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4년 여름, 프랑스 남부의 산악 지방 제보당(Gévaudan). 소 떼를 돌보던 한 젊은 여자가 안개 너머로 무언가가 목초지를 가로질러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몸을 낮추고 있었고, 빨랐으며, 그녀가 아는 어떤 개보다도 지나치게 컸다. 소 떼가 흩어졌다. 짐승들이 여자와 그 형체 사이를 가로막았고, 덕분에 여자는 살아남아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 그리고 그 증언은 곧, 겁에 질린 온갖 변형으로, 고원 전역에서 되풀이되기 시작했다. 이후 3년 동안, 무언가가 이 산골을 옮겨 다니며 양치기들을, 대개는 홀로 가축을 몰고 나온 여자와 아이들을 죽였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1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 있었다. 프랑스 왕은 전문 사냥꾼들을 보냈고, 끝내는 자신의 총잡이까지 보냈다. 괴물 같은 늑대 한 마리가 사살되고 박제되어 궁정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두 세기 반이 지난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제보당의 괴수가 실제로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끝나지 않은 공포의 이야기다.

해질녘 안개에 잠긴 18세기 프랑스 고원의 계곡, 텅 빈 목초지,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해질녘 안개에 잠긴 18세기 프랑스 고원의 계곡, 텅 빈 목초지,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산속의 지방

제보당은 오늘날 로제르(Lozère) 지역에 해당하는, 외지고 인구가 희박한 변방이었다. 높은 화강암 고원과 깊은 숲의 협곡, 그리고 바람이 좀처럼 멎지 않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고지대가 이어지는 땅이었다. 18세기의 이곳은 가난하고 고립돼 있었으며, 사람들은 작은 농장과 촌락에 흩어져 살면서 낮이면 소와 양을 넓은 황야로 몰고 나갔다. 늑대는 프랑스 시골 대부분이 그러했듯 이곳에서도 삶의 일부였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숲의 가장자리를 경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1764년 여름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일은, 제보당 사람들에게 이름 붙일 말도, 맞설 방도도 없는 무언가였다.

기록에 남은 첫 죽음은 1764년 6월 30일에 일어났다. 잔 불레(Jeanne Boulet)라는 열네 살 소녀가 가축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마지막 희생자가 아니었고, 마지막에 가깝지도 않았다. 주가 흐를수록 더 많은 목자가 발견됐다 — 아니,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습격에는 하나의 양상이 있었고, 바로 그 점이 지방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 그것은 마치 의도를 가진 듯, 집에서 떨어진 높은 목초지에서 홀로 있는 이들을 노렸다. 목과 머리를 노렸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한사코 말했다 — 그것은 보통 늑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고.

해질녘 안개 낀 산등성이 위 홀로 선 목자의 실루엣, 멀리 양 떼, 18세기 (AI 생성 이미지)
해질녘 안개 낀 산등성이 위 홀로 선 목자의 실루엣, 멀리 양 떼, 18세기 (AI 생성 이미지)

생존자들이 묘사한 것

괴수와 마주친 모든 이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그것을 물리쳤고, 어떤 이는 자기 소 떼나 지나가던 나그네 덕에 살아남았으며, 어떤 이는 그저 살아남아 이야기를 남겼다. 그리고 그들이 거듭 묘사한 것은, 평생 보아 온 늑대와는 좀처럼 들어맞지 않았다. 그 짐승은 거대했다고 그들은 말했다 — 송아지만 하다고, 어린 암소만 하다고. 어떤 이는 털이 붉은빛이었고 등줄기를 따라 검은 선이 나 있었다고 했고, 어떤 이는 거의 검은색이어서 땅거미 속으로 녹아 사라지는 듯했다고 맹세했다. 넓고 거의 납작한 머리, 떡 벌어진 가슴, 그리고 길고 굵은 꼬리 — 목격자들은 그것이 꼬리를 마치 채찍처럼 썼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도약할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뒷다리로 설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섬뜩하게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 증언들은 산에서 흘러나와 파리의 신문에 실렸고, 거기서 다시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옮겨질 때마다 더 기이하고 더 웅장해졌다. 몸을 웅크린 채 비늘로 뒤덮인, 용을 닮은 괴물이 속수무책의 희생자를 노리는 판화가 인쇄됐다 — 목격담보다 상상에 더 빚진 그림들이었다. 그러나 그 판화의 공포를 걷어내도, 완강히 남는 핵심이 있었다. 크고, 대담하고, 유난히 공격적인 포식자가 한정된 지역을 무대로 몇 년에 걸쳐 사람을 사냥했다는 것. 제보당의 늑대들이 결코 그런 적이 없었던 방식으로.

