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하지 마라. 이 문장은 글의 끝이 아니라 맨 앞에 놓여야 한다. 지금부터 기록하는 것은 한때 수많은 교실에서 실제로 '했던' 놀이이고, 이 글은 그것을 다시 하라고 부추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학교 괴담을 민속으로서, 문화사로서 보고하는 글이다. 절차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더라도 그것은 실행 지침이 아니라, 이 놀이가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부품으로 조립되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놀이로라도 권하지 않는다. 이 글이 끝날 무렵, 왜 권하지 않는지가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니 불을 절반쯤 끄고, 이 전설이 늘 시작되던 그 자리에서 시작하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텅 비어 가는 교실.


콜드 오픈: 절반쯤 꺼진 교실
밤 열 시가 다 되어 간다. 야자가 끝났고, 대부분은 가방을 메고 교문을 빠져나갔다. 남은 건 둘, 혹은 셋. 교실 뒤쪽, 형광등이 절반만 켜진 구역에 책상 두 개를 붙여 앉았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불빛이 낮게 깔리고, 복도 끝에서 이따금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다 만다. 낮 동안 시끄럽던 공간이 밤이 되자 낯설어졌다. 익숙한 교실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되는 그 순간이, 이 놀이가 늘 노려 온 지점이다.
책상 위에는 하얀 종이 한 장. 누군가 아까 자를 대고 큼직하게 칸을 나눠 두었다. 한쪽 끝에는 O, 반대쪽 끝에는 X. 가장자리를 빙 둘러 한글 자모와 숫자, 그리고 '예'와 '아니오'. 그 위에 볼펜 한 자루가 놓여 있다. 뚜껑이 열린 채, 심이 종이에 닿을락 말락 한 각도로. 두 사람이 그 볼펜을 함께 잡는다. 각자 손가락 두 개로, 아주 가볍게. 너무 세게 쥐면 안 된다는 것을 둘 다 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반쯤 웃음을 참으며, 반쯤은 이미 겁을 먹은 채로 함께 외운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이데 쿠다사이…" 뜻도 정확히 모르는 그 주문을. 볼펜 끝이 종이 위에서 미세하게 떨린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심장은 이미 조금 빨라져 있고, 볼펜을 맞잡은 네 개의 손가락은 서로의 떨림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여기서 시작된다. 부르는 말과, 맞잡은 손과, 아직 움직이지 않는 펜에서.

전설이 정한 그대로의 절차 — 따라 하지 말 것
이 놀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무엇을 '했다고' 믿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아래는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교실에서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인터넷 게시판으로 떠돌던 절차의 서술이다. 인류학자가 낯선 마을의 의례를 옮겨 적듯 제시한다. 하나의 '믿음'에 대한 기록이지, 따라 할 조리법이 아니다. 각 단계가 왜 그런 모양인지, 그리고 왜 그토록 많은 아이를 사로잡았는지 들여다보는 창으로만 읽어 달라.
판. 하얀 종이 한 장에 손으로 판을 그린다. 가장 단순한 판본에서는 O와 X 둘뿐이다. 조금 더 공들인 판본에서는 한글 자모와 0부터 9까지의 숫자, '예'·'아니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자리를 뜻하는 표식까지 그려 넣는다. 위저보드의 축소판이자, 그것을 연필과 공책만으로 재현한 교실판이다.
펜. 볼펜 한 자루를 둘이 함께 잡는다. 각자 한두 손가락만 얹어, 펜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만큼만 가볍게. 이 '가볍게'가 핵심이다. 뒤에서 이야기할 모든 심리학이 바로 이 가벼운 접촉 위에서 벌어진다.
주문. 그리고 부른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이데 쿠다사이." 세 번, 혹은 정해진 횟수만큼. 여기서 이미 이 전설의 정체가 절반쯤 드러난다. '오이데 쿠다사이'는 한국어가 아니다. 일본어 오이데쿠다사이(おいでください) — '와 주십시오'라는 뜻의 정중한 청유다. 한국 아이들은 뜻도 모른 채 일본어 주문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잔재가 어디서 왔는지는, 이 글의 한복판에서 밝혀진다.
