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좀 보자."
1980년대 말, 한국의 초등학교 앞에는 이 한마디가 공포의 신호였다. 낯선 할머니가 다가와 손톱을 보자고 하면, 도망쳐야 한다고 아이들은 서로에게 일러 주었다. 손톱에 때가 끼어 있으면 잡아간다고 했다. 그 할머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반은 사람, 반은 고양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가 되살아난, '홍콩할매귀신'이었다.


하굣길에 퍼진 소문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해외 독자라면 낯설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사십 대에게 '홍콩할매귀신'이라는 이름을 대면, 대부분 곧바로 알아듣는다. 어린 시절 온몸에 소름이 돋게 했던, 그 시절의 대표적인 괴담이기 때문이다.
소문이 퍼진 것은 대략 1980년대 후반이었다. 무대는 학교 앞, 골목, 하굣길이었다. 어른들의 방송이나 신문이 아니라,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번진 이야기였다.
"홍콩 가는 비행기가 떨어졌대. 거기 탔던 할머니가 죽었는데, 안고 있던 고양이랑 몸이 붙어 버렸대. 그래서 반은 할머니, 반은 고양이가 된 귀신이 한국으로 돌아왔대."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귀신이 하굣길 아이들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어른은 힘이 세니 못 잡고, 저항이 약한 초등학생만 골라 데려간다고 했다.

반은 사람, 반은 고양이
괴담의 핵심은 그 '모습'에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홍콩으로 가던 비행기가 사고를 당했고, 그 안에 타고 있던 할머니가 품에 안고 있던 고양이와 한 몸이 되어 죽었다고 했다. 죽음의 순간에 사람과 짐승의 몸이 뒤섞여, 반인반묘(半人半猫)의 기이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굴은 늙은 할머니인데 눈은 고양이처럼 세로로 찢어져 있고, 손끝에는 짐승의 발톱이 돋아 있다고 했다. 밤이 되면 담을 타넘고 지붕 위를 소리 없이 걸어 다닌다고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그 할머니가 엄청나게 빨리 달린다고 했고, 어떤 아이들은 벽을 타고 오른다고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괴담들은 상당수가 일본 출판물을 통해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나 '홍콩할매귀신'과 똑같은 이야기는 일본에도,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것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퍼진, 순수한 한국산 도시전설로 여겨진다.


손톱의 때
이 괴담을 유독 오싹하게 만든 것은, 지역마다 붙어 다니던 기이한 '규칙'이었다.
가장 널리 퍼진 것이 손톱 이야기다. 할머니 귀신이 아이에게 다가와 "손톱 좀 보자"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손톱에 때가 끼어 있으면, 그 아이를 잡아간다고 했다. 반대로 손톱이 깨끗하면 그냥 보내 준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 조건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곳에서는 특정 색깔의 옷을 입은 아이를 노린다고 했고, 어떤 곳에서는 특정 요일이나 특정 시간에 나타난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빨간색을 좋아하냐, 파란색을 좋아하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어떤 대답을 하든 잡아간다고도 했다.
이렇게 조건이 붙자,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생존법'을 만들어 냈다. 손톱을 바짝 깎고, 손을 깨끗이 씻고, 무리 지어 다니고,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들어갔다. 어떤 아이는 주머니에 소금을 넣고 다녔고, 어떤 아이는 낯선 노인을 보면 무조건 시선을 피하고 뛰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홍콩할매를 물리치는 부적이라며 종이 딱지 같은 것이 오가기도 했다.
이 규칙들의 무서운 점은, 아무리 조심해도 완벽히 안전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손톱이 깨끗해도 옷 색깔이 걸리면 잡혀가고, 옷 색깔을 피해도 질문에 잘못 답하면 잡혀간다.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이 '규칙 없는 규칙'이야말로,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홍콩할매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손톱의 때' 조항에는 어른들의 의도가 엿보인다는 해석이 많다. 아이들에게 손을 깨끗이 하라고,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가르치기에 이보다 효과적인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등교를 거부한 아이들
괴담은 그저 아이들의 놀이로 끝나지 않았다.
소문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실제로 겁에 질린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굣길에 홍콩할매를 만날까 두려워 등하교를 못 하겠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밖에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작은 소문 하나가 이 정도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결국 어른들의 세계까지 이 이야기가 올라왔다. 1989년, 공영방송 MBC의 저녁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가 이 괴담 소동을 다뤘다. 아이들 사이에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 등교 거부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 나라의 저녁 뉴스가 초등학생들의 괴담을 정식으로 보도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 이 소문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 준다.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하면서 홍콩할매귀신은 '전설 중의 전설'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뉴스에 나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소문을 더 키운 면도 있었다. 방송에서 다뤘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른들도 아는 진짜 이야기"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소문을 잠재우려던 보도가, 역설적으로 소문에 권위를 실어 준 셈이다. 도시전설이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증폭되는지를 보여 주는 이른 사례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홍콩행 비행기 추락 사고'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의 국적기가 홍콩으로 가다 떨어져 할머니가 죽었다는 사고 기록은 없다. 고양이와 한 몸이 된 귀신이라는 것도 물론 사실일 수 없다. 목격담은 무수히 많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그 존재에게 해를 입었다는 확인된 사건은 없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디서 왔을까. 정확한 출처는 아무도 모른다. 도시전설의 특징이 그렇다. 처음 만든 사람도, 처음 퍼뜨린 사람도 특정되지 않은 채,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스스로 자라난다.
다만 이 괴담이 퍼진 시대적 배경을 보면, 왜 하필 그런 이야기였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공포가 자라난 시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의 한국은 불안한 시절이었다.
당시는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강력범죄가 사회 문제였다. 조직폭력, 인신매매, 어린이 유괴 같은 사건들이 신문 지면을 채웠다. 실제로 어린아이가 유괴되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모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아이의 안전이었다. 학교가 끝난 뒤 아이가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오락실이나 만화방 같은 곳에 드나들지는 않는지. 부모들은 아이를 일찍, 곧장 집으로 들여보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런 해석이 나온다. 아이를 일찍 귀가시키고 낯선 어른을 경계하게 하려는 어른들의 바람이, '홍콩할매귀신'이라는 무서운 이야기의 형태로 아이들 세계에 심어졌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마라"는 훈계보다, "홍콩할매가 잡아간다"는 괴담이 아이들에게는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해석일 뿐,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도시전설이 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대개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왜 '홍콩'이고 왜 '고양이'였나
괴담을 뜯어보면, 그 시대 한국인의 마음이 조각조각 담겨 있다.
'홍콩'은 당시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해외 여행지 중 하나였다. 멀지만 이국적인 곳, 비행기를 타야 닿는 곳. 항공 여행이 아직 흔하지 않던 시절, 비행기 사고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사회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 공포가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다.
'고양이'는 오랫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신비하고 불길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밤에 눈이 빛나고, 소리 없이 움직이며, 표정을 읽기 어렵다. 일본에는 네코마타(猫又)라는 고양이 요괴 전설이 따로 있을 만큼, 동아시아에서 고양이는 예부터 요괴로 곧잘 변신하는 존재였다. 다만 앞서 말했듯, 홍콩할매귀신과 똑같은 이야기는 일본에도 없다. 고양이라는 소재만 겹칠 뿐이다.
'할머니'라는 설정도 묘하다. 보통 아이들이 경계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상대가 노인이다. 그 안전해 보이는 존재가 사실은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반전이, 이 괴담의 공포를 배가시켰다.
비행기 공포, 고양이라는 오래된 불길함, 그리고 안전해 보이는 할머니의 배신.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엮여 한 시대를 뒤흔든 이야기가 되었다.


