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몬트주 남서쪽 구석에는 글래스턴베리(Glastenbury)라는 산이 있다. 유난히 높지도, 극적으로 험하지도 않은 산이다. 비탈은 빽빽한 숲으로 덮여 가을이면 온통 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고, 산기슭에는 오래전 사람들이 떠나 버린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요컨대 뉴잉글랜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조용한 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산을 둘러싼 숲과 언덕에서, 단 5년 사이 — 1945년부터 1950년까지 — 다섯 사람이 걸어 들어갔다가 살아서는 다시 나오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숲을 잘 알던 사냥 안내인. 오후 산책을 나선 여대생.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사라진 노병. 여덟 살 소년. 그리고 다섯 명 중 유일하게 시신이 발견된 쉰세 살 여성 — 그마저도 여섯 달 뒤, 수색대가 이미 지나간 자리에서 나왔다. 다섯 사건 가운데 단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훗날 '베닝턴 트라이앵글'이라 불리게 되는 이야기다.

산, 그리고 그 산에 얽힌 평판
글래스턴베리는 베닝턴이라는 소도시 인근, 숲이 순식간에 사람을 에워싸는 버몬트의 한 자락에 자리한다. 한때 벌목으로 번성하던 글래스턴베리와 서머싯 마을은 인구가 줄고 줄어 1937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 이름만 남은 유령 마을이 된 것이다. 아름다운 땅이지만 그만큼 외롭고, 오래전부터 어딘가 꺼림칙한 평판을 지녀 왔다.
실종 사건들이 벌어지기 훨씬 전, 지역에 구전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땅의 원주민들은 이 산을 경계하며 피해 다녔다고 한다. 사냥터로는 쓰되 그곳에 터를 잡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모은 작가 조지프 시트로(Joseph Citro)는, 산 어딘가에 있다는 '사람을 잡아먹는 돌'의 오랜 전설을 전한다. 밟고 올라설 만큼 단단해 보이지만, 운 나쁘게 그 위에 발을 디딘 사람을 그대로 삼켜 버린다는 바위 이야기다. 분명히 짚어 두자. 이것은 기록된 역사가 아니라 민간전승이다. 그런 돌은 발견된 적이 없고, 이 전설은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의 영역에 속한다. 다만 그것은 오래도록 글래스턴베리에 들러붙어 온 분위기의 일부이니, 실제 사건에 들어가기 전에 알아 둘 만하다 — 정작 이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전설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충분히 섬뜩하기 때문이다.

1945년 — 미디 리버스
가장 먼저 사라진 사람은, 가장 사라질 리 없던 사람이었다. 미디 리버스(Middie Rivers)는 일흔네 살로, 글래스턴베리 일대를 손금 보듯 알던 노련한 사냥꾼이자 안내인이었다. 1945년 11월 12일, 그는 베닝턴에서 몇 마일 떨어진 비크퍼드 할로(Bickford Hollow)의 숲에서 작은 사냥 일행을 이끌고 있었다. 야영지로 돌아오던 길, 다른 이들보다 앞서 걷던 그가 모퉁이를 돌았고 — 그대로 사라졌다.
대규모 수색이 이어졌다. 자원봉사자와 주 방위군이 동원되어, 평생 숲에서 산 사람이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 알 수 없는 언덕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해 가을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미디 리버스의 흔적으로 회수된 것은 이듬해 봄, 개울에서 발견된 소총 탄피 하나뿐이었다 — 마치 그가 그곳을 지나며 가장 희미한 표식 하나만 남긴 채, 숲이 그 위로 완전히 덮여 버린 것처럼. 그토록 경험 많은 사람이, 눈감고도 아는 땅에서 그렇게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를 아는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 숲을 잘 알았는데"라는 말이 텅 빈 수색 위로 되뇌어진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1946년 — 폴라 웰든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난 1946년 12월 1일, 이 지역을 유명하게 만든 실종 사건이 일어났다. 폴라 웰든(Paula Welden)은 열여덟 살, 베닝턴 칼리지 2학년생이었다. 그 잿빛 오후, 그녀는 롱 트레일(Long Trail)을 따라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버몬트의 산줄기를 세로로 관통하며 글래스턴베리 곁을 지나는 그 유명한 도보 길이다. 그녀는 선명한 빨간 재킷에 청바지,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야영 장비 하나 없이, 딱 오후 산책에 맞는 복장으로 길을 나섰다.
그날 여러 사람이 트레일에서 그녀를 보았다. 뒤따라 걷던 한 부부는, 그녀가 앞서 모퉁이를 돌았고 — 잠시 뒤 자신들이 그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12월의 헐벗은 나무를 배경으로 그토록 눈에 잘 띄던 그 빨간 재킷은,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뒤이은 수색은 어마어마했다. FBI가 개입했고, 상당한 액수의 현상금이 걸렸으며, 언덕들은 몇 주 동안 샅샅이 뒤져졌다. 실오라기 하나, 발자국 하나, 폴라 웰든이라고 확인된 흔적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사건은 한 가족의 가슴을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당시 버몬트에는 주 단위 경찰 조직이 없었고, 지역 차원의 수색 처리 방식은 — 특히 슬픔에 잠긴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1947년, 버몬트주는 주경찰(Vermont State Police)을 창설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참혹한 아이러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 실종 사건이, 바로 그런 사건을 풀기 위한 조직을 직접 탄생시킨 셈이니. 그러나 그 조직도 그녀의 사건만은 끝내 풀지 못했다.

