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경북 구미의 한 빌라.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한 방에서 세 살배기 여자아이가 숨진 채 발견됩니다.

처음엔, 우리가 너무 자주 듣는 종류의 가슴 아픈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아이를 홀로 두고 떠난 어른. 방치. 그리고 죽음.

경찰도 그렇게 사건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DNA 결과가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 한 줄이, 이 사건을 지금까지도 아무도 풀지 못한 전혀 다른 미궁으로 데려갑니다.

흐린 겨울날, 한국 소도시의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를 멀리서 바라본 원경.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AI 생성 이미지)
흐린 겨울날, 한국 소도시의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를 멀리서 바라본 원경.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AI 생성 이미지)

먼저, 확정된 사실만

이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관련된 사람들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만을 따라갑니다. 실명 대신 '석씨'와 '김씨'로 적고, 아이의 죽음 그 자체는 참상을 묘사하지 않고 확정된 판결만 간결히 전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핵심 혐의 하나가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되었다는 점을, 어느 대목에서도 흐리지 않고 분명히 하겠습니다.

무죄는 무죄입니다. 유죄는 유죄입니다. 이 둘을 뒤섞는 순간,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진짜 질문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 진짜 질문은 이렇습니다. 과학은 확실한데, 왜 사건은 미궁인가.

불이 꺼진 아파트 복도, 차가운 형광등 하나만 멀리서 희미하게 빛난다 (AI 생성 이미지)
불이 꺼진 아파트 복도, 차가운 형광등 하나만 멀리서 희미하게 빛난다 (AI 생성 이미지)

발견 — 그리고 첫 번째 그림

시작은 흔한 아동학대·방임 사건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 살 여아가 살던 빌라. 아이를 돌봐야 할 어른은 곁에 없었습니다. 김씨는 2020년 여름, 아이를 그 집에 남겨 두고 이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아이는 그 빈집에서 발견됩니다.

김씨는 이 아이의 '친모'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서류로도, 주변의 인식으로도, 아이는 김씨가 낳은 딸이었습니다. 사건은 김씨의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수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슬프지만 명확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통상적인 절차 하나를 밟습니다. 관련자들의 유전자를 확인하는 것. 그게 이 사건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밀어 넣습니다.

오래된 서류 파일이 쌓인 책상 위로 차가운 형광등 빛이 내려앉아 있다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서류 파일이 쌓인 책상 위로 차가운 형광등 빛이 내려앉아 있다 (AI 생성 이미지)

DNA — 사건을 통째로 뒤집은 한 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숨진 여아의 생모는 김씨가 아니었습니다.

DNA상 아이의 친모는, 그때까지 '외할머니'로 알려져 있던 인물 — 김씨의 어머니, 석씨였습니다.

다시 말해, 서류상 '엄마'였던 김씨는 이 아이를 낳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사람은 김씨의 어머니 석씨였고, 그렇다면 숨진 아이와 김씨는 모녀가 아니라 자매 관계가 됩니다.

너무 이상한 결과여서, 검찰과 국과수는 유전자 검사를 반복했습니다. 여러 차례, 복수의 기관에서. 결과는 매번 같았습니다. 석씨가 숨진 아이의 생모. 이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친자 관계는 오늘날 사실상 100%의 확실성으로 증명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100%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질문 하나를 세상 한가운데로 끌어냅니다.

김씨가 낳았다던 아이는, 그럼 대체 어디에 있는가.

DNA 이중나선을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유리 조형과 빛의 매크로, 차갑고 푸른 색조 (AI 생성 이미지)
DNA 이중나선을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유리 조형과 빛의 매크로, 차갑고 푸른 색조 (AI 생성 이미지)
라벨이 없는 시험관과 피펫이 놓인 실험실 정물, 차분한 조명 (AI 생성 이미지)
라벨이 없는 시험관과 피펫이 놓인 실험실 정물, 차분한 조명 (AI 생성 이미지)

그렇다면, '바꿔치기'인가

수사가 도달한 가설은 이것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두 여자가 아이를 가졌습니다. 딸 김씨와, 어머니 석씨. 2018년 봄 무렵, 두 사람은 각각 출산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김씨의 곁에서 자란 아이 — 훗날 숨진 채 발견된 그 세 살 아이 — 의 생모는 석씨였습니다. 검찰은 여기서 하나의 그림을 그립니다. 어느 시점엔가, 두 아이가 바뀌었다. 그리고 김씨가 실제로 낳은 아이는 어딘가로 빼돌려졌다.

검찰은 그 '바꿔치기'의 시점과 장소까지 특정하려 했습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석씨가 2018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구미의 한 산부인과 의원에서, 딸 김씨가 낳은 아이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바꿔치기해, 김씨의 아이를 어딘가로 빼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혐의의 법적 이름이 미성년자 약취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사건의 심장이 됩니다.

병원 복도의 차갑고 텅 빈 빛, 사람은 없고 긴 복도만 이어진다 (AI 생성 이미지)
병원 복도의 차갑고 텅 빈 빛, 사람은 없고 긴 복도만 이어진다 (AI 생성 이미지)

수사가 부딪힌 벽

바꿔치기가 정말 있었다면, 그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여기서부터 수사는 벽에 부딪힙니다.

