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29일, 노르웨이 베르겐 외곽의 이스달렌(Isdalen) — 현지에서 '얼음 골짜기'라 불리는 계곡 — 에서 한 남자가 두 어린 딸과 함께 산을 오르다 바위 무더기 사이에서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심하게 불에 타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 주변이었다. 시신 곁에는 술병 하나, 물병 두 개, 우산, 고무장화, 장신구 몇 점이 흩어져 있었는데, 그 모든 물건에서 신원을 알 수 있는 표시와 라벨이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지거나 뜯겨 나가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경찰이 기차역 물품 보관소에서 그녀의 여행 가방을 찾아냈을 때, 그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옷의 상표, 처방전, 신분증 — 그녀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여덟 개의 서로 다른 가짜 이름으로 호텔을 옮겨 다녔고, 여러 나라 말을 했으며, 방을 잡은 뒤에도 방을 바꾸곤 했다. 5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스칸디나비아 최대의 미제 사건으로 남은 '이스달 여인' 이야기다.

노르웨이 베르겐 근처 이스달렌 계곡의 안개 낀 겨울 풍경 (AI 생성 이미지)
노르웨이 베르겐 근처 이스달렌 계곡의 안개 낀 겨울 풍경 (AI 생성 이미지)

얼음 골짜기의 발견

이스달렌은 베르겐을 감싼 산줄기 사이에 자리한 좁고 가파른 계곡이다. 여름에도 볕이 잘 들지 않고, 오래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는 음침한 소문이 따라다니던 곳이었다. 중세부터 이 골짜기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현지인들은 이곳을 반쯤은 피하는 장소로 여겼다. 1970년 늦가을의 그날, 산을 오르던 한 대학교수와 그의 두 딸이 마주친 것은 그런 골짜기의 바위 비탈에 놓인, 이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탄 여성의 시신이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주변을 살폈을 때, 사건은 단순한 사고나 조난처럼 보이지 않았다. 시신 곁에는 내용물을 거의 비운 술병 하나와 플라스틱 물병 두 개가 놓여 있었고, 우산과 고무장화, 스타킹, 손목시계와 귀걸이, 반지 같은 개인 물품이 흩어져 있었다. 불에 그을린 종이의 흔적도 있었고, 석유 냄새가 배어 있는 물건도 발견됐다. 하지만 수사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 물건들 자체가 아니라, 물건마다 붙어 있어야 할 표시가 하나같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상표, 제조사 표기, 일련번호 — 물건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모든 단서가 의도적으로 지워지거나 문질러져 있었다.

얼음 골짜기의 바위 비탈에 흩어진 개인 소지품 — 우산, 손목시계, 반지 (AI 생성 이미지)
얼음 골짜기의 바위 비탈에 흩어진 개인 소지품 — 우산, 손목시계, 반지 (AI 생성 이미지)

신원의 수수께끼

부검이 진행되면서 이 사건은 한층 더 기이해졌다. 검시관들은 그녀의 몸에서 다량의 수면제 성분(페노바르비탈 계열)을 검출했고, 폐 안에서는 그을음이 발견됐다. 폐에 그을음이 있다는 것은, 그녀가 불이 붙었을 때 아직 숨을 쉬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사인은 수면제로 인한 무력화와 일산화탄소 중독의 조합이었다. 목에는 멍 자국이 있었는데, 이것이 넘어지면서 생긴 것인지 누군가에게 맞아 생긴 것인지는 끝내 확정되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그렇게 보이도록 꾸민 것인지 — 이 근본적인 질문부터가 답을 얻지 못했다.

경찰은 그녀가 누구인지부터 밝혀내야 했다. 그런데 이 여성에게는 신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문 대조도, 실종 신고와의 대조도, 국내외 어떤 기록과의 대조도 그녀를 특정해 내지 못했다. 노르웨이 안에서도, 유럽 어디에서도, 그녀의 실종을 신고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는데, 그 사라짐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사건의 첫 번째 벽이었다. 그리고 이 벽은 반세기가 넘도록 무너지지 않았다.

