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불타는 것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잔인한 비극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불은 보통 무언가를 남긴다. 재와 검게 그을린 잔해, 그리고 — 입에 담기 끔찍하지만 — 사람의 흔적을. 다섯 아이가 잠든 채 불에 타 죽었다면, 폐허 속에는 묻어 줄 무언가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 1945년 크리스마스 아침, 웨스트버지니아의 산골에서 한 가족의 집이 한 시간도 안 되어 잿더미가 됐고, 다섯 아이가 사라졌다. 부모는 아이들이 불길 속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불이 식은 뒤 가족이 잿더미를 헤집었을 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뼈도, 이빨도, 그 무엇도. 그렇게 미국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 오래 남은 미스터리 하나가 시작됐다.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 듯한 다섯 아이의 이야기, 그리고 남은 평생을 그 불이 자기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살아간 부부의 이야기다.

1945년, 크리스마스 이브
조지 소더와 제니 소더 부부는 웨스트버지니아 탄광 지대의 작은 마을 페이엣빌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 이민자였다. 사르데냐섬에서 조르조 소두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조지는 운수업을 하며, 마을에서 부지런하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통했다. 부부에게는 열 명의 아이가 있었고, 1945년 12월 24일 밤 그중 아홉이 집에 있었다. 맏아들 조는 군대에 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집안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큰 딸들은 장난감을 선물로 받았고, 어린아이들은 그걸 가지고 더 놀겠다며 늦게까지 자지 않겠다고 졸랐다. 제니는 집안일 —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물을 길어 오는 일 — 을 마치면 조금 더 깨어 있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러고는 세 살배기 막내 실비아를 데리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다섯 아이는 아래층에 남았다. 이 가족에게 남은 마지막 평범한 순간이었다.

걸려 온 전화, 그리고 지붕 위의 소리
자정이 막 지났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제니가 일어나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는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고, 그녀는 제니가 전혀 모르는 이름을 찾았다. 뒤로는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어딘가 낯선 웃음소리, 파티 같은 소음이 들려왔다. 여자는 번호를 잘못 걸었고, 제니는 어딘가 께름칙한 기분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시 침실로 향하던 제니는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아래층 불이 그대로 켜져 있었고, 커튼도 열려 있었으며,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늦게까지 남아 있던 아이들이 자러 가기 전에 당연히 정리했어야 할 것들이었다. 제니는 문을 잠그고 다시 누웠다. 막 잠이 들려던 참에, 그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지붕을 때린 듯한 크고 날카로운 '쿵' 소리, 그리고 이어서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 그녀는 잠시 귀를 기울였지만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삼십 분쯤 뒤, 연기 냄새에 눈을 떴다.

불길, 그리고 어긋나 버린 모든 것
불은 조지의 집무실, 두꺼비집 근처에서 시작돼 벽을 타고 이미 번지고 있었다. 제니는 조지와, 가까이서 자고 있던 두 아이를 깨워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다섯 아이 — 열네 살 모리스, 열두 살 마사 리, 열 살 루이스, 여덟 살 제니 아이린, 다섯 살 베티 돌리 — 는 아직 위층에 있었고, 계단은 이미 불의 벽으로 변해 있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을 구할 방법을 하나씩 빼앗아 가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우연의 연속처럼 읽힌다. 조지는 이층 창문으로 올라가려고 집 옆으로 달려갔지만, 늘 벽에 세워 두던 사다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트럭을 창문 아래로 바싹 대 그 위에 올라서려 했다 — 전날까지 멀쩡히 굴러가던 석탄 트럭 두 대는, 그날따라 두 대 모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제니는 물을 끼얹으려 했지만 빗물통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이웃집으로 달려가 소방서에 전화하려 했으나 전화선은 이미 죽어 있었다. 결국 친척 한 사람이 시내에 있는 소방서장에게 겨우 연락을 넣었지만, 전쟁 탓에 인력이 부족했던 소방서는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때 집은 이미 무너져 연기만 피어오르는 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집 한 채가 다 타는 데 걸린 시간은 사십오 분 남짓이었다.