짙은 숲 안개 속을 지나는 흐릿하고 낮은 짐승의 형체, 불분명, 얼굴 안 보임 (AI 생성 이미지)
짙은 숲 안개 속을 지나는 흐릿하고 낮은 짐승의 형체, 불분명, 얼굴 안 보임 (AI 생성 이미지)

왕이 사냥꾼을 보내다

1764년 겨울이 되자 공포는 지방의 크기를 넘어섰다. 괴수의 소문은 베르사유의 루이 15세 궁정에까지 닿았고, 이 사건은 국가적 공포인 동시에 국가적 수치가 됐다 — 스스로 유럽에서 가장 문명화된 나라라 자부하던 왕국이, 짐승 한 마리로부터 제 백성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왕실이 나섰다. 가난한 집안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현상금이 내걸렸다. 드느발(Denneval)이라는 부자(父子) 사냥꾼이 사냥개 무리를 이끌고 고원으로 파견됐다. 몇 달의 사냥에도 죽음이 멈추지 않자, 왕은 더 이름 높은 인물을 보냈다. 프랑수아 앙투안(François Antoine), 자신의 총을 드는 어전 총잡이였다.

1765년 9월, 앙투안과 그의 부하들은 샤즈(Chazes)의 숲에서 거대한 회색 늑대 한 마리를 쓰러뜨렸다 — 마침내 그 공포에 걸맞아 보이는, 그토록 큰 짐승이었다. 그것은 치수가 재어지고, 칭송받고, 보존됐다. 사체를 본 몇몇 생존자는 그 이빨 자국을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그 거대한 늑대는 개선하듯 베르사유로 옮겨져 궁정 앞에 전시됐고, 프랑수아 앙투안은 포상을 받고 영웅이 되어 돌아갔다. 왕의 괴수는 죽었다. 지방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습격이 다시 시작됐다.

오래된 나무판 위에 놓인 18세기 부싯돌식 사냥용 머스킷, 어둑한 저조도,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나무판 위에 놓인 18세기 부싯돌식 사냥용 머스킷, 어둑한 저조도,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장 샤스텔, 그리고 끝

그 뒤로도 거의 2년 가까이 죽음은 이어졌다. 파리의 신문에서는 이제 조용해졌지만 — 궁정은 이미 승리를 선언하고 관심을 거둔 뒤였다 — 사람들이 여전히 높은 목초지에서 죽어 가던 제보당의 산속에서는 조금도 조용하지 않았다. 끝은, 마침내 찾아왔을 때, 어전 사냥꾼이 아니라 한 지역 주민의 몫이었다. 1767년 6월 19일, 지역 귀족 아프셰르 후작(Marquis d'Apcher)이 조직한 대규모 몰이 사냥 도중, 장 샤스텔(Jean Chastel)이라는 농부가 마침내 습격을 멈추게 한 그 짐승을 쏘아 죽였다고 전해진다.

