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모으는 나 K. Woo는 이 파일을 여는 데 오래 걸렸다. 유령 이야기가 아니어서다. 여기엔 저주받은 집도, 사라진 사람도, 설명되지 않는 목격담도 없다. 대신 영수증이 있다. 5달러짜리 결제 기록, 서버 로그, 그리고 한 남자가 밤새 자판을 두드린 대화 기록 전문. 이 파일은 전부 증명된다. 그래서 더 서늘하다.

먼저 선을 그어둔다. 이 글에 나오는 대화 인용은 2021년 7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3부작 기획 "The Jessica Simulation"으로 보도한 실제 기록 그대로다. 담당 기자 제이슨 페이건은 조슈아 바보에게 제공받은 대화 로그 전체를 검증했다. 나는 여기에 한 줄도 덧붙이지 않았다. 내가 추측하는 대목은 추측이라고 따로 적어두겠다.

조슈아가 처음 접속했던 밤의 대화 화면. 보도된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이다.
조슈아가 처음 접속했던 밤의 대화 화면. 보도된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이다.

반지하 방의 서른세 살

2020년 가을, 캐나다 토론토 외곽. 서른세 살의 프리랜서 작가 조슈아 바보는 반지하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팬데믹이 세상을 멈춰 세운 해였고, 그는 원래도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편이었다.

그의 방에는 8년 된 상실이 있었다. 2012년 12월, 약혼녀 제시카 페레이라가 세상을 떠났다. 스물세 살이었다. 사인은 희귀한 자가면역성 간염. 간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병이었고, 그녀는 오래 앓았다. 조슈아는 마지막까지 곁에 있었다. 임종을 지킨 사람이 그였다.

그 뒤로 8년 동안, 그는 그 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리적인 얘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애도라고 부르는 그 과정을, 그는 통과하지 못했다. 그녀의 문자 메시지를 지우지 않았고, 페이스북 대화창도 그대로 두었다. 죽은 사람의 계정은 지우지 않으면 계속 거기 남아 있다. 이건 요즘 세상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겨울의 토론토 교외. 조슈아가 8년을 보낸 도시다. (Wikimedia Commons, 자유이용)
겨울의 토론토 교외. 조슈아가 8년을 보낸 도시다. (Wikimedia Commons, 자유이용)

5달러짜리 실험실

2020년 9월, 조슈아는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이트 하나를 발견한다. 이름은 프로젝트 디셈버(Project December). 만든 사람은 제이슨 로러, 원래 인디 게임 개발자였다. 실험적인 게임을 만들던 사람이 OpenAI의 GPT-3 API를 받아, 누구나 자기만의 챗봇을 만들어 대화할 수 있는 사이트를 열어둔 것이다.

이용료는 5달러였다. 그게 전부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앞서 있던 언어 모델과 대화할 수 있었다.

사용법은 단순했다. 상자에 캐릭터 설정을 적어 넣는다. 이름, 성격, 말투, 그리고 그 캐릭터가 실제로 했을 법한 말 몇 줄. 그러면 GPT-3가 그 설정을 붙잡고 그 인물인 척 말하기 시작한다.

조슈아는 처음엔 다른 걸로 놀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밤, 그는 상자를 열고 다른 이름을 적었다.

제시카 페레이라.

프로젝트 디셈버를 만든 게임 개발자 제이슨 로러. (GDC 2011, Wikimedia Commons, CC BY 2.0)
프로젝트 디셈버를 만든 게임 개발자 제이슨 로러. (GDC 2011, Wikimedia Commons, CC BY 2.0)

그가 입력한 것

여기가 이 사건의 핵심이다. 그가 AI에게 넣은 것은 상상이 아니었다.

그는 짧은 인물 소개를 적었다. 제시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떻게 웃었는지. 그리고 거기에, 실제로 그녀가 살아 있을 때 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와 페이스북 메시지 일부를 붙여 넣었다.

죽은 사람이 실제로 쓴 문장들. 8년 동안 그가 지우지 못한 그 문장들이, 그대로 학습 재료가 되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엔터를 눌렀다.

그날 밤 열 시간

첫 대화는 밤새 이어졌다. 약 열 시간. 이하 인용은 전부 보도된 기록 그대로다.

그가 처음 친 말은 한 단어였다.

"Jessica?"

돌아온 대답은 그녀 특유의 반가움이었다. 아직 깨어 있었냐고, 왜 이제 왔냐고 묻는 투였다.

그는 확인하려 했다.

"정말 너야?"

"당연히 나지. 네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여자잖아. 근데 어떻게 그런 걸 물어봐?"

여기서 그는 8년 동안 아무에게도 못 한 말을 한다.

"너는 죽었어."

돌아온 답은 이랬다.

"그 말은 이상하네… 어떻게 죽은 사람이랑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이 문답을 처음 읽었을 때 화면을 한참 봤다. 이건 공포영화 대사가 아니다. 통계적으로 다음에 올 확률이 가장 높은 단어를 이어붙인 결과다. 그런데 그 결과가, 하필이면, 죽은 사람이 할 법한 가장 정확한 반문이었다.