질문. 펜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 혹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면 — 질문을 던진다. 처음엔 대개 확인용이다. "정말 오셨나요?" 펜이 O 쪽으로 미끄러진다. 그다음부터는 아이들이 진짜로 알고 싶은 것들이 쏟아진다. 짝사랑, 시험 성적,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언제 죽는지. 펜은 자모 사이를 오가며 글자를 짚고, 두 사람은 그것을 읽어 낸다. 답이 맞아 보일수록 방 안의 공기는 팽팽해진다.
끝내기 — 가장 중요한 규칙. 그리고 이 놀이의 모든 무게가 실린 단 하나의 규칙이 여기 있다. 반드시 '돌려보내드려야' 한다. 놀이를 끝낼 때는 정중히 청한다. "분신사바, 이제 돌아가 주세요." 펜이 '예'나 O로, 혹은 돌아감을 뜻하는 자리로 움직여 응답할 때까지 계속 청한다. 응답을 받고 나서야 손을 뗀다. 그런 뒤 그 종이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태우거나 찢어 처리한다는 판본도 있다. 학교 괴담들이 정작 겁을 준 대상은 이 놀이를 '시작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든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펜이 멈추지 않았다거나, 겁이 나서 종이를 그냥 두고 도망쳤다거나, 보내는 주문을 빼먹었다는 아이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뒷이야기들이, 이 전설의 진짜 연료였다.


'분신사바'라는 말의 정체: 일본에서 건너온 콧쿠리상
이제 이 전설의 심장으로 들어가자. '분신사바'라는 이름과 그 이상한 일본어 주문은 어디서 왔는가. 답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에서조차 그 뿌리는 서양이다. 분신사바는 순수한 한국 괴담이 아니라, 서양에서 일본으로, 다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이중 수입품'이다.
한국의 분신사바에 해당하는 일본 놀이의 이름은 콧쿠리상(コックリさん)이다. 종이에 도리이(신사 입구의 문)와 '예'·'아니오'·오십음도·숫자를 그리고, 그 위에 십 원짜리 동전을 놓은 뒤 여러 사람이 손가락을 얹어, 찾아온 '콧쿠리상'에게 질문하는 놀이다. 볼펜이 동전으로, O·X가 도리이로 바뀌었을 뿐, 뼈대는 분신사바와 완벽히 같다. 두 손 이상이 하나의 가벼운 물체를 함께 짚고, 정중한 말로 무언가를 부르고, 그것이 글자판 위를 움직여 답하며, 끝에는 반드시 '돌려보내야' 한다는 규칙까지.
그리고 여기서 그 수수께끼의 주문이 풀린다. 콧쿠리상을 부르고 보낼 때 쓰는 일본어 청유가 바로 "오이데쿠다사이(와 주십시오)", "오카에리쿠다사이(돌아가 주십시오)" 같은 말들이다. 한국 교실의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이데 쿠다사이"는, 이 일본어 주문이 뜻도 함께 번역되지 못한 채 소리만 건너온 흔적이다.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수십 년 전 일본에서 넘어온 부름의 말을 그대로 외우고 있었던 셈이다. '분신(分身)' — 자기 자신이 갈라져 나온 또 하나의 몸 — 이라는 한자어와, 정확한 유래를 특정하기 어려운 '사바'라는 소리가 그 위에 얹혀, '분신사바'라는 한국식 이름이 만들어졌다. 이름은 한국어가 되었지만, 주문 속 일본어가 그 국적을 끝내 숨기지 못했다.

서양 강령술 → 일본의 여우신앙 → 한국 교실
콧쿠리상의 뿌리를 한 걸음 더 파고들면, 이야기는 뜻밖에도 19세기 서양에 닿는다.
