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내내, 그 가족이 살던 프랑스 낭트의 조용한 거리에는 이렇다 할 이상이 없어 보였다. 좁고 길쭉한 단독주택의 덧창은 닫혀 있었지만, 그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현관문에는 손으로 쓴 쪽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모든 우편물은 발신인에게 반송할 것." 잔디는 손질이 안 된 채였지만, 봄 잔디란 원래 그렇기도 하다. 이웃들은 그저 가족이 어디론가 떠났으려니 했다. 햇볕 좋은 곳으로, 친척 집으로, 따뜻한 어딘가로. 어떤 의미에서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어머니 쪽 친척들이 계속 경찰을 다그치고, 경찰이 여섯 번째로 그 집을 다시 찾은 뒤에야, 누군가 비로소 새로 부어 굳힌 테라스 콘크리트 아래를 들여다볼 생각을 했다. 말끔한 새 콘크리트 판 밑, 마대에 싸이고 생석회가 덮인 채로, 어머니와 네 자녀가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며칠 전 이미 수백 킬로미터 남쪽에서, 갈 이유가 전혀 없는 도시들을 태연히 걸어 지나는 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혔고 — 그러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아는 사람 누구에게나 더없이 평범했던 한 남자와, 그가 남긴 끔찍한 침묵에 관한 이야기다.

해질녘, 덧창이 닫힌 좁은 단독주택들이 늘어선 프랑스 서부의 조용한 주택가 거리, 인적 없음 (AI 생성 이미지)
해질녘, 덧창이 닫힌 좁은 단독주택들이 늘어선 프랑스 서부의 조용한 주택가 거리, 인적 없음 (AI 생성 이미지)

모두가 부러워하던 가족

이웃에게도, 다니던 성당에도, 아이들의 학교 친구들에게도 그들은 감출 것 하나 없는 가족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오래된 귀족 성(姓)과 거기에 어울리는 몸가짐을 지니고 있었다. 예의 바르고 말솜씨가 좋으며 신앙심이 깊은, 봉사활동에 나서고 남의 생일을 기억해 주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다정했고 주변의 사랑을 받았다. 자녀는 넷이었다. 이미 대학에 다니는 큰아들부터 아직 집에 있는 십 대 둘까지, 하나같이 총명하고 예의 발랐으며 저마다 자라나는 일로 분주했다. 맏이는 동네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린 자녀들은 음악 레슨을 받았고 친구가 있었으며 여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바깥세상 거의 누구도 몰랐던 것은,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얼마나 얇아져 있었는가였다. 반듯한 이름과 흐트러짐 없는 태도 뒤에서 이 가족의 살림은 소리 없이 무너져 있었다. 실패한 사업들이 있었고, 빚이 쌓였으며, 이미 존재하지 않는 돈으로 지탱하던 생활이 있었다. 사건 전해에 쓴 어느 이메일에서 아버지는 스스로를 "완전히 파산했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고 표현하며, 지금 당장 큰돈이 나타나지 않으면 몇 달 안에 자기 인생이 끝날 것이라고 적었다. 그 돈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2011년 초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가문의 작위를 물려받았다 — 그리고 그 노인이 물려줄 것이라곤 이름과 사냥용 소총 한 자루뿐,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생 '풍족함'을 연기하며 살아온 남자에게 그 유산은 안도가 아니라, 마지막 문이 닫히는 소리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벽난로 위 선반에 놓인 오래된 가족사진 액자, 얼굴은 돌려져 있거나 부드러운 그늘에 가려짐, 따뜻한 실내 (AI 생성 이미지)
벽난로 위 선반에 놓인 오래된 가족사진 액자, 얼굴은 돌려져 있거나 부드러운 그늘에 가려짐, 따뜻한 실내 (AI 생성 이미지)

