되었다.

자백은 강력하다. 스스로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확실해 보이는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강력함 때문에, 자백은 위험하다. 물증이 없는 자리를 자백 하나가 대신 메우기 시작하면, 자백을 받아내는 일 자체가 수사의 목표가 되어 버린다. 진실이 아니라, 이미 정해 둔 결론에 사람의 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사람에게, 이 위험은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 질문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유도하는 대로 대답하기 쉬우며, 제복을 입은 어른들의 단정적인 말에 저항하기가 훨씬 힘들다. 자신이 지금 하는 말이 앞으로 어떤 법적 무게를 갖는지, 그 진술이 자신을 어떤 벼랑으로 데려갈지조차 온전히 헤아리기 어려운 상태에서 — 딸은 조사를 받았다.

훗날 법원이 지적한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경계성 지능의 딸을 조사하면서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고, 객관적 증거 없이 예단을 가진 채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조사했으며, 범행 동기를 물으면서도 막연한 추측에 근거한 질문을 던졌다고 판단했다. 적법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법원은 아버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도신문에 의한 자백이 이뤄졌고, 조서를 읽어 주거나 확인하는 절차 없이 열람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시간 조사가 이어졌다고 보았다. 훗날 대검찰청조차 이 사건에 대해 "적법절차 미준수, 진술거부권 미고지, 부당한 신체구속 조사"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2009년의 순천에서, 그 자백은 진실의 자리에 앉았다. 영상녹화도, 신뢰관계인의 동석도, 가장 취약한 피의자를 지켜 줄 아무런 장치도 그 조사실에는 없었다.

경찰서 취조실 느낌의 텅 빈 방, 낡은 책상 하나와 마주 놓인 의자, 천장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조명 (AI 생성 이미지)
경찰서 취조실 느낌의 텅 빈 방, 낡은 책상 하나와 마주 놓인 의자, 천장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조명 (AI 생성 이미지)
삼각대에 얹힌 캠코더가 서 있는 빈 조사실, 화면은 꺼져 있고 방은 비어 있다, 차가운 정적 (AI 생성 이미지)
삼각대에 얹힌 캠코더가 서 있는 빈 조사실, 화면은 꺼져 있고 방은 비어 있다, 차가운 정적 (AI 생성 이미지)

무죄에서 유죄로 — 재판의 지그재그

재판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그것이 이 사건의 가장 서늘한 대목이다.

2010년 2월, 1심 법원은 부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진술의 신빙성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짚으며, 유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물증이 아니라 자백에 기댄 사건이었고, 그 자백에는 처음부터 금이 가 있었다. 1심 재판부는 그 금을 보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1년 11월, 2심은 이 판단을 뒤집었다. 항소심은 부녀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무죄에서 무기징역으로 — 같은 증거를 놓고 정반대의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리고 2012년 3월, 대법원이 이 형을 확정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춰 물어야 한다. 무엇이 유죄의 근거였고, 그 근거는 왜 약했나. 이 사건에는 결정적인 물증이 없었다. 청산가리를 부녀가 구했다는 명확한 물증도, 그들이 병에 독을 탔다는 직접 증거도 세워지지 않았다. 남은 것은 자백과 정황, 그리고 '동기'라 불린 추측이었다. 1심이 흔들린 자리에서 2심은 유죄를 확신했고, 대법원은 그 확신을 확정으로 굳혔다. 그렇게, 부녀는 범인이 되었다.

법정의 빈 피고인석을 원경에서 바라본 모습, 목재로 된 정돈된 실내,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AI 생성 이미지)
법정의 빈 피고인석을 원경에서 바라본 모습, 목재로 된 정돈된 실내,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AI 생성 이미지)
대법원풍 석조 건물의 웅장한 기둥, 차분한 낮 빛 아래 정적인 정면 (AI 생성 이미지)
대법원풍 석조 건물의 웅장한 기둥, 차분한 낮 빛 아래 정적인 정면 (AI 생성 이미지)

복역의 세월

형이 확정된 뒤, 부녀는 감옥으로 갔다.

아버지는 무기징역수가 되었다. 딸은 20년의 세월을 철창 안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아내를 잃은 남자는, 그 죽음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갇혔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딸은, 자신이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조차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채로 갇혔다.