산부인과의 출산 기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누가 누구를 낳았다'까지는 말해 줄 수 있어도, '그 뒤 아이가 바뀌었다'까지는 말해 주지 못합니다. 몇 년 전 일이었고, 그 사이의 시간은 이미 대부분 흘러가 버린 뒤였습니다.

바꿔치기가 병원에서 일어났다면 누군가의 손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자택이나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애초에 그 출산 자체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어느 쪽이든, 검찰은 '바로 이 순간에, 이런 방식으로 아이가 바뀌었다'를 보여 주는 직접 증거를 끝내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석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부인했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낳지 않았다. 바꿔치기한 적 없다. — 석씨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DNA는 석씨가 숨진 아이의 생모라고 말합니다. 석씨는 자신이 낳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두 문장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리고 이 충돌을 메워 줄 '그 사이의 이야기' — 언제 어떻게 아이가 바뀌었는지 — 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돌기둥과 계단이 있는 법원 청사 외관, 현판은 보이지 않는다 (AI 생성 이미지)
돌기둥과 계단이 있는 법원 청사 외관, 현판은 보이지 않는다 (AI 생성 이미지)

재판 — 유죄에서 무죄로

이 사건의 판결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극적으로 뒤집혔기 때문에, 경과를 정확히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석씨의 혐의 — 미성년자 약취와 사체은닉미수 — 를 유죄로 보고, 징역 8년을 선고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건은 유죄로 정리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 6월, 대법원은 이 판결을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냅니다(파기환송). 유전자 결과라는 강력한 정황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바꿔치기'라는 구체적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다시 따져 보라는 취지였습니다.

2023년 2월, 파기환송심(대구지법)의 판단은 명확했습니다. 재판부는 "유전자 감식 결과 이외에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 미성년자 약취(아이 바꿔치기) 혐의 → 무죄
  • 사체은닉미수 혐의 → 유죄

형량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5월 18일, 대법원은 재상고를 기각하며 이 판결을 최종 확정했습니다(대법원 형사3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이었던 '아이 바꿔치기' 혐의는,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되었습니다. 유죄로 남은 것은 사체은닉미수 부분입니다. 무죄의 이유는 단 하나 — 검찰이 바꿔치기의 구체적 일시와 수법, 즉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광등 아래 쌓인 두꺼운 서류 파일 더미, 정적인 사무실 정경 (AI 생성 이미지)
형광등 아래 쌓인 두꺼운 서류 파일 더미, 정적인 사무실 정경 (AI 생성 이미지)

딸 김씨의 경우는 다르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죄로 확정된 것은 석씨의 '바꿔치기' 혐의입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별개의 재판에서, 다른 사람에게, 다른 결론으로 났습니다.

숨진 아이를 홀로 남겨 두었던 김씨는, 아이의 사망에 대한 책임으로 별도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고, 상고를 포기하면서 그 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김씨는 현재 복역 중입니다.

즉, 아이의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DNA가 드러낸 저 거대한 수수께끼' —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아이를 바꿨는가 — 를 설명해 줄 유죄 판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부분은 무죄로 남았고, 그래서 사건은 미궁으로 남았습니다.

겨울 놀이터의 빈 그네가 흐린 하늘 아래 미동도 없이 걸려 있다 (AI 생성 이미지)
겨울 놀이터의 빈 그네가 흐린 하늘 아래 미동도 없이 걸려 있다 (AI 생성 이미지)

남은 미스터리 — 과학은 있는데, 이야기가 없다

이 사건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보통 미제 사건은 '증거가 없어서' 미궁입니다. 무엇이 벌어졌는지 짐작은 가는데, 그것을 증명할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죠. 그런데 이 사건은 정반대입니다.

과학적 사실은 오히려 너무나 확실합니다. DNA는 석씨가 숨진 아이의 생모임을 몇 번이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흔들림 없는 100%짜리 사실입니다.

없는 건 물증이 아니라 서사입니다. 언제 아이가 바뀌었는지, 어디서 바뀌었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가능했는지 — 이 모든 칸이 전부 비어 있습니다. 확실한 결과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결과에 이르는 길이 통째로 지워져 있는 것입니다.

DNA 시대의 역설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인류는 이제 두 사람의 혈연 관계를 거의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완벽한 증명이, 오히려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질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관계는 100% 증명되는데, 사건은 0% 풀렸습니다.

날짜가 흐릿하게 보이는 오래된 벽걸이 달력이 걸린 텅 빈 벽 (AI 생성 이미지)
날짜가 흐릿하게 보이는 오래된 벽걸이 달력이 걸린 텅 빈 벽 (AI 생성 이미지)

보도된 가설들 — 그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

이 빈칸을 두고 여러 가설이 오갔습니다. 여기서는 보도된 범위 안의 가설만, 어디까지나 가설로 소개합니다. 무죄가 확정된 사건에서 특정인의 유죄를 단정하는 것은 이 글이 할 일이 아닙니다.

