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 10일, 일요일 아침.
전북 부안, 위도 앞바다.
낚시객과 섬 주민을 태운 작은 여객선 한 척이, 정원을 크게 넘긴 사람들을 싣고 파장금항을 떠났다. 배 이름은 서해 훼리호. 목적지는 뭍의 격포항, 뱃길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다.
바다는 그날 좋지 않았다. 돌풍이 일고 파도가 높았다. 그런데도 배는 떠났고, 임수도 부근에서 돌풍을 만나 회항하려 뱃머리를 돌리던 순간, 옆으로 밀려온 파도에 크게 기울었다.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정원 221명인 배에 362명이 타고 있었다. 그날 292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대한민국 해양 사고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이름 중 하나가 그렇게 남았다.
이 글은 그 배가 어떻게 가라앉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이미 오래전에, 아프도록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 글은 그 배가 가라앉은 뒤 열흘 동안, 온 나라가 한 사람을 어떻게 쫓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존재하지 않았던 도망자를.


사고, 그리고 곧바로 이상했던 한 가지
먼저 사실부터. 참상을 파헤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위에 세워질 소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서해 훼리호는 110톤급의 작은 철선이었다. 위도와 격포를 하루 한 번 오가는 정기 여객선. 그날 아침, 배는 낚시철을 맞아 몰려든 손님들로 넘쳤다. 정원의 1.6배가 넘는 사람이 탔고, 화물까지 실렸다. 기상은 나빴지만 배는 출항했다. 무리한 운항이었다.
바다 위에서 돌풍을 만난 배는 방향을 돌리려다 균형을 잃었고, 빠르게 뒤집혀 가라앉았다. 구조된 사람은 극소수였다. 소식은 그날 오후 전국에 퍼졌다. 텔레비전은 위도 앞바다의 구조 현장을 종일 비췄다. 온 나라가 그 바다를 지켜봤다.
그리고 그 지켜봄 속에서, 아주 이상한 한 가지가 사람들의 마음에 걸렸다.
선장이 보이지 않았다.
사망자 명단은 늘어가는데, 배를 몰던 선장 백운두의 흔적이 없었다. 시신도 나오지 않았고, 구조자 명단에도 없었다. 구조에 나섰던 민간 어선의 사람들,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 — 그 누구도 물속에서, 혹은 배에서 선장을 봤다고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시신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 하나의 빈자리로, 열흘짜리 이야기가 통째로 밀려 들어왔다.

"선장이 혼자 헤엄쳐 도망쳤다"
소문은 빨랐다. 사고 다음 날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하나의 문장이 번지기 시작했다.
선장이 배를 버리고 혼자 살았다.
처음엔 물음표였을 것이다. 선장은 왜 안 보이지? 그런데 물음표는 오래가지 않았다. 292명이 죽은 바다 위에서, 사람들에게는 답이 필요했고, 답보다 먼저 이름이 필요했다. 책임질 얼굴, 미워할 대상, 이 무의미한 죽음에 이유를 달아줄 누군가가.
그 자리에 선장이 세워졌다.
물음표는 곧 확신이 됐다. 혼자 헤엄쳐 인근 섬으로 도망쳤다. 뭍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소문은 더 멀리 갔다. 일본으로 밀항했다. 대피 지시도 없이, 승객을 버리고 저 혼자 살아나갔다. 죽음의 규모가 클수록 소문은 더 커졌다. 292명을 버린 자라면, 그 정도 악당이라야 이 비극에 앞뒤가 맞는다는 듯이.
여기에 목격담이 붙었다. 사고 이후 인근 항구에서 "백 선장과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누군가는 뭍의 어느 골목에서, 누군가는 다른 섬에서 그를 봤다고 했다. 제보는 구체적이었고, 구체적일수록 사람들은 믿었다. 이제 선장은 '실종된 선장'이 아니라 '도망친 선장'이었다.


언론이 받아쓰고, 검찰이 수배령을 내리다
소문이 무서운 건, 소문 혼자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소문은 권위를 먹고 자란다. 그리고 1993년 가을, 서해 훼리호의 소문에는 두 종류의 권위가 얹혔다.
첫째는 언론이었다. 목격담이 나오자 신문과 방송은 그것을 받아썼다. 확인되지 않은 제보가 기사가 되었고, "선장 도주설"은 활자와 전파를 타고 전국의 안방으로 배달됐다. 검증보다 속도가 앞섰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대형 참사 앞에서, 언론은 새로운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려 경쟁했고, 그 경쟁 속에서 소문과 사실의 경계가 흐려졌다.
둘째는 수사기관이었다. 도주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검찰과 경찰은 실제로 움직였다. 백운두 선장에 대해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린 것이다. 침몰한 배의 선장을, 살아 도망친 피의자로 규정하고 쫓기 시작했다. 대형 해양 참사의 선장이 시신 수습도 되기 전에 수배자가 된, 초유의 상황이었다.
이 대목을 잠깐 멈춰 서서 보자. 지명수배는 소문이 아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이 사람은 도망친 범죄 용의자'라고 선언하는 행위다. 즉 이 시점에 대한민국은, 아직 바닷속에 있는 한 사람을 제도적으로 도망자로 만들었다. 소문이 언론을 거쳐 국가의 도장까지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소문을 밀어 올린 또 하나의 힘이 있었다.