잿더미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조지와 제니는 다섯 아이가 불 속에서 죽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공식적인 결론은 그러했다. 화재는 누전으로 인한 사고로 판정됐고, 아이들은 불길 속에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다. 사망 진단서까지 발급됐다.
그러나 이야기는 곧바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족이 재를 뒤지고, 나중에 그 자리를 파헤쳤을 때, 다섯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뼈는 평범한 집 화재로 사라지지 않는다. 한 시간도 채 타지 않은 이 정도의 불이 다섯 구의 몸을 완전히 없애 버릴 수는 없다. 그런데 뼈도, 두개골도, 이빨 한 조각도 없었다. 한 장의사는 제니에게 사람의 몸이 그냥 사라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훗날 조지가 그 자리를 흙으로 덮어 추모 정원을 만들려 했을 때, 흙 속에서 나온 사람 뼛조각 몇 개를 병리학자가 살펴보기는 했다 — 그러나 그것은 허리뼈 몇 개로 확인됐고, 그마저도 화재가 아니라 메우는 데 쓴 흙에서 딸려 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건의 한복판에 뚫린 이 '없음'은, 파고들수록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 아이들이 정말 불에 탔다면, 그 흔적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협박, 그리고 누군가 꾸민 듯한 정황
그날 밤을 곱씹을수록, 몇 주 전의 사소한 일들이 점점 불길한 모양을 띠기 시작했다. 몇 달 전, 한 남자가 짐 나르는 일자리를 구한다며 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집 뒤편을 어슬렁대다 두꺼비집을 가리키며, 저것이 "언젠가 불을 낼 것"이라는 섬뜩한 말을 남겼다. 또 다른 낯선 남자, 보험 판매원은 조지가 계약을 거절하자 화를 내며 "이 집은 연기가 되어 사라질 것이고, 아이들도 끝장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가 무솔리니를 대놓고 비판해 온 것에 대한 앙갚음이라는 것이었는데, 당시 그 마을에서 이탈리아 이민자가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몇 주 동안, 큰아들들은 낯선 차 한 대가 고속도로변에 세워진 채,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 동생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물증도 있었다. 전화 수리공은 가족에게, 전화선이 불에 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누군가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 손을 뻗어 깔끔하게 잘라 놓았다는 것이다. 불길이 닿을 리 없는 한참 높은 곳에서였다. 집에 세워져 있어야 할 사다리는 나중에 22미터쯤 떨어진 둑 아래에서 발견됐다. 시동이 걸리지 않던 트럭들, 그리고 어린 실비아가 마당에서 주운 딱딱한 고무 물체 — 조지는 이것을 지붕 위로 던져진 일종의 소이(燒夷) 장치라고 믿게 됐다. 제니가 연기 냄새를 맡기 전에 들었던 바로 그 '쿵' 소리의 정체 말이다. 조각들은 하나씩, 이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짜 맞춘 일이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목격담, 그리고 사진 한 장
아이들이 죽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세월이 흐르며, 다섯 아이가 산 채로 어딘가로 끌려갔다는 부모의 믿음을 부추기는 이야기들이 하나둘 들려왔다. 한 여자는 불이 한창일 때 지나가는 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그 아이들을 봤다고 했다. 페이엣빌과 찰스턴 사이에서 휴게소를 운영하던 한 여자는, 화재 다음 날 아침 그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 줬다고 주장했다. 찰스턴의 한 호텔 직원은, 인상착의가 비슷한 아이 여럿이 자정 무렵 투숙했으며, 이탈리아어를 쓰는 어른들과 함께였고 그 어른들은 아이들이 누구와도 말을 섞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했다. 무엇 하나 증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 하나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십 년도 더 지난 뒤, 이 사건에서 가장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1968년, 제니는 자기 앞으로 온 편지 한 통을 열었다. 켄터키주 센트럴시티 소인이 찍혀 있었고, 보낸 이 주소는 없었다. 안에는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소더 부부에게 그 얼굴은 — 이제 삼십 대가 되었을 — 루이스와 틀림없이 닮아 보였다. 같은 검은 눈, 같은 이마, 같은 얼굴의 윤곽. 사진 뒷면에는 빽빽한 글씨로 지금껏 아무도 풀지 못한 알쏭달쏭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루이스 소더. 나는 형 프랭키를 사랑한다. Ilil boys. A90132 또는 35." 가족은 사설탐정을 고용해 켄터키로 보내 그 젊은이를 찾게 했다. 탐정은 돈을 받아 그곳으로 갔고, 그 뒤로 다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간판
조지와 제니 소더는 끝내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FBI에 편지를 보냈지만, 국장 J. 에드거 후버는 이 일이 "지역적인 성격"이며 자기 국(局)의 관할 밖이라고 답했다. FBI가 주(州)를 넘나든 유괴 가능성을 이유로 잠시 관심을 보였을 때도, 실마리들은 모두 허공으로 흩어졌고 사건은 접혔다. 주 당국 역시 자체 조사를 '가망 없음'으로 결론짓고 닫아 버렸다. 공식적인 문은 하나같이 가족의 코앞에서 닫혔다.
그래서 소더 부부는, 아무도 답해 주지 않는 그 질문을 향한 자기들만의 기념비를 세웠다. 페이엣빌 인근 16번 도로변에 그들은 커다란 간판 하나를 올렸다. 다섯 아이의 얼굴과 화재가 난 날짜, 그리고 그들이 끝내 놓을 수 없었던 마음을 그대로 담은 굵은 글씨.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부부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줄 정보에 현상금을 내걸었다. 처음엔 오천 달러, 나중엔 만 달러였다. 켄터키에서 온 그 사진도 크게 확대해 간판에 붙였다. 40년 가까이, 간판은 길가에 서서 지나는 차들을 내려다봤다. 근엄한 다섯 아이의 얼굴이, 마을도 세상도 이 일을 잊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조지는 1969년, 아이들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확신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제니는 이후로도 이십 년을 더 찾기를 이어 갔고, 화재 이후로는 검은 옷만 입었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1989년에 눈을 감은 뒤에야 간판은 비로소 철거됐다. 어머니 품에 안겨 불길에서 빠져나온 세 살배기 막내 실비아는, 노년에 이르도록 오빠와 언니들이 그 집에서 죽지 않았다고 믿었다.
오늘날까지도, 모리스와 마사 리, 루이스, 제니 아이린, 베티 돌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흔적 한 조각 남기지 않은 불에 타 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통째로 삼킨 그 밤 속으로 실려 간 것인지 — 웨스트버지니아 그 농가의 잿더미는 끝내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80년이 지난 지금도, 소더 부부가 길가에 새겨 넣은 그 질문은 차가운 크리스마스의 공기 속에 답 없이 걸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