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부 우스터셔의 하그리 숲(Hagley Wood)은 언뜻 보면 그저 평범한 숲이다. 위치베리 언덕(Wychbury Hill) 자락에 우거진 나무들, 이끼 낀 밑동, 젖은 흙 냄새. 산책 나온 사람이 지나가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이 숲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 조금 다른 것을 떠올린다. 속이 텅 빈 늙은 느릅나무 한 그루, 그 컴컴한 구멍,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된 이름 없는 여자. 벨라라는 이름조차 사실은 누군가가 나중에 붙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진짜 누구인지는, 8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그 나무 구멍에서 시작한다. 나무가 사람을 삼켰다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 그 장면에서.

1943년 봄, 나무 구멍 속을 들여다본 소년들
1943년 4월 18일, 부활절을 앞둔 어느 봄날이었다. 동네 소년 넷이 하그리 숲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새 둥지를 뒤지거나 밀렵을 하러 온, 그 또래라면 흔한 장난이었다. 그 무렵 영국은 전쟁 한복판에 있었고, 식량은 귀했다. 숲에서 뭐라도 잡아 가면 저녁 식탁이 조금은 나아졌다.
소년들의 눈에 오래된 느릅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다. 밑동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속이 텅 빈 고목이었다. 그런 나무의 구멍 안에는 새가 둥지를 트는 일이 많았다. 한 소년이 나무 위로 기어올라 그 어두운 구멍 속을 들여다보았다. 새 둥지 대신, 그 안에는 사람의 두개골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짐승의 뼈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가 가지런히 박힌 그것은, 아무리 봐도 사람의 것이었다.
겁에 질린 소년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숲에 몰래 들어간 것부터가 혼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넷 중 막내는 그 밤 이후 그 어두운 나무 구멍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결국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털어놓았다. 이윽고 경찰이 그 나무 앞에 섰다.

