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어린아이가 피해자인, 아직 끝나지 않은 미제 사건입니다.
잔인한 장면은 묘사하지 않고, 아직 잡히지 않은 범인과 남은 단서에 대해서만 차분히 정리하겠습니다.
피해자는 보도 관행에 따라 'A양'으로만 부르겠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의 기억을 깨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2003년 11월 5일, 저녁 6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늦가을의 해는 짧습니다.
오후 6시면 이미 거리에 어둠이 깔립니다.
그날 A양은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 6시쯤 친구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와 약속한 귀가 시간보다 조금 늦은 참이었습니다.
집까지는 걸어서 멀지 않은 거리.
A양은 시간을 아끼려고 큰길 대신 지름길인 골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오후 6시 20분경, A양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짧게 말했습니다.
집에 거의 다 왔다고. 곧 들어간다고.
그것이 엄마가 들은 아이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전화가 끊긴 뒤, A양은 집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몇 분이면 닿을 거리였습니다.
그 짧은 골목 어딘가에서, 아이는 사라졌습니다.
95일의 어둠
밤이 되도록 아이가 오지 않자 가족은 온 동네를 뒤졌습니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고, 수색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골목엔 CCTV가 없었습니다.
2003년의 소도시 뒷골목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했고, 그날 저녁 그 길을 지나간 사람의 흔적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실종 23일째인 11월 28일, 첫 단서가 나왔습니다.
A양의 집에서 7.4km가량 떨어진 의정부시 민락동·낙양동 일대에서
A양의 가방과 신발, 양말, 교복 넥타이, 노트, 털장갑 등 소지품 13점이 발견됐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닿을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아이를 태우고 이동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지품만 있을 뿐, 아이의 행방은 알 수 없었습니다.
수색은 겨울 내내 이어졌습니다.
11월이 12월이 되고, 12월이 이듬해 1월이 되도록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004년 2월 8일
실종 95일째 되던 날.
2월 8일 오전 9시경,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한 음식점 앞 배수로에서
A양이 발견됐습니다.
지름 60cm 남짓한 좁은 배수관이었습니다.
발견 당시의 상세한 상황은 피해자의 존엄을 위해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겨울 들판의 차가운 수로 안에서 아이가 발견됐다는 사실만 기록해 둡니다.

수색 넉 달의 끝에서, 가족이 마주한 것은 가장 두려워하던 결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수사관들의 눈을 붙든 하나의 디테일이 있었습니다.
붉은 매니큐어
발견 당시, A양의 손톱과 발톱에는 붉은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 A양은 평소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던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분명히 증언했습니다.
아이는 그런 걸 칠하고 다니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그 붉은 매니큐어는 누가 칠한 것일까.

아이가 스스로 바른 것이 아니라면, 남는 답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범인이 칠했다.
이 하나의 사실이 사건 전체의 성격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이를 해친 뒤 도망친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범인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했습니다'.
시간을 들여, 손톱 하나하나에 색을 칠했습니다.
그 행위에서 사람들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이 사건이 '포천 매니큐어 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입니다.

매니큐어가 말해 주는 것
프로파일러들은 이 디테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보도된 프로파일링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런 행위가 특정한 심리를 가진 인물을 가리킬 수 있다고 봤습니다.
피해자를 하나의 '대상', 혹은 자기만의 세계 속 '인형'처럼 다루려는 왜곡된 성적 도착의 가능성.
손톱에 색을 칠하는 행위는 그런 왜곡된 욕구가 남긴 흔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또 일부 소지품이 끝내 발견되지 않은 점을 두고,
범인이 피해자와 관련된 물건을 '기념품'처럼 간직하는 유형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습니다.
이 모든 것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보도된 프로파일링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들은 한 가지를 공통으로 가리켰습니다.
이 범인은 충동적으로 도망친 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연출'하고 그 흔적을 남긴, 계획적이고 이질적인 인물일 수 있다는 것.