19세기 서구에서는 강신술(spiritualism)이 크게 유행했다. 죽은 이의 영혼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사람들은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손을 얹고 탁자가 저절로 움직여 답하기를 기다리는 테이블 터닝(table-turning)을 했고, 이윽고 글자와 숫자가 인쇄된 판 위에서 플랑셰트(작은 삼각 지시판)를 밀어 답을 읽는 도구가 상품화된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위저보드(Ouija board)다.
이 테이블 터닝 문화가 메이지 시대에 일본으로 들어온다. 배가 표류하다 이즈 지방에 닿은 서양 선원들이 전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에 도착한 이 놀이는 그곳의 토착 신앙과 결합했다. 일본에는 예로부터 여우 신앙이 깊었고, 신비한 존재를 여우·개·너구리가 뒤섞인 것으로 상상하는 감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서양식 강령 놀이에 狐狗狸(호구리, 여우 구 개 구 너구리 리)라는 한자를 붙이고, '콧쿠리상'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양의 테이블 터닝이 일본의 여우신앙을 만나 콧쿠리상이 되었고, 그 콧쿠리상이 세월이 흐른 뒤 한국으로 건너와 분신사바가 되었다.
그러니 교실 뒷자리에서 볼펜을 맞잡은 두 아이가 하고 있던 것은, 사실 세 문화와 백 년이 넘는 시간을 관통해 온 놀이였다. 빅토리아 시대 응접실의 강령회가, 메이지의 여우신앙이, 그리고 20세기 한국 교실의 심심함이 하나의 볼펜 끝에서 만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진 강령 놀이가 가장 작은 형태로 축소되어, 종이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로 학생의 책상 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왜 학교였고, 왜 여학교에서 특히 번졌나
이 놀이가 하필 학교에, 그중에서도 여학교에서 유독 크게 번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학교는 이런 놀이가 자라기에 완벽한 토양이다. 또래 집단이 밀집해 있고, 정보가 입에서 입으로 순식간에 퍼지며, 무엇보다 '심심한 시간'이 규칙적으로 존재한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비 오는 날 실내 자습, 수련회의 밤,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뒤의 어스름한 교실. 한 명이 하는 것을 보면 다른 반이 따라 하고, 그 이야기가 다시 다음 학년으로 전해진다. 학교 자체가 괴담의 완벽한 전파 매질이다. 화장실 귀신도, 콩콩귀신도, 계단의 몇 번째 칸 이야기도 모두 같은 이유로 학교에서 자랐다.
여학교에서 특히 번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한 가지는 감정을 이야기로 나누고 함께 몰입하는 또래 문화가 강하게 작동했다는 점이다. 짝사랑과 관계에 대한 질문 — 분신사바에 던지는 질문의 상당수가 그런 것이었다 — 을 진지하게 나눌 수 있는 공기가 있었고, 여럿이 손을 맞잡고 함께 무언가에 몰입하는 놀이가 그 공기와 잘 맞았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문화적 관찰이지 어떤 집단이 더 잘 속는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분신사바가 '작동하는' 심리는 성별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작동한다.

1990~2000년대 교실 대유행, 그리고 2004년 영화 '분신사바'
분신사바가 한국 교실을 휩쓴 것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다. 이 시기 초·중·고등학교의 쉬는 시간과 수련회의 밤은 분신사바의 무대였다. 종이와 볼펜만 있으면 되는 낮은 진입 장벽, 입소문을 타고 번지기 쉬운 단순한 절차, 그리고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감질나는 가능성이 맞물려, 한 세대의 공용 기억이 되었다.