집이 침묵에 잠긴 그 한 주

훗날 수사관들이 맞춰 낸 시간표는 소름 끼치도록 평범했다. 4월 초, 가족은 여느 때처럼 지냈다. 학교, 일, 잔심부름 — 그러다 어느 순간 뚝 끊겼다. 큰아들은 그달 초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온 뒤 피자 가게로 급여를 받으러 나타나지 않았다. 그답지 않은 일이었다. 비슷한 무렵부터 아이들은 학교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아이의 휴대전화로는 "다들 잘 있다, 가족이 여행 중"이라는 문자가 친척들에게 갔다. 어딘가 조금 이상하고, 조금 지나치게 매끄러운 문장이었지만, 아직은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현관의 쪽지와 닫힌 덧창이 있었다. 이웃들은 그 고요함을 눈치챘지만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 넘겼다. 결국 이 침묵과 이상하게 매끄러운 안부 문자에 불안을 느낀 어머니 쪽 가족이 사태를 밀어붙여, 경찰에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재촉했다. 경찰이 집 안을 훑고 뒤편의 작은 정원으로 걸어 나갔을 때는 이미 몇 주가 지나 있었다. 그 뒤편 테라스는 최근에, 그것도 아주 공들여 새로 깔린 상태였다.

새로 부어 굳힌 옅은 색 콘크리트 자국이 있는 작은 뒷마당, 흐린 빛, 인적 없음 (AI 생성 이미지)
새로 부어 굳힌 옅은 색 콘크리트 자국이 있는 작은 뒷마당, 흐린 빛, 인적 없음 (AI 생성 이미지)

그 편지가 주장한 것

이 모든 것이 풀려나오기 전에, 아버지의 친척과 지인 몇 사람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이미 발송돼 있었다. 그 내용은 놀라웠다. 그는 차분하게, 그리고 길게 적었다 — 자신은 수년간 미국의 마약단속 기관을 위해 비밀리에 잠입 요원으로 일해 왔으며, 신분이 노출되었고, 가족 전체의 안전을 위해 새 신분을 얻어 따뜻하고 먼 어딘가 해외로 이주했다고. 우리를 찾지 말라, 편지는 사실상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걱정 말라.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 묻는 사람에겐 우리가 지구 반대편으로 이사 갔다고 전하라.

편지를 받은 어떤 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너무 터무니없어서 도리어 안심이 될 정도였다 — 그저 이상한 오해이겠거니. 하지만 다른 이들은 속이 뒤집히는 무언가를 알아챘다. 편지는 타자로 쳐졌고, 흠 하나 없이 깔끔했다. 맞춤법 오류도, 실수도, 이 남자의 평소 글에 흔하던 오타 하나 없었다. 그것은 위기 속에 급히 갈겨쓴 메시지가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해 미리 공들여 작성해 둔 문서처럼 읽혔다. 수사관들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 자백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이미 테라스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던 자가 써 둔 위장용 각본이라고.

나무 탁자 위에 놓인 타자로 친 종이 한 장, 글자는 흐릿해 판독 불가, 차가운 아침 빛 (AI 생성 이미지)
나무 탁자 위에 놓인 타자로 친 종이 한 장, 글자는 흐릿해 판독 불가, 차가운 아침 빛 (AI 생성 이미지)

남쪽으로, 도시 하나하나 지나며

낭트의 집이 고요히 잠겨 있는 동안, 아버지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 뒤로 며칠에 걸쳐, 카메라와 영수증이 그가 프랑스를 세로로 가로질러 지중해 연안의 온기를 향해 꾸준히 남하하는 자취를 남겼다. 그는 호텔에 묵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도중에 여러 성당을 들렀다고 전해진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마치 저만의 어떤 순례나 작별 여행이라도 하듯이. 감시 카메라 속의 그는 침착하고 평범한, 어깨에 가방을 멘 중년 남자였다 — 표정에도 걸음에도, 그를 온 나라가 쫓는 수배자로 짐작하게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수사관들에 따르면 그의 짐 안에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소총이 들어 있었다. 한 장면에서는 손에 스릴러 문고본을 쥐고 있었다.

자취는 4월 중순, 남부 해안에 가까운 바르(Var) 지방의 한 작은 도시에서 좁혀졌다. 현금인출기가 그가 돈을 뽑는 장면을 기록했다. 저렴한 호텔이 그의 투숙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호텔 주차장의 카메라가 그의 마지막으로 확인된 모습을 잡았다 — 차를 그 자리에 버려둔 채 걸어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한 남자. 그 뒤로는,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의 목격도, 체포도, 시신도, 매듭도. 그는 그 지방의 숲 우거진 언덕 쪽으로 걸어 나가, 모든 렌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지금껏 한 번도 깨지지 않은 침묵 속으로 그저 계속 걸어갔으리라 추정된다.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 외곽의 거의 빈 모텔 주차장, 따뜻한 저녁 빛, 멀리 언덕, 인적 없음 (AI 생성 이미지)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 외곽의 거의 빈 모텔 주차장, 따뜻한 저녁 빛, 멀리 언덕, 인적 없음 (AI 생성 이미지)