1949년 — 제임스 테드퍼드
3년이 흘렀다. 그리고 1949년 12월 1일 — 사람들을 지금까지도 오싹하게 만드는 우연으로, 정확히 폴라 웰든이 사라진 그 날짜에 — 제임스 테드퍼드(James Tedford)라는 남자가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기이한 정황 속에서 사라졌다. 테드퍼드는 예순여덟 살로, 버몬트 재향군인의 집에 살던 참전용사였고, 친척을 만나고 베닝턴의 집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남아 있는 진술에 따르면, 같은 버스에 탄 승객들이 그가 버스에 있는 것을 보았다. 버스가 정차하는 동안에도 그는 분명히 자리에 있었고, 짐은 선반에 그대로 있었으며, 그의 좌석에는 펼쳐진 버스 시간표가 놓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어느 한 정류장과 베닝턴 사이, 그 평범한 노선 어딘가에서 그는 더 이상 버스에 없었다. 주변 승객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 남자가 달리는 버스 안에 앉아 있었고, 그다음 순간엔 없었다 — 그것을 설명할 정차도 없이, 누구도 본 적 없는 하차와 함께. 그의 실종은 약 일주일이 지나서야 신고되기까지 했다. 다섯 사건 가운데 테드퍼드의 사건이 그 어떤 평범한 설명에도 가장 완강히 저항하는 이유는, 그에게는 벗어나 헤맬 외딴 오솔길도, 그를 삼킬 숲도 없었기 때문이다 — 오직 버스 안,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의 빈 공간뿐이었다.

1950년 — 폴 젭슨
이듬해, 숲은 아주 작은 사람을 데려갔다. 1950년 10월 12일, 여덟 살 소년 폴 젭슨(Paul Jepson)은 볼일이 있던 어머니를 따라 베닝턴 쓰레기 처리장에 있었다. 어머니는 잠깐 — 어떤 이야기로는 30분쯤 — 아이를 혼자 두었고, 돌아왔을 때 밝은 재킷을 입은 소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블러드하운드가 투입되었다. 개들은 폴의 냄새를 잡아 한동안 뒤쫓았지만 — 어느 교차로에 이르자, 마치 아이가 그 지점에서 더는 제 발로 나아가지 않은 듯, 냄새 자취가 그대로 끊겼다. 수색대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린 소년이 한낮에 쓰레기 처리장에서 사라질 리 없건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개들이 도로에서 자취를 놓쳤다는 사실은, 답을 준 만큼이나 많은 물음을 남겼고, 그 어느 것도 끝내 풀리지 않았다. 폴 젭슨은 발견되지 않았다.