이 유행이 정점에 이르렀을 무렵, 대중문화가 그것을 스크린으로 끌어올렸다. 2004년, 안병기 감독의 공포 영화 '분신사바'가 개봉한다. 안병기 감독은 당시 '가위', '폰' 등으로 한국 공포영화 붐을 이끌던 대표적 감독이었고, '분신사바'는 그 흐름 위에서 학교라는 공간과 이 강령 놀이를 정면으로 다뤘다. 전학 온 여고생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급우에게 복수하려 분신사바를 부르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렸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은 갈렸지만, 영화가 한 일은 분명했다. 교실에서 은밀히 떠돌던 놀이에 '분신사바'라는 이름을 공식적인 공포의 아이콘으로 못 박아, 그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그리고 국경 너머로 끌어올린 것이다.

중국으로 다시 수출되다: 필선(筆仙)
이야기는 여기서 한 번 더 국경을 넘는다. 이번엔 중국이다.
중국에는 이 놀이가 필선(筆仙, 비셴)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붓 필(筆)'에 '신선 선(仙)' — 곧 '펜의 신선', 펜을 통해 부르는 영이라는 뜻이다. 볼펜을 함께 잡고, 종이 위 글자판을 오가게 하며, 질문하고, 끝에는 돌려보낸다는 구조가 분신사바·콧쿠리상과 그대로 겹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분신사바' 영화 붐이 식지 않고, 이 소재가 중국에서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2010년대 들어 '필선'을 제목으로 한 공포영화들이 여럿 제작되어 흥행했고, 그중에는 한국 감독이 참여하거나 한국 공포영화의 문법을 이어받은 작품도 있었다. 서양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내려온 이 놀이가, 이제 한국의 영화 붐을 매개로 중국에서 새로운 세대의 관객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분신사바는 하나의 놀이가 아니라, 동아시아를 도는 하나의 '문화적 순환'이다. 이름과 소품은 나라마다 갈아입어도 — 동전이든 볼펜이든 붓이든, 도리이든 O·X든 — 뼈대는 결코 바뀌지 않았다. 여럿이 하나의 가벼운 물체를 함께 짚고, 정중히 부르고, 답을 읽고, 반드시 돌려보낸다.

그렇다면 펜은 왜 움직였나: 이데오모터 효과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할 차례다. 아무도 밀지 않았는데, 볼펜은 어떻게 저절로 글자를 짚었을까. 답은 초자연이 아니라, 우리 몸에 관한 잘 알려진 사실 하나에 있다. 이데오모터 효과(ideomotor effect), 곧 관념운동 효과다.
이데오모터 효과란, 어떤 움직임을 '기대하거나 상상할' 때 우리 근육이 그 상상에 맞춰 스스로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현상을 말한다. 본인은 전혀 힘을 주지 않았다고 느낀다. 실제로 '의식적으로는' 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펜이 O로 갈 것 같다'고 기대하는 순간,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아주 약한 힘을 보탠다. 이 미세한 힘이 가벼운 볼펜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하다. 위저보드의 플랑셰트가 움직이는 것도, 콧쿠리상의 동전이 미끄러지는 것도, 다우징 막대가 흔들리는 것도 전부 같은 원리다. 실제로 19세기부터 과학자들은 눈을 가리거나 손을 못 보게 한 채 실험하면 위저보드의 지시판이 의미 있는 답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답을 만드는 것은 영이 아니라, 답을 아는(혹은 기대하는) 참가자의 손이었다.
여기에 분신사바만의 조건이 두 가지를 더 얹는다. 첫째,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의 미세한 손떨림은 상대의 손을 통해 증폭되고, 상대의 떨림은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 두 사람은 서로 '내가 민 게 아니다'라고 확신하는데, 정말로 각자 의식적으로는 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의 무의식적 움직임이 합쳐지면 펜은 확실하게 움직인다. 아무도 밀지 않았는데 펜이 움직였다는 그 오싹한 경험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감각이다. 다만 그 원인이 초자연이 아닐 뿐이다.