나무가 삼킨 여자
경찰이 나무 구멍 안에서 수습한 것은,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은 한 사람의 유해였다. 오랜 세월 나무 속에 갇혀 있던 흔적이었다. 함께 남아 있던 몇 가지 물건이 그녀에 관한 실낱같은 단서를 건넸다. 손가락에 남은 금반지 하나, 낡은 옷의 조각들, 그리고 한 짝뿐인 신발. 이 작은 물건들만이, 이름 없는 그녀가 한때 살아 숨 쉬던 한 사람이었음을 증언했다.
법의학자의 소견은 이 사건을 단순한 변사가 아니라 하나의 미스터리로 바꾸어 놓았다. 유해의 주인은 여성이었다. 세상을 떠난 것은 발견 시점으로부터 최소 열여덟 달 전, 그러니까 1941년 가을 무렵이거나 그 이전으로 추정되었다. 입안에서는 얇은 천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그녀가 질식으로 숨졌을 가능성을 가리켰다.
무엇보다 서늘한 것은, 그녀가 어떻게 그 좁은 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법의학자는, 그 몸이 나무 구멍 안에 놓인 것은 숨을 거둔 직후, 아직 몸이 굳기 전이었으리라 보았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몸은 굳어 그 좁은 구멍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숨이 멎은 그녀를 서둘러 그 어두운 나무 속에 밀어 넣고 세상의 눈으로부터 감추었다는 뜻이었다. 나무가 여자를 삼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여자를 나무에게 먹인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여자가 누구인지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전쟁 통의 영국에는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그 가운데 이 이름 없는 여자와 맞아떨어지는 얼굴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담벼락 위에 나타난 이름, 벨라
사건이 미궁에 빠진 채 이듬해가 되었을 무렵, 이 이야기를 영영 잊히지 않게 만든 기이한 일이 시작되었다. 1944년, 이 지역의 담벼락과 벽에 하얀 글씨로 갈겨쓴 한 줄의 낙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벨라를 우물나무에 넣었나?"
누가 썼는지도, 왜 썼는지도 알 수 없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벨라(Bella)'라는 이름이었다. 경찰조차 신원을 알아내지 못한 그 여자를, 낙서를 쓴 이는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벨라'라고 불렀다. 이 이름이 정말로 그녀의 이름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지어낸 것에 불과한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낙서 한 줄이 이름 없던 유해에게 '벨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 이름이 그대로 사건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낙서가 그때 한 번으로 그쳤다면, 이 이야기는 아마 오래전에 잊혔을 것이다. 그러나 낙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지워지면, 어느 날 또 다른 벽 위에 같은 문장이 되살아났다. 마치 누군가 이 여자를 결코 잊게 두지 않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video controls playsinline preload="metadata" poster="/media/bella-1.jpg" style="width:100%;height:auto;border-radius:8px;"> <source src="/media/bella-clip.mp4" type="video/mp4"> </video>
안개에 잠긴 겨울 숲과 속이 뚫린 고목, 오래된 담벼락 위로 흐르는 스산한 공기 — 분위기를 재현한 영상이며 실제 기록 영상이 아니다.
70년 넘게 되풀이되는 낙서
가장 소름 끼치는 대목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낙서는 1944년에 한 번 나타나고 만 것이 아니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같은 문장은 지역 곳곳에서 유령처럼 되살아났다. 특히 위치베리 언덕 위에 서 있는 오래된 돌 기념비(오벨리스크)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 이 낙서가 되풀이해 나타나는 무대가 되었다.
문장은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다시 나타났다. 어떤 해에는 '우물나무(wych elm)'가 '마녀나무(witch elm)'로 바뀌어 쓰였고, 어떤 해에는 첫 단어가 다른 색으로 덧칠되어 문장의 의미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그러나 핵심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누가 벨라를 나무에 넣었나. 지워도 지워도, 이 물음은 근래에 이르기까지 몇 번이고 다시 벽 위로 떠올랐다.
이 되풀이되는 낙서를 두고 여러 짐작이 오간다. 어쩌면 진실을 아는 누군가가, 사건이 잊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대를 이어 써 내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미스터리에 매혹된 사람들이 그저 흉내 내어 이어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왜 이 문장을 계속 되살려 놓는지, 그 정체를 밝혀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자의 신원만큼이나, 이 낙서를 쓰는 손 또한 어둠 속에 남아 있다. 7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마녀, 스파이,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진실
벨라가 누구이며 누가 그녀를 나무에 넣었는가를 두고, 오랜 세월 동안 온갖 가설이 피어났다.
가장 음산한 쪽은 마녀나 주술과 얽힌 이야기다. 한 인류학자는, 유해에서 한쪽 손의 뼈가 나머지와 떨어진 채 나무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것이 옛 주술 의식과 닿아 있을지 모른다고 보았고, 여기에서 '이 사건이 의식 살인이었을 수 있다'는 오싹한 추측이 뻗어 나왔다. 이 지역에 오래전부터 전해지던 마녀 전설과 맞물리며, 벨라 이야기는 순식간에 주술과 저주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전혀 다른 방향의 가설도 있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 그리고 이곳은 군수 공장이 많던 잉글랜드 중부였다. 그래서 벨라가 사실은 독일 측을 위해 움직이던 첩자였고, 정체가 발각되어 입막음을 당한 것이라는 스파이설이 떠돌았다. 실제로 이 무렵 붙잡힌 독일 첩자와, 그와 얽혔다는 어느 여가수의 이름까지 거론되었다. 그러나 그 여가수는 키나 사망한 시기가 유해와 들어맞지 않아, 이 역시 확증에 이르지 못한 채 흩어졌다.
이 밖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벨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사라진 어느 여성에 관한 제보, 몇 년이 지나서야 나온 누군가의 어렴풋한 고백.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끝까지 밀고 나가면 반드시 어긋나는 지점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뿐이었다. 여러 차례 재수사가 이루어지고, 근래에는 유해를 되찾아 유전자 감식을 시도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으나, 세월이 너무 흘러 유해의 행방마저 온전히 좇기 어려운 형편이 되어 있었다.

나무 속에 남은 물음
벨라 이야기가 이토록 오래 사람의 등을 서늘하게 하는 까닭은, 초자연적인 저주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이야기에는 채워지지 않는 빈칸이 너무 많다. 그녀가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하필 그 나무 속이었는지 — 물음표만 남았을 뿐, 어느 것도 마침표로 닫히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장면만을 확실히 안다. 속이 텅 빈 늙은 나무, 그 어두운 구멍,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이름 없는 여자.
여기에 낙서가 소름을 한 겹 더 얹는다. 세상 대부분의 미제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 조용히 잊힌다. 그러나 벨라는 잊히지 않았다. 누군가가, 혹은 여럿이, 70년이 넘도록 벽 위에 같은 물음을 되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 물음은 답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답을 아는 자의 조용한 조롱 같기도 하다. 누가 벨라를 우물나무에 넣었나. 지워지면 다시 나타나고, 잊히려 하면 어느 벽 위에 되살아나는 그 한 줄.
오늘도 하그리 숲에는 안개가 흐른다. 그 옛 느릅나무는 이제 남아 있지 않다고 전해지지만, 위치베리 언덕의 오래된 기념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 언젠가 또, 어느 흐린 아침의 벽 위에서, 하얀 글씨 한 줄이 유령처럼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이름 없는 여자를 결코 잊게 두지 않겠다는 듯이. 누가 벨라를 우물나무에 넣었나 — 그 물음은 답을 얻지 못한 채, 오늘도 어딘가의 벽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