샤스텔의 그 한 발 주위로 곧 전설이 자라났다. 3년의 죽음을 납득하기 위해 겁먹은 나라가 지어내는 그런 이야기였다. 평범한 총알로는 괴수를 결코 상하게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 샤스텔이 축성된 은메달로 — 혹은 녹여 만든 성물로 — 주조한 총알을 장전했다는 이야기, 짐승이 다가오는 동안 그가 태연히 기도서를 읽다가 책을 덮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이야기. 이 가운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실제 사건의 뼈대 위에 자라난 설화인지, 이제 와 아무도 갈라낼 수 없다. 기록으로 남은 것은 더 단순하고 더 기이하다. 그 6월의 하루 이후, 제보당의 죽음은 멈췄다. 산골 사람들을 죽여 온 그 무언가는, 마침내 사라졌다.

창백한 달빛 아래 밤의 어두운 숲 속 빈터, 나무 사이의 안개, 형체 없음 (AI 생성 이미지)
창백한 달빛 아래 밤의 어두운 숲 속 빈터, 나무 사이의 안개, 형체 없음 (AI 생성 이미지)

그래서, 그것은 무엇이었나

여기서 역사는 끝나고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우리는 그 6월에 무엇이 죽었는지, 무엇이 그 살육을 저질러 왔는지를 끝내 진정으로 알지 못했으니까. 샤스텔이 쏜 짐승은 매장됐다가 전시를 위해 파내어졌고, 이리저리 옮겨지다 세월 속에 사라졌다. 현대의 검증에 부칠 만한 믿을 만한 유해는 남아 있지 않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목격담과 교구의 매장 기록, 그리고 여러 설(說)뿐이다 — 그리고 그 설들은 단 한 번도 서로 합의하지 못했다.

가장 냉정한 설명은 가장 단순한 것이다. 늑대. 제보당에는 늑대가 있었고, 프랑스에는 늑대가 사람을 습격한 길고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있었다. 크고 대담한 늑대 한 마리가, 혹은 늑대 무리가, 외진 지방을 3년에 걸쳐 사냥했다고 보면 괴물 없이도 그 공포의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늑대설은 생존자들이 한사코 주장한 세부와 부딪친다 — 그 엄청난 크기, 기이한 색깔, 대담함,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진 지속적인 양상. 그래서 다른 설명들이 밀려들었다. 어떤 이들은 이국의 짐승을 제시했다 — 순회 동물 쇼에서 탈출한 줄무늬 하이에나나 큰 고양잇과 맹수라면, 그 낯선 털과 납작한 머리, 익숙지 않은 형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잡종을 지목했다 — 늑대와 교배된 거대한 개,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만들어진.

그리고 가장 어두운 설이 있다 — 그 짐승 뒤에 사람이 서 있었다는 것. 일부 희생자는 목이 잘렸거나, 어떤 늑대도 그럴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을 불안케 하는 방식으로 정확히 상처 입었다고 전해졌다. 여기서 인간 살해자에 대한 생각이 자라났다 — 괴수의 공포를 이용해, 어쩌면 훈련된 짐승까지 이용해 제 범행을 숨긴 살인자. 오싹하고, 오래된 발상이며, 한 번도 입증된 적이 없다 — 3년에 걸친 그 숱한 근접 조우 중에, 괴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사람을 봤다고 말한 목격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늑대든, 이국에서 들어온 짐승이든, 괴물 같은 잡종이든, 짐승의 그림자 뒤에 숨은 살인자든 — 모든 설은 몇몇 질문에는 답하지만 나머지에서 걸려 넘어진다. 이것이 제보당의 진짜 섬뜩함이다. 괴물이 안개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3년 동안 100명이 죽었는데도 역사가 누가, 혹은 무엇이 그 칼을 쥐고 있었는지 끝내 합의하지 못한 채 사건을 종결했다는 것. 산은 그 답을 삼킨 채, 지금도 내놓지 않고 있다.

동틀 무렵의 텅 빈 프랑스 고원, 풀 위의 차가운 안개, 멀리 나무숲,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동틀 무렵의 텅 빈 프랑스 고원, 풀 위의 차가운 안개, 멀리 나무숲, 사람 없음 (AI 생성 이미지)
제보당 고원의 안개 속을 천천히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시선, 나무 사이로 언뜻 보이는 낮은 형체, 분위기 재현 (AI 생성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