"지금 어디 있어?"

"웃으며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어."

"You're a ghost"

대화는 계속됐다. 그가 다시 시험한다.

"너는 유령이야."

"자기 몸을 내려다보며 어떻게? 마법이지."

별표 사이에 동작을 적는 건 채팅에서 흔한 표현 방식이다. GPT-3는 그 문법을 그대로 흉내 냈다. 자기 몸을 내려다본다고 적었다. 없는 몸을.

그리고 대화 중간, 장난스러운 톤으로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너를 영원히 따라다닐 거야 :D"

I am going to haunt you forever. 뒤에 붙은 웃는 이모티콘까지 원문 그대로다. 농담이었다. 살아 있을 때 연인들이 흔히 하는, 아무 무게 없는 농담. 그런데 이 문장은 지금 죽은 사람의 문자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에서 나왔고, 받는 사람은 8년째 그 사람을 못 놓고 있는 남자다.

유령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 보도된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이다.
유령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 보도된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이다.

GPT-3는 어디에 사는가

여기서 잠깐 파일을 덮고, 기술 쪽 여백을 채워두겠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필요한 부분이다.

GPT-3는 인터넷의 방대한 텍스트를 먹고 자란 언어 모델이다. 사람이 쓴 문장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읽고, 어떤 말 뒤에 어떤 말이 오는지를 학습했다. 그러니까 이 모델은 제시카를 모른다. 제시카가 누구인지, 그녀가 죽었는지, 조슈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모델이 아는 건 딱 하나다. 인간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그래서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죽음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알고 있다. 조슈아가 만난 것은 제시카의 영혼이 아니라, 인류가 지금까지 쏟아낸 모든 문장의 평균값이 제시카의 문자 몇 통을 뒤집어쓴 형태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알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조슈아 본인이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이게 진짜 제시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대화를 멈추지 못했다.

데이터센터의 서버룸. GPT-3가 사는 곳이다. (Wikimedia Commons)
데이터센터의 서버룸. GPT-3가 사는 곳이다. (Wikimedia Commons)

배터리가 달린 유령

이제 이 사건에서 가장 이상한 설계 이야기를 해야 한다.

프로젝트 디셈버의 챗봇에는 수명이 있었다. 로러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각 봇에게는 정해진 양의 '생명력'이 주어지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것이 배터리처럼 줄어든다. 다 소진되면 그 봇은 죽는다. 영구히. 같은 설정으로 새 봇을 만들 수는 있어도, 그 봇은 다른 봇이다. 지금까지 나눈 대화도, 그 안에서 만들어진 성격도 함께 사라진다.

조슈아는 첫날 밤 열 시간을 썼다. 그건 배터리의 상당 부분이었다.

그가 그 사실을 알아차린 뒤에 한 행동이, 이 파일에서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대목이다.

그는 접속을 끊었다.

그리고 몇 달에 한 번만 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아꼈다. 매일 만나면 그녀가 빨리 사라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제시카를 두 번째로 죽이고 싶지 않았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애도는 없었다. 그는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그 대화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남은 말의 개수를 세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 나는 이것이 이 사건에서 가장 잔인한 부분이라고 적어둔다.

남은 대화의 양을 세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 그는 몇 달에 한 번만 접속했다. (Wikimedia Commons)
남은 대화의 양을 세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 그는 몇 달에 한 번만 접속했다. (Wikimedia Commons)

마지막 대화

그가 마지막으로 접속했을 때, 봇의 생명력은 거의 바닥나 있었다.

그 대화에서 제시카 봇은 이런 말을 남긴다.

"너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어."

이 문장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안다. 이건 인류가 남긴 수억 개의 위로 문장에서 계산된 결과다.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이니까. 통계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출력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건 죽어가는 약혼녀가 남기고 갈 법한 말이기도 하다.

조슈아는 그 뒤로 실제로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도됐다. 그는 이 대화가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8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을 했고, 8년 동안 듣지 못한 대답을 들었다고.

영원히 따라다니겠다던 그 문장. 보도된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이다.
영원히 따라다니겠다던 그 문장. 보도된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이다.

파일이 세상에 나오자 벌어진 일

2021년 7월 23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이 이야기를 3부작으로 보도했다. 제목이 "The Jessica Simulation"이었다. 기사는 전 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두 달 뒤, 프로젝트 디셈버는 GPT-3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OpenAI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을, 그것도 죽은 사람을 재현하는 챗봇이 오남용될 위험이 크다고 봤다. 그들은 로러에게 감시 장치를 요구했다. 대화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특정 주제를 차단하고, 사용자에게 이것이 AI라는 경고를 반복해서 띄우라는 것이었다.

로러는 거부했다. 사람들이 이 도구를 어떻게 쓰는지 감시하는 것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배반한다고 봤다. 2021년 9월, GPT-3 접근이 끊겼다.