1950년 — 프리다 랭거, 그리고 돌아온 시신
폴 젭슨 사건에서 불과 16일 뒤인 1950년 10월 28일,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실종이 일어났다 — 그리고 이것이 그중 가장 기이한 사건인데, 유일하게 완전한 침묵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리다 랭거(Frieda Langer)는 쉰세 살로, 경험 많고 유능한 등산가였다. 그녀는 사촌과 함께 서머싯의 숲으로 나갔다. 어느 지점에서 그녀는 미끄러져 개울에 빠져 옷이 젖었고, 근처 야영지로 돌아가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오겠다고 사촌에게 말했다. 익숙하고 짧은 거리였다. 그녀는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사촌이 야영지에 이르러 프리다가 그곳에 오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비상이 걸렸고, 이 지역이 목격한 가장 큰 규모의 수색 중 하나가 시작되었다.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언덕 위를 날았고, 수백 명의 수색대가 숲을 걸었다. 일대를 몇 번이고 훑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 개울과 야영지 사이 몇백 미터를 걷다 사라진 여인의 흔적은.
그러다 1951년 5월 12일 — 여섯 달 반쯤 지난 뒤 —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다른 넷과 달랐다. 다섯 명 중 유일하게 시신이 회수된 사람이었으니. 그러나 사람들을 그 뒤로 줄곧 괴롭힌 것은 바로 그 시신이 발견된 장소였다. 프리다 랭거는 트인 땅에, 그것도 그녀가 사라진 뒤 정신없던 몇 주 동안 수색대가 이미 철저히 뒤진 구역에 누워 있었다.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그 상태로는, 사인은 끝내 밝혀질 수 없었다. 이미 수색이 끝난 자리에 시신이 어떻게 몇 달간 발견되지 않은 채 놓여 있을 수 있었는지 — 그녀가 다른 곳에서 죽어 봄철 홍수에 그리로 떠내려온 것인지, 그저 놓친 것인지, 아니면 누구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 무언가인지 — 는 여전히 열린 물음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유일하게 돌아온 사람이었지만, 그 귀환마저도 아무것도 답해 주지 않았다.
그 이름, 그리고 침묵
수십 년 동안 이 다섯 실종은 지역에서 기억되었으되, 대중의 상상 속에서 하나로 묶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1992년, 뉴잉글랜드의 작가 조지프 시트로가 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며 이 지역에 이름을 붙였다. 베닝턴 트라이앵글 — 이웃한 매사추세츠의 더 유명한 브리지워터 트라이앵글에서 딴 이름이다. 이름은 자리 잡았고, 그와 함께 전설의 온갖 장치들이 따라붙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돌, 이상한 빛과 소리에 관한 이야기, 숲속의 털북숭이 괴물,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이라는 소문. 여기서 경계선을 분명히 긋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름은 현대의 것으로, 사건이 벌어지고 반세기가 지나 붙여졌다. 괴물과 삼키는 돌은 민간전승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고, 더 부풀릴 필요조차 없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실존한 다섯 사람이 한 산 둘레에서 사라졌고, 그중 단 한 명만이 돌아왔다 — 이미 수색이 끝난 자리에서, 사인조차 읽을 수 없는 상태로, 죽어서.
사건을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저마다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노인이 길을 잃는다. 젊은 여성이 외딴 길에서 흉악한 일을 당한다. 정신이 흐려진 노병이 아무도 모르게 벗어나 헤맨다. 아이가 처리장에서 변을 당한다. 등산가가 물에 빠져 하류로 떠내려간다. 이것들은 험한 자연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만 끔찍한 일들이다. 설명에 저항하는 것은 그 '패턴'이다 — 5년 사이 다섯, 한 작은 곳에서, 전부 미제. 그리고 각 사건이 남긴, 콕콕 찌르는 구체적인 세부들. 봄 개울의 탄피,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빨간 재킷, 텅 빈 버스 좌석, 교차로에서 끊긴 자취, 수색이 끝난 들판의 시신. 글래스턴베리 산은 섬뜩하기 위해 저주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섯 사람을 붙들었고, 하나만을 돌려주었으며, 그 누구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았다 — 그리고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