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1월 19일 밤.

한 젊은 가수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듀스라는 이름으로 90년대 초 한국 대중음악을 흔들었던 두 사람 중 하나, 해체 이후 처음으로 혼자 서는 무대였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의 제목은 '말하자면'이었습니다.

무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스물세 살, 이제 막 새로운 장을 여는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그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풍 방송국 무대 위, 빈 스탠드 마이크 하나에 무대 조명이 떨어진다. 사람은 없다. (AI 생성 이미지)
1990년대풍 방송국 무대 위, 빈 스탠드 마이크 하나에 무대 조명이 떨어진다. 사람은 없다. (AI 생성 이미지)

듀스, 그리고 김성재라는 사람

먼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합니다.

김성재는 1972년에 태어났습니다.

1993년, 그는 이현도와 함께 '듀스(DEUX)'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들은 한국 힙합과 댄스 음악의 개척자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한국 가요계에서 낯설었던 리듬과 춤, 새로운 감각의 사운드를 들고 나와,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두 사람은 '우리는' '나를 돌아봐' 같은 곡으로 빠르게 스타가 됐고, 90년대 청춘의 한 상징이 됐습니다.

그러나 듀스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1995년, 두 사람은 팀을 해체합니다.

그리고 김성재는 솔로로 새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꺼진 무대 조명 리그가 어둠 속에 매달려 있다. 빛은 거의 없고 차가운 실루엣만 남아 있다. (AI 생성 이미지)
꺼진 무대 조명 리그가 어둠 속에 매달려 있다. 빛은 거의 없고 차가운 실루엣만 남아 있다. (AI 생성 이미지)

데뷔 무대, 그리고 그날 밤

1995년 11월 19일.

김성재는 솔로 가수로서 첫 무대에 섰습니다.

앞서 말한 '말하자면'을 비롯해 새 음악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보인 자리였습니다.

무대는 잘 끝났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성공적인 첫걸음이었습니다.

공연을 마친 그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그 호텔 객실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1995년 11월 20일 아침.

객실에서 그는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새벽의 호텔 복도. 카펫이 길게 뻗어 있고 간접등만 낮게 켜져 있다. 브랜드도 글자도 없다. (AI 생성 이미지)
새벽의 호텔 복도. 카펫이 길게 뻗어 있고 간접등만 낮게 켜져 있다. 브랜드도 글자도 없다. (AI 생성 이미지)

발견된 아침

여기서부터는 보도되고 기록으로 남은 사실만 조심스럽게 짚겠습니다.

김성재는 데뷔 무대를 마친 뒤 호텔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도록 그가 일어나지 않자, 주변 사람들이 객실을 확인했고, 그가 이미 숨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급작스러운 죽음, 어쩌면 심장 이상 같은 자연스러운 원인이 떠올랐을 수도 있습니다.

젊고 건강한 스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부검이 시작되면서, 이 죽음은 단순한 급사로 넘어갈 수 없는 사건이 됐습니다.

호텔 객실 창밖으로 새벽 도시가 어렴풋이 밝아 온다. 실내는 어둡고 창가에만 옅은 빛이 든다. (AI 생성 이미지)
호텔 객실 창밖으로 새벽 도시가 어렴풋이 밝아 온다. 실내는 어둡고 창가에만 옅은 빛이 든다. (AI 생성 이미지)

부검이 찾은 것

부검 결과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주사자국이었습니다.

김성재의 오른팔에서 무려 28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됐습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스물여덟 개.

그리고 이 위치가 곧바로 논쟁의 핵심이 됩니다.

김성재는 오른손잡이였습니다.

오른손잡이가 스스로 자기 오른팔에 주사를 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사기를 다루는 손과 주사를 맞는 팔이 같은 쪽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족과 일부 전문가들은 바로 이 점을 들어, 스스로 놓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기된 '의문'이며, 그 자체로 무언가를 단정하는 증거는 아닙니다.

다만 이 오른팔의 위치는, 이후 오랫동안 이 사건을 따라다니는 가장 큰 물음표가 됩니다.

차가운 빛이 켜진 병원 복도. 인적 없이 조명만 길게 늘어서 있다. (AI 생성 이미지)
차가운 빛이 켜진 병원 복도. 인적 없이 조명만 길게 늘어서 있다. (AI 생성 이미지)

몸에서 나온 낯선 약물

주사자국만이 아니었습니다.

김성재의 몸에서는 '졸레틸(Zoletil)'이라는 약물이 검출됐습니다.

졸레틸은 사람을 위한 약이 아니라 동물용 마취제입니다.

주로 동물을 마취시킬 때 쓰는, 당시 국내에서는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없는 매우 드문 약물이었습니다.

여기서 여러 의문이 한꺼번에 겹칩니다.

첫째, 어떻게 이 낯선 동물 마취제가 한 젊은 가수의 몸에 들어갔는가.

둘째, 검출된 양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수준이었는가. 이 '치사량' 여부를 두고도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셋째, 김성재에게는 약물을 상습적으로 사용한 이력이 없었다는 주변의 증언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평소 약물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의 몸에서, 구하기도 어려운 동물 마취제가, 스스로 놓기 어려운 위치의 스물여덟 개 주사자국과 함께 발견된 것입니다.

