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2일 오전,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학구리의 한 매실밭에서 신고 한 통이 접수됐다. 밭주인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심하게 부패한 남성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여름의 문턱, 초록이 짙어지던 그 밭에서 발견된 것은 이미 머리 부분이 백골에 가까운 변사체였다. 처음에 이 시신은 그저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처리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40일이 지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시신이 그해 봄 온 나라가 뒤쫓던 한 인물 — 세월호를 소유한 회사의 실소유주로 지목돼 도피 중이던 유병언이라고 발표했다. 발표는 사건을 끝맺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물음을 열었다. 여름을 앞둔 시점에 시신은 어떻게 그토록 빨리 백골이 됐는가. 지문과 DNA를 확인하는 데는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이것은 하나의 시신을 둘러싸고 법의학이 답하지 못한 물음들에 관한 이야기다.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
발견 장소는 순천 시가지에서 벗어난 한적한 산자락이었다. 인근 송치재 휴게소로부터 2.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매실밭,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곳이었다. 밭을 돌보던 주인은 나무 사이 풀숲에서 사람의 형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마주한 것은 이미 상당 부분 부패가 진행된 남성의 시신이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신원은커녕 나이나 인상착의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초여름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시신은 오래 방치된 흔적이 역력했고, 주변 풀숲과 흙에는 시간의 무게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이 단계에서 시신은 어떤 특정 인물과도 연결되지 않았다. 경찰은 통상의 절차에 따라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접수하고, 신원 확인을 위한 감식을 의뢰했다. 이 평범한 한 건의 변사 사건이 두 달 뒤 온 나라를 뒤흔들 이름과 이어지리라고는, 그때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배경 — 온 나라가 찾던 사람
여기서 잠시, 이 시신이 놓인 배경을 짚어 둘 필요가 있다. 그해 4월, 한국은 한 여객선의 침몰이라는 큰 참사를 겪었다.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고, 온 사회가 오래도록 슬픔에 잠겼다. 그 배를 소유한 회사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인물이 바로 유병언이었고, 검찰은 그를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소환에 응하지 않은 채 자취를 감췄고, 수배와 도피가 이어졌다.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고 수천 명이 동원된 추적이 몇 달째 계속되던 상황이었다.
이 글은 그 참사의 원인이나 책임을 다투려는 것이 아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는 애도의 자리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 다만 이 배경을 짚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온 나라의 이목이 한 사람의 행방에 쏠려 있던 바로 그때,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 한 구가 조용히 발견돼 있었다는 사실 — 그리고 그 두 사건이 무려 40일이 지나서야 하나로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40일의 공백 — 지문은 왜 확인되지 않았나
가장 먼저 제기된 의문은 시간이었다. 시신은 6월 12일에 발견됐지만, 그것이 유병언이라는 결론은 7월 하순에야 나왔다. 그 사이 40일 가까운 공백이 있었다. 온 나라가 한 사람을 찾고 있었고, 그 사람으로 밝혀질 시신은 이미 발견돼 안치돼 있었는데도, 두 사실은 오래도록 이어지지 못했다.
경찰의 설명에 따르면, 발견 직후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지문 감식이 시도됐다. 왼손 손가락을 대상으로 한 첫 감식이 실패하자, 며칠 뒤 다시 한 번 감식이 이루어졌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부패의 정도가 심해 지문 자체를 온전히 채취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결국 신원을 가른 것은 지문이 아니라 DNA였다. 국과수는 이 시신의 DNA를 그간 수사 과정에서 확보해 둔 유병언의 DNA, 그리고 그의 형의 DNA와 대조해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뒤늦게 오른손 손가락에서 채취한 지문 하나도 유병언의 것과 일치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물은 것은 결과가 아니라 속도였다. 왜 40일이었나. 온 국가의 역량이 한 사람을 쫓던 그 시기에, 손끝의 지문 하나를 확인하는 데 어째서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가. 이 물음은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았다.

