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월 31일 아침,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의 케이프해터러스 연안경비대 초소에 있던 사람들은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보았다. 거대한 다섯 돛대 범선 한 척이 다이아몬드 숄스에 단단히 좌초해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 숄스는 아우터뱅크스에서 대서양 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위험한 모래톱이다. 배의 돛은 모두 펼쳐진 채 바람을 잔뜩 안고 있어 마치 항해 중인 듯 보였지만,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해안에서 보내는 신호에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며칠 뒤, 모래톱을 지키는 거센 파도를 뚫고 구조대가 마침내 배에 접근해 갑판에 올랐을 때, 배는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갤리(주방)에서는 방금 전까지 요리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조리하던 음식이 화덕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항해일지가 없었다. 항법 장비가 없었다. 선원들의 개인 서류가 없었다. 두 척의 구명정도 없었다. 그리고 이 배를 몰던 열한 명의 선원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회자되는 해양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 '아우터뱅크스의 유령선' 캐럴 A. 디어링호 이야기다.

모래톱 위의 배
케이프해터러스 앞바다의 다이아몬드 숄스는 '대서양의 묘지(Graveyard of the Atlantic)'라는 음산한 별명을 얻은 곳이다. 수면 아래로 모래톱이 멀리까지 뻗어 있어, 수 세기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배가 이곳에서 침몰했다. 그러니 그 1월 아침 거대한 범선이 좌초해 꼼짝 못 하는 채로 모래톱 위에 나타난 것 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숄스에서 배가 좌초하는 일은 무섭도록 흔했기 때문이다. 이 난파선을 남다르게 만든 것은, 배가 발견됐을 때의 그 상태였다.
며칠 동안 파도가 너무 사나워 아무도 배에 오를 수 없었다. 구조선들이 배 주위를 맴돌았지만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했고, 인명구조대는 해변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월 초, 마침내 인양 회사 사람들이 배에 올랐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기이할 만큼 멀쩡한 배였다. 배를 버릴 만큼 심각한 폭풍 피해의 흔적도, 화재도, 충돌의 증거도 없었다. 돛은 평범하게 항해할 때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도 배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시신조차 없었다. 몇몇 기록에 따르면 유일하게 살아 있던 것은 배에서 기르던 고양이뿐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 크기의 배가 열한 명의 선원을 통째로 잃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처럼 보였다.

화덕 위의 음식, 그리고 사라진 것들
배에 오른 사람들이 기록한 모든 세부 가운데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갤리였다. 마치 식사를 준비하던 중인 것처럼 음식이 나와 있었다. 화덕 위의 냄비, 손질해 둔 식재료, 곧 밥을 먹으려던 선원들의 평범한 흔적. 모든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 선원들이 배에 있으면서 여느 때처럼 배 살림을 꾸리고 있었음을 말해 주었다. 갤리의 그 어떤 것도 공포에 질려 허둥댄 흔적이나, 길고 더딘 재난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이 말해 주는 것은 하나, '중단'이었다 — 갑작스럽고, 완전한 중단.
이 일상적 평온함과 대비되는 것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사라진 것들'의 목록이었다. 어떤 배에서든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문서인 항해일지가 사라졌다. 선원들이 배를 몰던 항법 장비와 해도가 사라졌다. 선원들의 개인 소지품과 서류가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에 있던 두 척의 구명정이 일부 장비와 함께 사라져 있었다. 어떤 것들은 분명히 누군가 의도적으로 챙겨 간 것이었다 — 배를 떠나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챙겨 갈 법한 물건들 말이다. 그러나 화덕 위의 음식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이곳에 그대로 머무를 생각이 분명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두 사실은 나란히 놓인 채 도무지 화해하지 못했고, 그 뒤로도 영영 화해하지 못했다.

이미 어긋나 있던 항해
캐럴 A. 디어링호는 1919년 미국 메인주에서 건조된 상선용 범선으로, 그 종류로는 크고 현대적인 배였다. 1920년 말 이 배는 석탄을 싣고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고, 문제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항해의 귀항 길이었다. 원래 선장이 병에 걸려 기항지에서 교체되어야 했고, 지휘권은 노련한 항해사 W. B. 워멜(Wormell) 선장에게 넘어갔다. 그는 대부분 외국인 선원들로 이루어진 배를 떠맡았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귀항 항해는 순탄치 않았다. 배 안에는 긴장이 흘렀고, 워멜 선장은 자신의 선원들 — 잘 알지 못하고 온전히 믿지도 못하는 이들 — 에 대해 불안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북상하던 배는 바베이도스에 기항했고, 그곳에서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뭍에 올랐다. 훗날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에서 항해사가 선장에 대해 심하게 불평하는 것을 들은 사람이 있었고, 선원들 사이에 마찰은 물론 협박까지 오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1921년 1월 디어링호가 바베이도스를 떠나 미국 해안의 모항으로 향했을 때, 배는 화물뿐 아니라 이미 갈등으로 팽팽해진 선원들까지 함께 싣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선원들이 배에 탄 모습으로 목격된 마지막 항구였다.