병원 바꿔치기설. 검찰이 공소장에 담았던 그림입니다. 두 아이가 산부인과에서 뒤바뀌었다는 것. 그러나 법원은 이를 뒷받침할 직접 증거가 없다고 봤고, 결국 무죄가 났습니다. 가설로 제기됐으나 법정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 둡니다.

자택 출산설. 출산 자체가 병원 바깥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입니다. 이 경우 애초에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지에 대한 공식 기록 자체가 흐려지기 때문에, 바꿔치기 여부를 확인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두 가설 모두, 공통의 벽 앞에서 멈춥니다. 어느 쪽도 '지금 그 아이가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설은 가설입니다. 확정된 것은 오직 DNA 결과와, 대법원이 내린 무죄·유죄의 경계선뿐입니다. 그 선을 넘어 누군가를 단정하는 순간, 우리는 사건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건을 왜곡하게 됩니다.

취조실을 연상시키는 텅 빈 방, 책상 하나와 마주 놓인 의자 두 개뿐이다 (AI 생성 이미지)
취조실을 연상시키는 텅 빈 방, 책상 하나와 마주 놓인 의자 두 개뿐이다 (AI 생성 이미지)

'또 다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이 사건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겁니다.

김씨가 낳았다던 아이 — 서류상 어딘가에 존재해야 할 그 아이 — 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경찰은 그 아이의 행방을 추적했습니다. 김씨가 실제로 낳은 친딸이 어디로 갔는지, 바꿔치기에 관여한 공범이 있는지. 그러나 수사는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지점에서 멈췄습니다.

그 아이가 어딘가에서 다른 이름으로 자라고 있는지, 아니면 애초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아이가 없었던 것인지 — 지금까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DNA는 '이 아이의 엄마는 저 사람'이라고 말해 줄 수 있지만, '있어야 할 다른 아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말해 주지 못합니다.

빈칸 하나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 수많은 아파트 창문에 불빛이 무수히 켜져 있는 야경 (AI 생성 이미지)
도시의 밤, 수많은 아파트 창문에 불빛이 무수히 켜져 있는 야경 (AI 생성 이미지)

이 사건이 남긴 제도의 물음

이 사건은 개인의 미궁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숨진 아이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등록되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아이의 존재가 공적 기록의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국의 출생신고 제도가 가진 구멍을 정면으로 드러냈습니다.

같은 시기, 출생 미등록 아동과 관련된 비극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사회는 뒤늦게 물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국가의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사라질 수 있는 제도라면, 그 제도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 사건은 병원이 아이의 출생을 국가에 직접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논의로 이어진 흐름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한 아이의 죽음이, 다음 아이들을 위한 제도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이 미궁 속에서도 세상에 남긴, 몇 안 되는 분명한 것 중 하나입니다.

새벽 안개가 낮게 깔린 산업도시의 스카이라인, 구미를 연상시키는 차분한 원경 (AI 생성 이미지)
새벽 안개가 낮게 깔린 산업도시의 스카이라인, 구미를 연상시키는 차분한 원경 (AI 생성 이미지)

한국 미제의 계보 안에서

한국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일어났는데 끝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완성하지 못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CCTV는 있는데 나오는 장면이 없던 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 평범한 오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송혜희 실종 사건, 도시락을 싸 들고 산으로 올라간 뒤 돌아오지 못한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 — 이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나눕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가 있고, 그 주위로 거대한 공백이 있다는 것.

구미 사건은 그 계보 안에서도 유독 낯섭니다. 다른 사건들이 '무엇이 있었는지'를 모른다면, 이 사건은 과학이 답의 절반 — 혈연이라는 사실 — 을 이미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답의 절반을 손에 쥐고도 나머지 절반에 끝내 닿지 못하는 것. 그것이 이 사건만의 특별한 서늘함입니다.

흐린 겨울 하늘 아래, 눈이 얕게 덮인 좁은 골목길, 인적이 없다 (AI 생성 이미지)
흐린 겨울 하늘 아래, 눈이 얕게 덮인 좁은 골목길, 인적이 없다 (AI 생성 이미지)

이 서랍을 닫기 전에

2021년의 그 겨울로부터, 시간이 흘렀습니다.

법정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김씨에게 유죄로 확정됐고, 바꿔치기 혐의는 증거가 없어 석씨에게 무죄로 확정됐습니다. 법은 증명된 것만을 말할 수 있고, 이 사건에서 증명되지 않은 부분은 너무 많았습니다.

남은 것은 DNA라는, 흔들리지 않는 사실 하나. 그리고 그 사실이 열어젖힌 텅 빈 방입니다. 그 방 안에는 아직 이름도 얼굴도 확인되지 않은 아이 하나가 — 서류의 빈칸으로, 어쩌면 어딘가의 삶으로 —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과학은 그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못합니다.

어딘가에, 누군가는 그날의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빈칸으로 남은 그 아이가, 언젠가는 이름을 되찾기를. 이 서랍이 할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입니다.

흐린 하늘을 향해 살짝 열린 창문, 얇은 커튼이 미동 없이 드리워 있다 (AI 생성 이미지)
흐린 하늘을 향해 살짝 열린 창문, 얇은 커튼이 미동 없이 드리워 있다 (AI 생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