소문을 키운 것은 슬픔이었다
위도의 부둣가에는 유족들이 모여 있었다. 바다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시신을 기다리는 사람도, 이미 확인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슬픔은, 슬픔만으로 머물 수 없었다.
분노가 필요했다. 이 죽음이 그냥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잘못이어야만, 견딜 수 있는 무게가 되기 때문이다. 자연이 배를 삼켰다고 하면 아무도 원망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배를 버렸다고 하면 — 그를 원망할 수 있다. 원망은 슬픔보다 붙잡기 쉽다. 화살은 과녁이 있어야 날아간다.
선장의 빈자리는 완벽한 과녁이었다. 그는 배의 책임자였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몰랐고, 무엇보다 반박할 수 없었다. 죽은 자는 변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족의 분노와 대중의 의심과 언론의 속보가 한 방향으로 모였다. 모두가 같은 사람을 가리켰다.
이건 누구를 탓할 이야기가 아니다. 유족의 분노는 정당한 슬픔의 다른 얼굴이었다. 문제는 그 슬픔이 사실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곁의 어른들 — 언론과 당국 — 이 그 슬픔을 붙들어 주는 대신 함께 떠밀었다는 것이다.


열흘 뒤, 배 안에서 그를 찾았다
소문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인양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 닷새 뒤인 10월 15일 — 선체 안에서 선장이 발견됐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백운두 선장의 시신은 배의 통신실 안에 있었다. 조타실 뒤편, 무전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자리. 그는 배가 기울던 그 순간, 육지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통신실로 뛰어든 것이었다. 끝까지 구조를 부르려 했던 자리에서, 밀려든 물살에 출입문이 막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기관장과 갑판장의 시신도 함께 발견됐다. 배를 움직이던 사람들은, 배를 버린 것이 아니라 배와 함께 있었다.
전국에 지명수배됐던 도망자는, 처음부터 바닷속 그 자리에 있었다. 헤엄쳐 도망친 것도, 밀항한 것도, 승객을 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죽었다. 소문이 그를 온 나라의 범인으로 만드는 동안, 그의 시신은 통신실 안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근 항구에서 '선장과 비슷한 사람을 봤다'던 그 목격담은 무엇이었나.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한 목격자가 사고 현장에 나와 있던 위도 지서장을 백 선장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얼굴을 착각한 단 한 번의 제보가, 한 사람을 도망자로 만들고 국가의 수배령까지 끌어낸 것이다.

왜 온 국민이 그것을 믿었을까
이제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이 남는다. 시신이 배 안에 있었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도주설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 소문은 그토록 빠르고 넓게, 그토록 굳게 퍼졌을까.
첫째, 분노에는 과녁이 필요했다. 292명의 죽음은 이유 없는 죽음이었다. 사람은 이유 없는 고통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의 악의로 이 일이 벌어졌다고 믿으면, 적어도 세상은 설명 가능한 곳이 된다. 도망친 선장은,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이유를 달아주는 이야기였다.
둘째, 당국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왜 정원을 넘겨 태웠나, 왜 나쁜 날씨에 출항시켰나 — 애초에 이 참사 자체가 시스템의 실패였으므로, 그 시스템이 내놓는 말도 믿을 수 없었다. 공백을 공식 설명이 채우지 못하면, 소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셋째, 언론이 받아쓰기 경쟁을 했다. 검증 없이 제보를 기사로 옮기는 순간, 소문은 사실의 옷을 입는다. "~라는 목격담이 있다"는 문장은, 읽는 사람에게 "~했다"로 남는다. 활자가 된 소문은 소문이 아니라 뉴스가 되었다.
넷째, 시대의 정서가 있었다. 1990년대 초, 한국은 대형 참사가 연이어 터지던 시기였다. 무너진 다리, 붕괴한 건물, 가라앉은 배 —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결국 높은 사람, 책임 있는 사람은 저만 살아남는다'는 냉소가 깊게 깔려 있었다. 그 냉소의 문법 안에서, '선장이 혼자 살려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새로 믿은 게 아니라, 이미 믿고 있던 것을 이 사건에 갖다 붙였을 뿐이다.
소문은 진공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소문은 사람들이 이미 준비해 둔 자리에 앉는다. 서해 훼리호의 선장 도주설은, 그 시대가 미리 파 둔 자리에 정확히 내려앉았다.