일주일 전, 2km 옆에서
수사에는 결정적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단서가 있었습니다.
A양이 사라지기 약 일주일 전.
실종 지점에서 불과 2km, 차로 5분 거리의 같은 지역에서.
한 여성이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는 귀갓길에 흰색 차량을 탄 한 남자에게 차에 타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남자는 계속 물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가느냐, 나이가 몇이냐.
여성이 탈출하려 하자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계속 운전했습니다.
가까스로 벗어난 여성은 훗날 수사에 협조하며 그 남자의 인상을 진술했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남자의 모습은 유독 또렷하고, 또 이상했습니다.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하얗고, 손과 팔에 털이 전혀 없었으며,
그 남자의 손톱에는 투명한 매니큐어가 발려 있었다고 했습니다.
키는 175cm가량, 마른 체형.
차 안에는 서류가방과 카키색 유니폼 점퍼가 있었고,
남자는 "공업사에서 나왔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성이 기억해 낸 차량 번호판의 일부는 '경기 735*'.
이 진술을 바탕으로 용의자의 몽타주가 만들어졌습니다.
털 없는 하얀 손, 투명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 —
일주일 뒤 사라진 아이의 손톱에서 발견된 붉은 매니큐어와 겹쳐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수사의 벽
이렇게 많은 단서가 있었는데도 왜 범인을 잡지 못했을까.
가장 큰 벽은 CCTV의 부재였습니다.
2003년의 그 골목에는 카메라가 없었습니다.
범인의 차가 어디로 향했는지, 아이가 어느 길로 옮겨졌는지 —
그 경로를 이어 줄 영상 한 조각이 없었습니다.
몽타주와 차량 번호 일부, 목격 진술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특정할 결정적 증거, 곧 물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하나하나 조사했지만,
혐의를 확정할 만한 증거를 끝내 확보하지 못한 채 한 사람씩 배제됐습니다.

이춘재의 그림자, 그리고 배제
2019년, 한국을 뒤흔든 소식이 있었습니다.
30년 넘게 미제였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DNA로 특정됐고,
그 사람 —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들을 자백한 것입니다.
그의 자백이 이어지면서, 전국의 오래된 미제 사건들이 다시 조명받았습니다.
인터넷에서는 포천 사건 역시 그의 소행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시기와 지역, 수법을 두고 여러 추측이 오갔습니다.
그러나 —
포천 사건은 이춘재가 자백한 범행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역시, 인근의 납치미수 사건과 A양 사건은 전혀 다른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춘재라는 거대한 이름조차 이 사건의 문을 열지 못한 채,
포천의 아이는 여전히 '누가'라는 물음 앞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사라지지 않은 시효
한동안, 이 사건에는 또 다른 시한이 있었습니다.
당시 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습니다.
그 계산대로라면, 사건은 2019년 무렵 공소시효가 만료돼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 법이 바뀌었습니다.
'태완이법'.
황산 테러로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어린 피해자의 이름을 딴 이 법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했습니다.
그리고 — 2015년 시점에서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사건들에 소급 적용됐습니다.
포천 사건은 그 요건에 들어맞았습니다.
즉, 이 사건의 시효는 사라졌습니다.
범인은 지금 잡혀도, 처벌받습니다.
시간이 그를 지켜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열려 있는 서랍
포천 사건은 장기미제 전담팀이 지금도 들여다보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이 이 사건을 여러 차례 다뤘습니다.
2019년에는 새로운 제보자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몽타주를 본 이가 "그때 그 모습과 똑같다"고 증언하면서,
한때 실마리가 풀릴 것이란 기대가 일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 단서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수사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몽타주 속 얼굴을 찾는 일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비슷한 무게의 미제들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딸을 20년 넘게 찾아 헤맨 송혜희 실종 사건,
그리고 도롱뇽을 잡으러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
또, 놀이터에서 길을 물었던 남자가 25년째 잡히지 않은 인천 작전동 놀이터 사건까지.
모두, 아직 닫히지 않은 서랍들입니다.

이 서랍을 닫기 전에
포천의 골목에서 아이가 사라진 그 저녁으로부터, 2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CCTV도, 결정적 물증도 없이, 사건은 오래 멈춰 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남았습니다.
붉은 매니큐어.
평소엔 바르지 않던, 누군가가 아이에게 남긴 그 색.
그것은 지금도 20년의 침묵을 버티고 있습니다.
범인은 그 색을 직접 골랐을 것입니다.
병을 열고, 붓을 들고, 손톱 하나하나에 칠했을 것입니다.
그런 행위는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 곁의 누군가는, 어느 시절 그가 그런 색과 그런 손을 가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시효는 사라졌고, 사건은 열려 있습니다.
작은 기억 하나가, 20년 전의 그 색을 아는 누군가가,
포천의 아이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그 짧은 골목의 끝을 밝혀 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