이 조합이, 이 죽음을 단순한 사고로 보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법의학 실험실의 정물. 시험관과 현미경이 놓여 있고, 라벨은 붙어 있지 않다. 차가운 조명. (AI 생성 이미지)
법의학 실험실의 정물. 시험관과 현미경이 놓여 있고, 라벨은 붙어 있지 않다. 차가운 조명. (AI 생성 이미지)

수사와 재판의 궤적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한 인물을 향했습니다.

김성재의 당시 연인이었던 여성이 피의자로 지목됐고, 결국 기소됐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이름도, 신상도, 이후의 삶도 전혀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재판의 결과를 먼저 분명히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판은 극적으로 엇갈렸습니다.

1심. 법원은 유죄로 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2심(항소심). 판단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성재를 살해할 만한 뚜렷한 동기와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1998년,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즉, 무기징역 → 무죄 → 무죄 확정.

법이 내린 최종 결론은 분명합니다.

기소됐던 그 사람은 무죄입니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법적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법원의 돌계단과 굵은 기둥. 사람은 없고 서늘한 빛만 계단에 내려앉는다. (AI 생성 이미지)
법원의 돌계단과 굵은 기둥. 사람은 없고 서늘한 빛만 계단에 내려앉는다. (AI 생성 이미지)

법원은 왜 무죄로 판단했나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무죄라는 결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형사재판에는 아주 오래된 원칙이 있습니다.

유죄를 선고하려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

이 사건에는 정황을 의심하게 만드는 여러 정황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낯선 동물 마취제, 스스로 놓기 어려운 위치의 주사자국, 약물 이력이 없었다는 증언.

그러나 '정황'과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은 다른 것입니다.

법원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봤습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그 주사를 놓았는지를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하는 직접증거가 법정에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정황은 무거웠지만, 그 정황만으로 한 사람을 살인자로 확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처럼, 한국 형사재판에서 정황과 증명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의 계보에 놓이게 됩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이야기도 분명한 피해가 있었지만 법이 누구도 처벌하지 못한, 같은 종류의 빈칸을 남긴 사건입니다.)

오래된 서류철과 도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AI 생성 이미지)
오래된 서류철과 도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AI 생성 이미지)

무죄 이후에 남은 것

여기서 이 사건 특유의 서늘한 공백이 드러납니다.

법적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소됐던 사람은 무죄다. 따라서 법적으로 이 사건의 '범인'은 없다.

동시에 사인 역시 공식적으로 말끔하게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놓은 약물에 의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개입한 사건이었는지 — 그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법원이 확정한 '결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죄 판결은 "기소된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증명되지 않았다"는 판단이지, "그렇다면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답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죽음은 기묘한 상태로 남습니다.

피해자는 분명히 있는데, 법적으로는 사건이 없는 상태.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났고, 그 죽음의 정황에는 설명되지 않은 것이 많은데, 법정에서 처벌받은 사람은 없고, 사인 규명도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빈칸이 여러 개 동시에 열려 있는 것입니다.

라벨 없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와 워크맨이 정물처럼 놓여 있다. 90년대의 잔상. (AI 생성 이미지)
라벨 없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와 워크맨이 정물처럼 놓여 있다. 90년대의 잔상. (AI 생성 이미지)

2019년, 법원이 그은 선

시간이 한참 흘러 2019년, 이 사건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뉴스에 올랐습니다.

한 시사 프로그램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죄가 확정됐던 그 전 연인이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인격권을 지켜달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그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일부 인용).

방송은 결국 나가지 못했습니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대략 이렇게 정리됐습니다.

방송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담고 있고, 무죄가 확정된 사람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으며,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만으로 그 침해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것.

이 결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논점을 남겼습니다.

한국에서 미제를 이야기하는 법.

한쪽에는 표현의 자유,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죽음'을 공론화하고 싶은 사회적 욕구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무죄추정의 원칙, 그리고 법이 이미 무죄를 확정해 준 사람을 방송이 다시 '범인처럼' 지목하는 것에 대한 경계가 있습니다.

2019년 법원이 그은 선은, 바로 이 두 가치가 부딪치는 지점이었습니다.

무죄가 확정된 사람을 암시적으로라도 범인으로 지목하는 방송은 제한될 수 있다 — 법원은 그렇게 말한 셈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넘어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는 또 하나의 질문을 품게 됐습니다.

어두운 90년대풍 거실. 꺼진 브라운관 TV가 놓여 있고 화면은 검다.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90년대풍 거실. 꺼진 브라운관 TV가 놓여 있고 화면은 검다. (AI 생성 이미지)

그래서 이 글이 지키는 선

그 법원의 취지를 이 글도 그대로 따릅니다.

그래서 분명히 해둡니다.

기소됐던 사람은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그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지도, 암시하지도 않습니다.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이것뿐입니다.