등대선의 기이한 보고
디어링호가 모항을 향해 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중, 배는 케이프룩아웃 등대선(lightship) 곁을 지나쳤다. 등대선은 노스캐롤라이나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떠 있는 '떠다니는 등대'다. 등대선 관리인이 보고한 내용은, 이 사건 전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됐다. 범선이 지나갈 때 한 남자가 배의 난간으로 나와 등대선을 향해, 디어링호가 닻을 잃었으니 이 소식을 선사(船社)에 알려 달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관리인은 이 대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자신에게 소리친 남자는 항해사처럼 보이지도, 그렇게 들리지도 않았고, 갑판에서 어슬렁대던 선원들은 후갑판(quarterdeck) 주변에 몰려 있었다 — 보통은 배의 사관들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이지, 일반 선원들이 모여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닻을 내린 자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관리인에게, 배 전체가 어딘가 잘못되어 보였다. 마치 배 안의 통상적인 지휘 질서가 무너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관리인은 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었다 — 자신의 무전기가 고장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디어링호는 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알려진 한,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이 배 위의 누군가와 말을 나눈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배는 텅 빈 채 케이프해터러스의 모래톱 위에 있었다. 제자리를 벗어난 선원들, 규율이 무너진 배 — 등대선 관리인의 이 불길한 인상은, 이후 수십 년간 유력한 가설 하나에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워싱턴까지 올라간 수사
캐럴 A. 디어링호의 실종은 오래 지역의 진기한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마침 같은 해안에서 여러 다른 배들도 설명되지 않는 정황 속에 사라지고 있던 때였고, 이 우연의 일치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내 이 사건에는 미국 정부의 놀라운 진용이 투입됐다 — 상무부, 국무부, 재무부, 해군부, 그리고 새로이 힘을 키워 가던 연방 수사국(Bureau of Investigation, FBI의 전신)까지 모두 조사에 참여했다. 사라진 범선 한 척이 국가적 관심사가 된 것이다.
수사관들은 그 시대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쫓았다. 그들은 배 안에서 보고된 마찰과 등대선 관리인의 기이한 증언을 근거로 반란(선상 폭동) 가설을 파고들었다. 그런 가능성이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던 시대였던 만큼, 해적 가설도 뒤쫓았다. 한동안은 금주법 시대의 밀주업자나 외국 첩보원이 얽혀 있지는 않은지까지 저울질했고, 병 속에서 발견됐다는 한 수수께끼의 메시지가 잠시 수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으나 결국 조작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기관과 그 모든 가설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매번 똑같은 벽에 부딪혔다. 시신이 없었다. 생존자가 없었다. 배의 마지막 시간을 재구성할 항해일지도, 선장의 기록도 없었다. 1년 넘게 이어진 이 대대적 수사는, 결국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 채 조용히 종결됐다.

추측들, 그리고 남는 침묵
기록이 끝나는 자리에서 추측이 시작되고, 디어링호는 한 세기에 걸친 추측을 불러 모았다. 가장 냉정하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반란설이다 — 이미 워멜 선장, 그리고 어쩌면 그의 항해사와도 사이가 틀어져 있던 선원들이 사관들에게 들고일어났고, 그 혼란 속에서 배가 버려졌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몰려 있던 선원들에 대한 등대선 관리인의 보고, 그리고 사라진 구명정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다른 이들은 해적설을 지지하거나, 혹은 선원들이 진짜 비상 상황 — 배의 고장, 모래톱 앞바다의 험한 날씨 — 에 구명정을 타고 배를 떠났다가 뭍에 닿기도 전에 그저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설을 지지한다. 그토록 많은 배를 삼켰던 바로 그 대서양이, 그들의 작은 배마저 삼켜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거친 가설들이 있다. 디어링호를 미스터리 전설의 단골로 남게 만든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케이프해터러스가 훗날 '버뮤다 삼각지대'라 불리게 되는 느슨한 경계 안에 들어 있는 탓에, 이 배는 종종 그 전설 속으로 편입되어, 선원들을 통째로 삼키는 어떤 미지의 힘의 증거로 제시되곤 했다. 지리적 위치와 우연의 일치 말고는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그 이미지만은 거부하기 힘들다 — 돛을 모두 편 채, 키를 잡은 이 하나 없이 홀로 나아가는 거대한 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작고, 훨씬 기이하다. 1921년 겨울, 다섯 돛대 범선 한 척이 돛을 편 채, 갤리 화덕 위에 음식을 남겨 둔 채 케이프해터러스 앞바다에 좌초했고, 열한 명의 선원은 항해일지와 구명정,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줄 그 어떤 기록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그 시대 가장 강력한 수사 기구가 이 미스터리에 총동원됐지만 끝내 풀지 못했다.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대서양의 묘지'는 캐럴 A. 디어링호의 선원들을 아직 내주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