1970년대 초 베르겐 시가지와 항구의 풍경 (AI 생성 이미지)
1970년대 초 베르겐 시가지와 항구의 풍경 (AI 생성 이미지)

여덟 개의 이름

수사가 진행되면서 드러난 그녀의 행적은, 평범한 여행자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은 그녀가 사망 전 몇 주 동안 노르웨이 여러 도시의 호텔에 묵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문제는 그녀가 매번 다른 이름을 썼다는 점이었다. 확인된 가짜 신분만 여덟 개에 달했다. 제네비에브 랑시에, 클라우디아 틸트, 클라우디아 닐센, 알렉시아 자르네메르셰, 베라 야를레, 페넬라 로르크, 엘리자베스 렌하우어 등 — 국적을 짐작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호텔에 투숙한 뒤에도 방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습관이 있었고, 직원들에게는 늘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인상도 조각조각 엇갈렸다. 여러 호텔 직원들은 그녀가 아름다웠다고 기억했고, 어떤 이는 그녀에게서 마늘 냄새가 났다고 했으며, 그녀가 가발을 썼다는 증언도 있었다. 언어 능력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는 독일어와 플라망어(벨기에 지역의 네덜란드어)를 구사했고, 영어는 서툴게 했다고 전해진다. 필적을 분석한 결과, 그녀가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여러 나라의 언어와 흔적이 한 사람 안에 뒤섞여 있었지만, 그중 어느 것도 그녀의 진짜 출신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낡은 호텔 숙박부에 서로 다른 필체로 적힌 여러 개의 가명 (AI 생성 이미지)
낡은 호텔 숙박부에 서로 다른 필체로 적힌 여러 개의 가명 (AI 생성 이미지)

단서들 — 가방, 지폐, 그리고 암호 메모

발견 사흘 뒤, 경찰은 베르겐 기차역의 물품 보관소에서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여행 가방 두 개를 찾아냈다. 그 안에는 그녀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을 법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옷가지와 신발, 여러 개의 가발, 화장품, 습진에 바르는 연고, 색안경, 지도와 시간표, 그리고 여러 나라의 동전과 지폐가 나왔다. 100마르크짜리 독일 지폐 다섯 장, 노르웨이 크로네, 벨기에·영국·스위스 동전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 가방 안에서도 그녀의 정체를 밝힐 만한 것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옷에 붙어 있던 상표는 뜯겨 나갔고, 약병의 처방 라벨도 지워져 있었다. 누군가 — 그녀 자신이든 다른 누군가든 — 그녀가 누구인지 세상이 알지 못하도록 하나하나 공들여 지운 것이다.

가방 속 메모장 하나가 특히 수사관들의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는 숫자와 글자가 뒤섞인, 언뜻 암호처럼 보이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오랜 분석 끝에 경찰은 그 기록이 그녀가 방문했던 날짜와 장소를 나타낸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일종의 개인적인 이동 기록이자 여정표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 암호 같은 메모가 그녀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무엇을 하려 했는지까지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 메모는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 왜 한 여성이 자신의 여정을 이렇게까지 감추듯 기록해야 했을까.

여러 나라의 지폐와 동전, 색안경, 가발이 담긴 낡은 여행 가방 (AI 생성 이미지)
여러 나라의 지폐와 동전, 색안경, 가발이 담긴 낡은 여행 가방 (AI 생성 이미지)