"당시 연인이 기소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그 사람의 이름도, 신상도, 이후의 삶도 이 글은 다루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누가 했는가'가 아닙니다.

'무엇이 밝혀졌고, 무엇이 빈칸으로 남았는가'입니다.

밝혀진 것 — 한 젊은 스타가 죽었고, 그 몸에서 낯선 약물과 설명되지 않는 주사자국이 나왔다는 사실.

빈칸으로 남은 것 — 그 약물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누가 개입했는지, 사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 글이 하려는 일은 그 빈칸을 함부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빈칸이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빈 무대 위, 마이크 하나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진다. 무대 뒤는 완전히 어둡다. (AI 생성 이미지)
빈 무대 위, 마이크 하나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진다. 무대 뒤는 완전히 어둡다. (AI 생성 이미지)

30년의 팬덤, 그리고 추모

법과 논쟁을 잠시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 한 사람이 남습니다.

김성재.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사건이기 이전에 음악이었습니다.

90년대를 지나온 세대에게 듀스의 음악은 청춘의 사운드트랙이었고, 김성재는 그 시대의 감각을 상징하는 얼굴 중 하나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의 노래는 다시 불렸고, 그의 춤은 다시 회자됐으며,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와 콘텐츠가 이어졌습니다.

떠난 지 30년이 되도록 그의 팬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일이 되면 그를 기억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그가 개척했던 음악의 계보를 짚는 이야기들이 반복됩니다.

죽음의 미스터리가 그의 이름을 붙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진짜 힘은 결국 그가 남긴 음악과 스물세 살에 멈춰버린 한 아티스트의 가능성입니다.

국화 한 송이와 촛불 하나가 어두운 배경 속에 놓여 있다. 조용한 추모의 빛. (AI 생성 이미지)
국화 한 송이와 촛불 하나가 어두운 배경 속에 놓여 있다. 조용한 추모의 빛. (AI 생성 이미지)

증거는 있는데,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 사건들

세상에는 이 사건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죽음들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분명히 잘못됐다는 '증거'는 있는데, 그것이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이어지지 않는 사건들.

증거의 조각은 남았지만 그 조각들을 꿰어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할 마지막 연결고리가 끝내 채워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한국의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역시 분명한 피해가 있었지만 법이 누구도 처벌하지 못한 채 '진범의 자리'가 비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태원 살인사건처럼, 피해와 정황은 뚜렷한데 '누가'라는 마지막 칸을 채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끝내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사건들도 있습니다.

김성재 사망 사건은 그 계보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몸에 남은 약물과 주사자국이라는 물리적 흔적,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의문 — 재료는 이렇게나 많은데, 그것을 하나의 확정된 이야기로 봉인할 결정적 조각이 없는 것입니다.

새벽의 한강과 다리의 실루엣. 물 위로 옅은 안개가 깔려 있다. (AI 생성 이미지)
새벽의 한강과 다리의 실루엣. 물 위로 옅은 안개가 깔려 있다. (AI 생성 이미지)

말하자면, 아직 말해지지 못한

이 사건을 정리하면서 자꾸 떠오르는 것은 결국 그 노래 제목입니다.

'말하자면.'

김성재가 솔로 데뷔 무대에서 부른, 그리고 그다음 날 새벽 멈춰버린 그 노래.

'말하자면'이라는 말은 아직 다 말해지지 않았을 때 쓰는 말입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운을 떼는 말, 그러나 그 뒤에 정작 완성된 문장이 와야 비로소 뜻이 채워지는 말.

이 사건이 꼭 그렇습니다.

밝혀진 사실들은 운을 떼기에 충분합니다.

한 스타가 데뷔 무대 다음 날 호텔에서 숨졌고, 그 몸에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나왔다.

그러나 그 뒤에 와야 할 문장 —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는 아직 비어 있습니다.

법은 기소된 사람을 무죄로 판단했고, 그 판단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사인은 공식적으로 규명되지 않았고, 그것을 함부로 단정하는 것 또한 정당하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답이 아니라 잘 지켜야 하는 질문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존중하며 이야기할 것인가. 무죄가 확정된 사람을 어떻게 다시 상처 입히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칸을 어떻게 함부로 채우지 않고 그대로 바라볼 것인가.

꺼진 무대 뒤 출입구가 아침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문틈으로 옅은 빛이 든다. (AI 생성 이미지)
꺼진 무대 뒤 출입구가 아침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문틈으로 옅은 빛이 든다. (AI 생성 이미지)

스물세 살의 스타는 데뷔 무대에서 노래를 마치고, 다음 날 새벽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의 제목처럼, 이 사건은 아직 '말하자면'에서 멈춰 있습니다.

운은 떼어졌지만,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법이 지켜야 할 선은 지키면서, 떠난 사람은 존중하면서, 우리는 그저 이 빈칸을 열어둔 채 그를 기억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아직 다 말해지지 못했습니다.

동틀 무렵의 도시 하늘. 여명이 지평선 위로 조용히 번진다. (AI 생성 이미지)
동틀 무렵의 도시 하늘. 여명이 지평선 위로 조용히 번진다. (AI 생성 이미지)