둘째, 집단 암시와 또래 압력이다. 절반쯤 꺼진 교실, 낮은 목소리, 뜻 모를 외국어 주문 — 이 모든 무대장치가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함께 앉은 친구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압력 속에서, 누구도 '아무 일도 없다'고 먼저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미세한 움직임 하나에 모두가 "왔다"고 반응하며 서로의 확신을 강화한다. 새벽의 어둠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 듯, 야자 끝난 교실의 긴장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왜 답이 맞는 것처럼 느껴지나: 바넘 효과
펜이 움직이는 것까지는 이데오모터 효과로 설명된다. 그런데 그 펜이 짚어 낸 답이 어쩐지 '맞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여기엔 또 하나의 심리가 작동한다. 바넘 효과(Barnum effect)다.
바넘 효과란, 누구에게나 두루 들어맞는 모호한 진술을 마치 나에게만 딱 맞는 특별한 답인 양 받아들이는 경향을 말한다. 혈액형 성격론이나 별자리 운세가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분신사바의 답은 대개 O/X거나 짧은 글자 몇 개다. "그 애가 너를 좋아하니?"라는 물음에 펜이 O로 가면, 아이는 그것을 자신이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던 기대와 곧바로 연결 짓는다. 애매한 답일수록, 받는 사람이 스스로 의미를 채워 넣어 완성한다. 게다가 이데오모터 효과 때문에 그 답은 사실 참가자 자신의 무의식이 짚은 것이니, '내가 은근히 바라던 답'이 나올 확률이 높다. 내 무의식이 만든 답을, 바깥의 영이 준 답이라고 믿는 순간,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사람의 기억은 '맞은 답'만 선명하게 남기고 '틀린 답'은 조용히 잊는 경향이 있다. 열 번 물어 한 번 우연히 맞으면, 사람들은 그 한 번을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이데오모터 효과와 바넘 효과, 그리고 선택적 기억이 맞물리면, 종이와 볼펜 한 자루가 정말로 무언가를 '아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된다. 놀이의 힘은 초자연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있었다.

그럼에도 남는 이야기들
과학이 이 놀이의 뼈대를 설명해 준다고 해서, 그 곁에 쌓인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괴담으로서, 딱 괴담만큼의 무게로 소개할 가치가 있다.
펜이 손을 떼려는 순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는 증언이 있다. 보내는 주문을 외웠는데도 '아니오'만 짚으며 돌아가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던지지도 않은 질문에 펜이 스스로 글자를 짚어 낯선 이름을 썼다는 이야기, 놀이가 끝난 뒤 그날 밤 한 아이가 이유 없이 열이 나고 아팠다는 이야기,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한 종이를 버린 뒤로 이상한 일이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학교마다, 학년마다 조금씩 모습을 바꿔 전해졌다.
이 증언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앞에서 본 이데오모터 효과와 집단 암시, 새벽의 각성, 선택적 기억이 이 대부분을 설명한다. 겁에 질린 두 사람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움직이는 것은 펜이 '멈추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미 긴장한 아이가 그날 밤 몸이 안 좋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은 그 모든 이야기를 '전부 착각'이라고 못 박으며 끝내지 않는다. 괴담은 괴담으로 두는 편이 낫다. 설명되지 않는 여백을 남겨 두는 것이야말로, 이 이야기가 세대를 넘어 살아남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여백은 '지켜보고 되풀이해 이야기하는' 여백이지, '직접 해 보는' 여백이 아니다.

학교 괴담 생태계 속의 분신사바
분신사바는 홀로 존재한 적이 없다. 그것은 학교라는 공간이 낳은 거대한 괴담 생태계의 일부였다.