수사와 결론 없는 종결

노르웨이 경찰은 상당한 인력을 투입해 수사를 벌였다. 그녀의 얼굴 몽타주가 유럽 각국에 배포됐고, 인터폴을 통한 국제 공조도 이뤄졌다. 목격자들이 나타났다. 그녀가 기차에서, 카페에서, 호텔 로비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증언들이 모였다. 하지만 그 어떤 증언도 그녀를 하나의 실재하는 이름과 연결하지 못했다. 실종 신고와 대조해도, 국제 수배 기록과 대조해도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1971년 초, 노르웨이 당국은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 내리며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 결론에 온전히 만족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옷과 소지품에서 라벨이 전부 뜯겨 나간 점, 여덟 개의 가짜 신분, 다국어 구사, 방을 옮겨 다니는 습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실종을 알아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 —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자살과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에는 일찍부터 다른 종류의 해석이 따라붙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신원을 철저히 숨긴 채 유럽을 오가던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어떤 형태로든 첩보 활동과 관련된 인물이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황에서 비롯된 가설일 뿐, 확증된 것은 없다. 그녀가 1971년 2월 베르겐의 묘지에 이름 없이 묻힐 때, 경찰은 훗날을 위해 아연 관을 사용했다. 언젠가 그녀의 신원을 확인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대비였다.

안개에 잠긴 노르웨이의 겨울 산과 골짜기 (AI 생성 이미지)
안개에 잠긴 노르웨이의 겨울 산과 골짜기 (AI 생성 이미지)

반세기 뒤의 재분석

이 사건은 오랫동안 미제의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가 이 사건을 집중 취재했고, 2016년에는 사건이 공식적으로 재조사되면서 법의학 화가가 그녀의 생전 모습을 여러 버전으로 복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NRK와 BBC 월드 서비스가 공동으로 제작한 팟캐스트 '얼음 골짜기의 죽음(Death in Ice Valley)'이 공개되면서 이 사건은 국제적인 관심사가 됐다. 이 팟캐스트는 목격자와 법의학자들의 증언을 담아, 반세기 전 묻혔던 단서들을 현대 과학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봤다.

가장 주목할 만한 진전은 그녀의 치아에서 나왔다. 부검 당시 그녀의 턱뼈와 치아가 보존돼 있었던 덕분에, 현대의 동위원소 분석 기법을 적용할 수 있었다. 2017년, 치아 법랑질에 대한 안정 동위원소 분석 결과, 그녀는 대략 1930년경(오차 약 4년) 독일 뉘른베르크 인근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프랑스 또는 독일·프랑스 국경 지대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한 그녀가 받은 치과 치료의 흔적 — 유난히 많은 금 충전물을 포함한 복잡한 시술 — 은 당시 동유럽 등지에서 흔히 쓰이던 방식과 유사해, 그곳에서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반세기 만에, 이름 없는 여인의 출신지는 마침내 유럽 지도 위의 한 지점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녀에게 이름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현대 법의학 실험실에서 오래된 치아 표본을 분석하는 장면 (AI 생성 이미지)
현대 법의학 실험실에서 오래된 치아 표본을 분석하는 장면 (AI 생성 이미지)

남는 질문

베르겐 묘지에 이름 없이 놓인, 눈 덮인 묘석 (AI 생성 이미지)
베르겐 묘지에 이름 없이 놓인, 눈 덮인 묘석 (AI 생성 이미지)

오늘날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추려 보면 이렇다. 1970년 11월, 한 여성이 베르겐 외곽의 얼음 골짜기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됐다. 그녀는 여덟 개의 가짜 이름을 썼고, 여러 나라 말을 했으며, 소지품에서 모든 신원 표시가 지워져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다량의 수면제가 검출됐다. 그녀는 대략 1930년경 독일 뉘른베르크 인근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녀의 실종을 신고하지 않았다.

우리가 여전히 모르는 것은 그보다 훨씬 많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었나. 왜 여덟 개의 신분으로 유럽을 떠돌았나. 왜 옷의 라벨까지 하나하나 뜯어내며 자신의 흔적을 지웠나. 얼음 골짜기에서의 죽음은 스스로 택한 것이었나, 아니면 누군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었나.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녀가 어떤 비밀을 안고 있었는지 — 이 물음들은 모두 답을 얻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동위원소 분석은 그녀의 출신지를 좁혀 주었지만, 정작 가장 인간적인 질문 앞에서는 침묵한다. 그녀는 누구였고, 무엇으로부터 그토록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우려 했는가. 얼음 골짜기는 아직 그 답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