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11월, 캐나다 북부의 얼어붙은 황무지를 홀로 걷던 사냥꾼 조 라벨(Joe Labelle)은 앤지쿠니 호숫가의 한 이누이트 마을에 들어섰다. 전에도 들른 적 있는, 사람이 살던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날 마을은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카리부 가죽으로 만든 텐트 안에는 아직 온기가 남은 듯한 음식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화덕 위 냄비에는 조리하다 만 요리가 굳어 있었다. 그러나 마을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서른 명 남짓 되던 주민이 한 명도 남김없이, 옷과 총과 음식을 그대로 둔 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을 개들은 밖에 묶인 채 굶어 죽어 있었고, 외곽의 무덤 하나는 누군가 돌을 걷어내 텅 빈 채 파헤쳐져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사라진 마을' 혹은 '앤지쿠니 호수 실종 사건'으로 불리는 이야기의 골자다. 하지만 이 소름 끼치는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즐겨 하는 '전설'과 경찰 서류에 실제로 적힌 '기록'이라는 두 얼굴이 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략 이렇게 흘러간다. 조 라벨은 노련한 덫 사냥꾼이었고, 앤지쿠니 호숫가의 이누이트 마을과도 안면이 있었다. 그날 밤 몸을 녹일 곳을 찾아 마을로 향한 그는, 멀리서부터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여느 때라면 개 짖는 소리와 사람들의 기척이 들려야 할 마을이 무덤처럼 조용했던 것이다.
마을에 들어선 그가 본 것은 하나같이 오싹한 정황이었다. 텐트마다 사람이 방금 자리를 뜬 것처럼 살림살이가 그대로였다. 어떤 텐트에는 바느질하다 만 카리부 가죽옷이 뼈바늘이 꽂힌 채 놓여 있었다. 화덕의 불은 이미 꺼져 재만 남았지만, 그 위에는 먹다 만 음식이 그대로였다. 사냥꾼에게 목숨과도 같은 총들이 텐트 안에 버려지듯 남아 있었다. 그 혹독한 북극에서 사람이 총과 음식을 두고 제 발로 떠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라벨은 서둘러 가장 가까운 전신소로 가서, 캐나다 기마경찰(RCMP)에 이 기이한 상황을 신고했다고 전해진다.

꺼진 불, 굶어 죽은 개, 파헤쳐진 무덤
전설을 특히 잊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세 가지 세부 장면이다. 첫째는 꺼진 불 위에 남은 음식이다. 사람들이 급히, 그것도 식사 도중에 사라졌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둘째는 개들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마을 개들은 밖에 묶인 채 굶어 죽어 눈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고 한다. 이누이트에게 썰매개는 생존을 위한 소중한 재산이다. 그런 개들을 묶어 둔 채 방치하고 떠났다는 것은, 사람들이 개를 챙길 겨를조차 없었거나, 애초에 '떠난' 것이 아님을 뜻하는 듯했다.
그리고 셋째, 가장 불길한 장면은 무덤이었다. 마을 외곽의 한 무덤이 파헤쳐져 있었는데, 이는 짐승의 소행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무덤을 덮고 있던 돌들이 짐승이 흩뜨린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 정성 들여 하나씩 걷어낸 듯 가지런히 옆에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시신이 사라진 무덤. 살아 있던 사람들이 사라진 것도 모자라, 이미 땅에 묻힌 죽은 자까지 사라졌다는 이 대목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실종을 넘어 초자연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야기가 세상에 퍼진 방식
이 이야기가 처음 활자로 세상에 나온 것은 1930년 11월, 엠멧 켈러허(Emmett E. Kelleher)라는 기자의 손을 통해서였다. 그는 라벨이 겪었다는 일을 극적인 필치로 엮어 신문 기사로 내보냈고, 기사에는 앤지쿠니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무덤 사진 한 장까지 곁들여졌다. 자극적인 제목과 오싹한 세부 묘사를 단 이 기사는 순식간에 여러 신문에 퍼졌다.
이야기가 진짜로 '전설'이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1959년, 작가 프랭크 에드워즈(Frank Edwards)가 초자연 현상을 모은 대중서 《과학보다 낯선(Stranger than Science)》에서 앤지쿠니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에드워즈의 손을 거치며 이야기는 한층 매끈하고 극적으로 다듬어졌고, "사라진 사람 수", "굶어 죽은 개", "빈 무덤" 같은 세부가 확정된 사실처럼 굳어졌다. 이 책이 널리 읽히면서 앤지쿠니는 UFO·초자연 애호가들 사이에서 '마을 하나가 통째로 증발한 사건'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앤지쿠니 전설의 형태는, 사실 최초의 목격담보다 이 책을 통해 완성된 셈이다.

경찰 서류가 말하는 것
그렇다면 실제 기록은 무엇을 말할까. 이야기가 퍼지자 캐나다 기마경찰(RCMP)은 이 사건을 조사했고, 그 결론은 대중의 기대와 정반대였다. 경찰에 따르면, '서른 명이 통째로 사라진 마을'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앤지쿠니 호수 일대는 그렇게 큰 정주 마을이 들어설 만한 곳이 아니었고, 그 규모의 이누이트 집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신고나 기록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RCMP는 켈러허의 기사가 나온 직후에 이미 이 이야기의 신빙성을 검토했으며, 기사에 실린 무덤 사진이 사건과 무관한 다른 사진이라는 점, 그리고 조 라벨이 겪었다는 정황을 뒷받침할 물증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후대에 이르러 RCMP는 이 사건을 사실상 '지어낸 이야기(도시전설)'로 규정하고, 그런 대규모 실종은 일어난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극한의 북극에서 소규모 야영지가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니고, 사냥감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즉,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라질 마을'이 없었다는 것이 기록의 요지다.

그럼에도 전설이 죽지 않는 이유
기록이 이렇게 분명한데도, 앤지쿠니 전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야기의 '그림'이 너무나 강렬하다. 꺼진 불 위의 음식, 묶인 채 굶어 죽은 개, 텅 빈 무덤이라는 세 장면은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이미지의 힘 앞에서, "그런 마을은 없었다"는 건조한 행정적 결론은 좀처럼 이야기를 이기지 못한다.
또 하나는 무대가 주는 힘이다. 인간이 거의 발을 들이지 않는 캐나다 북극권의 광막한 설원, 몇 달씩 이어지는 어둠과 혹한은 그 자체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법한' 배경이 되어 준다. 검증이 어려운 먼 변방일수록, 이야기는 반증되기보다 부풀려지기 쉽다. 게다가 이야기가 애초에 자극적인 신문 기사에서 출발해, 사실 검증보다 재미를 앞세운 대중서를 거쳐 완성됐다는 점도 크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경찰의 debunking'보다 '오싹한 원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앤지쿠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사라진 마을의 진실보다 이야기가 살아남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전설과 기록이 정면으로 부딪칠 때, 사람의 마음을 오래 붙드는 쪽은 대개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두려움이다. 앤지쿠니 호숫가에 서른 명의 마을이 실재했든 아니든, 꺼진 불 위에 놓인 그 음식의 이미지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식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