백골화의 속도 — 여름을 앞두고 왜 그렇게 빨리
두 번째이자 가장 널리 회자된 의문은 부패의 속도였다. 국과수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시신의 사망 시점은 대체로 5월 하순 무렵으로 추정됐다. 발견은 6월 12일. 그렇다면 시신이 밭에 놓여 있던 기간은 길게 잡아도 3주 안팎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발견 당시 시신은 머리와 목 부위가 백골에 가깝게 드러날 만큼 부패가 진행돼 있었다. 여름의 한복판도 아닌, 아직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채 3주가 안 되는 사이에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부패가 진행될 수 있는가 — 이것이 많은 이들이 던진 물음이었다.
법의학의 답은 '가능하다'는 쪽이었다. 시신의 부패 속도는 기온과 습도, 그리고 무엇보다 시신이 놓인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땅에 묻힌 시신과 달리, 노출된 야외에 방치된 시신은 훨씬 빠르게 부패한다. 특히 곤충의 활동은 이 속도를 극적으로 앞당긴다. 실제로 국과수는 이 시신에 대해 머리와 목 부위만 백골화가 진행됐고 나머지 부위는 조직과 피부가 상당 부분 남아 있었으며, 내부 장기의 대부분은 구더기의 활동으로 소실됐다고 설명했다. 다습한 초여름의 야외, 그리고 곤충의 활동이라는 조건이 겹치면 이례적으로 빠른 부패도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그럼에도 이 설명이 모든 의문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과 '틀림없이 그러하다'는 것 사이의 간극은, 사인이 끝내 밝혀지지 않으면서 더욱 벌어졌다.

밝혀지지 않은 사인, 그리고 남은 물음들
시신의 신원은 확인됐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음 — 이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가 — 에는 끝내 답이 나오지 않았다. 국과수는 독극물, 질식, 지병, 외력에 의한 사망 가능성 등을 두루 검토했으나, 부패가 심해 사인을 특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타살인지, 지병에 따른 자연사인지, 다른 어떤 경위인지 — 그 어느 것도 확정할 수 없었다. 시신 곁에서는 그가 평소 복용하던 것으로 알려진 약병 하나가 발견됐지만, 그것만으로 죽음의 정황을 재구성하기에는 부족했다.
사인이 공백으로 남자, 그 공백은 온갖 의문과 소문으로 채워졌다. 시신이 유병언이 아니라는 주장, 다른 곳에서 숨진 뒤 옮겨진 것이라는 주장, 발견 시점이나 정황이 조작됐다는 주장까지 갖가지 이야기가 퍼졌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지문과 DNA라는 두 가지 독립된 감정이 모두 동일 인물을 가리켰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고, 이를 뒤집을 만한 확증은 제시된 바 없다. 여기서 살아 있는 것은 '단정'이 아니라 '의문'이다.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물음은 충분히 오래 이어질 만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씁쓸한 뒷이야기가 더해졌다. 시신을 처음 발견해 신고한 매실밭 주인은, 신고 당시 그 시신이 '신원 미상의 변사체'였다는 이유로 현상금을 받지 못했다. 온 나라가 찾던 인물을 사실상 처음 발견한 사람이었지만, 발견 시점에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는 논리였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몇 해 뒤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졌으나 결국 국가의 손이 올라갔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이 사건은, 그렇게 사인이라는 가장 큰 공백을 남긴 채 매듭지어졌다.

남는 것
오늘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렇다. 2014년 6월 12일,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심하게 부패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40일 뒤, 지문과 DNA 감정을 근거로 그 시신은 도피 중이던 유병언이라고 공식 발표됐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정확히 언제 죽음에 이르렀는지 — 사인은 부패로 인해 끝내 특정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이토록 많은 물음을 남긴 데에는 여러 조건이 겹쳐 있었다. 온 나라의 이목이 쏠린 인물이었다는 점, 발견에서 신원 확인까지 40일이라는 긴 공백이 있었다는 점, 여름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빨랐던 부패, 그리고 끝내 밝혀지지 않은 사인. 이 조건들 하나하나는 개별적으로 설명될 여지가 있었지만, 겹쳐 놓고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물음표를 남겼다. 그가 마지막으로 걸음을 멈춘 곳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한적한 매실밭이었고, 그 조용한 밭은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답 하나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가. 그 물음은 여전히 열린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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