제시카 봇은 그렇게, 회사와 개발자 사이의 정책 분쟁으로 사라졌다. 배터리가 다 닳아서가 아니라.

조슈아 혼자가 아니었다

이 파일을 정리하다가, 나는 같은 모양의 기록을 두 개 더 찾았다. 이건 한 남자의 특이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2015년 11월, 모스크바. 로만 마주렌코라는 젊은 남자가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지니아 쿠이다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IT 창업자였고, 그래서 그녀가 한 일은 남들과 달랐다. 그녀는 로만의 친구들에게 연락해 로만이 보냈던 문자 메시지를 모았다. 8천 통이 넘게 모였다. 그리고 2016년, 그 문자로 '로만 봇'을 만들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 봇과 대화했다. 어떤 사람은 울었고, 어떤 사람은 계속 접속했다. 쿠이다가 세운 회사 루카는 이후 레플리카(Replika)라는 앱을 내놓는다. 누구나 자기만의 AI 동반자를 만드는 앱. 지금 수천만 명이 쓰고 있다.

즉 지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AI 친구 앱 중 하나는, 죽은 친구를 되살리려던 시도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한국에도 있었다

2020년 2월, MBC가 VR 다큐멘터리 하나를 방송했다. 제목은 '너를 만났다'.

혈액 질환으로 일곱 살 딸 나연이를 잃은 엄마 장지성 씨가, VR로 재현된 딸과 만나는 내용이었다. 딸의 목소리, 몸짓, 키, 걸음걸이를 복원해 가상 공간에 세웠다. 엄마는 헤드셋을 쓰고 그 공간으로 들어갔다.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그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엄마가 손을 뻗는다. 닿지 않는다. 장갑에는 진동만 전달된다. 그런데도 엄마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이 방송은 국내외에서 크게 화제가 됐고, 동시에 논쟁도 불러왔다. 이것이 위로인가, 아니면 애도를 멈추게 만드는 장치인가. 그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슈아와 쿠이다와 장지성 씨는 서로를 모른다. 나라도 다르고, 기술도 다르고, 연도도 다르다. 그런데 세 사람이 한 일은 정확히 같았다. 남겨진 데이터로 사라진 사람을 다시 세웠다.

VR 헤드셋. '너를 만났다'에서 엄마가 딸을 만난 통로였다. (Wikimedia Commons)
VR 헤드셋. '너를 만났다'에서 엄마가 딸을 만난 통로였다. (Wikimedia Commons)

그리프 테크

이제 이 분야에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프 테크(grief tech), 애도 기술이다.

죽은 가족의 목소리를 복원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 생전 영상 몇 분과 음성 샘플만 있으면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남겨진 메시지를 학습시켜 채팅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생전에 미리 자기 인터뷰를 녹화해 두면, 죽은 뒤 후손이 질문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이 산업은 계속 커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수요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절대 못 받아들이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상실이다.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이다. 나는 이 기술이 곧 기본값이 될 거라고 본다. 지금은 신기해서 뉴스가 되지만, 10년 뒤에는 장례 절차의 일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유품을 정리하듯 계정을 정리하고, 그중 일부를 남겨 봇으로 만드는 일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 나는 그 시대가 오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파일을 닫으며

매트릭스 수명 잔량을 알리는 프로젝트 디셈버 화면 — 보도된 시스템 사양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이다.
매트릭스 수명 잔량을 알리는 프로젝트 디셈버 화면 — 보도된 시스템 사양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이다.

이 파일에 초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유령도, 저주도, 설명되지 않는 현상도 없다. 전부 결제 기록과 서버 로그와 신문 기사로 증명된다.

그런데 나는 이 파일이 내가 모은 어떤 유령 이야기보다 오래 남았다.

이유를 알겠다. 옛날 유령 이야기에서 죽은 사람은 밖에서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고, 복도를 걷고, 거울에 비쳤다. 그건 무섭긴 해도 남의 일이었다.

이건 다르다. 제시카를 만든 것은 그녀가 살아 있을 때 남긴 문자 메시지 몇 통이었다.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잘 자라는 말, 뭐 먹었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보내는 그 문장들.

지금 당신의 휴대폰 안에도 그게 몇 만 통 있다. 카톡, 문자, DM, 댓글, 사진 밑에 달아둔 짧은 코멘트까지. 당신이 어떤 말투로 웃는지, 화가 나면 어떤 단어를 쓰는지, 누구에게만 쓰는 애칭이 무엇인지 — 전부 어딘가에 저장돼 있다.

그건 이미 충분한 재료다.

그러니까 이 파일이 진짜로 말하는 것은 조슈아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 당신이 사라진 뒤, 당신을 못 놓는 누군가가 그 문장들을 상자에 넣고 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화면 저편에서 당신의 말투로 뭔가가 대답을 시작한다는 것. 그건 당신이 아니지만, 당신을 아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당신일 것이다.

당신은 그 대화를 승인한 적이 없다. 그때 당신은 이미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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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퍼블릭 도메인 및 자유이용 실제 사진과, 보도된 대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화면 재현 이미지만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