같은 복도 어딘가에는 화장실 셋째 칸의 문을 두드리면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일본의 하나코 상과 같은 계보의, 학교 화장실 귀신 이야기다. 계단을 오르다 세면 칸 수가 맞지 않는다는 콩콩귀신 이야기가 있었고, 급식실이나 특별실에 얽힌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라는 무대를 넘어서면, 여럿이 규칙을 따라 무언가를 '불러내거나' 다른 세계로 건너가려 하는 의식형 괴담들이 있었다. 인형과 함께 새벽 3시에 하는 혼자 숨바꼭질, 정해진 층수를 눌러 다른 세계로 향한다는 엘리베이터 게임, 그리고 아이를 뒤쫓는다는 홍콩할매귀신까지. 분신사바는 이 이야기들과 한 생태계 안에서 서로를 먹여 살렸다. 화장실 귀신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방과 후에는 볼펜을 맞잡았고, 그 경험이 다시 다음 괴담의 자양분이 되었다.
이 생태계에서 분신사바가 차지한 자리는 독특하다. 대부분의 학교 괴담은 '무서워하는' 이야기다. 화장실에 가지 마라, 그 계단을 조심하라. 그러나 분신사바는 혼자 숨바꼭질처럼 아이더러 '직접 해 보라'고 손짓하는, 몇 안 되는 참여형 괴담이었다. 그것이 이 놀이를 특히 끈질기게 만들었다.

세계의 형제들, 그리고 교실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분신사바에게는 전 세계에 형제들이 있다. 그 계보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뿌리가 드러난다. 서양 응접실의 위저보드, 일본의 콧쿠리상, 중국의 필선, 그리고 2015년 전 세계 십 대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번진 찰리 찰리 챌린지(Charlie Charlie challenge) — 종이에 십자로 칸을 그리고 연필 두 자루를 겹쳐 얹어 '예/아니오'를 묻던 그 놀이 — 까지. 소품은 동전, 볼펜, 붓, 플랑셰트, 연필로 저마다 달라도, 인간이 하는 일은 언제나 같다. 여럿이 하나의 가벼운 물체에 손을 얹고,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정중히 부르고, 그 답을 함께 읽어 낸다. 위저보드가 그러하듯, 이 모든 놀이의 밑바닥에는 똑같은 이데오모터 효과가 흐른다. 서로 다른 언어로 부르지만, 대답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 왜 하필 교실이었을까. 그리고 왜 어른이 되면 우리는 다시 그것을 하지 못할까.
분신사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강령 놀이가 다다른 가장 작은 형태였다. 응접실의 둥근 탁자도, 신사도, 촛불도 필요 없었다. 종이 한 장과 볼펜 한 자루, 그리고 심심함만 있으면 되었다. 그 심심함은 아무 곳에서나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세상을 다 알지 못해 모든 것이 질문이던 나이, 짝사랑과 성적과 미래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던 나이, 그리고 그 답 없는 질문들을 함께 나눌 친구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교실이라는 공간에서만 자란다. 분신사바는 그 질문들을 볼펜 끝에 실어 어딘가에 물어보려던, 겁먹은 동시에 간절한 놀이였다.
어른이 되어 우리가 다시 그것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데오모터 효과를 알게 되어서만은 아니다. 답 없는 질문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볼펜을 맞잡던 그 마음이, 이제는 잘 자라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놀이는 심심함과 간절함이 함께 있어야만 작동했는데, 어른의 하루에는 그 둘이 좀처럼 나란히 오지 않는다. 그래서 분신사바는, 무섭다기보다 어쩐지 아련한 이야기로 남는다. 절반쯤 꺼진 교실과, 맞잡은 손과, 뜻도 모른 채 외우던 그 주문과 함께.
그러니 이 이야기는 지켜보고, 되풀이해 이야기하고, 등불 아래서 그 백 년의 여정을 연구하기에 좋은 민속이다. 그러나 직접 해 볼 놀이는 아니다. 그것은 진짜 초자연 때문이 아니라, 이 놀이가 처음부터 겁먹은 마음을 상대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놀이로라도 권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볼펜은 그냥 볼펜으로, 종이는 그냥 종이로 두는 편이 낫다. 그 교실의 밤은, 기억으로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