시간이 흘렀다. 밖에서는 계절이 열여섯 번 바뀌었다. 처음 붙잡혔을 때 예순 즈음이던 아버지는 일흔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되었고, 딸도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살인범'이라는 낙인과,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이었다.

억울함을 삼키며 견디는 일은, 스스로를 변호할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더 무겁다. 세상은 판결을 믿고, 판결은 자백을 믿었으며, 그 자백은 애초에 지켜지지 않은 조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너진 첫 단추 위에 세워진 16년이었다.

감옥 창살 너머로 보이는 하늘 한 조각, 텅 빈 방 안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 (AI 생성 이미지)
감옥 창살 너머로 보이는 하늘 한 조각, 텅 빈 방 안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 (AI 생성 이미지)
세월의 흐름을 담은 낡은 달력 여러 장, 날짜와 숫자는 판독되지 않게 흐릿하게, 지나간 시간의 무게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세월의 흐름을 담은 낡은 달력 여러 장, 날짜와 숫자는 판독되지 않게 흐릿하게, 지나간 시간의 무게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재심의 문 — 다시 열린 조사실

한 번 확정된 판결을 다시 여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재심이란, 이미 끝난 재판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음이 드러날 때만 문을 여는 제도다. 새로운 증거가 있어야 하고, 기존 판결의 잘못이 명백해야 한다. 무죄를 받는 것보다 재심을 여는 것 자체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사건의 재심 청구가 파고든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사건을 '만든 방식'이었다. 청산가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새로 밝혀서가 아니라, 부녀를 범인으로 세운 그 조사가 애초에 위법했다는 점이 재심의 문을 열었다.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조사, 예단을 가진 채 반복된 질문, 유도신문으로 받아낸 자백, 열람권이 보장되지 않은 장시간 조사 — 수사 과정 자체의 적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은, 끝내 열렸다.

오래된 재심 서류 더미와 그 위에 놓인 돋보기, 글자는 판독되지 않게 흐릿하게, 조용한 책상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재심 서류 더미와 그 위에 놓인 돋보기, 글자는 판독되지 않게 흐릿하게, 조용한 책상 (판독 가능한 텍스트 없음, AI 생성 이미지)

16년 만의 무죄

2025년 10월 28일, 광주고등법원 제2형사부는 재심에서 부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강압적 수사에 의한 허위 자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딸은 진술거부권도 고지받지 못한 채 예단에 근거한 반복 조사를 받았고, 아버지는 열람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시간 조사를 받았으며, 두 사람 모두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공모의 동기와 범행 시점을 비롯한 공소사실을 인정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했다. 유죄를 떠받치던 기둥이,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그해 11월 4일, 대검찰청은 재판부의 판단을 수용해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 검찰 스스로 "적법절차 미준수, 진술거부권 미고지, 부당한 신체구속 조사"를 인정하며,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실패했다"고 반성의 뜻을 밝혔다. 그렇게, 부녀의 무죄는 확정되었다.

사건이 벌어진 2009년으로부터 16년.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던 아버지와 딸은,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잃고 나서야 '무죄'라는 두 글자를 손에 쥐었다. 늦게 온 정의였다. 그러나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법원풍 석조 건물의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차분한 빛, 정적이고 위엄 있는 정면 (AI 생성 이미지)
대법원풍 석조 건물의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차분한 빛, 정적이고 위엄 있는 정면 (AI 생성 이미지)

그렇다면, 누가?

여기서 이 사건은 다른 오판 사건들과 갈라진다. 재심 무죄는 '그들이 아니다'까지만 말한다. 그 너머, '그렇다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아무 답도 놓여 있지 않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서는 훗날 진범으로 의심된 이들이 스스로 나타나 눈물을 흘렸다. 약촌오거리 사건에서도 진짜 범인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러나 순천의 이 사건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부녀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 막걸리 병에 청산가리를 탄 사람은 따로 있다는 뜻인데 — 그 사람이 누구인지, 청산가리가 어디서 왔는지는 끝내 특정되지 않았다.