아래는 이 이야기를 위해 만든 짧은 분위기 영상이다 — 자취가 끊긴 언덕을 향해, 텅 빈 남부의 도로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장면이다. 사건의 실제 영상이 아니라 분위기를 재현한 연출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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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그리고 글래스고의 그 남자

그 뒤로 벌어진 것은 현대 유럽 역사상 손꼽히게 크고 끈질긴 추적극이었다. 그의 얼굴이 대륙 전역과 그 너머로 퍼졌다. 수사관들은 재정 상태를, 실패한 사업들을, 쌓인 빚을, 무너지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견디지 못한 한 남자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파헤쳤다. 그가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가설을 쫓았다 — 몇 주 전 미리 취득해 둔 총기 소지 허가, 생석회, 콘크리트, 미리 써 둔 위장 편지 —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마주하느니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좀 더 조용한 가능성도 쫓았다. 남부 프랑스를 훑은 그 작별 여행이 도피가 아니라, 시신이 끝내 발견되지 않은 그 언덕 어딘가에서의 자신의 죽음으로 끝났으리라는 것. 동굴들이 수색됐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2019년, 사건이 발작하듯 다시 요동쳤다. 제보를 받은 경찰이 파리발 항공편으로 글래스고 공항에 도착한 한 남자를 체포했다. 인상착의가 들어맞았다 — 나이도, 생김새도, 주목받는 처지의 프랑스인이라는 점까지. 몇 시간 동안, 마침내 그 유령이 붙잡힌 듯했고, 소식은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 그러나 지문은 일부만 일치했고, DNA 검사는 음성으로 나왔으며, 남자는 풀려났다 — 예전에 여권을 도난당한 적 있는, 닮은 얼굴과 소문에 휘말려 악몽 속으로 끌려 들어간 무고한 은퇴자였다. 수배자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소동은 이 사건의 기묘한 힘을 더 깊게 새겼을 뿐이다 — 수년이 지나도 유럽의 절반이 여전히 낯선 이들의 얼굴에서 그를 보고 있다는 증거였으니.

밤의 공항 유리창에 빗줄기가 흘러내리고, 유리 너머로 활주로 불빛이 번져 보임, 인적 없음 (AI 생성 이미지)
밤의 공항 유리창에 빗줄기가 흘러내리고, 유리 너머로 활주로 불빛이 번져 보임, 인적 없음 (AI 생성 이미지)

남은 것들

당국이 분명히 하는 것은 하나다. 아버지는 여전히 유일한 용의자로, 아내와 네 자녀의 죽음과 관련해 유럽 전역에 수배돼 있다. 그러나 '수배 중'이 곧 '유죄 확정'은 아니다. 어떤 법정도 그를 재판하지 못했다. 누구도 그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체포영장 위의 이름 하나이자 수배 전단 위의 얼굴 하나 — 어떤 재판도 매듭짓도록 허락받지 못한 물음에 대한, '추정된 답'일 뿐이다. 그 너머의 모든 것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결국 추론이다. 무너진 재정도, 차분한 편지도, 서두르지 않은 남하도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지만, 정작 그 남자 자신은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고, 자수하지 않았으며, 죽음으로 확인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사건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열린 채로 남아 있다. 프랑스가 좀처럼 아물지 못하는 상처의 하나로. 낭트의 어느 단독주택 뒤편에서 테라스가 들춰졌고, 한 가족이 발견됐다. 남쪽으로 향하던 어느 도로 위에서, 침착한 중년 남자가 주차장을 걸어 나가 산 자들의 기록 밖으로 사라졌다. 이 두 사실 사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이 놓여 있다 — 그가 편지의 약속대로 따뜻하고 먼 어딘가에서 새 이름으로 숨어 지내고 있는지, 아니면 오래전 바르의 언덕에 몸을 누이고 온 나라가 그림자를 쫓게 내버려 둔 것인지. 프랑스는 15년째 그를 찾고 있다. 지금도 찾고 있다. 그리고 아는 사람 누구에게나 더없이 평범했던 그 남자는, 빛 밖으로 걸어 나간 뒤 다시는 목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