오보, 그리고 남은 이름
선장의 시신이 발견되자, 도주설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 소문을 실어 나른 언론에는 오보의 낙인이 남았다.
서해 훼리호 선장 생존설은 한국 언론사에서 대표적인 집단 오보 사례로 기록됐다. 확인되지 않은 목격담을 경쟁적으로 받아쓴 결과, 언론은 죽은 사람을 산 도망자로 만들었다. 그것도 한두 매체가 아니라 다수가, 며칠에 걸쳐. 이 일은 훗날 재난 보도의 윤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반면교사로 소환되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인된 것처럼 전할 때, 언론이 무엇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바로잡는 데는 며칠이면 됐다. 시신이 발견되자 도주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정정됐다. 그러나 정정 기사는 언제나 오보 기사보다 작고 조용하다. 도망자로 낙인찍힌 며칠 동안 백운두라는 이름에 새겨진 것을, 짧은 정정이 온전히 지워줄 수 있었을까. 그는 자기가 무슨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는지도 모른 채, 이미 배 안에서 죽어 있었다.
재난 뒤의 소문은 어디에나 있다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큰 재난 뒤에 희생양을 찾는 소문이 도는 것은, 특정 나라나 특정 시대의 일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반응에 가깝다.
역사를 돌아보면 대형 사고나 재해 뒤에는 거의 늘 '누군가가 일부러 그랬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책임자가 혼자 살아 빠져나갔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전염병이 돌면 누군가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돌았고, 도시가 불타면 누군가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고의'를 찾아낸다. 우연한 불행보다 누군가의 악의가, 역설적으로 더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넓고 말 없는 바다는 소문을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은 곳이다. 목격자는 적고, 증거는 물속에 가라앉고, 확인은 더디다. 그 빈틈으로 이야기가 흘러든다. 우리가 이 사이트에서 다룬 오랑 메단호의 미스터리처럼, 바다는 언제나 사실보다 소문을 더 오래 간직해 왔다.


이 사건이 남긴 것
서해 훼리호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정원 초과와 과적을 막지 못한 관리, 나쁜 날씨에 출항을 걸러내지 못한 통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구명 설비 — 이 참사 이후 해운 안전 규정은 손질됐고, 여객선 운항과 승선 관리에 대한 감독이 강화됐다. 292명의 죽음이 남긴 최소한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긴 것이 하나 더 있다. 규정으로는 고칠 수 없는 것.
30년이 지난 뒤에도, 큰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비슷한 패턴이 되풀이됐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슬픔을 타고 퍼지고, 누군가가 순식간에 범인으로 지목되고,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면 조용히 정정된다. 소문의 문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똑같다. 슬픔이 과녁을 찾고, 불신이 공백을 메우고, 속도가 진실을 앞지른다.
기술은 달라졌다. 이제 소문은 신문과 방송이 아니라 손안의 화면을 타고 퍼진다. 예전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멀리, 훨씬 지우기 어렵게. 서해 훼리호의 열흘은 지금이라면 몇 시간으로 압축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마음은, 30년 전 위도의 부둣가에 서 있던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이유 없는 고통 앞에서 이유를 만들어낸다.
같은 시대 한국을 흔든 또 다른 미스터리,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 '무엇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면, 서해 훼리호의 선장 이야기는 '우리는 왜 사실이 아닌 것을 믿었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서랍을 닫으며
백운두 선장은 도망치지 않았다.
이 한 문장을, 이 글의 마지막에 다시 못 박아 둔다. 그는 배를 버리지 않았다. 헤엄쳐 달아나지도, 일본으로 밀항하지도 않았다. 그는 구조를 부르는 통신실에서, 자기 배와 함께 죽었다. 도망자라는 이름은 그에게 씌워진 것이지, 그가 저지른 것이 아니다.
소문은 그의 시신이 발견된 날 끝났다. 그러나 그 소문을 만들어낸 불신은 끝나지 않았다. 슬픔은 여전히 과녁을 찾고, 사람들은 여전히 사실보다 먼저 이야기를 믿는다. 위도 앞바다는 다시 잔잔해졌지만, 그 바다가 우리에게 물었던 질문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의 결백이 밝혀지는 데는 닷새가 걸렸다. 그리고 그 닷새 동안, 온 나라가 이미 결심을 내린 뒤였다. 진실이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292명의 희생자와, 자기 배를 끝까지 지킨 한 선장을 기억하며. 소문이 아니라, 사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