소문은 어떻게 사라졌나
모든 도시전설이 그렇듯, 홍콩할매귀신도 어느 순간 잦아들었다.
한동안 전국을 휩쓸던 소문은 1990년대를 지나며 서서히 힘을 잃었다. 새로운 괴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학교 화장실 귀신, 빨간 마스크, 분신사바 같은 이야기들이 뒤이어 아이들 사이를 오갔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홍콩할매귀신은 '무서운 실체'에서 '아련한 추억'으로 변했다. 오늘날 이 이름은 공포보다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십 대들이 "홍콩할매 기억나냐"며 웃으며 옛이야기를 나누는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었던 아이의 심정을 떠올려 보면, 그것은 결코 가벼운 공포가 아니었다. 하굣길 골목마다 도사린 그림자, 손톱을 검사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닿아야 한다는 조바심. 한 세대의 아이들이 실제로 그 공포 속에서 어린 시절의 한 시기를 보냈다.


도시전설이 말해 주는 것
홍콩할매귀신 이야기에는 귀신이 없다. 실제 사고도, 실제 피해자도 없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한 나라의 저녁 뉴스에 오를 만큼 강력했다.
이것이 도시전설의 힘이다. 사실이 아니어도 진짜처럼 퍼지고, 아무도 만들지 않았는데 스스로 자라나며, 한 시대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홍콩할매귀신은 1980년대 말 한국 사회의 불안 — 강력범죄, 아이의 안전, 낯선 세계에 대한 공포 — 을 반은 사람, 반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응축한 이야기였다.
해외 독자에게는 이런 맥락이 흥미로울 것이다. 어느 나라든 아이들 사이에는 그 시대의 두려움을 먹고 자란 괴담이 있다. 미국의 블러디 메리, 일본의 화장실의 하나코. 한국에는 홍콩할매귀신이 있었다.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뿌리에는 같은 것 — 아이들의 상상력과 어른들의 불안 — 이 놓여 있다.


손톱을 깎으며
지금도 한국의 어느 사십 대는 손톱을 깎다가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린다고 한다.
"손톱 좀 보자." 그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던 하굣길. 반은 할머니, 반은 고양이인 존재가 담벼락 너머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던 저녁. 그것은 실체 없는 공포였지만, 한 세대에게는 분명히 실재했던 감정이었다.
홍콩할매귀신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 존재에게 잡혀가지 않았다. 비행기는 떨어진 적 없고, 할머니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남긴 오싹함만은,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모두 어른이 된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다.
어쩌면 그것이 도시전설이 진짜로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했던 것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 속에 남기는 일. 홍콩할매귀신은 그렇게, 한 세대의 어린 시절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