작은 마을. 서로를 다 아는 이웃들. 아침이면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시던 담 하나 사이의 사람들. 그 닫힌 공간 어딘가에서, 누군가 그 병에 독을 탔다. 재심은 부녀의 손에서 그 혐의를 거두어 갔지만, 그 혐의가 옮겨 갈 자리를 새로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진실은 여전히 그 여름 아침의 마루 위에, 빈 병 곁에 남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아무도 새로 지목하지 않을 것이다. 진범을 추측하는 일은, 방금 누명을 벗은 사람들 옆에서 또 다른 누명을 짓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남긴 확실한 사실은 단 두 가지다. 부녀는 범인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진짜 범인은, 16년이 지나도록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마을 어귀의 오래된 정자나무 위로 물드는 노을, 텅 빈 평상, 저무는 시골의 빛 (AI 생성 이미지)
마을 어귀의 오래된 정자나무 위로 물드는 노을, 텅 빈 평상, 저무는 시골의 빛 (AI 생성 이미지)

수사가 만든 범인, 그 반복되는 패턴

순천의 이 사건은, 한국의 재심 무죄 계보 속에 나란히 놓인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약촌오거리 사건, 그리고 낙동강변 살인사건 — 이름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반복되는 무늬는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쉬운 범인이 된다. 스스로를 변호할 언어가 없는 사람, 유도 질문에 취약한 사람, 제복 앞에서 위축되는 사람. 물증 대신 자백이 사건의 기둥이 되고, 그 자백은 지켜지지 않은 조사에서 나온다. 한 번 세워진 결론은 오류를 인정하기보다 스스로를 방어하고, 그 대가는 무고한 사람이 감옥에서 대신 치른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재심이라는 좁은 문을 통해서야 진실이 뒤늦게 도착한다.

이것은 '수사가 만든 범인'의 반복 패턴이다. 순천의 부녀는, 그 계보의 가장 최근 이름이다. 삼례에서 지적장애가 있던 청년들이 그러했듯, 순천에서는 경계성 지능을 가진 딸의 진술이 무너진 첫 단추가 되었다. 사법이 가장 먼저 무너지는 자리는, 언제나 가장 힘없는 사람 앞이었다.

형사사법이 배운 것

이런 사건들이 값비싸게 남긴 교훈은, 다행히 제도의 변화로 이어졌다.

오늘날 수사기관은 중요 사건의 피의자 신문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하도록 하는 절차를 갖추어 가고 있다. 조사실에서 무슨 일이 오갔는지를 나중에 검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만약 순천의 그 조사실에 켜진 캠코더가 있었다면, 유도신문과 예단의 반복은 훨씬 일찍 드러났을지 모른다.

장애가 있거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조사할 때는 신뢰관계인을 동석시키고 진술의 임의성을 각별히 살피도록 하는 보호 규정도 강화되었다. 질문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유도에 취약한 사람에게, 홀로 감당하는 신문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런 사건들이 거듭 증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이미 잃어버린 16년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다만 그 세월이 완전히 헛되지 않으려면, 다음 사람에게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뒤늦은 무죄가 사회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값이다.

빈 사발 하나에 비치는 맑은 아침빛, 어두운 마루 위에 놓인 정물, 고요하고 상징적인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빈 사발 하나에 비치는 맑은 아침빛, 어두운 마루 위에 놓인 정물, 고요하고 상징적인 분위기 (AI 생성 이미지)

빈 병은 그대로 남았다

막걸리 병은 비었다. 16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병에 독을 따른 사람의 자리는, 아직 아무도 채우지 못했다.

법원은 부녀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검찰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늦었지만 정의는 도착했고, 두 사람의 이름에서 '살인범'이라는 세 글자는 지워졌다. 그러나 그들이 감옥에서 흘려보낸 열여섯 번의 여름은, 어떤 판결로도 되돌릴 수 없다. 세상을 떠난 두 이웃의 죽음 역시, 여전히 그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닫힌 마을, 여름 아침, 함께 나눠 마신 한 병. 그 안에 무엇이, 왜, 누구의 손으로 들어갔는지 — 우리는 이제 '부녀가 아니다'라는 것까지만 안다. 그다음 문장은 비어 있다. 재심은 잘못 채워진 자리를 비워 냈지만, 그 자리를 진실로 다시 채우는 일은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로 남았다.

빈 병은 마루 위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다음 사발을 따를 사람은 —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